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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1
2. 大山의 生涯와 學問活動 2
3. 高山及門錄의 分析 5
4. 맺음말 12
[초록]
본 연구는 대산 문인들의 학문적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생애와 학문 활동을 살펴보고 문인록을 분석해 보았다. 수록된 문인수는 273명으로 확인되었다. 문인록에는 문인들의 성명⋅자⋅호⋅본관⋅혈족관계⋅거주지⋅생년⋅과거⋅사승관계⋅문집유무⋅저술관계⋅만사와 제문 등이 기본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문인록의 분석 결과 퇴계 학맥을 계승한 문인들의 성격을 알 수 있었음은 물론, 안동 일대의 영남 유림을 조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 연구만으로는 문인록에 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여타의 문인록에 수록된 자료에서 더 많은 사실과 의미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제어 : 대산, 이상정, 고산급문록, 문인록, 퇴계학파
1. 머리말
본 연구자는 그동안 연구되지 않았던 퇴계학파의 문인록을 분석해 보고자 定齋 柳致明, 葛菴 李玄逸, 西厓 柳成龍 등의 문인록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 연구 또한 퇴계학파 연구의 일환으로 大山 李象靖(1711∼1781)의 문인록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문인록에 수록된 273명은 그가 평생에 걸쳐 가르친 제자들이다. 이 문인록에는 개개인에 관한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문인들의 성명⋅자⋅호⋅본관⋅생년⋅과거⋅관력⋅사승관계⋅저작 등을 밝히고 있어 문인록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이들 집단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문인록이 이들 집단의 전모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실상에 접근할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인록의 분석은 매우 흥미 있고 중요한 史料라 생각된다. 이 문인록은 柳致明과 李秉遠이 共編하였으며 純祖年間(1800~1834)에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서지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卷.附錄.合2冊으로 四周雙邊, 半郭 19 x 16.2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文黑魚尾 : 31.2x21cm이다. 문인록은 3권 2책으로 편성되어 있다. 수록 내용을 살펴보면, 권지1의 첫머리에 범례 10항을 수록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권별로 이름과 호, 본관만 기재된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인원수를 살펴보면, 권지1에는 43명, 권지2에는 142명, 권지3에는 88명이 수록되어 있다. 권지3은 續錄이다. 목록이 끝난 다음에는 蔡濟恭이 撰한 「文敬公大山李先生墓碣銘」과 李宗洙가 撰한「敍述」, 金宗德이 撰한「管窺錄」이 있다.
개인별 기재내용을 보면 인적사항인 성명⋅자⋅호⋅본관⋅거주지⋅생년⋅친족관계⋅과거⋅관직⋅문집유무⋅사승관계⋅만사나 제문, 저술관계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 중 과거⋅관직⋅문집유무⋅사승관계 등은 해당자만 적었으며, 몰년은 대부분 밝히지 않았다. 또한 뢰문⋅만사⋅묘지⋅묘표⋅제문⋅행장을 그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양적으로는 문인록의 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산 문인들의 학문적 경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생애와 학문 활동을 살펴보고 문인록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문인록의 분석에서는 수록된 문인들의 거주지별 분포, 성씨별 문인 분포, 과거합격자 수와 관직, 사승관계 등을 살펴보고 문인들의 성격을 밝히고자 한다.
2. 大山의 生涯와 學問活動
1) 生涯
한 사람의 자취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생애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상정의 생애를「행장」과「연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것을 중심으로 그가 지향했던 삶의 방향과 학문적 경향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이상정의 생애를「연보」에 의거 중요사항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상정은 호가 大山, 자는 景文이다. 본관은 韓山으로 1711(숙종 37)년 1월 29일 안동부 일직현 蘇湖里에서 李泰和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조상은 본래 서울에서 살았으나 고조부인 睡隱 李弘祚가 1631(인조 9)년 광해군 때 폐모론이 제기되자 외조부인 류성룡이 고향인 안동으로 남하하자 마침내 소호리에 정착하였다.
대산의 가계는 稼亭 李穀을 시조로 하는 고려 말의 대학자인 牧隱 李穡의 15세손으로 대대로 학문을 이어왔다. 고조부인 이홍조는 서애 류성룡의 외손자이다. 대산 자신은 葛菴 李玄逸의 외증손이며 密菴 李栽의 외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5세에 글자를 익히고 7세에『十九史』를 익혔다고 한다.
14세 때부터 외조부인 밀암에게 글을 배우면서 그의 학문은 크게 성장하였다. 25세 때 3월에 생원시, 4월에 진사복시를 거쳐 윤4월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3월에 權知承文院副正字에 보하여 벼슬길이 시작되었으나, 그 벼슬길은 별반 순조롭지 못하였다.
4월에 假注書로 근무하다가 수 일 만에 그만두고 귀향했다. 7월에 連原察訪을 임명받아 부임하였으나 역시 수개월 만에 그만두고 돌아왔다. 31세에 徽陵別檢, 32세에 승문원정자, 37세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병조좌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오래 근무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 예조정랑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43세에 연일현감에 임명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나 정부에서 금하는 소금을 제조하여 고을의 재정을 충당했다는 이유로 告身을 삭탈 당하였다. 52세에 사헌부감찰이 되고, 66세에 영조가 승하하며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南人을 등용하려할 때, 이상정의 명망을 듣고 ‘이상정은 어떤 인물인가?’ 물으니 도승지 鄭昌聖이 대답하기를 ‘그 사람됨이 깨끗하고 우아하여 영남에서 첫째가는 사람입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문답이 있은 후 영상과 좌상이 함께 천거하여 특히 67세에 사간원 정언, 70세에 병조좌랑, 병조참지, 예조참의가 되며, 71세에 형조참의가 되나 6월 사직상소와 함께「九條疏」에서 임금의 덕을 논하며, ①立志 ②明理 ③居敬 ④體天 ⑤納諫 ⑥興學 ⑦用人 ⑧愛民 ⑨尙儉 등으로 논하고 결론에서 ‘九條는 모두 修德, 養心하는 요령이며, 정치하고 행하는 근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벼슬길은 화려하지 못하였으나 반면 학문분야에 있어서의 저술활동과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 분야에서는 업적이 대단하였다. 대산이 27세 때, 문중에서 大山書堂을 지어 대산으로 하여금 후진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대산은 이 서당에서 후진을 가르치는 한편 많은 저술들을 남겼는데, 그의「연보」에 실린 雜著를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29세 科擧私議, 晩修錄
30세 率性之謂道說
31세 退陶書節要, 心動靜圖, 中庸首章玉山講義圖, 制養錄
34세 一性具四德說, 理氣動靜說, 理氣前後說, 理氣彙編
35세 敬齋箴集說
39세 四禮常變通攷, 約中篇
40세 四端七情說
45세 心無出入說
48세 屛銘發揮
49세 朱子語節要
50세 中庸不睹不聞說
56세 溪門諸子錄
60세 心經講錄刊補
65세 延平問答錄과 溓溪全書를 엮음
이상의「연보」에 기술되어 있는 저술에 한한 것이다.『대산선생문집』의 본집이 52권 27책, 속집이 4권 2책, 총 56권 29책의 방대한 저술이다. 그는 저술 외에 후진 양성이 일생의 사업이었다. 후진양성의 본거지가 대산서당이었으나 대산서당에서의 교육은 따로 둘 필요가 없고, 대산서당 이외의 장소에서 講席을 펴 후진을 계도한 것을 「연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35세 6월 龜潭에서『朱子書』를 강의
37세 4월 陀陽書堂에서『論語』를 강의
41세 9월 龜潭에서『論語』를 강의
42세 8월 泗濱書院에서『近思錄』을 강의
48세 11월 玉蓮寺에서『心經』을 강의
49세 10월 孤雲寺에서『大學』과『혹문』,『논어』를 강의
50세 11월 고운사에서『심경』을 강의
51세 10월 고운사에서『중용혹문』을 강의
55세 윤2월 虎溪書院에서『대학』을 강의
61세 7월 魯林書院에서『태극도설』을 강의
62세 4월 高山에서『대학』을 강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산의 일생은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으로 일관했다. 이 급문록에 의하면 273명의 제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따랐다는 것은 그의 깊은 학문과 높은 인품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1781(정조 5)년 71세가 되던 해 10월 병석에 들어 12월 9일 조용히 운명하였다. 그 이듬해 3월 28일에 안동부 북쪽 鶴駕山에 묻혔다.
2) 學問活動
대산 이상정은 퇴계학파의 학맥을 계승한 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학파적 한계에 머물지 않고 당대 성리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여 새로운 정론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시도의 방법으로 通看의 인식방법을 부각시켜 퇴계학파의 理氣二元의 극단화와 율곡학파의 渾淪的 측면에 편중되는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理氣의 先後에 대해 실제적인 현상에서는 理와 氣는 先後가 있을 수 없지만, 논리적 인식에서는 理先氣後⋅氣先理後의 측면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이해한다. 理氣의 動靜에 대해 理의 動靜은 氣의 실제적인 운동을 주재한다는 의미로 理發과 氣發의 개념을 규정하였다.
四端과 七情의 이해에 있어서는 사람의 감정이 발출하는 작용의 형식은 ‘性發爲情’이며, 이러한 혼륜적 관점에서 칠정은 모든 감정의 총칭이며 사단은 그 속에 포함된 善一邊일 뿐이라 한다. 또한 감정이 발출하는 구조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사단은 理가 발하고 氣가 따르는 것으로 도덕적 감정이며, 칠정은 氣가 발하고 理가 타고 있는 것으로 일반적 감정이다.
이러한 분개의 관점에서 사단이 혹 惡으로 흐르고 칠정이 節度에 맞아 善이라 하더라도 그 苗脈은 원천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산은 성리설에 있어 개방적 인식과 포괄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개인 또는 학파 간에 각각 상반된 성리설을 주장하여 서로 일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관점의 편향성에서 생겨나는 문제라고 이해하였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 종합하여 인식하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의 다양성과 인식의 개방성은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공정한 자세를 가지고 한 학문 자세에 근원하고 있다. 이는 18세기라는 역사적 흐름의 외적 자극과 당대의 학문풍토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새로운 전망을 항해 나아가려 노력한 내적 자각을 통해 얻어진 값진 결과라 이해된다.
3. 高山及門錄의 分析
급문록에 기재된 이들은 모두 대산이 평생 동안 가르친 제자들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의 구성원들이며, 문인 각자의 성향과 이들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면 당시 영남 유림사회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나, 본 연구에서는 문인록의 기초 자료를 분석하여 대산과 교유한 문인들의 성격을 밝히는데 그치고자 한다.
「高山及門錄」에 기재된 내용은 ① 성명, ② 자, ③ 호, ④ 본관, ⑤ 친적관계, ⑥ 거주지, ⑦ 생년, ⑧ 과거, ⑨ 사승관계, ⑩ 문집유무, ⑪ 저술관계, ⑫ 만사와 제문 등이 기본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기재된 내용 중 분석에 의미가 없는 자와 호를 제외 한 ① 거주지별 분포, ② 성씨별 문인 분석, ③ 과거합격자 수와 관직, ④ 사승관계 등을 분석하여 문인들의 성격을 밝히고자 한다.
1) 居住地別 門人分布
여기에서는 주로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이상정의 문하로 모여들었는가 하는 점을 분석해 보았다. 이는 이상정의 지역적 영향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본다.
〈표1〉거주지별 문인분포
| 거주지 | 문인수 | 지역수 | 문인수(%) | |
| 각 도별 | 세부지역별 | |||
| 경상남도 | 거창, 고성, 김해, 밀양, 산청, 진주, 창녕, 함안, 합천 | 18 | 9 | 6.6 |
| 경상북도 | 경주, 고령, 구미, 김천, 봉화, 상주, 선산, 성주, 순흥, 영양, 영주, 영천, 영해, 예천, 의성, 청도, 청송, 칠곡, 풍기, 흥해 | 92 | 20 | 33.7 |
| 안동 | 56 | 1 | 20.51 | |
| 대구 | - | 1 | 1 | 0.37 |
| 서울 | - | 2 | 1 | 0.73 |
| 충청남도 | 청양 | 1 | 1 | 0.36 |
| 평안남도 | 성천 | 3 | 1 | 1.10 |
| 기재안된 것 | 100 | - | 36.63 | |
| 계 | 273 | 34 | 100.00 | |
거주지별 문인 분포를 살펴보면, 273명 중 거주지가 확인된 173명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향리인 안동지역의 문인들(56명)의 숫자가 압도적이며, 다음으로 봉화⋅선산⋅순흥⋅영양⋅예천⋅의성⋅청송 등 안동과 가까운 영남의 기타 지역의 문인들(92명)이 많았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학파가 지역 중심으로 형성된 현상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전주류씨는 안동의 수곡⋅박곡⋅대평⋅삼산 등에 모여 있고, 의성김씨는 안동의 금계⋅천전⋅임하⋅지례⋅봉화 해저 등에 집중되어 있다. 진성이씨는 예안 하계, 안동권씨는 봉화 유곡, 한산이씨는 안동 소호, 고성이씨는 안동 법흥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음으로 많은 지역이 영남 남부 지역인 밀양⋅산청⋅진주⋅창녕⋅함양⋅합천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남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평안남도 지방(3명)의 문인들이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소수이지만 서울과 충청남북도에서도 이상정의 문인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姓氏別 門人分布
성씨별 문인분포에서는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4명을 제외한 269명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본관이 확인된 성씨는 65개 성씨로 성씨별 문인수는 평균 4명 정도이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인의 대부분은 소수의 성씨에 속해 있다.
하단의 68개 성씨에 속하는 문인(문인수 1~2명)은 모두 38명인데, 성씨별 평균은 2명 정도인데 비하여 상위 16개 성씨에 속하는 문인(문인수 5명 이상)은 모두 173명으로 성씨별 평균은 14명이나 된다. 이 같은 성씨별 분포 양상은 당시 안동일대 유림의 분포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상위에 있는 의성김씨⋅안동권씨⋅진성이씨⋅한산이씨 등의 문인들이 많은 것은 이들이 결혼을 통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표2〉성씨별 문인분포
| 문인수 | 성씨별 | 성씨수 | 문인수 소계 |
| 38명 | 의성(김) | 1 | 38 |
| 36명 | 한산(이) | 1 | 36 |
| 31명 | 안동(권) | 1 | 32 |
| 13명 | 진성(이) | 1 | 13 |
| 9명 | 월성(최)⋅전주(류)⋅안동(김) | 3 | 27 |
| 6명 | 달성(서)⋅아주(신) | 3 | 12 |
| 5명 | 밀양(손)⋅벽진(이)⋅옥산(장)⋅ | 3 | 15 |
| 4명 | 고성(이)⋅광산(김)⋅성산(여)⋅여주(이)⋅영양(남)⋅장수(황)⋅한양(조) | 7 | 28 |
| 3명 | 선산(김)⋅야성(송)⋅영천(이)⋅창녕(성)⋅풍산(김)⋅풍산(류) | 6 | 18 |
| 2명 | 거창(신)⋅곡강(배)⋅광주(노)⋅김해(김)⋅선성(이)⋅의령(남)⋅재령(이)⋅전의(이)⋅창원(황)⋅함안(조)⋅ | 10 | 20 |
| 1명 | 열거 생략 | 30 | 30 |
| 본관이 기재되지 않은 것 | - | 4 | |
| 계 | 65 | 273 | |
여기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은 후일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문인수가 상위권 성씨에 속한 문인들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인록에 가장 많이 등재된 성씨는 의성김씨로 모두 38명에 달한다. 그 다음이 이상정의 후손들인 한산이씨(36명)로 이들의 세거지는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입향조 때부터 혈연관계를 맺어 두 집안에서는 서로 간에 사승관계를 맺어 온 것으로 보인다.
전주류씨는 모두 입향조인 柳城의 후손이며, 의성김씨는 金璡의 후손(천전과 금계)과 金宇宏의 후손(봉화 해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동권씨는 權橃의 후손(봉화 유곡)이 많고, 한산이씨는 안동 입향조인 李弘祚의 후손(일직 소호)이며, 진성이씨는 이황의 후손(예안 하계)들이다. 고성이씨는 안동 입향조인 李增의 후손(법흥)들이다. 문인들의 혈족관계는 아래와 같다.
| 부자관계 | 형제관계 |
| 權褧 - 權覲 金光翰 - 金堡 金굉 - 金墩 金宗德 - 金慶進 金宗臣 - 金堂進 金中柱 - 金虎燦 柳道源 - 柳範休 - 柳洛休 - 柳玄休 柳星休 - 柳晦文 柳長源 - 柳川休 徐昌鏡 - 徐弘胤 李象靖 - 李垸 申體仁 - 申鼎辰 呂仁復 - 呂思近 李師靖 - 李墺 李윤 - 李永老 李述靖 - 李헌 李壔 - 李永萬 李우 - 李秉鐸 李宗洙 - 李宇綱 - 李彛綱 - 李敬綱 李宗靖 - 李埉 李宅靖 - 李운 李學靖 - 李坰 李顯靖 - 李堒 崔周鎭 - 崔湜 權褧 - 權기 - 權襄 | 金光裕 - 金光洛 金圭 - 金瑄 金夢華 - 金夢彩 金宗德 - 金宗發 - 金宗燮 - 金宗敬 金宇光 - 金學光 金顯運 - 金斗運 金學光 - 金宇光 金熙紹 - 金熙洛 盧思敏 - 盧思程 柳道源 - 柳長源 柳範休 - 柳洛休 - 柳玄休 柳星休 - 柳龜休 徐昌載 - 徐昌鏡 呂思近 - 呂思直 徐命綱 - 徐命悅 孫有魯 - 孫秉魯 申鼎沃 - 申鼎五 李堒 - 李경 李夢靖 - 李學靖 - 李基靖 李永芝 - 李永苾 李宗洙 - 李宗學 李墺 - 李익 李顯靖 - 李師靖 - 李宅靖 - 李述靖 李義培 - 李學培 崔周鎭 - 崔尙鎭 |
먼저 전주류씨에서는 부자관계인 柳道源, 柳範休, 柳洛休, 柳玄休가 있으며, 진성이씨에는 李宗洙, 李宇綱, 李彛綱, 李敬綱가 있다. 형제관계에는 전주류씨의 柳範休, 柳洛休, 柳玄休가 있으며 안동권씨의 權褧, 權기, 權襄 등이, 안동김씨의 金宗德, 金宗發, 金宗燮, 金宗敬이, 한산이씨의 李夢靖, 李學靖, 李基靖과 李顯靖, 李師靖, 李宅靖, 李述靖이 있다.
상위권 성씨를 살펴보면, 전주류씨는 의성김씨와 200년 이상 지속된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고, 하계의 진성이씨, 해저의 의성김씨, 소호의 한산이씨 등과도 혈연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같은 성씨의 문인들 중에는 부자⋅형제⋅숙질 등 혈연관계가 밀접한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이 이상정의 문인들 중에는 형제가 함께 문인인 경우가 약 20명 내외가 되며 부자가 함께 문인인 경우도 22명이 있다. 그밖에 숙질이나 종질⋅종형제 관계인 문인들도 상당수 많았다. 또한 재종이나 친인척까지 고려한다면 이상정의 문인들은 거의 지연이나 혈연 등으로 이중⋅삼중 관계가 있는 사회 집단을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3) 科擧 合格者 數와 官職
조선 시대는 과거의 합격 여부가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이상정 자신도 25세 때 3월에 생원시, 4월에 진사복시를 거쳐 윤4월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으로는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원 정언, 병조좌랑, 병조참지, 예조참의가 되며, 71세에 형조참의가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문인들 중 사마 및 문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3〉과거합격자 수
| 구분 | 합격자수 | 비고 |
| 사마 | 45 | |
| 문과 | 7 | 양시합격자 6명 |
| 계 | 52 |
문인록의 기사를 보면 소과와 대과를 구분하지 않고 사마, 생원, 진사 문과로만 표기하였다.
과거 합격자 수는 사마시 합격자가 45명, 문과 합격자가 7명으로 전체는 52명으로 문인 전체에서 19%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 학문과 벼슬이 높은 이상정를 구심점으로 하여 문과나 사마에 합격한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18세기 중엽 영남 유림의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모두 합격한 문인은 이현정, 이완, 김종덕, 김희주, 김희락, 이사정이다. 문인들 중에서 관직을 받은 사람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4〉문인들의 관직
| 성명 | 본관 | 세거지 | 과거 | 관직 |
| 權炳 | 안동 | 안동금계 | 문과 | 正字 |
| 權昌植 | 안동 | 안동 | 贈童蒙敎官 | |
| 金夢華 | 선산 | 선산 | 漢城佐尹 | |
| 金宗九 | 안동 | 의성사촌 | 문과 | 典籍 |
| 金宗發 | 안동 | 문과 | 掌令 | |
| 金熙洛 | 의성 | 문과 | 正言 | |
| 柳道源 | 전주 | 수곡 | 사마 | 明陵參奉, 監役, 僉知中樞府使 |
| 柳範休 | 전주 | 수곡 | 사마 | 參奉, 府使 |
| 柳星休 | 전주 | 수곡 | 진사 | 贈吏議 |
| 朴胤沃 | 구산 | 贈參議 | ||
| 徐命綱 | 달성 | 안동 | 贈同樞 | |
| 李景溟 | 한산 | 서울 | 문과 | 承旨 |
| 李秉運 | 한산 | 參奉, 縣監 | ||
| 李秉遠 | 한산 | 縣監 | ||
| 李垸 | 한산 | 생원,문과 | 校理 | |
| 李우 | 한산 | 懿陵參奉 | ||
| 李義培 | 영천 | 영천 | 參奉 | |
| 李周禎 | 고성 | 법흥 | 문과 | 持平 |
| 李憲愚 | 여주 | 蔭都事 | ||
| 洪宅夏 | 부림 | 의흥 | 敦寧府都正 |
관직은 문인록 기사에 있는 그대로 분석한 것이다. 정상적인 과거를 통해서 품직을 받은 문인은 사마 3명, 문과 7명이다. 이를 다시 세분해서 보면, 사마시에 합격하고 관직을 받은 문인은 류도원(명릉참봉⋅감역⋅첨지중추부사)과 류범휴(참봉⋅부사)이다.
문과에 합격하고 관직을 받은 문인은 권병(정자), 김종구(전적), 김종발(장령), 김희락(정언), 이경명(승지), 이주정(지평) 등이다. 기타 증직된 문인은 류성휴, 박윤옥, 서명강 등이었다. 이상정의 아들인 이완은 생원과 문과에 합격하고 교리를 지냈다.
4) 師承關係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사제관계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사승관계는 이상정과의 학문적 관계를 유지하였나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지금까지 편찬된 모든 문인록이나 사우록, 급문록을 보면 학문적 관계를 기술하는데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사용한 용어들의 의미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이 문제인데,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된 것은 전통사회에서 학문적 교류라는 것이 지금과 같이 전문성을 위주로 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인격적 만남을 중요시 한데 따른 결과인 것이다. 거기다가 문인록 편찬자들이 문인의 개념을 너무 포괄적으로 잡은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이 분석에서는 문인록에 기재된 그대로 사승관계를 파악하였다.
〈표5〉사승관계
| 사제관계 | 문인수 | 비율 |
| 수업⋅수학⋅유문⋅등문⋅입문⋅취문⋅지견⋅종학⋅사사⋅지배⋅지알⋅집지⋅청교⋅청업⋅청학⋅품학 | 107 | 39.2 |
| 배알⋅왕래⋅출입⋅논변⋅질의⋅강질⋅서질⋅배문⋅예알 | 33 | 12.1 |
| 형태를 기록하지 않은 경우 | 133 | 48.7 |
| 합계 | 273 | 100 |
위와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문인록에 등재된 인물들을 분류하면 표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와 같은 구분은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사제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목이나 문집, 언행록, 만시 등을 파악하여 정확성을 기해야 하나 여기에서는 문인록에 기재된 그대로 분석해 보았다.
이상정과 관계가 언급되지 않은 사람이 133명으로 48.7%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배알이나 왕래 등 사제간이라가 보다 교유관계에 있었던 사람이 33명으로 12.1%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던 문인은 107명으로 39.2%를 차지하고 있다.
문인록의 기사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문인으로 볼 수 있다. 문인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또 다른 척도는 문인들이 쓴 글이다. 문인록에는 만사와 제문, 뇌문 등이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간혹 제문이나 輓詩의 내용은 생략하고 수록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도 있다.
만사⋅제문⋅뢰문⋅묘지⋅찬갈⋅행장 등은 각각 그 성격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으나, 그 유무는 어느 정도 사제관계를 파악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문인들이 수록한 글을 파악해 보면, 총 238명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제문이 126명으로 제일 많으며 書札이 58명, 輓詩가 46명 등이다.
이들 글들은 모두 고인의 학덕을 기리고 서거를 슬퍼하는 것들이다. 문인들이 쓴 제문은 피차의 관계를 확인하는 사회적인 중요성도 있겠으나 원래 미사여구로 시종하고 대동소이하여 그 분량에 비해서 사료로 쓸 내용이 적음은 유감이라 하겠다.
이상정의 문인들 가운데 뛰어난 인물로는 權明佑⋅金宗德⋅金顯運⋅柳謙祚⋅柳泰春 등을 꼽을 수 있다. 권명우는 屛谷 權榘의 장손인 柱의 9대 주손이다. 천사 김종덕은『聖學正路』,『草廬問答』,『孔門一統』,『管窺錄』의 저술을 남겼다. 김현운은 金涌의 7대 冑孫으로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류겸조는 柳後章의 玄孫이며, 류태춘은 겸암 류운룡의 7대손이다. 문집을 남긴 문인이 112명이며, 한국국학진흥원의 「퇴계학맥도(컴퓨터파일)」을 참고하여 학맥을 분석해 본 결과 퇴계 학맥의 문인이 32명이었다.
5. 맺음말
지금까지 많은 문인록이 편찬되었으나 이상정의 문인록의 수록 문인수는 273명으로 확인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문인록에 기재된 내용 중 분석에 의미가 없는 자와 호를 제외한 거주지별 문인분포, 성씨별 문인분포, 과거합격자 수와 관직, 사승관계 등을 살펴보고 문인들의 성격을 밝혀보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주지별 문인분포 분석에서는 273명 중 거주지가 확인된 173명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향리인 안동과 예안 지역의 문인
들(56명)의 숫자가 압도적이며, 다음으로 경주⋅고령⋅구미⋅봉화⋅상주⋅선산⋅청송 등 안동과 가까운 영남의 기타 지역의 문인들(92명)이
많았다.
다음으로 많은 지역이 영남 남부 지역인 거창⋅고성⋅진주⋅창녕⋅함안⋅합천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남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수이지만 대구⋅서울도⋅충청남도⋅평안남도 등에도 문인들
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성씨별로 보면 문인들은 65개 성씨로 분산되어 있으며 문인 중 173명은 13개 성씨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안동 일대의 명
문가이며, 부자나 형제⋅숙질⋅종형제 등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셋째, 과거급제와 관직을 살펴보면, 사마시 합격자가 45명, 문과 합격자가 7명으로 전체는 52명으로 파악되었다. 실제로 관직을 받은 사람
은 사마 3명, 문과 7명이다. 이를 다시 세분해서 보면, 사마시에 합격하고 품직을 받은 문인이 2명, 문과에 합격하고 품직을 받은 문인
이 6명이었다.
넷째, 사승관계를 보면, 이상정과 관계가 언급되지 않은 사람이 133명으로 48.7%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배알이나 왕래 등 사제간이라가
보다 교유관계에 있었던 사람이 33명으로 12.1%를 차지하고 있다. 기타 만사나 제문을 수록한 사람이 238명을 차지하고 있어 문인
록의 기사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문인으로 볼 수 있었다.
이상정의 문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퇴계 학맥을 계승한 문인들의 성격을 알 수 있었음은 물론, 안동 일대의 영남 유림을 조명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함.
[출처] 大山 李象靖의 門人錄 小考 / 윤동원|작성자 시간을 건너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