모인 때 : 2017년 10월 18일 11시
모인 사람: 시로샘, 미리내, 양여주, 나랑, 성민, 할마, 지현, 말로
흐린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가슴에는 백합을 안은 채 물푸레로 갑니다.
앞으로는 늦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만, 미리내께서 제게 왜 안오냐고 물어주시는 문자에는 괜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초코칩 쿠키와 고구마 케익과 파니니가 난무하는 가운데 화기애애한 막고 모임이 시작됩니다.
다들: 선생님 왜 이 책을 고르셨나요?
시로:앙리에트, 레이디 더들리(아라벨), 나탈리 세 명의 여자에게 각자의 비중이 있는 소설이죠. 마지막 나탈리의 편지에 반전이 있는 것을 보고 고른 겁니다.
여주: 저도 나탈리 편지가 너무 재밌었어요. 네 번째 여자가 제일 불쌍하다느니, 왜 이렇게 자세하게 당신 여자들 얘기를 하냐느니..ㅎ
시로: 글 전체가 편지형식이라는 외양을 띄고 있죠. 한 편으로 '편지'라는 것은 앙리에트의 아바타라고 할 수도 있는 장치입니다.
미리내: 저는 앙리에트가 자신이 실현하지 못한것을 편지를 통해 펠릭스에게 투영해 나간다고 느꼈어요.
말로: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자면, 160쪽에서 Felicidade (펠리시다지) 노래의 가사를 발견했지 뭡니까. '고통은 무한하고 기쁨은 유한하죠' . 이 잠언과 같은 구절이 발자크의 말인지 궁금해요.
여주: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성경에도 나온답니다 ㅎㅎ
시로: 펠리시다지는 행복이라는 뜻이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펠릭스가 바로 그 행복인거고요.
여주: 122쪽을 보면 '첫사랑은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데 정말 그런가요? 시로샘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시로: 그건 개인에 따라 다르겠죠..ㅎㅎ 여기서 그려지는 사랑에 대한 모습은 특이한 면이 있어요. 가령, 펠릭스와 앙리에트 둘 다에게있어 '엄마의 사랑'은 사회의 억압의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고요.
성민: 그나저나 부분부분 도드라지는 발자크의 세밀한 묘사는 딱 내 스타일이다 싶어요. '짓밟힌 영혼'이라든지, 75쪽의 '약점을 더듬어 찾아낸다'라는 장면이 기억에 남고요.
말로: 저는 태피스트리에 대한 묘사가 좋았어요. 한 땀 한 땀 수놓아가는 것이 앙리에트가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으로잘 그려졌어요.
나랑: 그런 세밀한 묘사가 힘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132쪽의 꽃 얘기에는 좀 질려 벼리네요. 간간이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성민: 전 이런 부분이 오히려 좋아요...
말로: 저도 백작부인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혀를 내둘렀어요. 가능한 한 모든 방식을 동원한 장장 네 페이지의 묘사라니...
할마: 저는 앙리에트에 대해 주목했어요. 자기 점검이 엄청 뛰어난 여자죠. 225쪽을 보면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규정하고, 그에 따른 의무에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는 모습이 나와요.
말로: 앙리에트의 열정은 보존되고 있는 상태라고 보고 싶어요. 그것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하고 안쪽을 향해 분사되어 속이 터져 버린것이 아닌가...ㅎ
여주: 그러니까요. 그처럼 과도하게 의무에 무게를 두고 사는 삶은 결국 자신을 죽이고, 앙리에트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들에게까지 해를 끼치게 되잖아요.
미리내: 제주도에 있는 제 지인의 얘기가 생각나네요. 수족을 못쓰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더라고요.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보호막이 되어주니까..
할마: 361쪽, '더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 위로란다'라는 이 메시지는 계속 반복되어 나와요. 자못 성스러운 느낌마저 나고요.
시로: gnosis(그노시스)라고 신지학이라는 것이 있어요. 영어의 recognition, know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고, 영지학이라고도 합니다. 앙리에트는 이 신지학을 공부한 상태고요. 그렇기에 인간의 욕망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겠네요.
지현:저는 앙리에트가 펠릭스에게 딸을 준다고 했을때 당황스러웠어요.
여주: 그런 관계를 억지로 맺음으로써 자신의 에로스를 억누르기 위한 장치로 쓴다고 봐야죠.
힐마: 그리고, 앙리에트는 엄격한 잣대로 관계을 규정짓죠.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가 갖는 사랑의 지향점이 다르다고 강조하거든요.
성민: 그래서인지 저는 앙리에트가 순교자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 삶은 개인에게는 힘들겠지만, 훌륭하다고 평가되지요.
나랑: 그런 삶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삶이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교자 역할이 필요하거든요.
말로: 얼마 전에 네델란드의 미디어 수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섹스, 마약, 정치 할 것 없이 많은 것을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더군요.이렇게 허용 범위가 넓은 사회였다면 앙리에트가 이러지 않았을것
여주: 그래서 부인이 못견디고 죽어버리잖아요...ㅜ
그리고 이쁜 그림이 첨부된 시로샘의 발제문을 나누며 훈훈한 마무리가 이어졌다는 얘기입니다..
보너스로 Antonio Carlos Jobim 의 Felicidade 링크 걸어드립니다.
Tristeza nao tem fim
Felicidade sim.....
슬픔은 끝이 없지만
행복에는 끝이 있다네...
A Felicidade - Tom Jobim (Tom Canta Vinicius)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