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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Another Level의 조건, 온유와 절제!
본문 : 신명기 32장 52절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저 땅을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새번역>
여러분은 성경 인물 중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애매한 일을 당해서 원통하고 답답한 사람 중에 최고는 누구일까요? 요셉도 있고, 당연히 예수님도 있고, 구레네 사람 시몬도 있겠지만, 저는 단연코 ‘모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출애굽 시켰건만 정작 자신은 그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딱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가나안행이 거절되었을 때의 상실감과 원통함은 정말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세였다면 오늘 나누었던 본문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아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니 불가능한 것을 뛰어 넘어 진심으로 하나님께 화를 내거나 따졌을지도 모릅니다. 그토록 많은 잘못을 한 이스라엘 백성 중 광야 1세대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었지만, 자신마저 들어갈 수 없다니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다음 신명기 33장 1절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음과 같이 복을 빌어 주었다. <신명기 33장 1절, 새번역>
모세는 벌써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모세는 그런 하나님의 결정에 조금도 원망했다는 글이 등장하지도 않았고, 바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어주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장 3절, 개역개정>
다른 번역에서는 이 온유함을 ‘겸손함’으로 번역하고 있으니 모세는 하나님의 거절 역시 겸손하게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품, 그것을 ‘온유’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설사 그것이 죽음이고, 거절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 할 수 있는 겸손함을 소유했던 인물이 바로 모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온유함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에서 로마 백부장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에 버금가는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평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런 평가에 대해서 욕심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온유만큼은 닮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대 ‘온유’는 정말 쓸데없는 성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필요한지는 알지만 ‘겸손’하는 순간 ‘호구’가 되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온유하고, 겸손한 순간, 약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 때문에 쉬운 사람이 될까봐 걱정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이 온유라는 단어에 마음이 가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억울해 보이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호구’로 살다가 삶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제가 다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절대 그 길을 걸어가지 않겠노라고 자꾸 다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하나님의 말씀’도 보류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믿는 존재는 나인 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자기합리화에 빠져 온유를 발로 차 버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왜 온유를 그토록 싫어할까? 저는 40살의 모세에게서 그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바로, ‘절제’가 없었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 모세가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왕궁 바깥으로 나가 동족에게로 갔다가,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그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여서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출애굽기 2장 11~12절, 새번역>
모세 역시 그 당시에는 온유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삶을 절제하지 못했고, 살인을 저지른 후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40년이 넘도록 소유하지 못했던 절제를 배우기 위한, 또 다른 40년의 광야 생활에 돌입하게 됩니다. 40년입니다. 절제를 배우고, 온유의 성품을 소유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온유해지고 싶어서 온유해진 것이 아니라 절제의 삶을 살아가다보니 그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약 온유해질 수 있다면, 40년의 절제를 배우시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절제를 배우지 않고, 온유해지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기쁨도, 화평도, 인내도, 친절도, 선함도, 신실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성품으로 삼아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온유를 위한 절제의 삶, 절제를 통한 온유의 삶은 너무도 힘이 들어 보입니다. 도무지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지금까지 쌓아온 7개의 공든 성품 탑만을 유지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요?
그 절제의 광야를 지나 온유를 소유하게 된 모세는 일생에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입으로 범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절 속에서도 자신을 컨트롤 할 줄 아는 ‘절제’의 능력 역시 가진 존재였던 것입니다. 온유함이 만들어낸 절제였고, 절제가 만들어낸 온유였습니다. 정말로 Another Level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말로 힘든 온유와 절제를 성품으로 소유해야만 그토록 우리가 원하는 성숙한 사람, 진짜 그리스도인, 예수를 닮은 Another Level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온유와 절제의 광야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요, 언제나 성숙을 바라기만 하는 그리스도인이요, 가끔 짝퉁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하고,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평생 숙제로만 남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거절을 말씀하셨을 때 오히려 모세는 기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나안 땅보다 더욱 더 원하던 진짜 하나님의 나라로 갈 기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축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모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현실 세계를 뛰어 넘어 진짜 하나님의 나라 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청이었던 것입니다. 120년, 그 눈물과 고통의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하나님 품에 안기어 쉴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기꺼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그토록 이해가지 않았던 말씀 한 구절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6절, 새번역>
이 말씀을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저는 모세가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 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상을 받은 순간이 왔을 때, 그 하나님의 거절은 억울함이 아니라 감사함이었고, 은혜였던 것입니다. 온유와 절제의 광야를 통과한 사람이 가진 ‘Another View’, 다른 시선이었고, ‘Another Thinking’, 다른 생각이었으며, 'Another Faith', 다른 믿음이었습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한 단계 더 높은 시선과 생각과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소위 ‘믿음’ 장에서 가장 많이 ‘믿음으로’ 라는 수식어를 가진 인물이 모세인 것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뛰어 넘어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닮아가겠다는 것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가장 중요한 관문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온유와 절제를 만나셔야 합니다. 피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지 않은 성품이기에 오히려 더욱 더 도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모세처럼 40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하게 그 40년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모세의 삶을 통해 배우며, 절제를 배우고, 온유를 체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40년을 4년으로 당기고, 4달로 당기어 조금 더 빠르게 ‘Another Level’의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오히려 욕심을 내셔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신앙에 욕심을 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함께 나눈, ‘온유와 절제’만은 반드시 욕심을 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후에 모세는 여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시작으로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신명기 34장 4절, 새번역>
확인 사살! 하나님은 한 번 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순간 모세가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참 장난꾸러기세요! 저는 본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땅을 전부 보았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모세는 죽습니다. 120세의 나이에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도 정정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120년을 위로하시며, 더 빨리 함께 하기 위하여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대한 마지막 평가입니다.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를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보내셔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을 하게 하셨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 없다. <신명기 34장 10~12절, 새번역>
실로 성경이 모세를 ‘Another Level’의 신앙인이었음을 명확하게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모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온유와 절제를 소유하셔야 합니다. 그 온유와 절제를 가지고 있는 자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겸손히 선포할 수 있을 것이며, 죄의 유혹이 넘치고, 욕심과 욕망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온유와 절제를 가진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다시금 부흥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Another Level의 그리스도인을 찾고 있으십니다.
이 시대는 Another Level의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Another Level의 그리스도인을 키워내는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거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욕심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어떤 말씀이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겸손을 보이는 온유를 소유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여 자꾸만 고개를 드는 나를,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조절할 절제를 소유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을 회복시킬 Another Level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온유와 절제를 성품으로 가진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바로 예수를 닮은 당신을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결단 찬양 - 본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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