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칠이오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안성의 약 50-60 년전의 모습들
이광석 추천 0 조회 247 09.02.18 08:24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9.02.18 09:13

    첫댓글 아주 진귀한 기록들이네 , 보고 또 보고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

  • 09.02.18 09:20

    <1번째 사진>버스터미널:2층건물이 허술합니다.개축하기전인 듯합니다.과일가게 수박이 지금 것과는 비교할 수없게 작습니다.가게안에 매달린 것은 <쓰르메>로 생각됩니다.해태종합선물셋트가 나오기 전인듯합니다.행인들이 한여름인데 밀집모자 하나만 보입니다.새마을 운동때부터 유행한 운동 모자는 전혀보이질 안습니다.....결론,1960년 이전 사진 맞습니다.

  • 작성자 09.02.19 15:23

    터미널 바닥을 보면 콘크리트건 아스팔트건 포장이 없이 맨땅입니다. 정말 오래된듯 합니다.당시에 버쓰가 고장이 나면 폐 드럼통<도라무통)을 망치로 펴서 고치는 장면을 보았으며 그일을 하던곳이 지금이 삼보아파트<옛 안전상회앞 옛 한전옆) 자리인 중앙철공소에서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 09.02.19 08:41

    ㅎ 내 기억으로는 우리가 아주 어릴때 버스 터미널은 지금 낙원공원앞 은성다방 옆에 있었고 그 이후에 지금 자리로 이전하였던것으로 생각되고, 그럴듯한 버스가 제작되기 시작한것도 60년대초 이며 아이들 교복등을 보아도 60년대초로 판단됩니다

  • 09.02.18 10:25

    <2번째 사진>안성초교 최초사진: 미루나무의 잎이 몇개 안남았습니다.운동장에는 낙엽이 수북하고,건물 방마다 난로연통이 보입니다.초겨울의 어느 쌀쌀한 날입니다.건물과 계단사이에 당간지주같은 구조물이 양옆으로 두개보입니다.용도를 알수없고 안성초교 이전에 이곳이에 무없이 있었는지 그와 관련이 있겠다 싶습니다.왼쪽 끝방에는 십자가같은 것이 창밖에 보이는데 이는 라디오 안테나로 생각됩니다.유리창안으로 하얀 커튼이 보입니다......결론,6.25이전 일제치하 약 60-70년전.

  • 작성자 09.02.18 16:40

    사진을 보고 그 느낌과 추리력을 발휘하는 글이 너무나 치밀하고 뛰어 납니다.ㅉㅉㅉㅉㅉㅉㅉㅉㅉ 박수를 보냅니다. 해설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습니다.

  • 09.02.18 11:51

    <3번째사진>자전거대회: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깃발이 보입니다.일간스포츠 선전을 겸해서 한 행사로 생각되고,안성읍을 관통하는 아스팔트(할아버지 지리선생님 발음으로는 아스바르도) 외길이 깔리던시절.우리가 중학교 입학하던시절.경제개발5개년계획 수차례후에 먹고 살만해져서 집집이 자전거가 있던시절......결론:1969년경........강우혁군수:제물포고졸업,행시후 약 30세에 안성군수.인천에서 국회의원출마.

  • 작성자 09.02.18 16:42

    실제로 이 대회에 우리 4년 선배가(이경수:봉산동 기름집 아들) 일반 자전거가 아닌 짐 자전차를 끌고 나가 우승하는 일이 있었다고 회고 하더이다.

  • 09.02.18 12:09

    <4번째사진>광세여관:건물은 왜식 기둥.앞에 왜놈옷을 입은 두사람.뒤에 두루마기를 입은 양반옆에 <닥구시>가 서있습니다. 주위의 나무는 가죽나무로 보이는 길쭉한 나무들이 여럿 보입니다.여관주위는 밭으로 아직 개발이 덜 된 듯.당시 가장 중심지는 일명<똘뚜게>사거리로 미화장.장씨네정육점.시계포.동방서림(우리 어린 시절)이 있던 구사거리.광세여관은 이문환상회 뒷쪽.신흥동 양철골목이 생기기 전 풍경.......결론:일제치하 1930~40년대.........우리 어린시절 광세여관집 큰아들은 우리 2년 선배로 비뇨기과의사가 됨,동생은 우리 1년 후배.

  • 작성자 09.02.18 16:53

    아주 명료한 설명입니다. 저집 옆으로 약간은 큰 도랑이 있던곳으로 기억 됩니다.후일 이집의 앞쪽에<바로 앞쪽은 아님> 2층으로된 자장면집(대흥관)이 있었습니다.

  • 09.02.18 17:07

    그도랑은 여관 수십미터 북쪽.도랑을 거슬러 올라가면,양명이네가게.안성의원.안청중후문.공원연못.물문거리로 연결됨.

  • 09.02.18 18:32

    광세여관 앞이 이문환가게 그당시 제일큰 가게였고 안성의원아니고 이전에 국회의원5번 출마 했다 모두 낙선하신 회춘병원이였지 그리고 안성목욕탕과(큰아들이 장군이셨고 우리3년선배 정호원씨가 목욕탕집아들) 안청중학교가 있었고.그개천아래로 옛읍사무소이였던곳이 임윤권 형님이 가축병원으로 개조했었고 안청중학교와 공원사이에 옛소방서도있고 너무 좋은 추억을 주는 사진이다~~

  • 작성자 09.02.19 15:24

    워낙 회춘병원과 (원장 강희갑) 안성의원(원장 전성덕)은 담장하나 사이이며 강희갑씨는 신민당으로 출마하여 여러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낙방을 한 낙방거사임.임윤권 형님이 아니고 작은 아버지임. 또한 당시의 이문환 상회는 과자가 너무나 많아서 전쟁이 나면 이문환 상회로 가서 과자를 싫컷 먹어야 겠다는 당시 아이들의 소원이라며 하던 농담도 있었음.

  • 09.02.20 13:05

    윤권아 앞으로 삼춘이라불러라~ㅋㅋ 네작은아버님을 우린 형님 이라하고 또 아우라불러주셨는데 ㅋㅋㅋ

  • 09.02.18 13:42

    <5.7번째 사진>공동작업:초가지붕뿐입니다.한복은 거의 안보이고,예비군복과 운동모자가 보입니다.지게와 리어카도 보입니다.깃발의 글자는 읽을 수가없네요.새마을운동 초창기의 모습으로 짐작됩니다.....1970년경

  • 09.02.18 14:03

    <6번째 사진>시내풍경: 초가빕.기와집.양철집이 같이 보입니다.모두 한복 외출복으로 차려입었습니다.볼일있어 나오신 어르신들로 보입니다.이주영대서방(?)이 보입니다.대서방은 왜농들이 척식회사를 만들고 토지측량등록등을 한 후에 생겼겠죠.양철지붕간판에 자동차가 그려져 있습니다.짐작컨대 택시부가 아닌가 싶습니다.전봇대는 보이는데 가로등은 안보이고 대신 양철지붕 처마밑에 전등(?)이 보입니다.그러고 보니 안성초교사진의 건물앞 두기둥 한쪽에도 이와 유사한 전등(?)이 보입니다. ........결론:1930-40년경

  • 09.02.18 14:07

    참 신기하고 추억을 통해 옛날로 잠시 돌아가게 하는 귀한 사진들이네. 잘 봤어. 근데 해설 내용이 대단한데 초관자 년배가 짐작이 안가네. 누셔?

  • 09.02.18 14:36

    초관자(초보이지만 관심은 많은 자) = 촌놈 = 서천촌것

  • 09.02.18 15:14

    <7번째 사진>퇴비건초증산:1961.1967.1969년.차에 걸려있는 플랭카드가 접혀져 일부 잘 보이지는 안습니다만,글자 생김새와 7~9월이라는 글자와 비교해보면 1969인듯함.전봇대가 나무가 아닌 콘크리트제품입니다.차량은 당시 대절용으로 읍내에 몇대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차량뒤의 기와지붕은 조선기와는 아니고 시멘트와 모래로 만든 것.국가에서 권장하던 국민주택 스타일.당시 농업학교 다니던 형들의 방학숙제가 건초제출이었습니다.이 형들이 풀무게를 늘리기위해 물을 뿌려 제출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 작성자 09.02.18 16:50

    ㅎㅎㅎ 최두재!!! 시골의쟁이 답지않게 안성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세세히 알고 계시군.. 역시 학창시절 반장을 하던 인물이라서 그런지 예삿일이 아니군요.강우혁군수(1969년도 부임)는 내가 알기로는 弱冠(약관)의 나이에 안성군수를 했답니다. 약 28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而立(이립)의 나이인 32세에 안성군수로 최순식 군수가 있었습니다.

  • 09.02.18 16:31

    ***참조*** 호서은행:1922년 충남토호지주들이 설립. 그후 통폐합인수를 거쳐,1931년 동일은행,1943년 조흥은행이 됨.

  • 09.02.18 16:54

    <마지막 사진>호서은행: 우리 어릴적 읍사무소에서 소방서,안청중,낙원파출소를 지나 사거리 코너에 있던 건물로 생각됨.사진 좌우측의 대비가 재밌습니다.우측은 신식건물과 왜식건물이 있고 길을 따라 전봇대, 하수도,승용차가 보이고 양복입은 사람들이 보입니다.좌측에는 초가집과 기와집,우마차와 한복입은 사람이 보입니다.은행건물앞에는 제복을 입고 총을 든 경비원이 보입니다......to be continued.

  • 09.02.18 17:17

    ^^** & 이어지는 초관자의 해설이 기대 됩니다 .사진은 기록만으로도 이렇게 가치가 큰 것 입니다 .

  • 09.02.18 17:16

    <마지막사진-2>카메라 위치는 2층이나 2층옥상으로 보임.또하나 재밌는 것은 양복입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보고있고,한복입은 구경꾼들은 양복쟁이들을 보고있습니다.짐작컨데 본사에서 높은 양반들이 순시차 호서은행 안성지점을 순시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듯합니다.호서은행이란 이름은 1931년까지만 사용.......결론:1930년경

  • 09.02.18 19:40

    정말 귀한 자료 ! 맛있는 설명 ... 친구들 고마우이 ... 모두가 동아리 카페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지 ! 그나저나 두재는 향토사에도 해박헌듯 허이 ~~~ 고향의 역사를 설명할수 있다는건 즐거운 일이지 ... 수고허셨네 ~~~

  • 09.02.18 20:23

    광세 여관은 얼마전에도 있어서 드라마 촬영을 했던것 같은데 그리고 하계건초퇴비 증산 소주밀식 그리운 옛날 주민을 독려하던 표어가 그립군

  • 09.02.18 21:20

    구경 잘 했어유,,

  • 작성자 09.02.19 15:27

    모처럼 제가 특종 한껀 한듯 싶어요. 친구들이 안성의 옛모습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이 사진을 발굴을 한 나 자신도 즐겁네요. 특히 최두재(초관자)의 화려한 글솜씨및 기억력은 칭찬할만 합니다.

  • 09.02.19 08:44

    귀한 사진 잘봤네 동상~~ ^^* 해방전 사진과 60년대 사진이 계재 된것 같으네 ㅎ

  • 작성자 09.02.19 10:04

    광근동상 엉아 사진 봣는감? ㅎㅎㅎㅎㅎㅎㅎ아 !!! 옛날이여~~

  • 09.02.19 15:31

    어캐 귀한 사진들을 구했당가? 촌놈은 그저 옛날 안성에 그런게 있었나 신기하기만 하구먼

  • 09.02.26 22:12

    귀한 자료네그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