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4장 13-35절
제목 :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동행
예수님은 우리들과 말씀을 나누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부활신앙을 갖게 하십니다. 성도라 할지라도 실의에 빠져 믿음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동행하면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신앙을 갖는 일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신앙의 열정, 삶의 열정을 되살려줍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살아계실 동안은 주님께 소망을 두고 그를 따랐지만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는 마치 부모를 일시에 잃어버린 고아와 같은 쓸쓸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글로바라는 자와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슬픈 빛을 띠고 낙망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 25리 정도 떨어진 엠마오라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엠마오는 따뜻한 우물이란 뜻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좌절과 실의에 차있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좌절과 패배감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좌절의 늪에서 실패를 안고 제자들처럼 세상으로 내려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찾아오십니다.
1. 눈이 가리워진 제자들(13-27절)
엠마오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슬픈 발걸음입니다.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고 모든 것이 헛된 꿈과도 같고 허황된 일로 여겨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있는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자신들과 동행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15-16절)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생각했지 정작 부활하심으로 그들의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역동적인 삶으로의 변화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자신이 가진 과거의 의식이나 시각에서 벗어나 새롭고 획기적인 차원의 의식 변화나 영적인 대각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똑같은 사물이라도 예술가의 눈으로 혹은 전문가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서 늘 시험과 낙망 속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19절) 예수님은 선지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계시기는 했지만 선지자는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의 증거를 받으신 구세주이십니다. 선지자로 믿은 그들은 그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자로 바랐습니다.(21절)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야가 아니라 영광의 메시야로 그가 유대인의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그런 분인줄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죽은 이 마당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믿음에 낙심하고 인생에 실패하여 자신들을 부요하게 해주시고 자기에게 복을 주실 줄 알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되었을 때 이들처럼 예루살렘(교회)를 떠나 엠마오(세상)로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슬픔 속에 잠겨 주님을 생각하면서 엠마오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을 돌이키게 하시려고 엠마오 길에 동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사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당하신 주님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음성을 다 듣고 생각을 다 아십니다.(말3:16, 마12:36) 예수님에 대한 대화는 예수님을 그들 앞에 가까이 이르게 하시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게 했으며 그들로 진리에 이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을 자세히 풀어주셨습니다.(요5:39)
2.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 두 제자(28-36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나그네 걸음을 같이 걸으며 목적지에 이른 후 함께 유하실 것을 강권하여 한 집에 들어가 식사하실 때 주님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에 그들의 눈이 열려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알아봤지만 강권하였음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절박한 심정으로 간청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제자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어떤 자의적 깨달음이나 발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뜨거워짐”이었습니다. 저들을 새로운 감동과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무성의와 안일함으로 우리들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그냥 가시게 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도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차디차고 닫혀 있으며 강팍하고 무관심한 마음에 어떻게 새로운 시각이 열리겠습니까? 제자들의 눈이 열려지게 된 원인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비적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이 함께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었던 가르침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다는 말은 어떤 심리적인 마음의 변화라기보다는 밖으로부터의 성령의 이끌림을 통한 감동적 기쁨과 황홀케하는 초월적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즉 말씀을 점차 깨닫게 되면서 점점 더 뜨거워지다가 어느 순간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능력의 주님을 만나는 중요한 요인은 다름 아닌 말씀을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성령은 말씀 속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을 풀어주실 때에 그들 속에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말씀에 귀가 열려도 영적인 눈을 뜨게 되기는 쉽지 않은데 더구나 귀를 막고 있다면 눈을 뜨기는 더욱 불가능할 것입니다. 말씀은 성령을 실어나르는 그릇과 같고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듣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활력과 확신 그리고 충전된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합니다. 우리도 역시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하여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큰 기쁨을 가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좌절과 실의에 빠져 내려가는 성도들을 격려하시고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내려오던” 길을 거슬러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눈이 밝아지면서 그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영안이 열리고 사업과 경영의 눈이 떠지고 학업과 기술의 눈이 떠지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마본 가족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길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함으로 우리로 강팍한 마음을 녹이게 하고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게하여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시대에 맞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길에 동행하시며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하기 위하여 소망을 갖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있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예루살렘인 교회에서 늘 예수님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시는 예마본 가족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