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ㆍ등급제” 논쟁
국회 교육위 이주호 의원(한나라당)이 초·중·고교생의 지역·학교별 학업성취도 격차가 뚜렷하고 서울지역 내 학력 차이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 자료를 발표한 뒤 “고교 평준화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특히 교육부와 교육혁신위가 2008학년도부터 학교 간 격차는 인정하지 않고 내신위주 대입전형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반면 대학들은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지 않고서는 내신 위주 대입전형이 어렵다고 맞서고 있어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학력저하ㆍ격차, 평준화 탓’ 논란
이주호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이던 지난 2월에도 이번과 같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01년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를 분석, "비평준화지역 고교생들의 성적이 시간이 갈수록 평준화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평가원은 남녀간, 과목 간, 지역 간 학력격차를 파악하고 기초학력 미달 비율 등을 알아보기 위해 매년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을 대상으로 재학생의 1%를 샘플링, 학업성취도 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별 성적은 샘플링한 학교가 각 지역 대표성이 없고 모집단이 적은데다 교육계에 미칠 파장을 감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당시 비평준화지역 고교가 비슷한 수준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만큼 학습효과가 높은 데다 우수학생 유치 경쟁을 하면서 우수교사를 고용하고 더 효율적인 교육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평준화지역 고교는 학습능력에 큰 차이가 있는 학생들이 한 학교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은 상위권 학생대로, 하위권 학생은 하위권 학생대로 학습에서 소외되는 악순환이 거듭돼 평균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 교육계 입장은 다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관계자는 "학생들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 교육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엘리트와 학력부진아를 분리 교육하는 것은 사회 통합에 저해돼 더 큰 사회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김현진 KEDI 부연구위원은 "사교육비 지출을 유발하는 원인은 요소별로 학교 불만족이 가장 컸고 가구소득, 거주지역, 어머니 학력, 아버지 학력 순이었으며 평준화는 오히려 사교육비 지출을 조금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 의원이 교육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수월성교육, 엘리트교육을 주장하는 경제계 목소리를 여전히 대변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 고교등급제 허용 논쟁으로 확산될 듯
이 의원이 학교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를 내놓음에 따라 대입전형에서의 고교 간 격차 인정, 즉 고교등급제 허용 논쟁에 불이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8학년도부터 수능성적이 9등급제로 바뀌게 돼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학생부 성적을 위주로 대입전형을 하려면 고교 간 격차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대학들의 주장이다.
앞서 어운대 고려대 총장은 "고려대의 경우 수능과 학생부 모두 1등급이 지원할 가능성이 커 변별력 확보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고교 간 학력격차가 엄연한 현실인 만큼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일부 사립대가 이미 수시모집 등에 학교, 지역에 차별을 둔다는 소문도 일선학교나 학원가 등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실정이다.
이주호 의원도 "고교별 학력격차가 분명하고 심각하게 존재하고 있어 학교 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새 대입제도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서울 주요대 입학처장 회장단이 10일 모임을 갖고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며 고교등급제와 대학별 본고사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겨 파장 확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 교육부는 ‘고교등급제 불허 - 평준화 유지’ 일관
교육부는 고교등급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석수 교육부 학사지원과장은 “학교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학교 간 격차나 선배들의 실적으로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교육연좌제”라며 철저히 조사해 강력한 행ㆍ재정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평준화제도와 관련해서는 교육부는 평준화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교육의 형평성 및 수월성을 적절히 조화시켜 다양한 교육 욕구에 부응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의 선택권을 배제한 채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학교를 배정하는 평준화의 폐해를 줄이고 입시 경쟁이 부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교 교육에 경쟁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에 따라 선(先)지원 - 후(後)추첨 확대, 특성화고, 대안학교, 자율학교 활성화, 자립형 사립고 도입, 영재교육 강화, 수준별 이동 수업 정착, 집중이수과정 설치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연합뉴스] 2004. 9. 10
“평준화 지역 학력성취도 더 높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05년에 내놓은 보고서 ‘고교 평준화 정책의 적합성 연구’에는 학력 하향 여부, 사교육비 현황 등 평준화 관련 주요 쟁점들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연구책임자인 강상진 연세대 교수는 전국 일반계 고교 126곳(전체 일반고의 10%) 858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평준화 정책 효과를 분석했다. 또 다른 연구자인 김기석 서울대 교수는 2001년 국가 교육성취도 검사를 받은 고1 학생들이 2·3학년이 된 뒤 치른 수능 모의고사 성적을 3년간 추적, 분석했다.
☞ ‘평준화로 학력 저하’ 주장 근거 없다
일반계 고교생 85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보다 높았다. 평준화 지역 학생이 언어 영역의 경우 4.72점, 외국어 4.37점 더 높게 나왔다. 수리 영역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과가 10.28점, 이과 7.91점 더 높았다. 평준화 학교와 비평준화 학교가 함께 있는 중소도시 지역만을 따로 비교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또 2001년 국가교육성취도 검사를 받은 전국 175개교 고1 학년 7337명의 성적을 3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역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성취도가 낫거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 고교평준화 제도로 학력 저하 없었다.
1) ‘평준화가 사교육 주범’ 주장은 오해
월평균 사교육비의 경우 평준화 지역은 37만3000원으로 나타난 반면 비평준화 지역은 28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평준화 지역의 시교육비 지출 규모가 더 크게 나타났다. 하지만 유의할 사항은 사교육에 대한 구매력이 높은 서울과 6대 광역시가 모두 평준화 지역이라는 점이다. 보고서 역시 학교 소재지의 경제적 여건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사교육비 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수준, 지역 등의 변수를 빼고 분석한 결과에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평준화 지역의 학부모들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사교육비를 월평균 8000원 가량 덜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결국 평준화 정책 자체를 사교육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볼 근거는 없다는 결론이다.
2) 모자라는 것을 채워 높여주는 것이 ‘평준화’
평준화정책 30년의 성과는 명확하다.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고교 입시경쟁 완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위화감 해소에도 큰 몫을 담당한 셈이다. 특히 교육환경을 정비하고 교육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교육여건의 전반적 향상을 꾀한 점은 새삼 평가받아야 할 대목이다. 넘치는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것을 채워 높여주는 것에 평준화제도의 본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역시 이러한 평준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교육의 형평성과 수월성의 조화에 노력해 왔다.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고교체제의 다양화와 특성화 또한 추구해 왔다. 그 결과 2006년 현재, 특수목적고 128개, 특성화고 125개, 자립형 사립고 6개 등 259개에 달한다. 전체 2,144개 고교의 12%에 해당한다.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또한 크게 확대됐다. 고교평준화를 실시하고 있는 시·도교육청 가운데 서울을 제외하고는 40~60%의 학생을 선지원 방식에 따라 학교에 배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한 학군제 개편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개방형 자율학교는 고교 교육의 미래지향적 혁신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개방형 자율학교는 학교의 설립과 경영을 분리하는 새로운 형태다. 학교 혁신의지가 강하고 교육철학이 분명한 교장 또는 전문가 등에게 협약을 통해 학교 경영권을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라는 자립형 사립고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대학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서울·부산·충북·전북 지역에 1개교씩 총 4개교가 2007년 시범운영에 들어가고 2010년 혁신도시로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도·농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88개 농촌지역의 1군 1우수고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부 성적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입제도 등장 이후 평준화제도 찬성여론에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 진학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거나 초·중학교에서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등이 찬성 쪽으로 돌아서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어떤 제도이든 간에 ‘대학진학 경쟁’이라는 강력한 자기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라며 “그런 까닭에서도 교육의 기회균등을 보장한 평준화제도는 기본 틀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댓글 귀한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