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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주일 예배
본문<마>18;23~35
제목; 용서가 치유이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우리를 용서하신 분입니다
이 땅의
많고 많은 우상들이 있다한들
이 땅에 그토록 많은 세속적 권력들이 난무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용서하신 분은
오로지 예수님 한 분 뿐임을 명심하고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잘 나가는 한 가수가 한 순간의 실수를 감추려다
인생 대박에 아닌
인생 쪽박을 차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이 아쉬운 것은 그가 용서의 방법을 알았더라면
실수를 감추고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 하지 말고 즉시 용서를 구했더라면..
그런데 어디 그 가수뿐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삶의 여정 속에서
한 순간의 실수가
일이 꼬이고 막히고 닫힘으로 고난의 인생을 걸어 온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숨김없이 고백해야 하고
지은 죄는
용서 받아야 하며 나도 남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지금은 음주 운전에 죄를 감추려다 코너로 몰려
파렴치한 죄인 취급을 받지만
그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때 우리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는 통일된 개념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뿌려진 주의 보혈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용서가 가장 큰 위로이고 치료제라는 것입니다
23~27절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여러분 결산은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을 말하며
24절의 빚진 자는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빚진 자들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탕감은 속량의 뜻으로 죄사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죄의 탕감
즉 빚의 탕감도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노예가 아니라
청지기의 삶을 살았던 높은 직책의 관리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청지기는 직분자들과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만 달란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힘으로는 결코 청산할 수 없는 거대한 빚을 진 죄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지금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6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큰 액수의 돈이라고 하는 데
이것은 내 힘과 그 어떤 능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이
너무나 큰 죄요
또는 너무나 많은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8절의 백 데나리온은 우리 돈으로
1천만 원 정도인데
이것은 이웃이 나에게 지은 사소한 죄나
잘못을 뜻합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까요?
일만 달란트-
내가 하나님께 지은 너무나 큰 죄
백데나리온-이웃이 나에게 지은 작은 죄라는 것이니
이정도로
그 문자 풀이를 하면 전체 문맥을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결산하기 위해
심판 대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25절에서 주님은 갚으라 하십니다.
너무나도 크고
엄청난 빚으로 자신은 감당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그가 지닌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합니다 ..
그러나 그의 빚의 규모가 너무나도 크고 엄청나기에
그의 몸과 가족과 자녀와 모든 소유를 다 팔아도
갚을 길은 요원합니다
그래서 업드립니다...비록 공수표가 될망정
빚진 죄인이오니
조금만 참아 주시고 기회를 주시면 갚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엎드려 간구하며 기회를 주시면
꼭 갚겠다고 하니
27절에서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분문의 비유는 설명하는데
여러분 오늘 이 사건
그 종의 주인이 그 종의 빚을 탕감해 준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여러분..그 종의 주인도 그가 갚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릎 꿇고
회개하자 그의 죄를 탕감해 주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게다가 주님은 그 종의 몸과 그 종의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라 하신 것은
빚을 갚기 위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희생하고 헌신해도 갚지 못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이 땅의 모든 빚진 자들의 죄의 빚을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림으로 직접 헌신하시고
희생하시며
흘리신 보혈로 인류 구원 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의 화목제물이라는
크고도 놀라운 은혜로 그 엄청난 죄 값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 공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엄청난
죄 값을 치를 수 없으며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하신 용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가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눈앞의 위기를 돌파하자
마음이 달라진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어리석은 종을 만나게 됩니다
-28~30절입니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여러분은 이 비유 앞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있습니까?
정녕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내 죄를 용서 받은 자로서
내 형제의
내 이웃의 사소한 잘못을 기꺼이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내로남불하고 있고
너 때문이야 하며
손가락질하고 비방하며 공격하기에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큰 액수의 빚을 탕감 받은 이 종은
자신의 죄 값보다
자신이 진 빚인 일만 달란트보다
자신의 동료가 그에게 진 빚인 백 데나리온은
60만분지 1에 해당하는
비교조차 하기 부끄러운 적은 액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를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난폭하게 대하고
심지어는 옥에까지 가둡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런 일을 자행한 이 종은
종교 지도자였고
서기관이요 장로요 제사장 급들의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교회에는 이런 자들로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종은 용서에 인색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 종의 행태를
반면 교사로 삼고
타산지석의 귀감으로 삼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래부터 죄인이었습니다..다만 죄 사함을 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내 죄를 용서받았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용서 받았으니
나도 상대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은 동일한 개념이고
용서받고
용서하니 용서가 치료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10;:12의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과 함께
31~34절입니다.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여러분 억울한 사건을 겪고는
복수 혈전이나
되갚아 주자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은 본문의 이 비유때문입니다
33절을 잠시 살펴보니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즉 나는 도저히 면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용서 받았으면서도
나는 내 이웃이
나에게 지은 작은 죄를 용서하지 않는 이기심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저와 여러분은 어떤 모습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좀 찔려야 되지 않나요...
그냥 건성으로 듣지 말고 나의 양심을 후벼 파는 말씀으로 듣고
많이 찔리시기를
그리고 많은 변화를 견인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요일 3;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큰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너희도 네 이웃을 위하여 용서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일 4;11에사도 이르기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우리도 우리가 지은 크고 작은
죄의 문제를 떠나서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본질은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최고입니다...믿음, 소망 사랑 이들은 늘 함께 있지만
그 중에 제일은
여러분 무엇이라고요...그렇습니다..사랑입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사랑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이나구요
십자가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인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으로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사랑은 동사입니다..사랑은 행동이 따릅니다
그것도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내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일만 달란트라나 되는 큰 죄를
주님은 탕감으로 용서해 주셨는데
나는 내가 지은
만달란트의 죄에 비해 육십 만 분의 일에 불과한 백 데나리온의
작은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놓여 있지는 아니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한 아주 딱한 처지와 그 종의 상식 없는 행위를
살펴보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31절의 그 동료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주인에게 말해 줌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누구의 동료요 이웃이요 친구입니까?
잘 나가는 사람들 말고요..예수님처럼 우리도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에게 우리가 친구요 좋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동료가 되어주고
참된 이웃이 되어 주고
딱한 사정을 변호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나의 딱한 처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고
또 변명해 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이 땅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내가 그 동료가 되 주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기 위해 관계를 잘 해야 합니다.
진심은 이렇게 통합니다...악한 종도 빌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감사를 모르면
빚진 자를 무시하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죄의 빚을
얼마나 지고 있습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해 지면 빚을 다 갚도록 옥에 가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남의 탓만 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이 가만 놔두지 아니하고 심판하십니다.
불쌍히 여겨주지 못하는 그 마음 상태가 바로 지옥입니다.
시기 질투는 있는데
불쌍히 여기지는 못합니까? 그러나 그 마음이 바로 김옥이고 지옥이니
에덴의 회복을 위해 회개하며 나를 변화시키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탕감을 받았어도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주인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만 달라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 중에
누가 더 불쌍한 자입니까?
진짜 불쌍한 사람은 일만 달란트 빛 진 자입니다.
그는 용서를 모르기 때문에 가장 불쌍한 자이니
저와 여러분
내가 가장 불쌍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쌍히 여겨 주어야 할
그 종을 위해서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끝없이 인내하며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은
상대와 상관없이 오직 내 죄만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내 죄를 보아야
이 모두가 내 삶의 결론이요
내가 100% 죄인이라는 고백이 뒤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100% 죄인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용서를 할 줄 알게 됩니다.
택한 사람은 끝까지 내 죄를 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죄를 보는 사람은 남의 탓을 안 하고 남을 용서하는 데
그 용서하는 마음은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치유요
사랑의 관계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달란트 빚진 자와 같이 큰 죄인이고
내게 죄를 지은 상대는
백데나리온을 빚진 작은 죄인이라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내 죄가 가장 크다는 의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은 죄인
너는 큰 죄인 하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를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것이 아닌
사소한 것부터 용서할 때 전도가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빚을 탕감으로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복음의 빚이 가장 큰 부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께 빚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를 말하여
복음의 빚이라 하는 데 우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만달란트의 빚진 자로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35절을 살펴보면서 정리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를 말로만 하지 말고
중심을 다하는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마6;14,15절에 이르신 대로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 막11;25절에서도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신다]고 하였으며
고후 2;10절에서는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하셨고
또 벧전 4;8절에서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심을 볼 때
사랑과 용서는 동일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용서하지 못함은 거짓이라는 말로도 풀이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와 함께
용서의 문제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은 동일한 개념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제 무엇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무조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무한대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끝없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용서 받기 위해서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용서해야 하고
용서하되 진실된 마음의 중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이 땅이 갈등 충만, 대립 충만한 땅이 되어 있습니다.
남북 갈등이 가장 큰 것이고
남남 갈등에 동서 갈등, 세대와 계층의 갈등
노사의 대립과 갑을 관계의 충돌
이념의 분쟁에 보수와 진보간의 가치관과 니편 내 편의 대립들이
참으로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무적 감각이나 정치력으로 풀리지가 않습니다.
물질로도 녹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만이
이 대립과 갈등을 푸는 열쇠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즉 용서와 사랑의 복음만이 해결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용서와 사랑입니다...이것이 이 땅에 심겨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휴전선이 무너져야
통일이 대박이 되며 통일의 대박은 선교의 대박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갈등과 대립의 치유책도
용서와 사랑의 복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합니까?
교회가 해야 하며
먼저 믿은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여 믿으시고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이 용서의
사랑의 복음을 선행함으로
많은 용서와 사랑의 열매를 듬뿍 맺게 되기를 축복하고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