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6. 6. 13:05
1262년(원종 3) ~1342년(충혜왕 3) /壽 81歲
문희공 우탁선생 영정 제작 봉안(정정재사,고려통일재전,역동서원,구계서원,희역당재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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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를 들고 대궐에 들어간 우탁
충렬왕이 승하하자, 원나라에 있다가 돌아와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빈전(殯殿)에 제사를 행하고, 그 부왕(父王)의 후비인 숙창원비(淑昌元妃)가 거처하는 그 친정으로 가서 숙창원비를 간음했다.
충선왕은 숙비의 교태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고, 팔관회(八關會)도 멈추게 했으며, 숙비는 왕의 총애를 믿고, 그 방자하고 사치함이 이를데 없어 벼슬아치들이 다투어 뇌물을 바쳐 그 환심을 사기에 급급한 판이었다.
왕의 불륜과 숙비의 방자함에 뜻있는 선비들이 모두 분격했고, 백성들도 못 마땅히 여겼으나, 그 무렵 조정에는 나약하고 아첨하는 무리가 가득하여, 감히 바로 간(諫)하는 신하가 없었다.
이에 우탁이 분연히 도끼를 가지고 거적자리를 메고 대궐에 나가 왕의 비행을 직간하는 과감한 소를 올렸다.
가까이 모신 신하가 그 상소를 펴들고 겁에 질려, 차마 임금 앞에서 읽지를 못하여, 우탁이 소리를 가다듬어, “그대는 근신(近臣)이 되어 임금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하고, 그 허물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대의 죄를 아는가.”라고 꾸짖으니, 신하들이 모두 떨고, 왕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