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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론을 기다렸지만 없으시니 <개혁주의 마을>도 "예언의 은사"를 인정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계시의 종결성"을 믿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교리"를 가르치며 동시에 "은사지속론"을 가르치는 존 파이퍼를 위시한 개혁주의 진영의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목회에 있어서 참된 회심을 위한 교리적 강해설교의 중심성과 우위성을 인정합니다. 아래는 제가 댓글로 달았던 글입니다. 아래의 글은 예언에 관한 저의 소견이 담겨 있습니다. 언제든지 <개혁주의 마을> 형제 분들의 반론을 환영합니다. 대신 반박하실 때에는 성경적 논증과 교회사의 1차 자료들을 준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를 드리며,
제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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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라스 구약학 교수였던 잭 디어 교수의 초기 종교개혁사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늘 날 장로교도의 선조였던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들이 예언을 했다는 것을 1차 역사적 자료에서 논증하고 있더군요. 우리가 잘 아는 존 낙스와 1643년 웨스터민스터 총회를 위한 스코틀랜드 교회의 총대였던 사무엘 러더포드 또한 예언을 했고 자신의 예언에 대한 원칙 또한 기술해놓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했던 예언은 웨인 그루뎀이 정의한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마음에 주신 것을 말함"입니다. 여기에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에서 유추할 수 있는 위로, 격려의 말, 마음의 죄를 드러냄 그리고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말함이 포함된다고 그루뎀은 주장을 하고 있고요. 암튼 더 많은 성경적, 교회사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예언의 은사가 계시의 종결성을 위협하는 것이 위험한 만큼 위의 그루뎀이 정의한 예언의 은사를 무시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Christian Hedonism”으로 인해 개혁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존 파이퍼이지만, 그가 왜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지 생각해볼 필요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사 중단론자인 리차드 개핀과 은사 지속론자인 웨인 그루뎀의 논쟁에 그루뎀의 손을 들어준 PA에 소재하는 Wester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번 포이트리스의 주장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다음은 마틴 로이드 존스의 <부흥 (생명의 말씀사)>의 제11장 “부흥의 결과”에 나오는 내용(p.180): "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예언의 은사가 주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장래를 예고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대면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학식과 지식을 가지고 성령을 소멸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사례들을 여러분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언의 현상들, 장래를 예언하는 이러한 능력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은사를 가진 한 목사를 알고 있는데1904년과 1905년 부흥의 때에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은사가 후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부흥이 지속되는 동안에 그 사람은 그의 교회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예언했습니다. 한 번만 아니라 아침 마다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새벽 두시 반에 잠에서 깨어 그날 일어날 일에 대한 직접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현상들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위의 발췌한 글은 개혁주의 진영에서도 존경을 받고 있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입니다.
4. (한 회원이 예언과 복음으로 사는 삶 사에에 연관성이 없다는 언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저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4:1) 그리고 그 예언의 특징은 웨인 그루뎀이 정의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마음에 즉각적으로 주신 것을 말함"입니다. 이 정의는 다음의 말씀에서 추출한 교리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고전 14:29)" 예언이 기존 장로교단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이성적인 능력만을 요구하는 설교라면 다른 이들이 분별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러나 예언은 “하나님께 마음에 주신 즉각적인 것들”을 담고 있으니 위의 사역 방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일단은 토론에서 중요한 용어 정리가 된 듯하니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서두에 제가 인용했던 말씀에서 보시면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님이 의문을 제시한 예언과 복음으로 사는 삶의 관계성이 명제적으로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언이 복음으로 사는 삶에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저는 이에 관련하여 두 가지 관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그러나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고전 14:24-25)" 그러니까 사역 대상자의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회개하게 되는 기능을 예언이 하는 것이지요. 이는 칼빈의 십자가를 현재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바로 성화라는 정의에 부합한 삶을 살게 하는 예언의 순기능입니다.
찰스 스펄젼 또한 강해설교를 하는 동안 예언의 은사가 드러난 적이 있었지요. 성령께서 설교를 하는 가운데 강권하셔서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주일에 세탁소를 닫지 않는 사람의 불신앙을 꾸짖었고 그것을 들은 세탁소 주인은 돈의 최소 단위까지 정확하게 스펄젼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을 보며 회개한 적이 있었지요. 저는 강해 설교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가 이에 더 나아가 교회의 덕을 위의 예처럼 세운다는 것이지요. 이런 덕을 세우는 것이 없었다면 굳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스코틀랜드 총대인 사무엘 러더포드가 예언의 은사에 대한 principles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겠지요.
2)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의지하고 바라보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내재적인 죄로 인해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들에 쉽게 갇히게 되는 우를 범하여 복음으로 사는 삶을 놓치기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월성에 집중하도록 예언이 돕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토론이 근본적으로는 고전 13:10 "온전한 것"에 대한 입장의 차이라는 것을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온전한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는 로이드존스나 존 파이퍼 그리고 유수의 개혁 신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떠신지요? 위의 근본적 입장이 정리가 되신다면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나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이 말씀이 주의 명령으로 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노파심에 첨언합니다. 저는 계시의 종결성을 믿습니다. 그리고 강해설교가 정경성이 없는 것과 같이 예언 또한 정경성이 없는 사람의 말임을 믿습니다. 웨인 그루뎀이 그의 조직신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예언에 대한 챕터를 읽어보시길 추천을 드립니다. 그는 이 예언에 관한 부분 말고는 다른 모든 주제들은 개혁주의와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국의 장로교단의 신학교들에서 그의 조직신학을 교재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저는 신사도 운동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리적인 강해설교의 우위성을 저 또한 믿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혁주의 교리와 은사지속론을 함께 가르치는 존 파이퍼의 개혁된 복음주의를 지지합니다. 저도 님이 바람직하게 보시는 교리적인 청교도 회심론의 우선성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윗 댓글에도 이에 상응하는 강해설교의 우선성을 강조했고요. 다시 말해서 저의 소견은 강해설교 혹은 참된 회심을 위한 전도설교를 통한 회개를 중심 축으로 두고 표적이나 기적에 의한 회개로의 초청을 열어두자는 의견입니다. 님이 강조하신 회심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균형을 위해서요. 이렇게 열어놓는 것이 신앙이 주관화가 될 수 있다는 님의 의견을 더 듣고 싶군요. 님은 개혁주의자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사무엘 러더포드의 예언에 대한 견해와 그가 성경적 예언을 주장했지만 신앙의 주관화의 위험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자들이 찬사를 던지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을 신앙의 객관성 가운데 작성했던 실례에 대해 반박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5. (한 회원이 사무엘 러더포드의 예언에 대한 글을 요청하셔서 다음의 글을 올렸습니다)
"말씀의 정경이 확정된 이후, 존 후스, 위클리프, 루터처럼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고했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 이루어진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계시가 있다. 우리 스코틀랜드의 경우에 조지 위샤트는 비튼 추기경이 살아서 앤드류 성의 성문을 나오지 못할 것이며 또 치욕스럽게 죽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이 화형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창문 너머에서 교수형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낙스는 그랜지 경이 교수형을 당할 것을 예언했고, 데이빗슨의 예언은 그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영국에서도 많은 거룩한 설교자들이 이러한 일을 행했다."(Sameul Rutherford, A Survey of the Spiritual Antichrist. Opening the Secrets of Familisme and Anatinominisme in the Antichristian Doctrine of John Salarmarsh(London: no pub,. 1648)) 위는 역사적 1차 자료입니다. 이 출처의 저서에서 러더포드는 예언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 달라스 구약학 교수였던 잭 디어 교수도 그의 저서 <Surprised by the Voice of God>에서 위의 러더포드의 역사적 문헌을 인용합니다.
6. 제가 앞서 언급드렸던 성경적 예언의 principles을 다음과 같이 사무엘 러더포드는 제시했습니다. "1) 그것들은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다. 2) 그것들은 경건한 사람들이 발언한 것이다. 3) 이러한 계시들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예언이 성경의 권위와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4) 그들은 자기의 예언에 복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Ibid, 43ff.) 이것이 한국 장로교회의 선조들의 역사입니다.
7. (한 회원이 저와 큰믿음교회와의 연관성을 물어 저는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였습니다)
저는 큰믿음교회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특히 바울의 서신을 쓸 때 도왔던 천사가 자신의 저서를 집필할 때 도왔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계시의 종결성을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미국에 거주하다보니 위에서 언급 드렸던 개혁된 복음주의 진영에 노출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존 맥아더의 “Strange Fire” 집회 이 후 은사지속론과 은사중지론 사이의 토론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도 그 토론에 관심을 갖다가 교회사의 1차 자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비교분석 하게 되었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저는 개혁주의 마을 분들과 같이 개혁주의를 추구하다가 이 은사의 부분만 견해를 은사지속론 쪽으로 기울고 있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존 파이퍼를 위시한 은사지속론 쪽에 무게가 더 실리는 상황입니다. 특히 파이퍼는 공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전 13장의 "온전한 것"이 주의 재림이라고 해석하며 그러므로 은사들은 지속된다고 주장했고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인정했답니다. 그러나 물론 개혁주의가 추구하는 교리적 강해설교의 우선성과 중심성은 파이퍼도 강조하고 있지요.
8. 저의 윗 글에 대한 한 운영자 분의 답변
직감이라는게 인간에겐 있습니다. 성령 안 에서도 그런 것들이 올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예언 혹은 예언의 은사라고 할 순 없다고 봅니다. 미래를 예언의 은사가 있다면 한개도 틀리면 안되는데 신사도파들 그냥 확율적으로 맞고 틀리고 합니다. 그리고 진짜 예언의 은사가 있다면 정말 궁금해하는 국가적 이슈등은 다들 궁금해하자만 아무도 예언하지 못합니다. 구약에서도 개인의 사사로운 장래를 점치듯 하는 예언은 없었습니다. 예언은 계시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은 성경으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다만 미래예측은 지식 등으로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예언의 은사가 아닙니다. 예언을 받고 싶고 알고 싶어하는것은 결국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어떤 강한 확신 같은것도 올순 있지만 이 또한 예언이 아니고 그런 확신안와도 오직 주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믿은 것이 참 신앙입니다.
9. 위의 운영자 분의 글에 대한 저의 답변
성경은 예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1Co 14:29 KOR)",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1Co 14:32 KOR)" 예언이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분별하라고 지시하신 것이 아닐까요? 이에 대해 전 트리니티 조직 신학교수인 웨인 그루뎀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만일 예언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된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그렇게 하라고 명함으로 신약의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 역사상 어느 누구도 교사로서 틀지 않은 강해설교를 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예언하는 자들도 틀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무분별한 예언들은 심판으로 그들이 대가를 받겠지요. 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에서 명시하고 있는 예언함을 불신앙으로 폄하하신다면 개혁주의 선조인 사무엘 러더포드, 존 낙스, 마틴 로이드 존스, 존 파이퍼가 불신앙자들라는 말씀입니까?
10. 저의 위의 글에 대한 운영자 분의 답변
미래를 알고 싶어서 예언기도를 받은 자들이 불신앙적 행위라는 뜻입니다.
11. 운영자 분의 글에 대한 저의 답변
님이 염려하는 것을 개혁주의를 공부하는 저 또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웨인 그루뎀은 그의 조직신학에서 예언을 전달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마음을 주셨다”라고 표현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의 부정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기능을 교회사적 그리고 신학적으로 논해야 이 토론의 균형성을 갖추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점쟁이처럼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심으로 예언을 받는 자들은 불신앙적이라 생각합니다.
12. 저의 위의 글에 대한 운영자 분의 답변
그루뎀을 개혁주의라 하지 않더군요. 그리고 요즘 하나님의 음성듣기가 그루뎀식인데 그냥 자기 생각들을 주로 그렇게 표현하더군요.
13. 운영자 분의 글에 대한 저의 답변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들 사이에서도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그루뎀을 제외하고 논해보록 하지요. 물론 그루뎀의 조직신학을 사용하는 장로교단의 신학교들에 대한 의문이 가지만요. 그렇다면 사무엘 러더포드와 로이드 존스와 존 파이퍼에 대한 님의 견해는 어떠십니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조인 존 낙스의 예언에 대한 기록을 제시해드릴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제 토론방에 걸맞게 자료나 문헌을 가지고 토론에 임해주십시오. 누가 이랬더라는 식의 토론 방식은 지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4. 저의 글에 대한 운영자 분의 답변
9시반 오전예배드리고 지금 다시 교회로 가야합니다. 나중에 다시^^
(이 답변을 한 후 운영자 분은 아직 까지 말씀이 없으시네요)
15. 위의 운영자의 말에 대한 저의 대답
한국은 오전이군요... 그래도 이렇게 답변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되셔요.
16. 한 회원 분의 댓글
은사 부정론자들이 주장하는 전제는 무조건 < 계시 > 던데요. 참 알고 보면 웃기는 전제지요. 더구나 왜 그런 전제를 밑바탕에 깔았는지 생각해보면 왜 그런 전제를 갖게 됐는지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 신학자들 특히 부정론자들의 말은 그냥 신앙이라는 마을을 관광하며 지나가는 여행자들로 치부합니다... ^ ^ 참... 어린 나이에 좋은 차 타고 댕기니 < 도둑 > 으로 몰던 경찰관이 생각이 납니다. 주변에 다른 경찰이 서에 확인을 하니까, 옷자락 붙들려서 저 멀리 끌려 가더군요. 어떤 선입관을 가지느냐? 그건 곧 환경이나 습관이 주가 되겠네요.. 훌륭한 토론 이어가시길 바래요~ ~
17. 위의 댓글에 대한 저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선입관 없는 토론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님이 언급하신대로 은사지속론자들이 "계시"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를 사용하는 것을 은사중단론자들이 많이들 오해를 한다고 개혁주의자들이 존경하는 D.A 카슨이 지적을 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넓은 의미로도 계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긴 합니다. 정경의 완성과 계시의 종결은 저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아무튼 유명한 개혁주의자들의 2차 자료들을 전달하는 수준이 아닌 무엇보다도 성경과 1차 자료들을 가지고 기본 전제들을 잠시 내려놓고 사유하며 토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18. 한 회원 분의 글
제자님은 예언에 대하여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언이 틀릴수도 있으니 맞으면 좋고 틀리면 말고,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라도 틀리면 목숨을 걸었읍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가 내가 그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것을 내 이름으로 감히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한다면 그 선지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셨느니라." 예언은 틀리면 자기 목숨과도 바꾸어야 합니다. 왜냐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 위의 한 회원 분의 글에 대한 저의 답변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보니 답변이 늦는 것 양해부탁합니다. 한 회원 분의 말씀처럼 저는 "신약의 예언"이 "계시 (정경의 완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성경적 근거는 두 가지만 일단 드리겠습니다.
1)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1Co 14:29 KOR)"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1Co 14:32 KOR)": 님께서 위의 저의 글을 자세히 보셨다면 제가 이미 위의 말씀으로 신약의 예언의 은사가 정경을 완성하기 위한 계시를 위해서만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파악하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위의 말씀처럼 예언이 가르침의 은사와 같은 단지 은사이기에 사도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서로 서로 예언을 점검하는 위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사역적 안전장치를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분별"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왜 우리 개혁주의자들은 가르침의 은사가 실행되는 강해설교에 있어서는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예언의 은사 실행되는데 있어서는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지 못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두 번째 성경적 근거를 다룬 후에 살펴보도록 하죠.
2)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1Co 14:37 KOR)": 여기서 우리는 신약의 선지자가 사도의 권위에 귀속이 된다는 것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자들이 틀릴 수 있고 이를 오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인 자신이 계시 받은 글만이 "주의 명령" 즉 정경성을 갖는 계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바울의 글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의 쏟아져 나오는 예언들을 분별하라고 사도는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에서의 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계시를 전달하는 권위가 신약에서는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사도”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요. 그러므로 이 사도성, 즉 사도가 기록한 신약 성경(계시)에 가르침과 목양을 하는 목사와 교사와 복음을 전하는 자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마음에 주시는 것을 말"하는 예언하는 자들은 권위적 귀속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직분과 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비교 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님이 언급한 100% 적중해야하는 예언의 기준은 구약의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이고 신약의 "사도"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역사에 유일무이한 정경을 완성하는 계시를 담당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다른 직분인 목사와 교사 복음을 전하는 자 그리고 선지자 (예언하는 자)는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와 같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바울도 목사인 디모데에게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하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이는 사도성이 없는 디모데가 가르침의 은사에 있어서 틀릴 수 있다는 바울의 염려이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구약과 신약의 계시의 절대성과 탁월성을 서신 내내 강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으로 (불연속성의 관점으로) 보신다면 신약의 예언의 은사도 정경을 완성하는 계시가 아니라 교회에 덕을 세우는 주의 메세지가 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 장로교의 선조들인 존 낙스와 사무엘 러더포드 예언의 은사를 통해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겪었던 스코틀랜드 초기 장로교회를 위로하고 극복할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의 직분과 은사에 대한 불연속성과 연속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 없이 성급히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성경 해석학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인 스코틀랜드 초기 장로교도인 존 낙스와 사무엘 러더포드 그리고 스펄전과 로이드존스를 안이하고 위험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지속론을 주장하는 존 파이퍼를 위시한 개혁주의 그룹 또한 님으로 인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개혁주의 마을 형제분들. 토론의 맥을 위해 게시물들을 따로 올리지 마시고 이곳에서 저를 반박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토론 가운데 주께서 함께 주시길 바랍니다.
20. 위의 저의 글에 대한 한 회원 분의 답변
제자님의 답변을 읽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언의 성격이랄까, 계시로서 예언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 은총 즉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는 하나님,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영을 주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듯 보입니다. 불신자 세계 속에서도 신기한 체험으로 얼마든지 고백 될 수 있는 간증으로서의 수준입니다.
21. 위의 한 회원의 글에 대한 저의 답변
님이 말씀하신 일반적 은총보다는 저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17세기 청교도들은 특히, 매튜 미드는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역사를 "성령의 특별적 사역"이라고 표현을 했고 은사를 베푸시는 역사를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님의 언급한 일반 은총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는 맥락으로 이해를 해도 되겠는지요? 그렇다면 님도 예언의 은사가 "정경의 완성을 위한 계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반적으로 주시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영적 은사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는지요?
22. 위의 저의 글에 대한 한 회원 분의 답변
제자님의 의견을 잘 접수하였습니다. 유사 그리스도인을 설명하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입니다. 의견을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분과 어떻게 객관적으로 님과 견해가 다른 논거에 대해서 논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 큰00교회요? ㅎㅎ 환영 못받아요. 제가 그 교회 목사의 발언이 계시의 종결성을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했거든요. 아무튼 근본주의적 지성으로 함부로 개혁주의 은사지속론 진영을 이상하다고 폄하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은 님에게도, 님의 개혁주의 선조들에게도 누가 되는 행동이니 말입니다. 암튼 님이 존경하는 분들을 제대로 연구하시어 진정한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깨달으시길 바래봅니다.
이상한 걸로 토론한다는 말씀은 사과를 부탁드립니다. 운영자님에게도 님은 사과하셔야겠네요. 님의 생각에 따르면 이상한 것을 주장하는 인물들의 유익한 글을 올려주시니 말입니다.
짧은글 안에 담긴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자신이 보고 싶은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것만 생각하는군요 아무리 봐도 님 이상 합니다.
@Lam Of God 님의 초보적인 짧은 글은 저도 외우고 있는 내용이예요 제 인격을 폄하하기전에 그렇게 존경하는 카이퍼와 워필드에 대해서 반박해보시죠? 인격모독하는 이상하다는 말 사과안하시면 운영자님께 이 일을 공론화하겠습니다
@Lam Of God 참고로 카이퍼,워필드,보스의 글을 읽어 보라는 것은 그들의 은사에 대한 글들 입니다.그리고 파이퍼나 로이드존스의 글들은 저도 좋아 한다고 했습니다.백프로 동의 하지 않는것은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이라 했는데요..근본주의자?진정한 청교도 개혁주의 영성이 무엇인지 고민 좀 해 보세요 어쨌든 님 마음에 안들었슴 사과 합니다
@제자 초보적인걸 이해 못하는 님의 수준은?
예언을 통해 깨닫지 못 했나요?
@Lam Of God 님이 필요하겠는데요? 그 진정한 청교도 개혁주의 영성에 대한 정의요. 조엘 비키가 카이퍼의 오류를 어떻게 지적하는지나 생각하세요. 님이 존경하는 자들의 가정적 중생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이 은사지속론보다 치명적인 것을 왜 모르시나요?
@제자 자신이 진정한 개혁주의자로 치켜세우는 자들의 오류도 모르는채 눈감고 믿는 반지성주의에 무슨 개혁주의가 있겠습니까? 님이나 정리하시고 공부하시죠
@제자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신학체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하고 어떠한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토론이 가능하겠습니까? 참 안타깝네요. 님보다는 제가 카이퍼나 워필드의 저작을 더 제가 읽은 것 같습니다만?
님 자꾸만 주제를 비껴 가시네요
은사에 대한 내용을 한번 읽고 비교해 보라 한건데..그리고 저는 존경한다고 안했습니다.너무 오버 하네요 글 한번 읽어보라 했다고..사실 파이퍼 목사님의 기독교 희락주의를 더 좋아하는 편이지요
그들이 로이드존스와 파이퍼보다 진정한 개혁주의라면서요? 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나요? 이미 발언을 그렇게 했자나요?
은사에 대한 내용 비교요? 걱정말아요 님보단 카이퍼와 워필드 저작들을 더 많이 읽어봤으니 말입니다. 참 논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영웅심만 가득한 님과 무슨 대화를 이어가겠습니까? 진정한 개혁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존경하는 것이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말도 바꾸시네 이제. 토론할 준비가 안되신듯 하네요. 인신공격에 대한 사과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이시죠
@제자 참 생각할 수록 어의가 없습니다. 가정적 중생론, 신칼빈주의 그리고 유신론적 진화론도 모르면서 그들의 책들을 추천하다니요? 추천하는 님보다 추천받는 제가 더 그 책들을 탐독한 상황인 것 같은데요? 이상하다는 말로 인신공격한 것에 대해서 제대로 사과하시고 제대로 그에 대한 태도를 보이시죠.
@제자 운영자님도 위의 토론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받아주고 계신데... 님이 말로 오바를 많이 했네요. 제대로 인신공격을 한 것을 사과하시죠. 공론화 시키겠습니다.
@제자 인신공격? 심한 난독증 좀 고치고
토론에 임하길 바랍니다.
인신공격이면 님한테 이상한걸로 이렇게 말한게 아니라 님한테 이상한놈 이라고
했겠죠 아님 정신 나간 덜 떨어진넘 이라 했거나 너 같은 넘이 무슨 사역이냐 이게 인신공격이죠 ^^
너무 무리수 둬서 앞서가지 말아요
님이 자랑하는 그 지식과 은사가
추해 보여요
@Lam Of God 심한 난독증? 자기가 추천하는 자들의 신학도 모르는 그 추함은 왜 모르나요? 님이 이상하다 라는 님의 발언은 제 인격말고 무엇을 말합니까? 암튼 다음에 추천할때는 책 좀 읽고 추천해주시죠. 제가 다 낯이 뜨듯하니깐. 왜 부끄러움이 내 몫이죠? 님의 그 추함부터 씻으세요. 자기가 존경하는 자들의 신학도 모르고 칭송하는 반지성주의와 영웅주의 말이예요
@제자 님에게 필요한건 지성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고 성령의 불방망이 같군요..ㅉㅉ
어쨌거나 내 글로 인해 제자님이나
다른분들이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 드립니다..
기분 풀리셨나요 예언자님?
참 기도중에 메르스 사태는
어떻게될지 말씀 안해 주십니까?
@Lam Of God 이제 조롱까지하네요? 성령의 불방망이? ㅎㅎ 님 제대로 집에 사진찍어 올리자는 그분들의 책들이나 다시 읽어보시고 추천해주세요 그리고 함부로 말하지는 마시죠? 님의 인격의 미천이 지식의 미천과 함께 드러나고 있으니깐. 제대로 사과하시죠. 그래도 숭사리 때부터 개혁주의를 위해 함께 변호한 사이가 아닙니까?
@제자 조롱이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묻는건데
성격이 참 많이 삐뚤고 안 좋네요
은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이상한 공통점이죠 남는게 자존심 뿐인지..
성경에서 예언할땐 보통 국가의 환난에
관해 예언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줄 알았지요..
개인사는 우리 옆집 점쟁이도 예언을
잘 하더라고요
@Lam Of God 제 연배도 모르고 성격을 폄하하면서 인격모독을 하는 님은 밥상머리 교육부터 받아야겠군요. 이거 신학 토론이 문제가 아니라 중고딩 도덕책이 필요하겠는데요? 진정한 개혁주의라고 님이 말하던 카이퍼와 워필드의 신학적 오류인 가정적 중생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해 지적하니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도 못하고 원래 파이퍼 좋아한다고 말이나 바꾸고 님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글로 자신의 논증도 이어가지 못하면서 무슨 토론입니까? 그리고 비뚤어지게 고투리나 잡고 참 한심합니다. 그리고 님의 지운 댓글에 각자가 집에 있는 카이퍼와 워필드 책들을 찍어 인증샷을 비교하고 누가 더 개혁주의자인지 알아보자는 님의 충동적이고 유아적인
@제자 짧은글의 내용도 이해도 못하고
인격모독 운운하면서 거품 뿜어 대는것은 님 아니었습니까
은사에 관해 토론 하면서 카이퍼의 중생론과 워필드의 유신적 진화론은 들먹입니까?촛점을 전혀 못잡으시나요? 글 읽어 보라 그러면 당연히 토론 주제에 관한 글 아닙니까?
게할더스 보스는 왜 빼는지 ..ㅉㅉ
님이 하도 글 많이 읽었다 자랑질 하길래 궁금해서 책 사진 찍어 올리라 그랬던건데 나도 잠시나마 님 같은 수준이 된거 같아 글 지운 겁니다.
댓꾸 하기도 지겹네요
님 닉넴은 거꾸로 하셔야 할듯
님은 제자가 아니라 자제가 필요 합니다. 교만과 아둔함의 극치를 달리는군요 그나저나 메르스 사태는
어찌 됩니까?자제님
@제자 거봐요 사진찍어 누가 더 개혁주의자
인지 알아 보자 내가 그랬습니까?
카이퍼와 워필드의 책이 누가 더 많은지 확인 하자 그랬지요?
자기 맘대로 말 갖다 붙이시고 혼자 열내고
사과나 하라 그러고 참나..
열내기 전에 글이나 차분히 읽어 보길 바랍니다.자제님
@Lam Of God 유치한 것 뿐만 아니라 반말짓거나하고 교만과 아둔이라고요? 님의 글에 차분하게 읽어 볼 만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흥분하시네요. 스스로 당신의 지식과 인격의 미천을 드러내니 한심합니다. 이거 하나의 코메디인데요?
@제자 개혁주의자 이전에 인간이 좀 되십시요 님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 개혁주의자가 욕을 먹는거예요 중단론진영의 분들이 님의 만행에 다들 식겁하시겠네요 님은 적군입니까? 아군입니까? 걍 트로이 목마입니까? 사진 찍자는 것 인정하시네요? 참 유치하죠?
발언에 아직도 실소를 거두지 못하고있습니다. 님의 글들을 이때까지 보고있지만 논증을 하지 않고 누가 이랬으니 이책을 봐라는 식으로 초보적인 명제적 우김만이 있더군요. 그리고 제가 언제 예언의 은사가 개인적으로 제게 있다고 하였습니까? 파이퍼처럼 신학적인 인정이지 그런 것은 부족해서 없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이퍼와 워필드의 신학체계도 모르고 진정한 개혁주의자라고 추켜세우는 님의 수준에 마음이 짠하네요. 조롱을 안했다고요? 양심이 있습니까? 제 삼자한테 님의 댓글을 읽혀보니 다들 웃더라고요. 참 이런 수준의 유아적이고 충동적인 댓글은 평생 처음이네요.
분명한 것은 님이 먼저 내가 이상하다고 말했고 저는 이것을 인신공격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사람이 이상한게 인신공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리고 위의 카이퍼와 워필드에 대한 저의 논평에 대답할 지식도 없으니 절 무당 취급하고 조롱이나 해대니... 이제 안쓰럽기 까지 않네요. 항상 토론하다보면 논리와 지식에 밀리는 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님에게도 보게 되니 참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경고합니다. 님이 카이퍼와 워필드에 대한 저의 논평을 비겁하게 피하지만 않았어도 인신공격과 고투리잡는 형태의 댓글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점 파악 불능과 심각한 난독증과 말바꾸기... 참담합니다.
경고합니다. 함부로 입을 사용하지마시죠. 마지막으로 에드워즈가 한 말이 생각나네요. 이성적이지 않은 인간과는 대화를 하지마라.
님이 이상한다는게 아니라
토론이 주제가 이상하다는 것이라
분명히 말했습니다.
둘째.로이드존스와 파이퍼 글들은
저도 좋아하고 읽는다 분명히
밝혔습니다.
셋째.토론의 주제는 은사에 대한 내용 입니다.님은 그 주제를 벗어 나셨고요
그리고서 이해하지 못한체 혼자 거품물고 사과하라 어쩌라 내가 글을 더 읽었다는 자랑질과 함께
인신공격을 한 사람은 오히려 님 입니다.사과 하세요
님의 글을 살펴본 결과 님이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토론할 가치를 못 느꼈습니다.
물론 시간도 없고요
박창진 목사 이후 참 잼난 분을 만났네요 기분푸세요
님이 이겼습니다.자제님
메르스 사태가 진짜 어찌
되는지 예언 좀 해주세요
제자님
@Lam Of God 예언의 은사가 없다는 제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댓글을 다는 님의 인격을 보며 유치함이 오늘 하루 종일 가시지 않을듯하네요
@Lam Of God 윗 댓글이 말해주고 있음에도 님 각색실력 만큼은 수준급이네요
1. 자신의 쓴 글도 독해못합니까? 님이 나를 지칭하여 이상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교활한 입으로 또 말바꾸네요?
2. 님이 로이드존스와 파이퍼는 동의하지않고 진정한 개혁주의자는 카이퍼와 워필드와 보스를 추켜세우길래 그들의 신학적 오류들을 제시해드렸더니 아는 바 지식이 없으니 함구하시지 않았습니까?
3. 님이 은사에 대한 주제로 진행한 논증이 뭐가 있습니까? 기초적 발언 이외에 한 것이 뭐가 있어요? 자랑질? 님의 대답을 부탁한다는게 자랑질입니까? 토론할 지식도 없으면서 입을 사용하기에는 좀 아깝지 않나요? 바쁘게 사시고 다시 안봤으면 좋겠습니다
@제자 <아무리 봐도 님 이상합니다>라고 램님이 말했지 않습니까? 이게 어딜봐서 주제가 이상하다는 표현인가요? 참 말바꾸는 개혁주의는 또 처음 보네요. 변종 개혁주의입니까? 참 상식과 예의를 갖추시길
아 너무나도 좋은 토론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죠? 두 분 다 진정하시구요~ 제가 제 삼자입장에서 볼 때 Lam of God님 제자님한테 이상하다고 하시면서 먼저 인신공격을 하신 것이 맞는 것 같구요... 글고 Lam님이 토론을 피하시고 자꾸 주제에서 빗나간 발언들을 하시니 이 토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와 진짜 배웠다는 분들 수준이 ... 다 똑같 습니다 토론은 없고 인심공격이나 하시고. 지식만 쌓지마시고. 유치해 보입다 마음에 할례나좀 받으세요!
뭐좀 배우러 왔더니.. 에휴
계시의 종결성은 성경으로 끝이 났지만. 예언은 지금도 있을수 있다는데? 뭐가 그렇게 받아 드리는게 힘든지? 2000천년전에 예수님은 지금 안계시나요...
그분의 뜻에 따라. 여러은사들이 난립하지 않고 질서 있게 행하심을 왜 안믿는건지?
예언의 은사? 그거 용한 점쟁이 이름인가요?~~~ 난 또 목사, 선생의 직분을 말하는줄 알았네...그 예언이 아니라 그예언 이었군요...점쟁이 귀신들여 헛소리하는 무당.. 그래이스님 애쓰시네 ..그리고 님들 논쟁하다가 서로 욕도 하고 그러세요 뭐 어떻습니까? 열받으면 서로 할 수 있는거지 🤣
존파이퍼가 모망이 든 모양이네...어느 동네 허접 쓰레기인지는 모르겠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