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에도 격이 있다...물질보다 마음 먼저
“엄마, 나 오늘 씻기 싫어. 안 씻고 어린이집 갈 거야!”
4살 아들이 떼를 부리면 엄마 박나래(31·가명·서울 송파구)씨의 스트레스 지수는 슬슬 올라간다. 박씨는 아이에게 꿀밤 한 대라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지만 애써 인내심을 발휘한다. 바쁜 출근 시간에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서 박씨는 최근 하루하루가 버겁다.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울지 않고 어린이집 가기, 식사 후 양치질 바로 하기, 목욕 잘하기 등 칭찬받을 만한 일에 ‘칭찬 스티커’를 주고 그 스티커를 모으면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자고 제안했다. 박씨는 남편 의견대로 칭찬 스티커를 시도해볼까 하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섣불리 시도하지 못했다. 박씨는 “칭찬 스티커를 활용해도 괜찮은 나이인지, 칭찬 스티커를 활용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 칭찬의 한 방법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칭찬 스티커를 사용할 때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 것일까?
아이 스스로 조절 가능한 긍정적 행동 칭찬해야
칭찬 스티커는 아이에게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상을 주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보상을 부모나 교사가 무턱대고 사용해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선미 아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동생과 싸우지 않기’와 같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칭찬 스티커를 활용하면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칭찬 스티커는 어떤 보상을 통해 행동을 강화시켜 긍정적 행동의 횟수를 늘리는 행동수정 요법이다. 따라서 블록 장난감 정리 잘하기, 어른 만났을 때 인사 잘하기, 식사 후 양치질 바로 하기처럼 긍정적 행동에 대해서 칭찬 스티커를 줘야 한다. 만약 씻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가 있다면 ‘떼를 안 쓰면 스티커 줄게’라고 말하지 말고, ‘엄마랑 함께 욕실에 가서 기분 좋게 얼굴 씻으면 칭찬 스티커 줄게’라고 말해보자. 그리고 칭찬 스티커를 주면서 아이가 원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칭찬을 해주는 행동은 또 아이 스스로 조절 가능한 덕목이어야 한다. 간혹 부모나 교사가 ‘완벽한 아이’를 기대하고 아이 스스로 조절 불가능한 행동을 칭찬할 만한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오히려 행동의 변화를 불러오지 못하고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줄 수 있다. 6살 소율(가명)이의 경우도 그런 예다. 소율이는 최근 어린이집에서 밥을 빨리 먹지 못해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울고 간다. 어린이집 교사가 밥을 가장 빨리 먹는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고 스티커 10개를 모은 아이에게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소율이는 밥을 빨리 먹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점심 시간만 되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 교수는 “아이마다 식성도 다르고, 밥 먹는 속도도 다르고, 먹는 양도 다르다. 다시 말해 밥 빨리 먹기는 아이 스스로 조절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잘해야만 칭찬을 받게 되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밥 제자리에 앉아서 먹기, 잠자리에 제시간에 눕기처럼 아이가 스스로 조절 가능한 행동들을 칭찬 목록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칭찬은 아이 개인별로 해야지, 집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작은 보상으로 시작하고, 보상 프로그램 체계적이어야
칭찬 스티커를 통해 보상을 할 때 지나치게 비싼 물건을 사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평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준 부모라면 일단 그런 행동을 멈출 필요도 있다. 보상을 줄 때는 작은 장난감 자동차나 퍼즐, 공 등 작은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으며, 인과관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즉시 보상해주는 것이 좋다. 3~5살 정도의 아이라면 적어도 1~2일에 한 번씩, 5~7살 아이라면 2~3일에 한 번씩은 보상을 해줘야 자신이 무엇 때문에 칭찬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보상 프로그램도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예일대 육아센터 및 아동행동클리닉 원장인 앨런 카즈딘 교수는 그의 저서 <카즈딘 교육법>(한스미디어 펴냄)에서 ‘칭찬’과 ‘보상’을 통한 보상 프로그램을 매우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이 방법은 그가 다양한 과학적 논문에 근거해 30여년간 6천여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제 행동 개선을 시도한 결과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부모들도 일상생활에서 적용해볼 만하다.
그가 제시한 사례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짜증을 내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방에 가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기’처럼 구체적 과정을 제시하고 칭찬 스티커 2개를 준다. 하루 최대 4장까지 스티커를 줄 수 있다는 규칙과 함께 스티커 점수별로 보상 목록을 만든다. 스티커 두 개를 받으면 보물 주머니에서 원하는 것을 뽑을 수 있거나 엄마나 아빠와 함께 10분 동안 잡지를 볼 수 있다. 만약 스티커 4개를 모으면 토요일 밤에는 15분 더 늦게 잠들 수 있거나 잠들기 전 특별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스티커 10개를 모으면 스케이트 타기처럼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상 목록을 체계화시키고, 꾸준히 자주 아이가 칭찬받을 만한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보상과 함께 열렬하게 칭찬해주고 포옹해주는 일은 기본이다.
보상보다 더 중요한 칭찬의 질
아이에게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바란다면 물질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칭찬의 질이다. 물질적 보상보다 효과적인 말로 하는 칭찬도 있고, 어깨나 머리를 다독거려주는 것, 다정한 신체 접촉, 포옹, 미소, 엄지손가락 치켜세워 보이기 등과 같은 비언어적 칭찬도 있다. 신지연 삼육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칭찬 스티커나 체벌은 단기적으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지만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거나 생각을 통해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지 않는다”며 “굳이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생활에서 부모가 아이의 긍정적 행동에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는 칭찬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상대 교육대학원 교육철학과 박진옥씨가 지난해 쓴 ‘유아교육에서 칭찬의 교육 효과와 적용’이라는 석사 논문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른 효과적 칭찬법을 소개하고 있다. 논문을 보면, 영아기는 아직 언어적 능력이 발달하기 전 단계이므로 스킨십과 미소 같은 비언어적 칭찬이 가장 효과적이다. 만 3살 유아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한 시기로 일의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칭찬하는 말이나 꾸중하는 말을 전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과정을 중심으로 구체적 칭찬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 4살 유아는 도덕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과거·현재·미래에 기반을 둔 칭찬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만 5살 유아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로 강화 칭찬 방법을 사용해 구체적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한겨레 베이비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