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農幕)
작년 1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에 밭에다 농막을 지었다. 18년 전에 범서읍 중리에 소재하는 지지(知止) 마을의 끝 산자락에 인접한 땅 사백여 평을 산 적이 있다. 그때는 경운기 정도 다니는 농로로 1.5㎞가량 들어가서 또 논두렁길을 백여 미터 가야 도달하는 맹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되어서 밭 근처까지 가는 데는 한결 좋아졌지만 그놈의 백여 미터 논두렁길은 해결될 기미가 영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3년 전에 밭에 접한 산의 주인을 만나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주고 길을 냈다. 비록 비포장 돌길이지만 밭까지 차가 들어가자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흡족함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뭔가 부족함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마냥 길이 났으니 이제 앉아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조립식 정자(원두막)를 찾아 주문했다. 아침 일찍 1톤 트럭 가득 목재를 싣고 온 두 사람은 오후 네 시도 되기 전에 정자를 완성했다. 이제는 앉아 쉴 수도 있고 또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책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성에 차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농기구를 넣을 창고가 필요했고, 낮에는 일하다가 밤이 되면 한잔 마시고 잠을 잘 농막이 필요했다.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하게 되는데, 그때 와서 시간을 보낼 공간이 있어야 했다. 퇴근 후에 평소에 가지도 않던 등산을 가고, 평생 손에 잡지 않았던 붓을 잡고 붓글씨를 쓰는 먼저 나간 퇴직 선배들의 근황을 들을 때마다 그저 한숨이 나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틈만 나면 유튜브로 농막과 관련된 동영상을 보는 게 일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에 드디어 하우스를 짓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터를 고르는 공사를 하기 전에 치워야 할 잡다한 쓰레기들이 너무 많았다. 지난 십 년도 넘는 기간 동안 쓰고 버린 빈 퇴비 비닐포대는 밭 구석탱이에서 큼직한 언덕을 이루었고, 하나둘씩 버린 유리병, 패트병, 캔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또 그동안 사용하고 버린 검정 비닐도 돌돌 말린 채 쌓인 게 엄청난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70리터짜리 스무 장이 금세 동이 났다. 집사람과 내가 근 열흘간 고생한 끝에 밭은 치울 게 없는 자연 그대로의 청정 구역이 되었다. 몸도 피곤하고 돈도 제법 들었지만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마음만은 개운했다.
농막은 폭 7m, 길이 14m의 하우스로 지었다. 평수로 따지자면 33평에 해당한다. 그 하우스의 내부는 중간에 칸을 질러 넓은 쪽은 생활 공간으로 하고 좁은 쪽은 창고로 쓰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평상을 주문하고 탁자, 앵글 선반, 유리창을 가리는 블라인드 등 많은 것들을 구매했다. 아파트에 내놓은 폐기물 중 쓸만한 것이 있으면 바로 밭으로 날랐다. 학교에서 대공사로 집기들을 교체할 때 아예 용달차를 불러 농막에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왔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찬장, 서랍장, 철재 및 목재 캐비넷, 싱크대, 순간온수기 등이 모두 이때 구비되었다.
이제 농막에 손님이 찾아오면 유리 테이블 위에 전기 프라이팬을 놓고 밭에서 재배한 야채로 삼겹살을 쌈 싸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일하다 피곤하면 평상 위 전기장판에서 하룻밤 묵고 갈 수도 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밭 아래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와서 자연 속에서 한잔하면서 담소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나의 농막에는 꼭 갖추어져야만 하는 부족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밭으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2차선 포장도로까지는 잘 오지만 약 5백 미터 거리의 농로 초입이 너무 좁아 간이 담력이 적은 사람들은 아예 진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농로 한쪽은 키가 넘게 돌로 쌓은 논둑이고 또 다른 쪽은 두어 길 낭떠러지라 타이어가 빠지거나 문짝을 돌에 긁히는 일이 잦다. 내차도 양쪽 문짝이 모두 돌에 깊이 패여 흉측게 녹이 슨 채 방치되어 있다. 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돈을 들여 수리해 봐야 언제 다시 긁힐지 모르기 때문에 고치는 것도 포기한 상태다. 그 농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초입의 땅 주인에게 부탁해도 그분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두 번째는 하우스 안에 방을 넣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판넬로 서너 평짜리 방을 만든다는 말이다. 현재도 나 혼자일 때는 평상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누워 잠을 자기도 하지만, 추운 날씨의 겨울이거나 손님이 몇 명 왔을 때는 평상 위에서 잠을 자기엔 부적합하다. 벗들을 불러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잠이 드는 것이 나의 로망이기에 빨리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셋째, 화장실의 설치다. 물론 인터넷으로 구매한 간이 변기가 있다. 하우스 안의 창고 칸에 있는데 볼일을 본 후에 내용물이 담긴 부분만 빼내 밖에다 버리고 물로 헹군 후에 다시 끼우는 구조다. 혼자, 아니 우리 식구만 있으면 이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하우스에 손님이 왔을 때 이 간이 변기를 사용하라고 권하기에는 좀 뭣하다. 통풍이 잘되어 냄새가 적게 나고 위생적인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도 나의 농막이 안고 있는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202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