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른 청명한 가을하늘에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요즘,
보름넘게 가물어 햇살은 빛나고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롭고 낙엽은 바스락거린다.
갈무리에 더 없이 좋은 날씨지만 김장채소는 목이 말라 울상이다.
무서리가 자주 내리고 이제는 된서리에 한기를 느끼는 지금,
배추를 묶고 뿌리채소는 갈무리를 서두르고 묵나물은 더 바싹 말리고
잡곡은 깨끗하게 갈무리해서 알맞게 저장하는 시기다.
① 볏짚말리기 - 펴서 널고 한 번 뒤집고 말려 비 오기 전에 끝내기.
:별 쓸모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하고 먹을 것이 없는 풀단이지만 따져보면 꽤 요긴하다.
볏짚으로 쓰지 않는다면 탈곡하면서 잘게 썰어 이듬해 유기거름이 되도록 한다.
잘 말리면 소와 염소 등 반추동물들의 겨울먹이가 되고, 건축에 필요한 재료가 된다.
배추를 묶는 끈으로 사용하며, 김장독을 묻을 때도 필요하고 메주를 만들때도 필요하다.
이영을 엮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덮개로도 사용하고 때로는 우산이 되기도 한다.
참 많은 곳에 쓰이는 요긴한 볏짚을 올해도 비에 적신다.
작년엔 곰팡이가 많았지만 요즘 볕이 좋아 좀 괜찮겠다.
② 땅속작물 캐기 - 된서리가 오기 전에
땅콩은 쥐도 먹고 굼벵이도 먹어 조금 일찍 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배수가 좋은 곳에서는 깨끗하여 약간만 말려 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나면 저장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 질은 곳은 지저분하고 흙이 많아 불편하다. 흙을 잘 털어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땅콩을 좋아한다. 하나씩 까서 먹는 재미에 자꾸 발길을 돌리며 머물게한다.
당근은 가뭄에 땅도 물기가 없는 곳에 심겨 많이 크지도 않고 봄에 심긴 것이나 가을에 심긴 것이나 매 마찬가지다.
키우기가 힘든만큼 때에 잘 뿌리고 습이 많은 곳에 잘 심어야겠다.
야콘은 고구마같이 보이지만 색은 감자색이고 배와 참마의 중간맛이라고 한다.
고구마처럼 무서리에 잎이 마르지만 좀 더 추위에 강해 된서리 전에 갈무리한다.
된서리에 열매를 놔두었더니 조금 붉어졌다. 거무스름하게 썩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저장성이 좋고 몸에 좋은 겨울철 간식 겸 약이다. 차가운 성질이 있어 오미자랑 짝을 이루기도 한다.
감자는 유난히 더디고 손을 잘 쓰지 못했던 가을감자, 청춘을 수확했다.
울퉁불퉁에 길어지고 특이하지만 맛을 푸석하니 좋다니 위로를 받는다.
남겨둔 하지감자와 자주감자도 여태 싹이 덜 나고 큼직하니 저장도 좋겠다.
③ 잡곡 갈무리 - 먼지날 때까지 말려 저장하기.
향찰벼는 열흘을 말렸다. 남들은 사나흘을 바짝 말리면 된다고 했는데, 역부족이다.
바닥에 천막을 깔았더니 습이 있고 벼가 두꺼워 천막을 두 개로 늘리고 벼를 얇게 말리니 속도가 난다.
말리는 기준을 알 수 없어 자꾸 나락을 까보지만 멥쌀과 같은 것이 벼를 잘못 심었나하는 의구심이 자꾸 생겨난다.
망사로 된 거적은 더 빨리 마른다고하니 깔개를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열흘이 되고 내일 큰 비도 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거두게 되었다. 벼를 바닥에 놓고 밝아보니 제법 흰색이 난다.
자루에 담으려고 하니 제법 풀풀 먼지도 나고 바싹 마른 느낌이 들어 이 정도면 되었겠다싶다.
녹두를 지금에야 털어냈다. 양파망에서 굴러다닌지 한 달은 되었다.
거두기를 포기하려다 마지막까지 조금을 거둬 마지막으로 털어내어 한 되를 얻었다.
알도 작고 병도 나고 썩기도 하였지만 제일 털기 쉬웠다.
조는 잘 말린 후에 몽둥이로 쳐서 낟알을 떨어냈다. 튀어나가고 가벼워 바람에 날리고
키질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벼운 검불은 좁쌀을 거르는 가는 채로 거둬내고 키 큰 선풍기로 날리니
껍질가루가 시원하게 날아가고 깨끗한 알맹이가 되었다. 열 평 남짓 심어 닷 되 정도가 나왔다.
아직 메조인지 차조인지 모른다. 노란것이 메조이고 푸른것이 차조라는데 까보면 푸르다.
수수는 열 평 남짓 심고 논에서 거두어 말리고 일주일이 지나 털었다.
여전히 흰수수는 털어도 털리지 않아 다시 매달아 두었지만 붉은 수수는 잘 털려 거적밖으로 뛰어 달아난다.
빨간 껍질이 잘 떨어지지않아 키질로도 잘 되지 않고 채에 걸러도 시원하지 않고 키 큰 선풍기를 이용해 날렸다.
무겁고 실하 것들이 먼저 떨어지고 가볍고 껍질만 있는 것이 뒤로 날아가며 대충 갈무리가 되었다. 더 말려야한다.
④ 묵나물 저장하기 - 낮에 거두어 습기가 없도록 비닐에 저장.
고추잎와 고구마줄기, 토란대와 가지, 야콘잎 말렸다.
고추잎은 살짝 데치고 찬물에 씻어 잘 펴서 널어야 잘 마르고 고구마줄기는 질겨서 많이 데쳐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한다. 토란대와 가지는 데치지 않고 말리는데 가지는 십자로 갈라 그늘에 말리는 것이 좋다.
야콘잎은 살짝 데쳐 그늘에 말리고 다 마르기 전에 팬에 덕으면 차로 만들 수 있다.
따기 힘들고 데치는 것도, 말리는 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지만 묵나물로 만들어 저장하는 방법을 잘 익히는 것 같다.
그래도 제일 힘든 것은 고추다. 잘 마르지도 않고 잘 썩고 잘 마른 후 꼭지도 따고 가루도 내야하니 품이 많이 든다.
묵나물을 만드는 때는 비가 없는 가을햇살이 좋은 때인 것 같다.
가을작물을 캐는 시기와 겹치지 않도록 고추와 고구마의 묵나물 만들기는 조금 서두르면 여유가 생기겠다.
가을에는 추수하느라 괜스레 바쁜것 같지만 당연한 시간들이다.
자급농사라 손으로 캐고 햇빛에 말리고 곡식을 직접 갈무리하니 시간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간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먹기 쉬워지는 것들에 비하면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한다.
털고 말리고 저장한 것은 먹거리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로움이자 믿음의 열매가 아닌가!
첫댓글 겨울나기 차곡차곡 준비하시는 모습이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