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헬스장에서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스피닝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학업과 직무에 시달려 지친 몸이지만,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많은 이들이 몸을 이리저리 열심히 움직인다.
외모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느 운동센터에서든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몸을 위한 각종 시도들은 전 세계인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며,
앞으로도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세계인들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팔레오(paleo). 이국적이고 세련되게 느껴지는 단어지만, 이 단어는 ‘구석기 시대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팔레오리틱(palaeolithic)’의 미국식 줄임말이다. 2000년대 후반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한 다이어트법의 명칭이기도 하다.
팔레오 다이어트는 2013년 구글에서 체중 감량을 위한 식단 검색어 1위를 기록하며 가장 핫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팔레오 다이어트에서 바라본 인류 진화의 모습 <자료원: www.pinterest.com>
팔레오 다이어트는 250만 년 전의 원시인과 비교할 때 현대인들의 유전적 신체 구조는 크게 바뀐 것이 없으나
1만 년 전의 농업혁명으로 급격하게 변화된 식단에 인류가 적응하지 못해 많은 신체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농업혁명 이후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면서 우리 식탁에 곡류, 콩류, 유제품 같은 식품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식단으로 인해 많은 질병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팔레오 다이어트를 주장하는 이들은 현대인도 원시인과 같은 식단을 유지하면 만성질병과 과체중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수렵-채취인 다이어트, 동굴인 다이어트, 석기시대 다이어트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농업혁명 이전의 선사시대 식단을 따르는 팔레오 다이어트는 신석기 시대 이후에 등장한 식재료의
섭취를 제한하는데, 특히 유제품, 곡류, 콩류, 가공유, 정제된 설탕과 소금을 멀리한다.
주류(주로 곡류에서 발효)와 커피 등의 음료 섭취도 제한된다.
원시시대 식단으로 돌아가는 일곱 가지 비결
팔레오 다이어트의 식재료 <자료원: www.janeshealthykitchen.com>
팔레오 다이어트의 내용은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백질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현대 서구인의 식단에서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원시시대에는 이보다 훨씬 높은 19~35%의 칼로리를 단백질을 통해 섭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오 다이어트는 육류나 해산물, 또는 다른 동물성 식품을 주식으로 하여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는 구성을 따른다.
이는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서 권고한 1일 단백질 섭취 비중인 10~35%
범위에도 적합한 수치다.
둘째,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팔레오 다이어트는 전분기 없는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로 1일 칼로리의 35~45%를 섭취해 탄수화물
필요량을 채우라고 권장한다.
많은 현대인이 대부분의 탄수화물을 곡류와 유제품에서 공급받는데, 팔레오 다이어트에서는 이 두 식단류를
엄격하게 제외한다. 미국 농림부는 탄수화물 섭취 비중을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45~65%로 권장하고 있지만,
팔레오 다이어트는 이런 비중은 농산물의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기준일 뿐이라며 원시시대 우리 선조들은 낮은
탄수화물 섭취 비중 덕분에 건강하게 살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과일 <출처: gettyimages>
셋째, 식이섬유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식이섬유는 건강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많은 현대인이 통곡류(whole grain)가 식이섬유의 중요한
섭취원이라고 알고 있지만, 팔레오 다이어트는 이는 잘못된 지식이라고 지적한다. 야채류에는 통곡류의 8배,
정제곡류의 31배에 해당하는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으며, 과일에도 통곡류의 2배, 정제곡류의 7배에 이르는
식이섬유가 포함되어 있어 원시인과 같은 식단을 유지해도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채소 <출처: gettyimages>
넷째, 지방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있다. 지방을 많이 섭취하면 무조건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심장마비, 암, 당뇨 등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팔레오 다이어트는 무작정 지방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지방을 섭취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트랜스지방 같은 나쁜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오메가3, 오메가6 불포화지방
같은 좋은 지방의 섭취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이런 좋은 지방을 섭취하는 것은 혈관
계통 질병의 발병 위험과 상관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오메가 3가 많이 포함된 등 푸른 생선 고등어 <출처: gettyimages>
다섯째, 염분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음식은 염분보다 칼륨 함유량이 5~10배가량 높다. 칼륨은 심장,
간을 비롯한 인체의 장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칼륨 수치가 낮고 염분 수치가 높을 경우 고혈압,
심장 질병, 뇌졸중의 위험이 커진다. 현대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체내 염분이 칼륨보다 2배가량 많은 데 비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신체는 칼륨이 염분보다 훨씬 높은 비율에 맞춰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섯째, 산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음식은 소화 과정에서 산화되거나 알칼리화되어 신장에 영향을 끼친다.
육류, 생선, 곡류, 콩류, 치즈, 소금 같은 음식은 산화를 거치는 반면, 야채와 과일은 알칼리화를 거친다.
현대인들의 식단은 대부분이 산화 과정을 거치는 음식으로 구성돼 신장 결석, 천식 등의 질병과 고혈압, 골격과 근육의
손실 등을 초래하고 있다. 팔레오 다이어트를 하면 곡류, 콩류, 유제품, 소금의 섭취를 제한하고 야채, 과일의 섭취를 늘려
이런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이미지 목록
무공해 채소와 과일 <출처: gettyimages> |
상추밭 <출처: gettyimages> |
일곱째, 미량 영양소 섭취를 늘려야 한다.
우리 신체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3대 주요 영양소 외에도 비타민, 무기질, 항산화제, 피토케미칼(phytochemical) 등
미량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현대인들은 통곡류에 이런 미량 영양소가 있다고 믿으나 실제로 원시 시대의 방목 육류, 과일,
야채와 달리 통곡류에는 비타민 A, 비타민 C, 비타민 B12가 거의 없으며 일부 무기질과 비타민 B도 신체에 잘 흡수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팔레오 다이어트를 둘러싼 논란들
팔레오 다이어트가 근래 인기를 끌고 있는 식단 열풍의 근원이긴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들은 팔레오 다이어트의 가정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류가 농업혁명 이후의 급진적 식단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는 어디에도 없으며, 선사시대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서 많이 발병하는 질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단지 그들이 병이 전이될 만큼 오래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gettyimages>
이들은 실제 수렵-채취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식단 구성이 팔레오 다이어트에서 주장하는 바와 유사한지 밝히기 위해
현재에도 존재하는 몇몇 원시부족을 연구했으나 남아프리카 지역의 그위(Gwi)족은 동물성 칼로리 섭취가 25%에 불과한
반면 알래스카의 누나미우트(Nunamiut)족은 99%에 달하는 등 차이가 크다며, 팔레오 다이어트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많은 영양학자가 체중 감량을 위해 팔레오 다이어트에 의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체중은 섭취한
칼로리와 소비한 에너지 간의 균형 혹은 불균형에 달린 문제이지 단순히 어떤 음식을 섭취하는가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각종 건강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오 다이어트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팔레오 다이어트 경험담과 후기를 공유하고 있으며, 식품 매장 입구에는 팔레오 다이어트 추종자들을 위한 장바구니
목록이 배치될 정도다. 팔레오 다이어트에 기반한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대도시에 가면 레스토랑의 메뉴 옆에 작은 돌 그림이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팔레오 다이어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레스토랑과 슈퍼마켓 들은 팔레오 다이어트의 주요 메뉴와 식자재를 표시해 기존 비즈니스와
팔레오 다이어트 간의 접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팔레오 다이어트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팔레오 다이어트의 원칙에 따라 제조한 식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과 식사 배달서비스도 인기다.
팔레오 다이어트보다 더욱 엄격하게, 불이 등장하기 이전 선사 시대의 조리법까지 준수하는 로푸드(raw food) 다이어트는
모든 식재료를 45℃ 이상의 열로 가열하지 않는 식단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데, 미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이 밖에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는 사우스비치(South Beach) 다이어트, 염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앳킨스(Atkins) 다이어트 등
팔레오 다이어트와 더불어 등장한 많은 다이어트 식단이 현대인들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는 사우스비치 다이어트 식단 <출처: www.southbeachdiet.com/>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몸과 건강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하나의
유행을 만들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민텔(Mintel)은, 팔레오 다이어트에 앞서 미국 식품 시장을 강타한 글루텐 프리(Gluten free)
다이어트 시장은 2013년 105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으며, 2016년까지 48%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2013년 구글에서 다이어트라는 검색어를 포함한 검색 결과 중 글루텐 프리 다이어트는 전체의 1.03%로 팔레오 다이어트,
앳킨스 다이어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 팔레오 다이어트의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