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왜 나는 자주 깜빡거릴까?
나는 자주 무엇인가를 깜빡 잊어버리는가 하면 어제의 일에 대한 기억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그 동안은 그저 그게 내 나쁜 머리 탓인 줄만 알았다. 그렇다고 그 머리 탓을 부모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러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이 결코 내 머리 탓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완벽한 존재라면 우리의 기억이 헷갈릴 리가 없으며,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명확할 것이다.
인간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종이다. 그렇다고 그 계획이 늘 실천되고 최상의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실행도 전에 내팽개치기도 한다. 그것을 자칫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이런 상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이런 내 궁금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 바로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이다. 클루지는 원래 심리학 용어는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니 내 궁금증을 풀어줄 입맛에 꼭 맞는 책인 셈이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임시변통적인 해결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맥가이버’의 활약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뭐든 주변의 물건들을 사용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게 클루지다.
나. 인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접근
이 책은 인간의 다양한 심리적 특성에 대해 이러한 클루지라는 개념을 통해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뇌가 진화했을 당시의 환경과 현대인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환경이 매우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날 우리의 뇌는 홍적세(약 18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 환경에 적응되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오늘날 환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여러 과제들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않으며 때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잡함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오늘날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로 죽는 일은 빈번하지만, 거미나 뱀에 물려 죽는 일은 거의 드물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동차보다 거미나 뱀을 보면 두려워하고 혐오스러워한다. 거미나 뱀이 인간 선조들에게 실제적인 위협이었지만 자동차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오래된 환경에서 인간 뇌가 진화를 통해 습득한 공포 학습 기제가 오늘날의 환경에서 부적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도 이런 진화심리학적 설명 방식의 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자료 : 다음 이미지, 이하 같음
저자는 이렇게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도 무수한 클루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형편없는 해결책이다. 직립 보행 덕분에 손놀림은 자유스러워졌지만 대신 요통을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이전에 있는 것을 기초로 그 다음 진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신체의 구석구석에는 이러한 것들이 수도 없다. 즉 신체는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하다. 치아는 썩으려 골치 아픈 사랑니가 나오고, 발은 쑤신다.
이처럼 자연은 쉽게 클루지를 만들곤 한다. 자연은 진화의 산물이 완벽한지 또는 세련됐는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유전자는 증식하는 경향이 있고,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는 생물을 낳는 유전자는 사라져버리는 경향만이 있을 뿐이다.
다. 클루지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신체만큼이나 클루지라고 주장한다. 진화는 궁극적으로 완벽한 문제가 아니다. 진화는 적당히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의 문제다. 이런 결과는 경우에 따라 아름답고 세련된 것일 수도 있고, 클루지일 수도 있다.
우리의 뇌는 후뇌 위에 중뇌가 있고 그 위에 전뇌가 얹혀 있다. 후뇌, 중뇌, 전뇌의 순서대로 나타났다. 이렇게 진화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옛 체계 위에 새 체계가 얹히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과정을 거쳤다. 이런 과정의 최종 산물은 클루지가 되기 쉽다.
저자는 우리의 기억이 왜 그렇게 자주 기대를 저버리는지, 우리는 왜 그렇게 자주 거짓된 것을 믿고, 참된 것을 믿지 않는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믿을 수 있는지 등을 포함해 수많은 것들을 살핀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여기도 클루지, 저기도 클루지다.
이 모든 경우에 인간의 마음이 형성될 때 진화의 관성이 수행한 역할을 고려함으로써 우리의 한계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불완전한 이유를 ‘진화의 관성’에서 찾는다.
관성이 운동의 계속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진화 역시 지금까지 진화해온 것들을 바탕으로 당장 그런대로 쓸 만한 해결책이 발견되면, 그것이 선택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마음은 불완전하고 때때로 엉뚱한 문제를 야기하는 클루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저자에 의하면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 사이의 간격으로 나타난다. 반사 체계는 인간 선조들이 아주 오래된 환경 속에서 진화 과정을 거쳐 생성된 체계이다. 반면 숙고 체계는 비교적 최근에 진화해서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이다.
반사 체계는 우리 뇌의 터줏대감으로 많은 경우에, 특히 위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선권을 쥐고 있다.
라. 클루지에 대처하기 위한 실천 전략
이 때문에 종종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반응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클루지가 완전한 것보다 더 많든 그 반대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완전한 것에서 배울 수 없는 두 가지를 클루지에서 배울 수 있다.
첫째, 클루지는 우리가 진화해온 역사에 대해 특별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완전한 것을 관찰할 때는 어떤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을 낳았는지 분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에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것이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쉽게 알아챌 때가 있다.
둘째, 클루지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 단서를 줄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진화해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러한 클루지스러움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13가지 실제적인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다. 경험적 증거들에 기초한 이 전략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을 좀 더 현명하게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밀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 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