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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륭황제의 가계도| ☆‥‥‥‥역사 공부방
Yuki♡ | 조회 1836 |추천 0 | 2004.04.13. 19:44
淸(청) 高宗(고종)의 后妃(후비)와 子女(자녀)

后妃(후비)

 孝賢純皇后(효현순황후) 富察(부찰)씨 : 察哈爾總管(찰합이총관) 李榮保(이영보)의 딸이다. 雍正(옹정) 오년에 嫡福晉(적복진)에 책립되었으며 乾隆(건륭) 이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십삼년 東巡(동순)에서 돌아오던 중 德州(덕주)에서 붕어하였다. 아들은 永璉(영련)과 永琮(영종)의 둘이며 딸은 하나는 일찍 죽고 다른 하나는 色布騰巴爾珠爾(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다.

 황후 烏喇那拉(오라나랍)씨 : 佐領(좌령) 那爾布(나이포)의 딸이다. 건륭 이년에 嫻妃(한비)에 봉해졌으며 십년에 貴妃(귀비)로 나아갔다. 효현황후가 붕어하자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으며 십오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삼십년 南巡(남순)에서 杭州(항주)에 이르러 황제의 명을 거스르자 머리를 잘랐고 황제는 더더욱 기뻐하지 않아 먼저 돌아가도록 명하였다. 삼십일년에 붕어하자 황제는 황귀비의 예로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으며 이로부터 다시는 황후를 책립하지 않았다. 아들은 永 (영?)와 永璟(영경)의 둘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孝儀純皇后(효의순황후) 魏佳(위가)씨 : 內管領(내관령) 淸泰(청태)의 딸이다. 令嬪(영빈)에 봉해졌다가 令貴妃(영귀비)로 나아갔다. 건륭 이십오년에 仁宗(인종 : 가경제)을 낳아 삼십년에 令皇貴妃(영황귀비)로 나아갔다. 사십년에 죽으니 시호를 令懿皇貴妃(영의황귀비)라 했으며 육십년에 인종이 황태자에 책립되자 효의황후로 책증되었다. 아들은 넷이니 첫째는 永璐(영로)이며 일찍 죽고 둘째는 인종이며 셋째는 永璘(영린)이고 넷째는 일찍 죽었다. 딸은 둘이며 拉旺多爾濟(납왕다이제)와 札蘭泰(찰란태)에게 시집갔다.

 慧賢皇貴妃(혜현황귀비) 高佳(고가)씨 : 大學士(대학사) 高斌(고빈)의 딸이다. 건륭 초에 貴妃(귀비)로 봉해졌다. 죽은 뒤 시호를 혜현황귀비로 하였다.

 純惠皇貴妃(순혜황귀비) 蘇佳(소가)씨 : 즉위하자 純嬪(순빈)에 봉해졌으며 純皇貴妃(순황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순혜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瑢(영용)이며 딸은 福隆安(복륭안)에게 시집갔다.

 慶恭皇貴妃(경공황귀비) 陸(육)씨 : 처음에 慶嬪(경빈)에 봉해졌으며 慶貴妃(경귀비)로 나아갔다. 인종이 일찍이 비에게 양육되어졌으므로 경공황귀비로 추존되었다.

 哲憫皇貴妃(철민황귀비) 富察(부찰)씨 : 옹정 십삼년에 죽었다. 건륭 초에 哲妃(철비)로 추봉되었으며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다. 시호를 철민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璜(영황)이니 고종(: 건륭제)의 長子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淑嘉皇貴妃(숙가황귀비) 金佳(금가)씨 : 건륭 초에 嘉妃(가비)로 봉해졌으며 嘉貴妃((가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숙가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넷이니 永 (영?)·永璇(영선)·永瑆(영성)이며 또 하나는 일찍 죽었다.

 婉貴太妃(완귀태비) 陳(진)씨 : 건륭간에 貴人(귀인)에서 婉妃(완비)로 나아갔으며 가경간에 완귀태비로 존숭되었다.

 穎貴太妃(영귀태비) 巴林(파림)씨 : 또한 貴人(귀인)에서 潁貴妃(영귀비)로 나아갔으며 영귀태비로 존숭되었다.

 貴人(귀인) 西林覺羅(서림각라)씨 :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貴人(귀인) 柏(백)씨 : 또한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晉太妃(진태비) 富察(부찰)씨 : 고종이 貴人(귀인)으로 삼았으며 宣宗(선종 : 도광제)은 皇祖晉太妃(황조진태비)로 존숭하였다.

 忻貴妃(흔귀비) 戴佳(대가)씨 : 總督(총독) 那蘇圖(나소도)의 딸이다. 딸은 둘이며 모두 일찍 죽었다.

 愉貴妃(유귀비) 珂里葉特(가리엽특)씨 : 아들은 하나이니 永琪(영기)이다.

 舒妃(서비) 葉赫那拉(엽혁나랍)씨 : 아들은 하나이며 일찍 죽었다.

 惇妃(돈비) 汪(왕)씨 : 嬪(빈)으로 내려졌다가 복위되었다.

 容妃(용비) 和卓(화도)씨 : 回部台吉(회부태길) 和札賚(화찰뢰)의 딸이다. 처음에 貴人(귀인)이라 했으며 妃(비)로 나아갔다.


『淸史稿(청사고)』「后妃列傳(후비열전)」
---------------------------------------------------------------------------------
皇子(황자)

 고종은 열일곱의 아들을 두었다. 효현순황후는 端慧太子(단혜태자) 永璉(영련)과 哲親王(철친왕) 永琮(영종)을 낳았고,

황후 납라씨는 貝勒(패륵) 永 (영?)와 永璟(영경)을 낳았고,

효의순황후는 永璐(영로)와 인종과 十六子와 慶僖親王(경희친왕) 永璘(영린)을 낳았고,

순혜황귀비 소가씨는 循郡王(순군왕) 永璋(영장)과 質莊親王(질장친왕) 永瑢(영용)을 낳았고,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定安親王(정안친왕) 永璜(영황)을 낳았고,

숙가황귀비 금가씨는 履端親王(이단친왕) 永 (영?)과 儀愼親王(의신친왕) 永璇(영선)과 九子와 成哲親王(성철친왕) 永瑆(영성)을 낳았고,

유귀비 가리엽특씨는 榮純親王(영순친왕) 永琪(영기)를 낳았고,

서비 엽혁나랍씨는 十子를 낳았다. 永 (영?)은 履懿親王(이의친왕) 允祹(윤도)의 후사로 나갔으며 永瑢(영용)은 愼靖郡王(신정군왕) 允禧(윤희)의 후사로 나갔다. 永璟(영경)·永 (영?)·九子·十子·十六子는 모두 일찍 죽었으며 봉하지 않았다.


『淸史稿(청사고)』「諸王列傳(제왕열전)」
---------------------------------------------------------------------------------
仁宗(인종)

 仁宗受天興運敷化綏猷崇文經武孝恭勤儉端敏英哲睿皇帝(인종수천흥운부화수유숭문경무효공근검단민영철예황제)의 휘는 顒琰(옹염)이요 고종의 十五子이다. 모친은 魏佳(위가)씨이며 효의황후에 추존되었다. 건륭 이십오년 십월 초육일에 태어났으며 오십사년에 嘉親王(가친왕)에 봉해졌다. 육십년 구월에 황태자에 책립되었고 고종이 제위를 전하여 명년을 가경 원년으로 하였다.


『淸史稿(청사고)』「仁宗本紀(인종본기)」
---------------------------------------------------------------------------------
皇子(황자)

 永璜(영황) : 고종의 一子이다. 건륭 십오년에 죽었다. 定親王(정친왕)에 추봉되었고 시호를 安(안)이라 하였다.

 永璉(영련) : 고종의 二子이다. 건륭 삼년에 죽었다. 황태자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를 端慧(단혜)라 하였다.

 永璋(영장) : 고종의 三子이다. 건륭 이십오년에 죽었으며 循郡王(순군왕)에 추봉되었다.

 永 (영?) : 고종의 四子이다. 允祹(윤도)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팔년에 履郡王(이군왕)을 계승하였다. 사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端(단)이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履親王(이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琪(영기) : 고종의 五子이다. 건륭 삼십년에 榮親王(영친왕)에 봉해졌다. 삼십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純(순)이라 하였다.

 永瑢(영용) : 고종의 六子이다. 允禧(윤희)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사년에 貝勒(패륵)을 계승하였다. 삼십칠년에 質郡王(질군왕)으로 나아갔다. 오십오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莊(장)이라 하였다.

 永琮(영종) : 고종의 七子이다. 건륭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悼敏阿哥(도민아가)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哲親王(철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璇(영선) : 고종의 八子이다. 건륭 사십사년에 儀郡王(의군왕)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儀親王(의친왕)으로 나아갔다. 도광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愼(신)이라 하였다.

 永瑆(영성) : 고종의 十一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成親王(성친왕)에 봉해졌다. 도광 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哲(철)이라 하였다.

 永 (영?) : 고종의 十二子이다. 건륭 사십일년에 죽었으며 가경 사년에 貝勒(패륵)에 추봉되었다.

 永璟(영경) : 고종의 十三子이다.

 永璐(영로) : 고종의 十四子이다.

 永璘(영린) : 고종의 十七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貝勒(패륵)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慶郡王(경군왕)으로 나아갔다. 곧 죽었으며 시호를 僖(희)라 하였다.


『淸史稿(청사고)』「皇子世表(황자세표)」
---------------------------------------------------------------------------------
皇女(황녀)

 一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二女 : 철민황귀비 부찰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三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敬公主(고륜화경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십이년에 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으며 오십칠년에 죽었다.

 四女 : 순혜황귀비 소가씨 소생이며 和碩和嘉公主(화석화가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이십오년에 복륭안에게 시집갔으며 삼십이년에 죽었다.

 五女 : 황후 납라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六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七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靜公主(고륜화정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오년에 납왕다이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년에 죽었다.

 八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九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和碩和恪公主(화석화각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칠년에 찰란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오년에 죽었다.

 十女 : 돈비 왕씨 소생이며 固倫和孝公主(고륜화효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오십사년에 풍신은덕에게 시집갔으며 도광 삼년에 죽었다.


『淸史稿(청사고)』「公主表(공주표)」



출 처 : [기타] 『淸史稿(청사고)』 / 네이버 오픈사전 muhjul 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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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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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황제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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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 04.04.13. 19:48
넷째아들이름이 영성(永珹)일거예요-_-; 이월하님이 쓰신 건륭황제를 보니까, 영성이란 이름을 가진 황자가 둘이라서=_=;;
 
 
Yuki♡ 04.04.14. 21:02
그리고 사생아가 한명 있답니다. 이름은 복강안입니다^^;;
 
 
〔료아aA〕 04.08.23. 15:07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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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청) 高宗(고종)의 后妃(후비)와 子女(자녀)

后妃(후비)

 孝賢純皇后(효현순황후) 富察(부찰)씨 : 察哈爾總管(찰합이총관) 李榮保(이영보)의 딸이다. 雍正(옹정) 오년에 嫡福晉(적복진)에 책립되었으며 乾隆(건륭) 이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십삼년 東巡(동순)에서 돌아오던 중 德州(덕주)에서 붕어하였다. 아들은 永璉(영련)과 永琮(영종)의 둘이며 딸은 하나는 일찍 죽고 다른 하나는 色布騰巴爾珠爾(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다.

 황후 烏喇那拉(오라나랍)씨 : 佐領(좌령) 那爾布(나이포)의 딸이다. 건륭 이년에 嫻妃(한비)에 봉해졌으며 십년에 貴妃(귀비)로 나아갔다. 효현황후가 붕어하자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으며 십오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삼십년 南巡(남순)에서 杭州(항주)에 이르러 황제의 명을 거스르자 머리를 잘랐고 황제는 더더욱 기뻐하지 않아 먼저 돌아가도록 명하였다. 삼십일년에 붕어하자 황제는 황귀비의 예로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으며 이로부터 다시는 황후를 책립하지 않았다. 아들은 永 (영?)와 永璟(영경)의 둘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孝儀純皇后(효의순황후) 魏佳(위가)씨 : 內管領(내관령) 淸泰(청태)의 딸이다. 令嬪(영빈)에 봉해졌다가 令貴妃(영귀비)로 나아갔다. 건륭 이십오년에 仁宗(인종 : 가경제)을 낳아 삼십년에 令皇貴妃(영황귀비)로 나아갔다. 사십년에 죽으니 시호를 令懿皇貴妃(영의황귀비)라 했으며 육십년에 인종이 황태자에 책립되자 효의황후로 책증되었다. 아들은 넷이니 첫째는 永璐(영로)이며 일찍 죽고 둘째는 인종이며 셋째는 永璘(영린)이고 넷째는 일찍 죽었다. 딸은 둘이며 拉旺多爾濟(납왕다이제)와 札蘭泰(찰란태)에게 시집갔다.

 慧賢皇貴妃(혜현황귀비) 高佳(고가)씨 : 大學士(대학사) 高斌(고빈)의 딸이다. 건륭 초에 貴妃(귀비)로 봉해졌다. 죽은 뒤 시호를 혜현황귀비로 하였다.

 純惠皇貴妃(순혜황귀비) 蘇佳(소가)씨 : 즉위하자 純嬪(순빈)에 봉해졌으며 純皇貴妃(순황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순혜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瑢(영용)이며 딸은 福隆安(복륭안)에게 시집갔다.

 慶恭皇貴妃(경공황귀비) 陸(육)씨 : 처음에 慶嬪(경빈)에 봉해졌으며 慶貴妃(경귀비)로 나아갔다. 인종이 일찍이 비에게 양육되어졌으므로 경공황귀비로 추존되었다.

 哲憫皇貴妃(철민황귀비) 富察(부찰)씨 : 옹정 십삼년에 죽었다. 건륭 초에 哲妃(철비)로 추봉되었으며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다. 시호를 철민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璜(영황)이니 고종(: 건륭제)의 長子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淑嘉皇貴妃(숙가황귀비) 金佳(금가)씨 : 건륭 초에 嘉妃(가비)로 봉해졌으며 嘉貴妃((가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숙가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넷이니 永 (영?)·永璇(영선)·永瑆(영성)이며 또 하나는 일찍 죽었다.

 婉貴太妃(완귀태비) 陳(진)씨 : 건륭간에 貴人(귀인)에서 婉妃(완비)로 나아갔으며 가경간에 완귀태비로 존숭되었다.

 穎貴太妃(영귀태비) 巴林(파림)씨 : 또한 貴人(귀인)에서 潁貴妃(영귀비)로 나아갔으며 영귀태비로 존숭되었다.

 貴人(귀인) 西林覺羅(서림각라)씨 :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貴人(귀인) 柏(백)씨 : 또한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晉太妃(진태비) 富察(부찰)씨 : 고종이 貴人(귀인)으로 삼았으며 宣宗(선종 : 도광제)은 皇祖晉太妃(황조진태비)로 존숭하였다.

 忻貴妃(흔귀비) 戴佳(대가)씨 : 總督(총독) 那蘇圖(나소도)의 딸이다. 딸은 둘이며 모두 일찍 죽었다.

 愉貴妃(유귀비) 珂里葉特(가리엽특)씨 : 아들은 하나이니 永琪(영기)이다.

 舒妃(서비) 葉赫那拉(엽혁나랍)씨 : 아들은 하나이며 일찍 죽었다.

 惇妃(돈비) 汪(왕)씨 : 嬪(빈)으로 내려졌다가 복위되었다.

 容妃(용비) 和卓(화도)씨 : 回部台吉(회부태길) 和札賚(화찰뢰)의 딸이다. 처음에 貴人(귀인)이라 했으며 妃(비)로 나아갔다.


『淸史稿(청사고)』「后妃列傳(후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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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子(황자)

 고종은 열일곱의 아들을 두었다. 효현순황후는 端慧太子(단혜태자) 永璉(영련)과 哲親王(철친왕) 永琮(영종)을 낳았고,

황후 납라씨는 貝勒(패륵) 永 (영?)와 永璟(영경)을 낳았고,

효의순황후는 永璐(영로)와 인종과 十六子와 慶僖親王(경희친왕) 永璘(영린)을 낳았고,

순혜황귀비 소가씨는 循郡王(순군왕) 永璋(영장)과 質莊親王(질장친왕) 永瑢(영용)을 낳았고,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定安親王(정안친왕) 永璜(영황)을 낳았고,

숙가황귀비 금가씨는 履端親王(이단친왕) 永 (영?)과 儀愼親王(의신친왕) 永璇(영선)과 九子와 成哲親王(성철친왕) 永瑆(영성)을 낳았고,

유귀비 가리엽특씨는 榮純親王(영순친왕) 永琪(영기)를 낳았고,

서비 엽혁나랍씨는 十子를 낳았다. 永 (영?)은 履懿親王(이의친왕) 允祹(윤도)의 후사로 나갔으며 永瑢(영용)은 愼靖郡王(신정군왕) 允禧(윤희)의 후사로 나갔다. 永璟(영경)·永 (영?)·九子·十子·十六子는 모두 일찍 죽었으며 봉하지 않았다.


『淸史稿(청사고)』「諸王列傳(제왕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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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宗(인종)

 仁宗受天興運敷化綏猷崇文經武孝恭勤儉端敏英哲睿皇帝(인종수천흥운부화수유숭문경무효공근검단민영철예황제)의 휘는 顒琰(옹염)이요 고종의 十五子이다. 모친은 魏佳(위가)씨이며 효의황후에 추존되었다. 건륭 이십오년 십월 초육일에 태어났으며 오십사년에 嘉親王(가친왕)에 봉해졌다. 육십년 구월에 황태자에 책립되었고 고종이 제위를 전하여 명년을 가경 원년으로 하였다.


『淸史稿(청사고)』「仁宗本紀(인종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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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子(황자)

 永璜(영황) : 고종의 一子이다. 건륭 십오년에 죽었다. 定親王(정친왕)에 추봉되었고 시호를 安(안)이라 하였다.

 永璉(영련) : 고종의 二子이다. 건륭 삼년에 죽었다. 황태자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를 端慧(단혜)라 하였다.

 永璋(영장) : 고종의 三子이다. 건륭 이십오년에 죽었으며 循郡王(순군왕)에 추봉되었다.

 永 (영?) : 고종의 四子이다. 允祹(윤도)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팔년에 履郡王(이군왕)을 계승하였다. 사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端(단)이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履親王(이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琪(영기) : 고종의 五子이다. 건륭 삼십년에 榮親王(영친왕)에 봉해졌다. 삼십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純(순)이라 하였다.

 永瑢(영용) : 고종의 六子이다. 允禧(윤희)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사년에 貝勒(패륵)을 계승하였다. 삼십칠년에 質郡王(질군왕)으로 나아갔다. 오십오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莊(장)이라 하였다.

 永琮(영종) : 고종의 七子이다. 건륭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悼敏阿哥(도민아가)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哲親王(철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璇(영선) : 고종의 八子이다. 건륭 사십사년에 儀郡王(의군왕)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儀親王(의친왕)으로 나아갔다. 도광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愼(신)이라 하였다.

 永瑆(영성) : 고종의 十一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成親王(성친왕)에 봉해졌다. 도광 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哲(철)이라 하였다.

 永 (영?) : 고종의 十二子이다. 건륭 사십일년에 죽었으며 가경 사년에 貝勒(패륵)에 추봉되었다.

 永璟(영경) : 고종의 十三子이다.

 永璐(영로) : 고종의 十四子이다.

 永璘(영린) : 고종의 十七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貝勒(패륵)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慶郡王(경군왕)으로 나아갔다. 곧 죽었으며 시호를 僖(희)라 하였다.


『淸史稿(청사고)』「皇子世表(황자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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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女(황녀)

 一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二女 : 철민황귀비 부찰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三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敬公主(고륜화경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십이년에 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으며 오십칠년에 죽었다.

 四女 : 순혜황귀비 소가씨 소생이며 和碩和嘉公主(화석화가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이십오년에 복륭안에게 시집갔으며 삼십이년에 죽었다.

 五女 : 황후 납라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六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七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靜公主(고륜화정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오년에 납왕다이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년에 죽었다.

 八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九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和碩和恪公主(화석화각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칠년에 찰란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오년에 죽었다.

 十女 : 돈비 왕씨 소생이며 固倫和孝公主(고륜화효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오십사년에 풍신은덕에게 시집갔으며 도광 삼년에 죽었다.


『淸史稿(청사고)』「公主表(공주표)」



출 처 : [기타] 『淸史稿(청사고)』 / 네이버 오픈사전 muhjul 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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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청) 高宗(고종)의 后妃(후비)와 子女(자녀)

后妃(후비)

 孝賢純皇后(효현순황후) 富察(부찰)씨 : 察哈爾總管(찰합이총관) 李榮保(이영보)의 딸이다. 雍正(옹정) 오년에 嫡福晉(적복진)에 책립되었으며 乾隆(건륭) 이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십삼년 東巡(동순)에서 돌아오던 중 德州(덕주)에서 붕어하였다. 아들은 永璉(영련)과 永琮(영종)의 둘이며 딸은 하나는 일찍 죽고 다른 하나는 色布騰巴爾珠爾(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다.

 황후 烏喇那拉(오라나랍)씨 : 佐領(좌령) 那爾布(나이포)의 딸이다. 건륭 이년에 嫻妃(한비)에 봉해졌으며 십년에 貴妃(귀비)로 나아갔다. 효현황후가 붕어하자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으며 십오년에 황후로 책립되었다. 삼십년 南巡(남순)에서 杭州(항주)에 이르러 황제의 명을 거스르자 머리를 잘랐고 황제는 더더욱 기뻐하지 않아 먼저 돌아가도록 명하였다. 삼십일년에 붕어하자 황제는 황귀비의 예로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으며 이로부터 다시는 황후를 책립하지 않았다. 아들은 永 (영?)와 永璟(영경)의 둘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孝儀純皇后(효의순황후) 魏佳(위가)씨 : 內管領(내관령) 淸泰(청태)의 딸이다. 令嬪(영빈)에 봉해졌다가 令貴妃(영귀비)로 나아갔다. 건륭 이십오년에 仁宗(인종 : 가경제)을 낳아 삼십년에 令皇貴妃(영황귀비)로 나아갔다. 사십년에 죽으니 시호를 令懿皇貴妃(영의황귀비)라 했으며 육십년에 인종이 황태자에 책립되자 효의황후로 책증되었다. 아들은 넷이니 첫째는 永璐(영로)이며 일찍 죽고 둘째는 인종이며 셋째는 永璘(영린)이고 넷째는 일찍 죽었다. 딸은 둘이며 拉旺多爾濟(납왕다이제)와 札蘭泰(찰란태)에게 시집갔다.

 慧賢皇貴妃(혜현황귀비) 高佳(고가)씨 : 大學士(대학사) 高斌(고빈)의 딸이다. 건륭 초에 貴妃(귀비)로 봉해졌다. 죽은 뒤 시호를 혜현황귀비로 하였다.

 純惠皇貴妃(순혜황귀비) 蘇佳(소가)씨 : 즉위하자 純嬪(순빈)에 봉해졌으며 純皇貴妃(순황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순혜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瑢(영용)이며 딸은 福隆安(복륭안)에게 시집갔다.

 慶恭皇貴妃(경공황귀비) 陸(육)씨 : 처음에 慶嬪(경빈)에 봉해졌으며 慶貴妃(경귀비)로 나아갔다. 인종이 일찍이 비에게 양육되어졌으므로 경공황귀비로 추존되었다.

 哲憫皇貴妃(철민황귀비) 富察(부찰)씨 : 옹정 십삼년에 죽었다. 건륭 초에 哲妃(철비)로 추봉되었으며 皇貴妃(황귀비)로 나아갔다. 시호를 철민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永璜(영황)이니 고종(: 건륭제)의 長子이며 딸 하나는 일찍 죽었다.

 淑嘉皇貴妃(숙가황귀비) 金佳(금가)씨 : 건륭 초에 嘉妃(가비)로 봉해졌으며 嘉貴妃((가귀비)로 나아갔다. 죽은 뒤 시호를 숙가황귀비로 하였다. 아들은 넷이니 永 (영?)·永璇(영선)·永瑆(영성)이며 또 하나는 일찍 죽었다.

 婉貴太妃(완귀태비) 陳(진)씨 : 건륭간에 貴人(귀인)에서 婉妃(완비)로 나아갔으며 가경간에 완귀태비로 존숭되었다.

 穎貴太妃(영귀태비) 巴林(파림)씨 : 또한 貴人(귀인)에서 潁貴妃(영귀비)로 나아갔으며 영귀태비로 존숭되었다.

 貴人(귀인) 西林覺羅(서림각라)씨 :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貴人(귀인) 柏(백)씨 : 또한 常在(상재)에서 귀인으로 나아갔다.

 晉太妃(진태비) 富察(부찰)씨 : 고종이 貴人(귀인)으로 삼았으며 宣宗(선종 : 도광제)은 皇祖晉太妃(황조진태비)로 존숭하였다.

 忻貴妃(흔귀비) 戴佳(대가)씨 : 總督(총독) 那蘇圖(나소도)의 딸이다. 딸은 둘이며 모두 일찍 죽었다.

 愉貴妃(유귀비) 珂里葉特(가리엽특)씨 : 아들은 하나이니 永琪(영기)이다.

 舒妃(서비) 葉赫那拉(엽혁나랍)씨 : 아들은 하나이며 일찍 죽었다.

 惇妃(돈비) 汪(왕)씨 : 嬪(빈)으로 내려졌다가 복위되었다.

 容妃(용비) 和卓(화도)씨 : 回部台吉(회부태길) 和札賚(화찰뢰)의 딸이다. 처음에 貴人(귀인)이라 했으며 妃(비)로 나아갔다.


『淸史稿(청사고)』「后妃列傳(후비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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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子(황자)

 고종은 열일곱의 아들을 두었다. 효현순황후는 端慧太子(단혜태자) 永璉(영련)과 哲親王(철친왕) 永琮(영종)을 낳았고,

황후 납라씨는 貝勒(패륵) 永 (영?)와 永璟(영경)을 낳았고,

효의순황후는 永璐(영로)와 인종과 十六子와 慶僖親王(경희친왕) 永璘(영린)을 낳았고,

순혜황귀비 소가씨는 循郡王(순군왕) 永璋(영장)과 質莊親王(질장친왕) 永瑢(영용)을 낳았고,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定安親王(정안친왕) 永璜(영황)을 낳았고,

숙가황귀비 금가씨는 履端親王(이단친왕) 永 (영?)과 儀愼親王(의신친왕) 永璇(영선)과 九子와 成哲親王(성철친왕) 永瑆(영성)을 낳았고,

유귀비 가리엽특씨는 榮純親王(영순친왕) 永琪(영기)를 낳았고,

서비 엽혁나랍씨는 十子를 낳았다. 永 (영?)은 履懿親王(이의친왕) 允祹(윤도)의 후사로 나갔으며 永瑢(영용)은 愼靖郡王(신정군왕) 允禧(윤희)의 후사로 나갔다. 永璟(영경)·永 (영?)·九子·十子·十六子는 모두 일찍 죽었으며 봉하지 않았다.


『淸史稿(청사고)』「諸王列傳(제왕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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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宗(인종)

 仁宗受天興運敷化綏猷崇文經武孝恭勤儉端敏英哲睿皇帝(인종수천흥운부화수유숭문경무효공근검단민영철예황제)의 휘는 顒琰(옹염)이요 고종의 十五子이다. 모친은 魏佳(위가)씨이며 효의황후에 추존되었다. 건륭 이십오년 십월 초육일에 태어났으며 오십사년에 嘉親王(가친왕)에 봉해졌다. 육십년 구월에 황태자에 책립되었고 고종이 제위를 전하여 명년을 가경 원년으로 하였다.


『淸史稿(청사고)』「仁宗本紀(인종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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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子(황자)

 永璜(영황) : 고종의 一子이다. 건륭 십오년에 죽었다. 定親王(정친왕)에 추봉되었고 시호를 安(안)이라 하였다.

 永璉(영련) : 고종의 二子이다. 건륭 삼년에 죽었다. 황태자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를 端慧(단혜)라 하였다.

 永璋(영장) : 고종의 三子이다. 건륭 이십오년에 죽었으며 循郡王(순군왕)에 추봉되었다.

 永 (영?) : 고종의 四子이다. 允祹(윤도)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팔년에 履郡王(이군왕)을 계승하였다. 사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端(단)이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履親王(이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琪(영기) : 고종의 五子이다. 건륭 삼십년에 榮親王(영친왕)에 봉해졌다. 삼십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純(순)이라 하였다.

 永瑢(영용) : 고종의 六子이다. 允禧(윤희)의 후사를 이었으며 건륭 이십사년에 貝勒(패륵)을 계승하였다. 삼십칠년에 質郡王(질군왕)으로 나아갔다. 오십오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莊(장)이라 하였다.

 永琮(영종) : 고종의 七子이다. 건륭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悼敏阿哥(도민아가)라 하였다. 가경 사년에 哲親王(철친왕)에 추봉되었다.

 永璇(영선) : 고종의 八子이다. 건륭 사십사년에 儀郡王(의군왕)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儀親王(의친왕)으로 나아갔다. 도광 십이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愼(신)이라 하였다.

 永瑆(영성) : 고종의 十一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成親王(성친왕)에 봉해졌다. 도광 삼년에 죽었으며 시호를 哲(철)이라 하였다.

 永 (영?) : 고종의 十二子이다. 건륭 사십일년에 죽었으며 가경 사년에 貝勒(패륵)에 추봉되었다.

 永璟(영경) : 고종의 十三子이다.

 永璐(영로) : 고종의 十四子이다.

 永璘(영린) : 고종의 十七子이다. 건륭 오십사년에 貝勒(패륵)에 봉해졌으며 가경 사년에 慶郡王(경군왕)으로 나아갔다. 곧 죽었으며 시호를 僖(희)라 하였다.


『淸史稿(청사고)』「皇子世表(황자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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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女(황녀)

 一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二女 : 철민황귀비 부찰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三女 : 효현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敬公主(고륜화경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십이년에 색포등파이주이에게 시집갔으며 오십칠년에 죽었다.

 四女 : 순혜황귀비 소가씨 소생이며 和碩和嘉公主(화석화가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이십오년에 복륭안에게 시집갔으며 삼십이년에 죽었다.

 五女 : 황후 납라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六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七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固倫和靜公主(고륜화정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오년에 납왕다이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년에 죽었다.

 八女 : 흔귀비 대가씨 소생이며 일찍 죽었다.

 九女 : 효의순황후 소생이며 和碩和恪公主(화석화각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삼십칠년에 찰란태에게 시집갔으며 사십오년에 죽었다.

 十女 : 돈비 왕씨 소생이며 固倫和孝公主(고륜화효공주)에 봉해졌다. 건륭 오십사년에 풍신은덕에게 시집갔으며 도광 삼년에 죽었다.


『淸史稿(청사고)』「公主表(공주표)」



출 처 : [기타] 『淸史稿(청사고)』 / 네이버 오픈사전 muhjul 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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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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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황제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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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 04.04.13. 19:48
넷째아들이름이 영성(永珹)일거예요-_-; 이월하님이 쓰신 건륭황제를 보니까, 영성이란 이름을 가진 황자가 둘이라서=_=;;
 
 
Yuki♡ 04.04.14. 21:02
그리고 사생아가 한명 있답니다. 이름은 복강안입니다^^;;
 
 
〔료아aA〕 04.08.23. 15:07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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