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나루 터
9호선 노들역 2번출구 노량진배수지공원 내 위치한 남부수도사업소건물 옆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표석문구
이곳 한강 가는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던 나루터
표석설명
도성과 시흥, 수원 방면 사이의 간선도로를 이어주던 나루
현재 동작구 노량진동의 강변에 있었던 도선장(渡船場)으로 일명 노들나루, 노량도(露梁渡), 노량진(鷺梁津), 노도진(露渡津), 노도(露渡)라고도 불리었다. 본래 나루는 강 북쪽인 현재의 서부이촌동 강변에도 있었으니, 이 나루는 도성과 시흥 · 수원 방면 사이의 간선도로를 이어 주는 길목이다. 고려 이전부터 행인들의 왕래가 많았다고 보이는데 조선초기에 이르러 정부에서 이를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즉 처음에는 개인소유의 나룻배가 10척이 있어서 돈을 받고 행인을 건네주었다. 태종 14년(1414) 광진과 더불어 이곳의 관리자로서 별감을 처음으로 파견하였고 아울러 관선 15척을 비치하여 진(津)에 소속된 진부(津夫)들로 하여금 배삯을 받지않고 건네주도록 하였다[《태종실록》 권28 태종 14년 9월 임신조(壬申條)]. 정부에서 진도를 관리하게 된 것은 행인들의 도강을 편하게 하기 위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 길목을 지키고 수상한 자의 내왕을 기찰하고자 한 데도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별감과 진부들이 기찰을 빙자하여 행인을 불편하게 하니, 사람들은 배삯을 내고서라도 사선(私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승(渡丞)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여타의 나루와 같이 군영(軍營)에서 관리하면서 별장이 책임자로 파견되었다. 소관은 금위영(禁衛營) 소관이었다. 노들나루 남쪽 언덕에는 노량원(露梁院)이란 여관이 있어서 도성을 오가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쉬어 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루 북쪽 강변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새남터라고 하니 일찍부터 사형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는 나루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처형 과정을 보임으로써 경계심을 갖도록 한 조처였다. 일찍이 세조 즉위에 반대한 사육신이 여기에서 처형되었고 근세에는 많은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얽힌 이야기
태종, 노량진 나루터에서 풍류를 즐기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임진(1412,영락 10) 9월18일 (경자) 기사 환궁하다
환궁(還宮)하였다. 부평(富平) 들에서 사냥하고 돌아와 노량진 나루터[露渡]에 이르러 누선(樓船)에 같이 타니, 경기 관찰사 권완(權緩)이 술을 올리고 풍악을 울려 줄거움을 극진히 하였다. 임금이 조영무(趙英茂)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위무(威武)로서도 굴복시킬 수 없고, 빈천(貧賤)으로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하였는데, 달래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위엄으로도 굴복시키지 못할 자는 오직 경(卿)뿐이오,”밤을 틈타서 상왕의 이어소(移御所)에 이르러 봉사(奉辭)하고 환궁하였다.
참고문헌
1. 서울六百年史 http://seoul600.seoul.go.kr/ "노량진" 문화사적/ 진도 06
2.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노량진"
(문화원형백과 서울 문화재)
노들나루공원
노들나루공원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노들나루공원은 노량진 배수지공원이라 불리다가 지금은 노들나루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근린공원이다. 바닥분수와 야외무대, 여러 가지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푸른 잔디와 함께 장미꽃 광장도 조성되어 있고, 여러 개의 산책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6.25 전쟁 초기, 서울이 함락된 직후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6일간이나 저지시킨 한강 방어선 전투의 전사자 명비를 볼 수 있다. 공원과 붙어 있는 풋살장, 족구장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예약 후, 사용할 수 있다. 여의도 불꽃축제 기간에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지하철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와 연결되어 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영산홍(映山紅)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관목.내용
학명은 Rhododendron indicum SWEET. 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식물이며 키가 30∼90㎝ 가량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가지 끝에 모여나는데, 넓은 피침(披針 : 곪은 데를 째는 침)꼴이며 잎가는 민틋하고 가지와 함께 갈색털이 난다. 꽃은 5월경에 붉은 자색으로 피고 통꽃이며, 꽃부리와 꽃받침은 5갈래이다. 꽃부리의 윗면은 진한 홍자색의 반점이 있고 수술이 5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 :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각 칸에 많은 씨가 든 열매)이고 많은 갈색털이 난다. 원예종에는 붉은색·흰색·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이 있다. 우리 나라 남부에서 오래 전부터 재배하고 있는 영산홍이라 하는 철쭉의 일종은 키가 일본산 것보다 월등히 크고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술의 수도 7∼10개로 나타나고 있어 일본산 영산홍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본산 영산홍과 우리나라산 산철쭉 사이에 이루어진 자연잡종인가 하는 등의 의문점이 생기는 식물이다. 우리 나라산 영산홍은 남부 지방의 오래된 사찰경내는 물론이고 민가 뜰에 심어 관상하고 있다. 꽃이 붉은 것은 영산홍, 자색인 것은 자산홍, 흰 것은 백영산이라 부르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04-2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