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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좋은 수필 스크랩 2017 상허 이태준 문학제, 평화문학기행
편집실 추천 0 조회 57 18.05.02 19: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7 상허 이태준 문학제, 평화문학기행

 

철원 종합 문화복지센터

2017. 11. 04

 

 

"철원은 문학의 성지."

맨 먼저 무대 위에 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

나로서는 뜬금없었다. '철원문학'이란 말 자체가 생소했다.

남녘 바다 출신인 나에게 북녘 땅 근처 철원은 다다르기엔 너무 먼 곳이었다. 그만큼 문학의 자리도 아득할 것이었다.

그가 나지막히 물었다.

"단풍잎들의 속삭임이 들려오나요?"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숨죽여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행사 주최측 시인의 개막인사였다. 평범한 그 말이 왜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걸까. 만추의 들판, 땅 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잔서리 우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성근 마음자리 속으로 귀에 익은 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작21의 이선유 시인. 이어서 강준모시인의 시와 김원희 시인의 시가 낭송되었다.

 

*아주 가벼운 안부

이선유

 

봉분 위에 바람이 불고 있다

이름 모를 깃털 하나 바람에 나폴거린다

한겨울 짧은 햇살이

잠시 머문 듯 스쳐간다

 

어쩌면 저 깃털은

산과 골을 박음질하며 출렁였던 노래

한때는 숲속의 정적을 깨우고

텅 빈 하늘에 오선지를 그리기도 했다

 

노래가 울음이 되는 일은 하늘의 일상

새의 울음은

봉분의 벽을 넘어 그녀에게 스몄을 것이다

삭아 내리는 뼛속 깊이 공명을 기웠을 것이다

 

한겨울 햇살 같은 희디흰 목숨들

지금은 어느 골짝에

깃털 한 가닥으로 흔들리고 있는지

 

어둠도 시간도 가두지 못하는 혈연이라는 봉분

깃털보다 가벼웠던 생의 흔적이

생전에 걸터앉았던 바위보다 무겁다

 

 

 

*마을 버스

 

강준모(창작21작가회)

 

 

버스는 노을을 싣고 달린다

앞문으로 고달픈 무릎이 오르고

옆문으로 지친 잔등이 내린다

 

표정없는 가방들이 쉼없이 오르내리고

버스는 수도승처럼 갔던 길을 되돌아온다

육중한 그림자는 끈질기게 따라온다

 

버스는 정거장마다 놓친 시간들을 마저 싣고

노을을 떨어뜨린다

오른쪽으로 틀면 왼쪽으로 쏠리는 생각

사는 일은 부지런히 오르고 내리는 일일까

 

귀가하는 영혼은 출렁이는 물살에 파닥거린다

 

버스는 목어처럼 속을 채웠다 비우며

낙엽지는 마을을 달린다

 

속을 다 비워야 곤히 잠들 수 있겠다

 

 

 

*운판

 

김원희(창작21작가회)

 

 

뭉게구름 한 조각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보다

그만 사랑에 빠졌나봐

 

더 이상 떠다닐 수 없게

철갑옷 무장하고

지상으로 출가한 목어와 나란히

 

허공 헤매는 고독한 영혼 위에

온몸으로 새벽을 깨우고 있나봐

 

여명에 비춰진 짙게 새긴 몸의 문신

옴마니반메훔

 

 

시청 문학제 담당 공무원은 오늘 문학제가 성황을 이룬 것에 한껏 고조된 모양이다.

"이태준 문학제가 날로 성장해가고 있다. 내년에는 큰행사장으로 옮겨서 1박 2일로 치를까 합니다."

 

그리고... 창작21 문창길 주간의 인사소개가 이어진다.

"창작21은 이 행사가 시작된 첫해부터 지금까지 14년 동안 계속 함께 해오고 있다. 나도 철원과 인연이 깊다. 철원문화잡지 창간 멤버다. 이태준 문학제가 더욱 발전된 문학축제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

 

통기타 동아리 'DMZ' 의 노래공연과 기타 연주도 이어졌다.

이들은 철원 지역에서 활동하는 통기타 동아리로서

남과 북이 함께 하는 노래를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남북 화해의 염원을 담은 시 '진눈깨비'를 노래로 만들어 연주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임철균소설가(창작21작가회).

이태준의 단편 <복덕방> 낭독에 앞서 '이태준 해설강의'를 해 주었다.

 

"소설 쓴지 20년이 되었다.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태준 선생의 소설을 필사하며 습작기를 보냈다." 그런만큼 해박한 지식으로 소설가는 '이태준 문학 해설 강의'를 하듯, 짧은 시간에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조명해주었다.

 

이태준의 작품 <3월>을 각색한 공연도 있었다.

마지막에 읊은 한 철원에 살고 있는 시, 한편은 큰 울림을 남겼다.

시, <목련꽃 피던 날>이다.

 

*목련꽃 피던 날

 

원숙자

 

 

가지 끝마다 장전한 총알이

하늘, 땅, 사방을 향해 겨누고 있더니

 

피융 피융~

탕 탕 탕 소리도 없었는데

마당 가득 반으로 갈라진 탄피가 수두룩하다

 

세상의 모든 총알이 너처럼 반으로 갈라져

하얀 꽃으로 피어난다면

남북으로 갈라놓은 철조망은 하얀 융단이 되어 줄 텐데...

 

오늘도 알아듣지 못하는 대남 방송 시끄럽다고

민통선 마현리 친구 한숨 짓는 소리에

하얀 꽃잎이 힘없이 떨어진다*

 

 

세상에나...

과연 철원의 시에서는 화약 냄새가 났다. 그것은 반목의 총구를 뚫고 나온 화약내음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총알이 너처럼 반으로 갈라져/ 하얀 꽃으로 피어난다면"이라고 한 시인의 염원이 결국엔 피어낼 꽃내음의 화약일 것이었다. 오늘 어느 시인이 읊었던 '상춧잎 같은 편지'처럼, 제 자리를 지킨 순한 땅심이 키워올린 막 따온 상추 아삭아삭한 향기를 내며 철원 땅은 남해바다의 물결처럼 내 안으로 순하게 스며들어 왔다.

 

점심 식사 후에는 지역행사인 김장김치 담그기에 함께 했다. 이어 이태준 기념비가 있는 장소로 이동하여 추모한 뒤 시낭송을 했다. 다음 경유지 노동당사와 고석정도 창작21이 이 아름다운 가을에 준 선물이었다.

 

2017.11.04.박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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