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일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회관계, 사회직위의 내가 아닌 나 그대로의 나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내가 어떤 일을 잘 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파악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생이 좀 더 재미 있어지지 않을까.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아는가? 창문틀에는 전날 내린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김이 서려 있는 창문 너머로 젊은 부부가 바쁘게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인형같이 작고 예쁜 여자아이는 촛불이 켜져 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는 케이크를 꺼내와 식탁에 앉았다. 아빠도 따라와 아이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로 케이크를 나누며 뭔가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몸무게가 52kg밖에 안 나가는 삐쩍 마른 동양청년 하나가 부엌창문 너머의 그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움에 그리움이 더해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러움으로 눈물은 복받쳐 올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북구의 겨울은 오후 3시면 컴컴해진다. 내가 처음 독일 유학을 떠났을 때는 늦은 11월이었다. 베를린 교외의 반제라는 아름다운 호숫가 근처의 노인병원 부설 간호사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컴컴해졌다. 나는 오후 3시부터 그 다음날 해 뜰 때까지 혼자 좁은 방안에 있어야 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알은 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내게 말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도 형식적 눈인사와 ‘굿텐탁’이 전부였다. TV를 보면 외로움이 좀 덜할 것 같았다. 벼룩시장에서 낡은 흑백TV를 샀다. 그러나 독일TV는 한국TV 하고는 전혀 달랐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한 토론과 토크쇼가 전부였다.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다
지루함이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이 고통으로 느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개월로 충분했다. 어느 날인가 누워 있으니 천장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듯해서 벌떡 일어나 앉으니 이젠 벽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바로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한번 가빠진 숨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정신병리학에서 말하는 폐쇄공포증에 걸린 것이다. 감옥의 독방에 오래 갇힌 사람들에게 온다는 그 폐쇄공포증이 내게도 온 것이다. 본격적으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아, 사람은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누구나 지금 아무리 폼 잡고 잘살아도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지면 정말 초라해진다.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위기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나도 내가 그렇게 쉽게, 우습게 무너질 줄 몰랐다. 무서워서 내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울면서 베를린 밤거리를 헤맸다. 김 서린 창문 너머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군대시절, 한겨울 밤새도록 며칠을 걸어야 하는 혹한기 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는 족히 넘는 강원도 화천 북방의 산골을 밤새 걷다 보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발바닥 시린 것이 가시질 않았다. 방한모 사이로 겨울바람은 뺨을 칼로 찌르는 듯했다. 밤새 걸어 엄청난 무게로 눈꺼풀 위로 내려오는 졸음이나 피곤함보다 아무리 걸어도 가시지 않는 추위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어쩌다 멀리 들판 너머 민가의 흐릿한 불빛이 보이면 더 고통스러웠다. 그 불빛이 깜박이는 방안의 정경을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불빛이 깜박이는 그 방안의 따뜻한 방바닥에는 비단 이불이 곱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그 이불 옆에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상상에는 매번 그렇게 젊은 여인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전설의 고향’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여인이 바느질하다 실수로 호롱불을 넘어뜨리고, 넘어진 호롱불이 깨지면서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을 예고하는, 그런 ‘전설의 고향’식 클리셰. 아무튼 그 여인은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뵈는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걸으며 그 흰 가슴 사이에 손을 넣으면 얼마나 따뜻할까 그런 생각만 했다. 요즘 내가 김혜수를 보면 넋을 놓게 되는 바로 그 ‘가슴페티시’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내게 ‘전설의 고향’과 김혜수는 동의어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구원해준 슈베르트 가곡
그때, 베를린의 밤거리는 화천 북방의 야간행군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걸어도 가슴 따뜻한 여인을 떠올릴 수 없었다. 독일 여인들의 그 엄청난 가슴들은 따뜻하기보단 무서웠다. 도무지 이 끝없는 외로움에서 나를 구해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내 두려움의 실체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었다.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다. 낯선 이 이국땅에서 나는 난생 처음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은 도무지 내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국에서 내 존재는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 친구의 친구고, 내 형제의 형제였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였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당연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들이 이곳 베를린에서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의심하는 고약한 표정의 이민국 직원 앞에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해야 했다. 내 모든 사회적 관계는 서류로 증명돼야 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내 외로움은 바로 이 확인되지 않는 내 존재에 대한 고통스러운 외피였을 따름이었다.
베를린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루네발트 숲이 있다. 숲이 꽤 깊어 밤에는 멧돼지 떼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 깊은 숲 어귀의 작은 교회에서 음악회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였다. 당시 내가 알고 있었던 유일한 독일 가곡 ‘보리수’가 포함되어 있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이다. 들어가 앉았다. 할머니 몇 명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탈리아 성악가에 비해 확실히 성량이 달리는 젊은 독일 바리톤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 리트, 특히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은 성량이 달리는 바리톤이 불러야 그 슬픔이 제대로 전달된다.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듯 곰 같은 소리로 질러대서는 그 슬픔을 전달할 수 없다. ‘겨울나그네’는 슬프고 가난하게 노래해야 한다. 그래야 가사 마디마디마다 숨어 있는 이 나그네의 하염없이 여린 가슴에 함께 울 수 있다. 그때,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젊은 바리톤은 할머니 몇 명 앉혀놓고 ‘겨울나그네’의 슬픔을 그렇게 절절하게 노래했다.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처절한 ‘겨울나그네’의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큰 위안이 되었다. 그 후로 내 기숙사방에 들어가기 두려운 저녁이면 음악회를 찾아 나섰다. 슈베르트 가곡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런 종류의 음악회는 베를린의 구석구석에서 밤마다 열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바흐도 좋아졌다. 심리적으로 많이 건강해졌다는 뜻이다. 바흐의 음악은 슈베르트에 비해 아주 건강하다. 그렇게 슈베르트와 바흐를 들으며 나는 유학 초기의 그 처절한 외로움과 존재의 불확실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일은 내가 가장 즐겨 하는 일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고, 따라 부르는 일은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똥오줌 구별 못한다
내 연구실 한구석에는 항상 슈베르트의 가곡집이 꽂혀 있다. 내 카 오디오에도 슈베르트 가곡집은 필수다. 봄이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들어야 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나그네’를 들어야 한다. 가끔 혼자 운전하며 슈베르트의 가곡을 따라 부르다 보면 내 노래에 내가 감동한다. 눈물까지 흘린다. 차를 세우고 그 벅찬 가슴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렇게 정서적 충격에 한번 노출될 때마다 내 의식구조에 엄청난 변화가 온다. 그래서 나는 교만하다.
내 사회적 역할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들어지면 나는 방구석에 앉아 슈베르트를 듣는다. 아내의 관심과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슈베르트를 듣는다. 그러면 20년 전 베를린에서 맞딱뜨린 그 처절한 외로움과 아내의 무관심이 비교되며 더는 서글퍼지지 않는다. 슈베르트는 내게 면역시스템이다.
존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하나의 세포가 유지되기 위해 세포의 안과 밖을 구별하고, 막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해야 한다. 세포가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면역시스템이다. ‘내가 아닌 것’의 침입을 막아내고,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세포의 면역시스템처럼 슈베르트의 가곡은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난생 처음 내가 누군지를 처절하게 고민했던 그 베를린의 밤거리를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면역시스템이 망가지게 되면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 못하게 된다. 의학이 그렇게 발전해도 여전히 치료할 수 없는 각종 암이나 에이즈, 백혈병 등 불치병의 원인은 바로 이 면역시스템의 손상에서 비롯된다. 내 몸의 세포들이 어느 것이 내 것인지, 바깥에서 들어온 남의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정신적인 면역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고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똥과 오줌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오줌은 내 것이지만 똥은 내 것이 아니다. 오줌은 내 몸 안의 수분으로 세포 곳곳을 돌아다니다 배출되는 것이지만 똥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것이 아니다. 입에서 항문으로 연결되는 관으로 돌아나가는 것이 똥이다. 이 관은 내 몸 안을 외부로부터 관통하는 하나의 관이다. 관 안쪽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관 바깥쪽이 내 몸인 것이다. 그러니까 똥은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한번도 내 것인 적이 없다. 똥, 오줌을 구별한다는 것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한다는 이야기다.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가장 바보 같은 짓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심리학에서는 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즉,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y)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 끊임없는 노력이 곧 삶의 내용이다. 혼자,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하는 일, 사회적 관계 등등. 그러나 세상에 바보 같은 짓이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는 반드시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높은 지위라 할지라도 길어야 10년이다. 연임이 불가능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고작 5년이다. 그 후 죽을 때까지 ‘전(前) 대통령’으로 살아야 한다. 과거의 지위로 미래를 살아가는 것처럼 서글프고 초라한 일은 없다.
우리 동네에 ‘장관님’이 사신다. 요즘 장관님은 아닌 것 같아,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언제 장관 하신 거예요. 20년 전에 하셨단다. 얼마나 하셨는데요? 6개월 하셨단다. 그분은 고작 6개월 장관 하고, 20년이 지나 죽을 때까지 ‘전(前) 장관님’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분을 뵐 때마다 왠지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 땅의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것처럼 무섭고 두려운 일은 없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집단은 ‘정치인’이다. 정치 현장에 있을 때 국회의원처럼 폼 나는 직업은 없다. 교수, 국회의원, 장관을 두루 지내고 은퇴한 어떤 분에게 사석에서 질문했다. “어느 직업이 제일 폼 납니까?” “그야 당연히 국회의원이지.” “왜 그렇습니까?” “책임질 일은 없고, 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국회의원을 한번 해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단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념도 소신도 없다. 어떻게든 다시 한번 국회의원 하는 게 꿈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간 정치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국회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는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만나면 명함을 내미는 행위가 바로 그 적나라한 흔적이다. 사회적 지위로 상대방과 자신의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다. 마치 동물의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의 힘을 과시하며 서열을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남자들의 명함 직위는 대부분 뻥튀기다. 이들에게 명함에 새길 사회적 직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 사람 누구지요?” “아, 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 전무예요.” “무슨 그룹의 CEO입니다.” “첨단기술을 가진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이랍니다.” 만약 내 친구의 입에서 이런 유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잘리게 되어 있다. 아무리 탄탄한 기업의 사장일지라도 곧 망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모든 관계가 권력의 유무로 확인되는 아등바등하는 삶의 방식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떠한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곧 잘리고, 곧 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재미는?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헤맬 일은 없다. 똥 오줌을 구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로 존재를 확인하면 사회적 지위는 저절로 오래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재미가 먼저다. 재미있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하게 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 새소리 듣는 일이든, 개미새끼 보는 일이든 상관없다. 나훈아의 노래가 되었든, 슈베르트의 가곡이 되었든 상관없다. 내가 헤맬 때,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아 헷갈릴 때, 내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바로 그 것이 내 존재를 확인하는 비결이다.
삶을 즐기는 것을 그리스어로 스콜레(scole)라고 한다. 이 스콜레라는 단어는 오늘날 상반되는 의미로 진화했다. 한편으로는 여가를 의미하는 ‘레저(leisure)’로,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school)’로 발전했다. 그러나 상반되는 이 두 단어가 그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학교나 여가나 그 어원은 삶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 뒤집어 보면 삶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왜곡된 공부만 했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다.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다.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학교는 이런 교육학적 이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는 ‘남의 돈 따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지에 관해서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평생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존재를 확인할 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특히 은퇴하고 나면 정말 어려워진다.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일이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카메라를 공부하든, 뜨개질을 공부하든, 트럼펫을 연습하든 상관없다. 내가 지속적으로 내 재미를 키워나갈 수 있는 내 삶의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웬만하면 90세까지 살 수 있다. 직장에서의 은퇴는 오래 버텨야 65세다. 보통 50대 후반이면 은퇴한다. 그럼 나머지 30년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은퇴한 후의 인생도 내 인생이다. 내 전체 인생의 1/3이나 된다. 그저 죽기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귀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이 실존의 문제를 아주 적나라하게 시로 표현한 글을 동아일보의 한 칼럼(2008년 8월14일)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다.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시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유지해야 하는 적정 각성수준이 있다. 자신이 가장 상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는 각성수준이다. 우리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일정한 각성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일정한 심리적 각성수준이 있다. 이 각성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자극과의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각성수준보다 높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진다. 이때는 쉬어야 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너무 낮으면 지루하거나 심심해진다. 이때는 놀아야 한다.
노는 것과 쉬는 것
쉰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휴식(休息)’이라는 한자가 그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휴식의 한자를 풀어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스스로(自)의 마음(心)을 돌이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것이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내 안에는 내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한 ‘나’가 존재한다. 남편, 아버지, 선배, 후배 등등. 이 다양한 나를 불러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쉬는 것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한 ‘나’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나’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놔둬야 한다. 쉰다는 것은 이렇게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내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를 빌려 설명하면 인지와 정서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냉철한 이성적 판단만을 요구한다. 단순히 업무에 관련된 사안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이성적 이해관계로 판단하도록 강요한다. 외부의 강요에 떠밀려 살다 보면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깨져나가고, 고립된 자아만이 남겨진다. 처절한 고독뿐이다.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인지적 판단과 정서적 판단을 조화롭게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의 마크 하우저라는 교수는 수십 년째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피험자에게 다음과 같은 간단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질문 1 : 열차에서 화물차 한 칸이 떨어져 나왔다. 이 화물차가 철길 위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5명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당신은 이 화물차의 방향을 오른 쪽으로 바꿀 수 있는 스위치 옆에 서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 화물차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면, 오른쪽 철로에서 일하는 1명의 노동자가 깔려 죽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질문 2 : 열차에서 화물차 한 칸이 떨어져 나왔다. 이 화물차가 철길 위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5명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당신은 철길 위의 육교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이 화물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큰 물건을 열차 앞에 던져야 한다. 그러나 마땅한 물건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당신 앞에 몸집이 큰 사람이 난간에 기대 아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화물차를 세우려면 그 몸집이 큰 사람의 등을 힘껏 떠미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럼 그 사람이 화물차에 깔리면서 화물차가 멈출 것이고, 철길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문화와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그 결과는 같았다. 1번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5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결정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다수가 그 몸집 큰 사람의 등을 떠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1명의 목숨을 희생하여 5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같은 논리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밀치는 행위는 엄청난 정서적 부담을 동반하는 행위다. 인간은 논리적 판단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논리적 판단에 따르는 행동을 규제하고 조절하는 도덕적 감정이 인류에게는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우저 교수는 주장한다.
논리적 판단(인지)과 도덕적 감정(정서)은 서로 균형을 이뤄 작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인지와 정서가 서로 모순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모순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바로 이 모순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 문화, 예술이 가능한 것이다. 논리적 판단만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옳고 그름의 수학적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누구나 똑 같은 기계적인 과정이 되어버린다.
인지와 정서의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하우저 교수는 ‘스피노자의 뇌’로 유명한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와 공동연구를 실시했다. 정서적 반응을 조절하는 대뇌의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의 설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에는 동일한 대답이 나왔다.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려 1명을 희생시켜 5명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일반인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눈앞의 뚱뚱한 사람을 밀쳐 화물차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감정 때문에 눈앞의 사람을 밀칠 수 없었지만, 정서적 기능이 마비된 환자들은 오로지 이성적 판단에 의거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정운 ● 1962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대 박사(심리학) ● 베를린대 심리학과 전임강사 ● 現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 열광’ 등
논리적 판단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기계적인 삶의 순환일 뿐이다. 우리의 삶이 살 만한 것은 인지적 판단과 도덕적 감정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그 모순이 극복되어 보다 높은 차원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은 논리적 이야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쉬는 것과 노는 것을 통해 유지되는 내 삶의 적정 각성수준은 인지와 정서의 상호모순으로 인해 끊임없이 깨지고, 복원되고 다시 깨진다.
삶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호이징가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한마디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내가 누구일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회관계, 사회직위의 내가 아닌 나 그대로의 나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내가 어떤 일을 잘 하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파악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생이 좀 더 재미 있어지지 않을까.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아는가? 창문틀에는 전날 내린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김이 서려 있는 창문 너머로 젊은 부부가 바쁘게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인형같이 작고 예쁜 여자아이는 촛불이 켜져 있는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는 케이크를 꺼내와 식탁에 앉았다. 아빠도 따라와 아이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로 케이크를 나누며 뭔가를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몸무게가 52kg밖에 안 나가는 삐쩍 마른 동양청년 하나가 부엌창문 너머의 그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발이 시린 줄도 모르고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움에 그리움이 더해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러움으로 눈물은 복받쳐 올라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북구의 겨울은 오후 3시면 컴컴해진다. 내가 처음 독일 유학을 떠났을 때는 늦은 11월이었다. 베를린 교외의 반제라는 아름다운 호숫가 근처의 노인병원 부설 간호사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컴컴해졌다. 나는 오후 3시부터 그 다음날 해 뜰 때까지 혼자 좁은 방안에 있어야 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도 알은 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내게 말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도 형식적 눈인사와 ‘굿텐탁’이 전부였다. TV를 보면 외로움이 좀 덜할 것 같았다. 벼룩시장에서 낡은 흑백TV를 샀다. 그러나 독일TV는 한국TV 하고는 전혀 달랐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답답한 토론과 토크쇼가 전부였다.
외로움에 천장이 내려앉다
지루함이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이 고통으로 느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개월로 충분했다. 어느 날인가 누워 있으니 천장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듯해서 벌떡 일어나 앉으니 이젠 벽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바로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한번 가빠진 숨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정신병리학에서 말하는 폐쇄공포증에 걸린 것이다. 감옥의 독방에 오래 갇힌 사람들에게 온다는 그 폐쇄공포증이 내게도 온 것이다. 본격적으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아, 사람은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누구나 지금 아무리 폼 잡고 잘살아도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지면 정말 초라해진다.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위기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나도 내가 그렇게 쉽게, 우습게 무너질 줄 몰랐다. 무서워서 내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울면서 베를린 밤거리를 헤맸다. 김 서린 창문 너머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군대시절, 한겨울 밤새도록 며칠을 걸어야 하는 혹한기 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는 족히 넘는 강원도 화천 북방의 산골을 밤새 걷다 보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발바닥 시린 것이 가시질 않았다. 방한모 사이로 겨울바람은 뺨을 칼로 찌르는 듯했다. 밤새 걸어 엄청난 무게로 눈꺼풀 위로 내려오는 졸음이나 피곤함보다 아무리 걸어도 가시지 않는 추위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어쩌다 멀리 들판 너머 민가의 흐릿한 불빛이 보이면 더 고통스러웠다. 그 불빛이 깜박이는 방안의 정경을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불빛이 깜박이는 그 방안의 따뜻한 방바닥에는 비단 이불이 곱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그 이불 옆에 혼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상상에는 매번 그렇게 젊은 여인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전설의 고향’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여인이 바느질하다 실수로 호롱불을 넘어뜨리고, 넘어진 호롱불이 깨지면서 뭔가 불길한 일이 생길 것을 예고하는, 그런 ‘전설의 고향’식 클리셰. 아무튼 그 여인은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뵈는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걸으며 그 흰 가슴 사이에 손을 넣으면 얼마나 따뜻할까 그런 생각만 했다. 요즘 내가 김혜수를 보면 넋을 놓게 되는 바로 그 ‘가슴페티시’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내게 ‘전설의 고향’과 김혜수는 동의어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구원해준 슈베르트 가곡
그때, 베를린의 밤거리는 화천 북방의 야간행군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걸어도 가슴 따뜻한 여인을 떠올릴 수 없었다. 독일 여인들의 그 엄청난 가슴들은 따뜻하기보단 무서웠다. 도무지 이 끝없는 외로움에서 나를 구해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내 두려움의 실체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었다.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었다. 낯선 이 이국땅에서 나는 난생 처음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은 도무지 내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국에서 내 존재는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 친구의 친구고, 내 형제의 형제였고,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였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당연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들이 이곳 베를린에서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외국인을 불법체류자로 의심하는 고약한 표정의 이민국 직원 앞에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명해야 했다. 내 모든 사회적 관계는 서류로 증명돼야 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내 외로움은 바로 이 확인되지 않는 내 존재에 대한 고통스러운 외피였을 따름이었다.
베를린의 동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루네발트 숲이 있다. 숲이 꽤 깊어 밤에는 멧돼지 떼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 깊은 숲 어귀의 작은 교회에서 음악회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였다. 당시 내가 알고 있었던 유일한 독일 가곡 ‘보리수’가 포함되어 있는 슈베르트의 연가곡이다. 들어가 앉았다. 할머니 몇 명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탈리아 성악가에 비해 확실히 성량이 달리는 젊은 독일 바리톤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 리트, 특히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은 성량이 달리는 바리톤이 불러야 그 슬픔이 제대로 전달된다.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듯 곰 같은 소리로 질러대서는 그 슬픔을 전달할 수 없다. ‘겨울나그네’는 슬프고 가난하게 노래해야 한다. 그래야 가사 마디마디마다 숨어 있는 이 나그네의 하염없이 여린 가슴에 함께 울 수 있다. 그때,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젊은 바리톤은 할머니 몇 명 앉혀놓고 ‘겨울나그네’의 슬픔을 그렇게 절절하게 노래했다.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처절한 ‘겨울나그네’의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큰 위안이 되었다. 그 후로 내 기숙사방에 들어가기 두려운 저녁이면 음악회를 찾아 나섰다. 슈베르트 가곡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런 종류의 음악회는 베를린의 구석구석에서 밤마다 열렸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바흐도 좋아졌다. 심리적으로 많이 건강해졌다는 뜻이다. 바흐의 음악은 슈베르트에 비해 아주 건강하다. 그렇게 슈베르트와 바흐를 들으며 나는 유학 초기의 그 처절한 외로움과 존재의 불확실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도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일은 내가 가장 즐겨 하는 일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고, 따라 부르는 일은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똥오줌 구별 못한다
내 연구실 한구석에는 항상 슈베르트의 가곡집이 꽂혀 있다. 내 카 오디오에도 슈베르트 가곡집은 필수다. 봄이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들어야 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울나그네’를 들어야 한다. 가끔 혼자 운전하며 슈베르트의 가곡을 따라 부르다 보면 내 노래에 내가 감동한다. 눈물까지 흘린다. 차를 세우고 그 벅찬 가슴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렇게 정서적 충격에 한번 노출될 때마다 내 의식구조에 엄청난 변화가 온다. 그래서 나는 교만하다.
내 사회적 역할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들어지면 나는 방구석에 앉아 슈베르트를 듣는다. 아내의 관심과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슈베르트를 듣는다. 그러면 20년 전 베를린에서 맞딱뜨린 그 처절한 외로움과 아내의 무관심이 비교되며 더는 서글퍼지지 않는다. 슈베르트는 내게 면역시스템이다.
존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하나의 세포가 유지되기 위해 세포의 안과 밖을 구별하고, 막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해야 한다. 세포가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면역시스템이다. ‘내가 아닌 것’의 침입을 막아내고,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세포의 면역시스템처럼 슈베르트의 가곡은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난생 처음 내가 누군지를 처절하게 고민했던 그 베를린의 밤거리를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면역시스템이 망가지게 되면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 못하게 된다. 의학이 그렇게 발전해도 여전히 치료할 수 없는 각종 암이나 에이즈, 백혈병 등 불치병의 원인은 바로 이 면역시스템의 손상에서 비롯된다. 내 몸의 세포들이 어느 것이 내 것인지, 바깥에서 들어온 남의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정신적인 면역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고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똥과 오줌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오줌은 내 것이지만 똥은 내 것이 아니다. 오줌은 내 몸 안의 수분으로 세포 곳곳을 돌아다니다 배출되는 것이지만 똥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것이 아니다. 입에서 항문으로 연결되는 관으로 돌아나가는 것이 똥이다. 이 관은 내 몸 안을 외부로부터 관통하는 하나의 관이다. 관 안쪽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관 바깥쪽이 내 몸인 것이다. 그러니까 똥은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한번도 내 것인 적이 없다. 똥, 오줌을 구별한다는 것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한다는 이야기다. 똥, 오줌을 구별 못한다는 것은 내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가장 바보 같은 짓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을 심리학에서는 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즉,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y)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 끊임없는 노력이 곧 삶의 내용이다. 혼자, 고립된 삶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자신이 하는 일, 사회적 관계 등등. 그러나 세상에 바보 같은 짓이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사회적 지위는 반드시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높은 지위라 할지라도 길어야 10년이다. 연임이 불가능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고작 5년이다. 그 후 죽을 때까지 ‘전(前) 대통령’으로 살아야 한다. 과거의 지위로 미래를 살아가는 것처럼 서글프고 초라한 일은 없다.
우리 동네에 ‘장관님’이 사신다. 요즘 장관님은 아닌 것 같아,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언제 장관 하신 거예요. 20년 전에 하셨단다. 얼마나 하셨는데요? 6개월 하셨단다. 그분은 고작 6개월 장관 하고, 20년이 지나 죽을 때까지 ‘전(前) 장관님’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분을 뵐 때마다 왠지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 땅의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것처럼 무섭고 두려운 일은 없다.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대표적인 집단은 ‘정치인’이다. 정치 현장에 있을 때 국회의원처럼 폼 나는 직업은 없다. 교수, 국회의원, 장관을 두루 지내고 은퇴한 어떤 분에게 사석에서 질문했다. “어느 직업이 제일 폼 납니까?” “그야 당연히 국회의원이지.” “왜 그렇습니까?” “책임질 일은 없고, 권력은 무한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국회의원을 한번 해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단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념도 소신도 없다. 어떻게든 다시 한번 국회의원 하는 게 꿈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간 정치인이 한두 명이 아니다.
국회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는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만나면 명함을 내미는 행위가 바로 그 적나라한 흔적이다. 사회적 지위로 상대방과 자신의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다. 마치 동물의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며 서로의 힘을 과시하며 서열을 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남자들의 명함 직위는 대부분 뻥튀기다. 이들에게 명함에 새길 사회적 직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 사람 누구지요?” “아, 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 전무예요.” “무슨 그룹의 CEO입니다.” “첨단기술을 가진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이랍니다.” 만약 내 친구의 입에서 이런 유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잘리게 되어 있다. 아무리 탄탄한 기업의 사장일지라도 곧 망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모든 관계가 권력의 유무로 확인되는 아등바등하는 삶의 방식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떠한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곧 잘리고, 곧 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재미는?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헤맬 일은 없다. 똥 오줌을 구별 못하는 황당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로 존재를 확인하면 사회적 지위는 저절로 오래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재미가 먼저다. 재미있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하게 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 새소리 듣는 일이든, 개미새끼 보는 일이든 상관없다. 나훈아의 노래가 되었든, 슈베르트의 가곡이 되었든 상관없다. 내가 헤맬 때,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아 헷갈릴 때, 내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바로 그 것이 내 존재를 확인하는 비결이다.
삶을 즐기는 것을 그리스어로 스콜레(scole)라고 한다. 이 스콜레라는 단어는 오늘날 상반되는 의미로 진화했다. 한편으로는 여가를 의미하는 ‘레저(leisure)’로,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school)’로 발전했다. 그러나 상반되는 이 두 단어가 그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학교나 여가나 그 어원은 삶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 뒤집어 보면 삶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인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공부하는 일이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왜곡된 공부만 했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다.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다. 적어도 미국이나 유럽의 학교는 이런 교육학적 이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는 ‘남의 돈 따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 들어가,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는지에 관해서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녀도 평생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존재를 확인할 뿐,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특히 은퇴하고 나면 정말 어려워진다.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일이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카메라를 공부하든, 뜨개질을 공부하든, 트럼펫을 연습하든 상관없다. 내가 지속적으로 내 재미를 키워나갈 수 있는 내 삶의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웬만하면 90세까지 살 수 있다. 직장에서의 은퇴는 오래 버텨야 65세다. 보통 50대 후반이면 은퇴한다. 그럼 나머지 30년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은퇴한 후의 인생도 내 인생이다. 내 전체 인생의 1/3이나 된다. 그저 죽기만 기다리기에는 너무 귀하고 아까운 시간이다. 이 실존의 문제를 아주 적나라하게 시로 표현한 글을 동아일보의 한 칼럼(2008년 8월14일)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다.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시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유지해야 하는 적정 각성수준이 있다. 자신이 가장 상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는 각성수준이다. 우리가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일정한 각성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일정한 심리적 각성수준이 있다. 이 각성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자극과의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각성수준보다 높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해진다. 이때는 쉬어야 한다. 만약 외부의 자극이 너무 낮으면 지루하거나 심심해진다. 이때는 놀아야 한다.
노는 것과 쉬는 것
쉰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휴식(休息)’이라는 한자가 그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휴식의 한자를 풀어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스스로(自)의 마음(心)을 돌이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것이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내 안에는 내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한 ‘나’가 존재한다. 남편, 아버지, 선배, 후배 등등. 이 다양한 나를 불러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쉬는 것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한 ‘나’가 일방적으로 대화를 주도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나’가 느끼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놔둬야 한다. 쉰다는 것은 이렇게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내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를 빌려 설명하면 인지와 정서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냉철한 이성적 판단만을 요구한다. 단순히 업무에 관련된 사안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이성적 이해관계로 판단하도록 강요한다. 외부의 강요에 떠밀려 살다 보면 결국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깨져나가고, 고립된 자아만이 남겨진다. 처절한 고독뿐이다.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인지적 판단과 정서적 판단을 조화롭게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의 마크 하우저라는 교수는 수십 년째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피험자에게 다음과 같은 간단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질문 1 : 열차에서 화물차 한 칸이 떨어져 나왔다. 이 화물차가 철길 위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5명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당신은 이 화물차의 방향을 오른 쪽으로 바꿀 수 있는 스위치 옆에 서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 화물차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면, 오른쪽 철로에서 일하는 1명의 노동자가 깔려 죽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질문 2 : 열차에서 화물차 한 칸이 떨어져 나왔다. 이 화물차가 철길 위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5명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당신은 철길 위의 육교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이 화물차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큰 물건을 열차 앞에 던져야 한다. 그러나 마땅한 물건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당신 앞에 몸집이 큰 사람이 난간에 기대 아래를 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화물차를 세우려면 그 몸집이 큰 사람의 등을 힘껏 떠미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럼 그 사람이 화물차에 깔리면서 화물차가 멈출 것이고, 철길에서 일하던 노동자 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문화와 인종, 나이를 불문하고 그 결과는 같았다. 1번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5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결정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다수가 그 몸집 큰 사람의 등을 떠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1명의 목숨을 희생하여 5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같은 논리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등을 밀치는 행위는 엄청난 정서적 부담을 동반하는 행위다. 인간은 논리적 판단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논리적 판단에 따르는 행동을 규제하고 조절하는 도덕적 감정이 인류에게는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우저 교수는 주장한다.
논리적 판단(인지)과 도덕적 감정(정서)은 서로 균형을 이뤄 작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인지와 정서가 서로 모순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모순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바로 이 모순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 문화, 예술이 가능한 것이다. 논리적 판단만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옳고 그름의 수학적 판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은 누구나 똑 같은 기계적인 과정이 되어버린다.
인지와 정서의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하우저 교수는 ‘스피노자의 뇌’로 유명한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와 공동연구를 실시했다. 정서적 반응을 조절하는 대뇌의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위의 설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에는 동일한 대답이 나왔다. 스위치를 오른쪽으로 돌려 1명을 희생시켜 5명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일반인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눈앞의 뚱뚱한 사람을 밀쳐 화물차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도덕적 감정 때문에 눈앞의 사람을 밀칠 수 없었지만, 정서적 기능이 마비된 환자들은 오로지 이성적 판단에 의거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정운 ● 1962년 서울 출생 ●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대 박사(심리학) ● 베를린대 심리학과 전임강사 ● 現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 열광’ 등
논리적 판단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기계적인 삶의 순환일 뿐이다. 우리의 삶이 살 만한 것은 인지적 판단과 도덕적 감정이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그 모순이 극복되어 보다 높은 차원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은 논리적 이야기만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쉬는 것과 노는 것을 통해 유지되는 내 삶의 적정 각성수준은 인지와 정서의 상호모순으로 인해 끊임없이 깨지고, 복원되고 다시 깨진다.
삶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호이징가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한마디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재미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