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가을 우연히 기독교 방송을 듣고 있던 서울의 이금안이란 처녀는 한 남자가 겪고 있는 너무나도 딱한 처지의 방송을 듣고 충동을 받게 된다. 즉, 사지마비가 되어 밥도 먹여 주어야 하고 하루종일 누워서만 지내는 불쌍한 이 남자를 단 하루만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는 몸으로 특히 상대가 남자인지라 생각과 현실은 달랐다. 그래서 이금안은 그 불쌍한 남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17세 때부터 교회에 나간 이금안은 직장의 휴가 때면 국내 큰 기도원을 순례하면서 부흥집회에 참가하여 신앙을 키워온 성숙한 믿음의 처녀였다.
이금안은 어느날 기도 중에 이 남자에게 위로의 편지라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이 나서 성경에 나오는 각종 소망의 글과 희망을 가지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보내자 금방 답장이 왔다.
내용은 77세된 노모의 보살핌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은 그 노모마저 병이나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이제는 그야말로 하루 하루가 절망 속에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이금안이 보낸 위로의 편지를 받아보고 다시 삶의 의욕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금안은 이때부터 그 환자를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를 했다.
특히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절망에 처한 그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소망을 가지게 해 주셨다는 확신이 왔다. 그래서 이금안은 여러차례 편지를 주고 받은 후 82년 12월 11일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그 환자를 찾아 갔다. 전라북도 옥구군 옥산면, 버스를 네 번이나 바꿔타고 사지마비로 누워서 지낸다는 김정언氏를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초라한 시골의 오두막 집이었다.
26세 나이로 쓰러진 김정언의 기구한 인생
김정언은 공군본부 의장대 출신으로 신장 176cm의 건강한 남자였다. 그러나 제대후 제약회사에 다니던 1969년 갑자기 길에서 쓰러졌다.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과 류마티즘성 관절염으로 몸 전체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이었다. 김정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엄청난 병원 치료비로 인해 유복했던 가정은 파산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김정언은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함께 시골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목에서부터 어깨, 허리, 엉덩이 관절을 비롯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의 마디관절 등 온 몸의 관절이 마치 나무 막대기처럼 굳어갔다.
밥도 떠 넣어 주어야 되며 대, 소변도 자리에 누운채로 보고 항문까지 딱아주어야 하는 그야말로 남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 모든 힘든 일을 어머니가 해내고 있으며, 또한 어머니는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그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일거리를 찾아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에 아들 김정언은 격렬한 통증에 고함을 지르며 울어댄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한사람 김정언의 몸을 주물러 줄 사람이 없었다.
그의 슬픈 울음 소리는 밤,낮 주야로 그칠날이 없었다.
드디어 나쁜 소문까지 퍼졌다. 즉, 김정언의 집에 귀신이 찾아와서 귀신이 우는 소리라고 했다. 특히 비가 내리는 밤에 김정언의 통증은 더 심해져서 울음 소리는 멀리까지 슬프게 들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김정언의 집앞을 피해 지나갔다. 어쩌다 휘영천 둥근 보름달이 김정언의 오두막집 창문으로 보일때면 그는 지난날의 왕성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잠시나마 아름다운 추억에 눈물이 젖는다.
군산 상고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했는데, 우선 키가 크고(176cm)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그는 공군본부 의장대로 차출되었다. 공군본부 의장대는 내외 귀빈이 참석하는 각종 행사에 자주 참가했는데, 그때마다 김정언은 의장대원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둥근 보름달 빛이 창문에서 사라지면 김정언의 추억의 회상도 사라진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어 버렸나” 김정언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관이 되어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잠을 못 잔다는 핑계로 수면제를 모아서 먹기 직전 어머니에게 들켰다. 그리고 전기줄을 합선 감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또 한번은 벽에 머리를 박치기를하여 뇌진탕으로 죽겠다고 시도했으나 역(力)부족으로 피만 흘리고 실패했다. 이렇게 해서 김정언의 모진 생명의 고통은 13년이 흘러갔다.
특히 80을 바라보는 노모가 가끔 몸이 아파 앓고 있을 때는 김정언의 깊은 한숨소리는 노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이놈아 어쩌든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내하고 같이 죽어야지 너 때문에 내혼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김정언 앞에 나타난 천사 이금안 처녀
김정언의 오두막집을 찾아온 이금안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는 김정언을 처음보는 순간 공포와 무서움에 떨기 시작했다. 긴머리는 김정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또한 머리는 먼지와 비듬으로 찌들어 있었고 얼굴은 심한 피부병으로(열상) 퍼져 있었다. 방의 천장은 온통 거미줄로 뒤덮혀 마치 모기장을 쳐놓은 것 같았다. 거기에다 대,소변을 제때 처리를 못해 방안은 흉칙한 냄새로 가득찼다.
이금안은 기막힌 이 현장 앞에서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당장 도망치듯 뛰쳐나가야 할지? 그러나 이금안은 우선 방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삭이듯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분의 저 추함과 흉함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가 끝나고 몇분쯤 지났을 때 조금전 그 무서움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김정언에 대한 불쌍한 마음과 함께 앞으로 며칠간이나마 이 남자에게 열심히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금안은 바로 이 생각이 지금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금안은 우선 방안의 대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김정언의 긴머리를 짜르고 면도를 한 다음 김정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김정언은 자신의 몸을 닦는 이금안을 보고 이것은 꿈에서나 있을 것 같은 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으니 이 처녀가
혹시 하늘에서 내려온 즉 말로서만 들었던 바로 그 천사가 아닌가 하고 순간 두려움도 느겼다.……
방안의 대청소와 목욕이 끝나자 이금안은 가정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 책을 김정언과 함께 보면서 찬송을 같이 불렀다. 저녁 때가 되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님은 완전 새롭게 변화된 집안 분위기를 보고 나서 이금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이 처녀가 정신 이상자는 아닌가? 또는 청소 해주고 돈이나 뜯어갈 사람은 아닌가? 이금안은 손수 저녁밥을 지어 김정언에게 먹여주고 밤에는 이미 굳어져 버린 김정언의 전신을 2시간 가량 마사지를 해주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김정언의 눈물의 청혼
이금안의 휴가가 다 끝나갈 무렵 즉 5일째 되던날 밤 예배를 드리고 나서 김정언은 이금안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이미 오래전에 인생을 다 포기하고 하루빨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신을 만나보니 나도 살고 싶은 의욕이 생겼습니다.
저와 함께 이 곳에서 같이 살아 주십시오”…… 바로 이금안에게 청혼을 한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청혼을 하는 김정언의 모습을 바라본 이금안은 충격과 함께 당황했다. 사실 이금안은 김정언과의 결혼이란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요, 오직 이번 직장 휴가는 평생을 두고 가장 보람있고 잊을 수 없는 봉사 활동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날밤 김정언이 잠든 시간에 이금안은 하나님께 김정언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었다.
긴 기도 시간이 끝나고 깊이 잠든 김정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이금안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며칠을 봉사해 봤지만 이 남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이제 도저히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한계점에 와 있다는 것을 느꼈다.
26세의 청년이 병마에 시달려 온지 13년 그의 나이 39세, 이금안은 39세의 김정언이 아직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금안은 눈물 속에 다시 기도를 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썩어져야만 그 결실이 더 많아지고 풍성해진다고 했습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주어 연약한 자를 도울 수 있겠끔 건강을 주신 것을 우선 감사드립니다. 주님도 보셨습니다. 송장처럼 누워서 지내는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 이웃을 네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 병들고 추하고 송장처럼 누워 있는 저 불쌍한 김정언씨를 내가 꼭 도와 주어야 하며, 그리고 저 분을 사랑해야만 나도 진실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주일간의 휴가가 끝나고 서울로 오던날 이금안은 김정언에게 직장과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다시 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다시 오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김정언은 놀란 표정으로 “하나님 앞에 지금 약속하십시오” 하고 다그쳤다. 이금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로 범벅이된 김정언의 얼굴을 닦아주며 꼭 잡고 있던 손을 억지로 떼고 방문을 나섰다.
길고도 먼 시련과 고난의 길로 들어선 이금안
서울에온 이금안은 어머니에게 직장을 군산의 좋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온갖 고통을 겪으며 지낼 김정언을 생각하면 이금안의 마음은 이미 시골 김정언에게 가 있었다. 이금안이 2개월만에 다시 시골로 내려 오던날 마치 시집간 새색시가 친정집을 가는 것처럼 기쁨이 넘쳤다. 이금안은 이 기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즉각 알았다.
2개월만에 이금안을 맞이하는 김정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울었다.
불치의 병마에 지친 몸, 거기에다 음식을 제때에 못먹어 뼈와 가죽만 남은 김정언의 몸은 마치 아프리카의 어느 민족을 연상케 했다.
이금안은 먼저 김정언의 굳어져 버린 각종 관절을 주무르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두 모자에게 주는 양곡과 그리고 노모가 남의 일을 해주고 몇푼씩 받는 돈으로 근근히 살아왔다. 그래서 이금안은 우선적으로 생계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당장 먼저 시작한 것이 십자수와 쉐타에 꽃무늬 놓는 일이었다. 환자 곁을 잠시라도 비울 수가 없는 처지라 항상 환자 가까이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동네 이웃집을 찾아 다니며 일거리를 맡아 한푼 두푼모아 환자의 약값에 보탰다. 어쩌다 수입이 좋은 날은 동태를 사다가 찌개를 끓여 남편에게 먹여주면 남편은 너무나 오랜만에 먹는 동태찌개라면서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항상 찡그린 얼굴만 보이다가 그때만은 얼굴에 함박꽃이 된다. 이금안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내 한몸의 노력으로 꺼져가는 저 불쌍한 생명이 동태찌개 하나로도 저토록 행복해 하는 모습에 기쁨을 느꼈다. 식물인간처럼 지내는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이금안에 대한 소문이 동네에 금방 퍼져 나갔다. 한쪽에서는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라고 하면서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처녀라고 말했으며, 또 한쪽에서는 과연 저 서울 아가씨가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 왜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게될 남자에게 저렇게 열성을 다해 보살펴 줄까? 이금안은 그들의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남편을 보살피며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면서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금안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마을사람들에게 크게 퍼졌다. 드디어 생각지도 않는 전도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여 이웃 동네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작은 시골교회가 갑자기 부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도원 원장이 마련해 준 눈물의 결혼식
이금안은 남편에게 좀더 확실하고 깊은 신앙을 심어주고 싶어 남편을 트럭에 싣고 부흥회가 열리고 있는 호렙산 기도원을 찾았다. 남편은 목을 움직일 수 없고 허리도 꾸부릴 수 없기 때문에 택시를 탈수가 없다.
그래서 마치 시체를 담은 관처럼 침대에 누운 그대로 트럭에다 싣고 갔다.
퍽 오랜만에 기도원을 찾은 이금안의 마음은 금방 뜨거워졌고 남편을 위한 40일 철야기도에 들어갔는데, 첫날부터 이금안은 은빛 찬란한 십자가의 환상을 보고 섬짖놀라기도 했다. 이금안은 하나님께 우선 남편의 건강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 꺼져가는 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그리고 남편이 벌떡 일어나게 해달라고 했다. 수백명의 성도들이 일사분란하게 찬송을 부르고 또 통성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 한쪽 구석에서 보고 있는 남편 김정언은 너무나 생소한 광경에 얼떨떨하고 있었다.
어느날 기도원 백성애 원장이 이금안에게 찾아와 침대 에 누운 사람과 어떤 관계이냐고 물었다. 기도원 원장은 이 두사람이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금안으로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 이야기를 다 듣고난 기도원장은 이금안을 친딸처럼 껴안고 위로를 해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백성애 기도원장은 이금안을 불렀다. 기도원장은 당신들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신랑은 침대에 누워 있고 그 곁에 신부가 서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하나님께서 선명하게 환상을 보여 주셨다면서 이금안에게 저 불쌍한 불구의 남자와 혹시 결혼식을
하겠느냐고 다시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금안은 두말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백성애 기도원장은 결혼식때 신랑 신부가 입을 한복 두벌에 금반지와 음식까지 장만했다.
기도원에 온지 16일만에 거행된 이날 결혼식엔 남편은 병원용 침대에 누운채 고향 친구들에 의해 식장에 입장했고, 신부 이금안은 그를 데리고 입장할 일가친척 한사람도 없어 외로이 서 있었는데 그때 어떤 장로가 나와 신부 입장을 시켜주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신랑 옆에 선 신부는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부흥회에 참석한 오백여명의 성도들은 이 희안한 결혼식을 보고 특히 신부가 너무나 불쌍해서 어느 누구의 제의도 없었는데, 모두가 각자 천원씩을 축의금으로 내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특히 예물 교환때 신랑이 손을 쓸수가 없기 때문에 기도원 원장이 신랑 대신 신부에게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날의 결혼식에서 이금안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의해서 자신의 결혼식을 하게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금안은 만일 이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면 자신들의 처지나 형편으로는 지금까지도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살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당시 여러 기관에서 이금안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에게 표창을 주었으며, 특히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이 이금안을 찾아와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일은 이 동네 젊은 부부들의 싸움이 일체 없어졌다고 한다. 즉 이금안 부부의 사는 모습을 보노라면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한편 이금안의 소문은 서울의 친정집에도 알려져서 어느날 어머님과 남동생이 찾아왔다.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김정언의 모습을 본 이들은 한탄을 하면서 이금안을 밖으로 불러내어 무조건 서울로 가자고 했다. 이금안은 먼저 어머니께 용서를 빈다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지금도 그날의 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어머니의 자식 중에 이러한 사람이 있는데 저처럼 누군가가 보살펴 주겠다고 하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 인간의 생명은 누구나 다 소중한데 이러한 사람을 너도 나도 외면해 버리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눈물로 애원하는 딸의 말을 다 듣고난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고난 뒤 그럼 기왕 어려운 결심을 했으니 너의 인생을 너가 책임지고 그리고 고생이 되겠지만 세상에 귀감이 되는 딸이 되어 살아가라고 짧은 말한마디를 남기고 서울로 갔다.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선물
세상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이들 가정에는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금안은 어느날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즉 하나님이 선물로 준 이 귀한 아들과 딸을 제대로 키우고 교육시킬려면 시골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학교 청소에서부터 건물 청소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교육비와 남편의 약값을 만들어 나갔다. 한편 서울 친정에서는 남편 때문에 친정 발걸음이 끊어진 것이 안타까워 남동생이 서울 영등포 양평동에 30평 규모의 아파트를 얻어 주어 2010년에 이사를 왔다. 그리고 아파트 근처 부동산 사무실에 취직까지 했다.
지난 2월말 (2011년) 부동산 사무실에서 필자와 만난 이금안은 가족들의 근황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결혼할 때 39세였던 남편 김정언은 지금은 69세(2011년)의 노인이 디어 43년을 누워서 지내고 있으며, 29세된 딸과 27세의 아들은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24세에 시집온지 30년 그동안 새색시 이금안도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는데 주위에서는 그의 모습이 탈랜트 고두심을 닮았다고 한다.
시집올 때 77세의 시어머니는 90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금안의 손을 꼭잡고 말 한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고마웠다”…
아파트가 사무실 근처에 있어서 두시간마다 집에가서 남편의 몸을 마사지하고 그리고 식사도 챙겨 준다고 했다. 이금안의 필사의 노력으로 건강도 좋아져서 특히 손가락이 호전되어 지금은 TV 리모콘 작동과 전화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는 양평동의 영은교회(고일호목사)인테 주일날 아들과 딸을 양쪽에 세우고 함께 교회로 갈때마다 이금안은 잠시 회상에 잠긴다. 이 아이들을 임신 했을 때마다 영양실조로 몇차례씩 쓰러지기도 했으며, 한밤중에 남편이 위독할 때는 아기를 업언체 약을 구하러 추운 겨울 밤길을 걸었다. 특히 겨울철 땔감 나무를 구하기 위해 임신 7개월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 가시덤불과 억새풀을 짤라다 날랐다. 또한 일감을 구하기 위해 당시 버스비 340원을 아끼려고 아기를 업은채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그러나 그 힘들었던 일들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항상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지금 이만큼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한다. 한편 이금안의 인생에 시련과 두려움 그리고 고통과 절망감이 엄습해 올 때마다 그는 성경 이사야 41장 10절을 가슴에 품고 오직 하나님을 믿었다고 한다. 『두려워 하지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글 김수호: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