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이 글이 아리랑을 학문적으로 정밀하게 연구한 사람의 글은 아니지만, 서기 20세기 초 한국인의 아리랑 인식을 담고 있고 서기 19세기 말에서 서기 20세기 초에 아리랑의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어 ‘참고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곳에 인용한다 : 옮긴이 잉걸
조선(한국 - 옮긴이)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강조는 인용자. 이 설명대로라면 우리가 아는 <아리랑>은 서기 1637년, 그러니까 조선왕조가 후금[後金 : 훗날의 청淸 나라]과의 전쟁 - 병자호란 - 에서 지고 항복한 해에 만들어진 셈이다. 이 설명은 서기 1937년 김산이 님 웨일스 여사에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 옮긴이).
서울 근처에 아리랑 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었다.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이 소나무는 수백 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옹이 진 가지에 목이 매여 죽었다. 그리고 시체는 옆에 있는 벼랑으로 던져졌다. 그중에는 산적도 있었고 일반 죄수도 있었다. 정부를 비판한 학자도 있었고, 조선 왕족의 적들도 있었고, 반역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 반역자들이었다.
이런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 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진 뒤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끊는 노래가 조선의 모든 감옥에 메아리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리랑’은 이 나라의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 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지, 삶의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구절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더욱 많은 사람이 ‘압록강을 건너’ 유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돌아가게 될 것이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었을 때(대한제국의 멸망 - 옮긴이) 원래의 노래에 다섯 구절이 더 첨부되었다. 요즈음(서기 1937년 - 옮긴이)에는 가사가 다른 노래가 거의 100여 곡이나 된다. 만주 벌판 어디에서나 조선인(한국인 - 옮긴이) 의용병이건 중국인(한족漢族 - 옮긴이)이건 모두가 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또한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레코드에 취입(吹入 : 소리를 불어[吹]넣음[入] = 녹음 : 옮긴이)만도 세 종류나 된다. ‘아리랑’이란 말이 이렇게 우리에게 친근하기 때문에 심지어 여인숙이나 다방까지도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광수도 이 노래를 주제로 삼아 희곡을 썼다.
그중에는 조선에서 금지되어 있는 가사도 상당히 많다. 일본 사람들은 ‘위험한 노래’를 ‘위험한 사상’만큼이나 두려워한다. 1921년에 한 공산주의자 지식인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위험한’ 가사를 하나 만들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하는 또 다른 비밀 혁명가의 가사(歌辭 : 노랫말 - 옮긴이)를 하나 만들었다. 이 두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6개월간 징역살이를 한 중학생이 상당히 많다. 나는 1925년에 서울에서 이런 곤욕을 치른 사람을 알고 있다.
-『아리랑』(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동녘 펴냄, 서기 2005년)에 나오는 김산의 말
* 김산(金山) :
한국의 독립투사.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서기 1905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서기 1938년에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상해(상하이)로 가 이동휘/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기 1925년 중국대혁명(국민당과 공산당의 북벌[北伐])에 참가하였다. 서기 1930년과 서기 1933년 일본경찰에 붙잡혔다가 다시 풀려났다. 서기 1937년 중국 북부의 내륙인 연안(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났고, 웨일즈는 그 때 김산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정보와 김산의 삶과 투쟁을 전해 듣고 이를 받아썼다.
서기 1941년 웨일즈는 미국 뉴욕에서 자신의 기록을『아리랑이라는 노래(Song of Ariran. 번역본에서는 ‘of’를 ‘~의’라고 풀이하나, ‘of’에는 ‘~인/~라는’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라는’이라는 말로 풀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라는 이름을 단 책으로 출간했다.『아리랑』은 바로 이『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우리말로 다시 옮긴 책이다.
(김산은 서기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고, 서기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되돌려 주었다)
* 님 웨일즈 :
미국 백인 여성 문인(文人). 서기 1907년에 태어나 서기 1997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다.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님 웨일즈는 그의 조상이 웨일즈(브리튼 섬 서쪽에 있는 반도. 켈트인들이 살던 곳이며 서기 5세기 이후 앵글로 색슨족에게 쫓겨난 브리튼족들이 몰려들면서 켈트인들의 땅으로 확고하게 굳어짐. 웨일즈인들은 자신의 땅을 ‘킴루’라고 부르며 ‘웨일즈’는 앵글로 색슨족이 ‘이방인’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출신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필명이다. 서기 1930~40년대에 중국을 누비며 마오쩌둥(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했다.
서기 1938년에는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고통받는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 협동조합 운동을 조직했고, 서기 1939년에는 필리핀의 휴양도시인 바기오로 갔으며(그곳에서『아리랑』의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기 1940년대에 상하이로 갔다가 그 해 말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서기 1980년대에는 중국에 남아있던 김산의 친척들과 접촉했으며, 서기 1991년에는 중국문예재단에서 주는 ‘국제우호친선 공로 최고문예상’을 받았다.
* 참고 : 웨일즈의 책에 실린 - 아마도 김산이 가르쳐주었을 - <아리랑>의 노랫말 ↓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2천만 동포야 어데(어디 - 옮긴이) 있느냐
3천리 강산만 살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은 압록강 건너는 유랑객이요
3천리 강산도 잃었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위 노랫말과 견주어보기 위해, 내가 20년 전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아리랑>의 노랫말을 함께 싣는다. 후자는 다음과 같다. ↓)
#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첫댓글 아리랑 남북통일의 국가로 사용되여야 한다
한반도 지도을 가지고 국기로 한다는 방송 신문을 여러번 접했다
그건 위험하고 잘몿된 생각이다
그럼 고구려땅하고 발해는 어떻게 하고 현재 한반도 지도을 국기로 한다는 정신나간 인간들
이런걸 막기위해 정부에 수많은 반박글을 올린적이 있다
우리스스로 고구려땅 고구려 역사 발해의 역사을 한반도모양의 국기하나로 그냥 날릴수 있겠는가
요즘은 한반도 모양을 통일의 국기로 사용한다는 정신나간 이야기는 쑥들어갔다
이건 어느 촌부에 노력이 있었기에 그리된것이다
통일의 국기도 통일의 국가도 모든 국민의 가슴속에 용수숨치는 아리랑으로 백성의 영혼을 깨우는 소리라
아리랑이 남북을 잇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찬성합니다만.....그 노래가 "국기"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죄송합니다). '소리'이자 '노래'인 아리랑이 어떻게 섬유로 만든 '깃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요?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지적해 주십시오.
전에 아리랑이란 담배가 있었는대
아리랑 문늬는 여러가지가 있다
색동저고리도 아리랑 문늬로 알고 있는대
이런 고유의색 고유의 문늬을 잘배합하면 좋은 색으로 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될수 있는걸
아, 그렇군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산의 생과 죽음에서 눈물흘리면서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피우사던 아리랑담배포장지의 아리랑 무늬도 생각나네요.
네, 저도 '김산 선생 같은 분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라고 생각했죠. 안타깝고 화가 났어요. 이런 분이 [국사]교과서에 실렸어야 하는 건데.
일본에 사무라이가 있고 이스라엘엔 모사드가 있다
우리나라엔 아리랑이 있다
말씀하신 "아리랑"이 제가 이 글에서 소개한 김산 선생의 자서전 이름인가요, 아니면 노래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군 부대가 따로 있었나요? 잘 알지 못해서 여쭤봅니다.
아리랑이란 민족의 혼이담긴 것이라고 보면 됨니다
이건 누가쓴글도 않니고 우리민족삶에서 생겨난 무영에 역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