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음악: 가톨릭 성가 287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 ♬
제주에 온 지 6년 차
오늘 드디어 아내와 함께 차귀도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여주를 떠나 제주에 살게 된 것은,
제 아내가 김대건 신부님과 이 곳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사 오기 2년 전부터 여주에 살고 있지만, 아내의 마음은 항상 용수리에 있었습니다.
제주에 땅을 사서 집을 짓든지, 기존의 집을 사서 이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주에서의 생활이 정말 천국같은 생활이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길에서 많은 스트레스와 지쳤던 몸과 마음이
매일 수도원 미사봉헌하고, 밭에서 일하고
많은 수도회 수녀님과의 대화,
그리고 신심깊은 마을의 교우들
성경말씀 처럼 천국은 이미 와 있는데 미완성인 세상에서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주 도전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전원생활을 하러 간 많은 사람이 생각한 것과 달리
만족을 못하고 돌아오는 경향이 많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럼 당신이 먼저 세를 얻어 살아보고
정말 살 수 있을 것 같으면 이사를 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이사오기 2년 전 먼저 허름한 집을 얻어 수리하고
제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년에 반은 제주, 반은 여주에서 생활했습니다.
제주생활은 교우들과 친교를 나누고
마을에 대소사(장례, 결혼)에서 설겆이 등을 열심히 하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그 결과 좋은 평판이 나서, 마을 노인회장께서 땅을 소개해 주셨고
그 땅을 사서 지금 살고있는 집을 짓고 농사지을 밭도 조금 마련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내의 말을 듣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여주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겠지만, 아내는 불만스러운 생활을 했겠지요.
두 사람 모두 만족하는 삶이 된 것이
아내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아내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던가?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섭리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알아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 하고 순명하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매일 '네 십자가(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일들)를 지고 따르라 하시며'
'내 멍에는 가볍다'고 했나 봅니다.
제주 표착 재현 미사는
한 마디로 1일 피정이었습니다.
1. 고산 선착장 집결(기다리면서)
- '떠남'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
어린 나이에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어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고
편안했던 평범한 일상과 가족들, 조국을 뒤로하고 낯선 땅 마카오로 떠납니다.
또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명하며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을 위해 바다로 떠납니다.
2. 미션수행(선교사 영입, 해로개척)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님으로부터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당시 많은 어려움
즉 육로 입국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해로 입국을 선택.
열악한 항해 조건(조그만 라파엘호)으로 인해
침몰의 위험 속에서 키와 돛이 꺾이고 , 죽음의 한 가운데 놓입니다.
차귀도를 향해 가는 배 위에서
김대건 신부님과 동료 사제들,
그리고 동행했던 신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의 두려움과 설렘, 불안과 공포,
그럼에도 주님을 향한 믿음과 내적 평화 등
당시의 감정들을 느껴봅니다.
3. 차귀도 후미봉에서의 성찰
라파엘 호는 본래 강에서 운행하도록 마들어진 작은 배입니다.
그런데도 김대건 부제는 신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올랐습니다.
신자들은 한 명의 목수와 네 명의 어부,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여섯 명의 농부입니다.
폭풍우를 만나 사흘 밤 낮 동안 목숨을 건 항해를 하면서
김대건 부제는 확신에 찬 태도로 성모님의 상본을 들어 보이며
신자들을 안심시킵니다!
"여기에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상해에 도착할 것이고
우리 주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상해에 도착한 김대건 일행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페레올 주교는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감탄했으며,
이는 김대건 부제에게 사제 서품을주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들의 신앙은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주교를 만나 자신들의 재난을 잊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또 다시 상해에서 조선으로 출항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폭풍 속에서 키와 돛이 꺾이고 죽음의 위험 속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의 은총과 도움의 손길에 의탁한 그들은
마침내 제주에 도착합니다.
서해를 건너면서 만난 폭풍우에 돛과 키가 파손되어
여러 번 죽음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두려움 속에 떨고 있는 교우들과
믿음으로 의연한 김대건 신부의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당시 폭풍 속 상황과
김대건 신부의 표정과 몸짓, 마음가짐을 떠올려 봅니다.
믿음의 눈으로 묵상해 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4. 차귀도 정상에서(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림)
예수님의 삶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음에도
산 위에서 혼자 외딴 곳에서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일행도 폭풍 속에서 표류하다가
어렵게 표착한 섬 일대를 관찰하다가
차귀도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도를 발견하고는
주님의 큰 은총과 이끄심의 섭리 앞에
감사와 찬미, 영광을 드렸을 것입니다.
페레올 주교는 자신의 서한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그러나 우리 생각을 잘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섭리가 우리를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로 바로 갔더라면 아마 붙잡혔을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이 나라 남쪽에 영국 배 한 척이 나타나자 조정은 공포에 싸여 있었고,
서울 주변을 감시하고 강에 들어오는 모든 배를 아주 세밀하고 엄하게 조사했습니다.
우리 배가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 배가 떠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배의 식량은 보통과 달리 장만하는 것을 그들이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배가 타국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도착하면 천 만 가지 말썽이 일어났을 것인데,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면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폭풍과 위기도 있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로 인해
좋은 결과를 체험했던 순간을 기억해 봅니다.
내가 이사와 살고있는 용수리 앞바다와 마을을 바라보며...
그리고 내 마음과 정신과 몸과 영을 다하여
가장 진실되고 정성스럽게
주님 십자가에 경배드리며 잠시 머물러 봅니다.
5. 갯바위에서 재현미사를 준비하면서
어전 회의에서 군문효수 판결이 내려진 1846년 9월 15일 바로 다음 날,
김대건 신부는 한강 새남터로 끌려 나와
곧 자신에게 닥칠 고난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군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당시의 관례에 따라
두 귀에 화살을 꽂고 얼굴에 회칠을 합니다.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는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면 칼로 치기가 좋겠느냐?" 하며
자세를 고쳐 잡아 줍니다.
둥둥둥..... 울려 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열 두 망나니들이
칼을 휘두르며 그를 에워싸고 춤추며 돌아갑니다.
이윽고 내리치는 칼날에 여덟 번.
그러나 그들이 수십 번, 수백 번 칼질을 한다 해도,
결코 하늘과 땅의 질긴 인연을 잘라 낼 수 없습니다.
하얀 모래밭을 피로 물들이며 처참하게 목이 잘린 그는
스물 여섯, 젊은 조선의 사제였습니다.
중국 땅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고국 땅에서의 첫 미사는
중죄인을 유배보내는 버림받은 땅,
제주의 갯바위 위에서입니다.
공교롭게도 제주에 표착한 바로 그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조선의 첫 사제요, 새 사제로서
고국에서의 첫 주일을 맞으며 봉헌하는 첫 미사는
'감사'이고 '봉헌'일 것입니다.
6. 새 하늘, 새 땅(갯바위에서 출발하기 전)
김대건 신부님이 남긴 역사적 자료로
스승 신부와 장상에게 쓴 서한들과 <조선 전도>등이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한국 교회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귀감,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며 우리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이 땅의 교회와 이웃을 위해 스스로 번제물이 되어
이렇게 200년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그가 흘린 피와 열정은
우리의 무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그가 바친 순교의 삶은
우리 영혼에 불을 밝여 줍니다.
7. 감옥에서 작성한 회유문(유언)
"교우님들, 보시오.
우리 벗님들! 생각하고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 한 처음에 천지 만물을 제자리에 놓으시고,
그 가운데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만드시어
세상에 내놓으신 창조주와 그 뜻을 생각해 봅시다.
온갖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습니다.
이같이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우리를 내신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태어난 보람이 없고, 살아 있더라도 쓸데없을 것입니다.
비록 주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주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을지라도,
이름은 또한 귀하지만 내용이 없으면
그 이름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나 입교한 보람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배반하고 그 은혜를 거스르는 일이 되는 것이니,
주님 은혜만 받고 주님께 죄를 짓는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중략>
비록 여러분이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으며 돌보고 불쌍히 여기면서,
주님께서 가련히 여기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중략>
내 죽는 것이 여러분의 육정과 영혼의 대사에 큰 영향이 미치겠지만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상으로 보내주실 것이니,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서 다시 만나
길이 영생을 누리기를 천 번 만 번 바랍니다.
잘 있으시오."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김대건 순례 여정을 마치면서, 나의
1) 신앙생활에 관한 다짐
2) 이웃 사랑을 향한 다짐을
김대건 신부님 엽서에 적어봅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심으로 모든 것을 하신
김대건 신부님을 생각하며
내가 하는 일의 중심에는 누가 있는지?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주표착 재현미사는 성김대건 신부 200주년 희년이 끝나는 11월까지 매월 두차례씩 행사가 이어진다.
참가문의는 제주교구청 사무처(064-729-9500)
첫댓글 벌써 다녀 오셨네요?
3월에는 용수성지에서 했는데요~
이것 저것 도와 주느라
못 다녀 왔구요~~
이번에는 차귀도에서 시작해서
갈려고 했는데 용수성지 송순 자르기 작업과
겹쳐서 못 갔습니다~
핑계도 여러가지 인데요~~
갈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다녀왔을 것입니다~
다음 기회에 가시면 되지요.
배 승선하기 전부터 대침묵하며 정말 피정하는 기분으로....
이제야 용수주민이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