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해랑길 진도 8코스 제4부
죽림마을입구-시앙골해안-깃대봉자락길-
탑립해변-탑립마을-강품미재-탑립임도-
귀성마을-아리랑마을-국립남도국악원
20230305
1.코스 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진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남도의 민속, 문화, 예술의 혼이 남아있는 코스
- 길이 22.8km, 소요시간 7시간 30분, 난도 어려움
2)관광포인트
- 해송이 어우러진 바닷가에서 조개잡이, 개매기체험을 즐길 수 있는 '죽림어촌체험마을'
- 국악 연구와 보급에 앞장서며 공연, 교육, 체험 등 진행하는 '국립남도국악원'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110-1 운림산방주차장
대중교통) 진도공용터미널에서 사천-쌍계사 방면 버스 승차 '운림산방, 첨찰산'정류장 하차
- 종점 :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1370 국립남도국악원
대중교통) 진도공용터미널에서 농어촌 탑립-죽림 버스 이용, 귀성리 하차 도보 680m
- 진도신비의바닷길이 열리는 시기에는 다양한 체험행사와 축제가 개최됨
- 군립민속예술단이 펼치는 민속공연 볼 수 있음
- 주요 경로 : 운림산방주차장 1.0Km 삼별초공원 10.0Km 송정지 10.5Km 아리랑마을관광지 입구 1.3Km 귀성삼거리
2.진도 탑립마을과 여귀산, 곽의진과 박남인을 기리며
제4부 : 임회면 죽림리 마을 입구 갈림길의 이정목 날개에 아리랑마을관광지 5.7km, 종점 6.3km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잠시 허둥거렸다. 이곳에서 깃대봉 해안의 정코스와 여귀산 자락의 우회코스가 갈라진다. 마을 주민 한 분이 풍경이 아름다운 해안길을 추천하여 우회코스 대신에 죽림길을 따라 죽림리 깃대봉 해안으로 나갔다. 죽림리 시앙골을 지나 깃대봉 해안을 따라가는 깃대봉 자락길에서는 남쪽으로 활짝 열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바닷길을 살필 수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전남 완도군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에서 진도군 맹골수도(孟骨水道), 관매도(觀梅島)와 조도(鳥島)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접도가 길게 누워 있고, 그 오른쪽 구자도 4개의 섬들은 올망졸망 붙은 듯 떨어진 듯 나란하다. 서쪽에는 다섯 개의 산봉들이 이어져 있다는 오봉산이 솟아 있고, 오봉산이 바다로 떨어지며 삐죽하게 나온 상당곶(上堂串) 왼쪽 뒤에는 임회면 굴포리에 소속된 죽도가 초연하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배를 타고 이 바닷길을 따라가고 싶다. 그런데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 진상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희생된 청춘의 영혼들이 날개 잘린 새가 되어 바다 위를 날지 못하는 환각에 잠겼다.
진도 깃대봉에는 다정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열린 콩알만 한 열매들이 한겨울을 나고 봄날에 검은 자주색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길손에게 말을 던진다. 쉬었다 가세요. 무엇이 급하다고 산과 숲, 바다가 어우러진 진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쳐가세요. 미안쿠나, 길동무가 서둘러서 나 또한 그를 따갈 수밖에 없구나. 다정큼나무는 둥글고 윤기 나는 잎, 깜찍한 꽃, 옹기종기 모여 달리는 열매 등이 예쁘고 전체적으로 다정하게 크는 나무라 해 붙여진 이름이며, 꽃말은 ‘친밀’이라고 한다. 다정큼나무의 하얗게 피어나는 친밀한 꽃은 5월에 볼 수 있다.
오봉산이 죽림리 바다로 내닫으며 삐죽 돌출한 곳을 상당곶(上堂串)이라 이르며, 그 오른쪽 오봉산 아래에는 진도를 대표하는 故곽의진 작가의 집필실 자운토방이 있다. 자운토방 앞뜰에 그녀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묘비에는 곽의진(郭義珍, 1947~2014) 선생의 장편소설 <꿈이로다 畵緣일세> 제목이 적혀 있다고 한다. 진도의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선 진도의 대표 시인 故박남인(朴南人, 1960~2023)은 곽의진 작가를 이렇게 읊었다. "그녀는 날마다/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이었다/ 어디에서도 솟아오르면서도/ 새처럼 날지 않았다/ 밤이 싫었다/ 저녁노을이 물들면/ 이 가난한 목에 머플로를 감고/ 강계로 갔다/ 여귀산이 지겨워 돌아선/ 돌탑을 가슴에 품고/ 하루에도/ 아침에서 밤에도/ 여귀산 동백꽃 붉은 꽃잎/ 꽃잎 속 하얀 자궁에/ 그 노란 분가루를 뿌렸다/ 찻잎이 되고 싶었다/ 저수지에 빠진 죽림사/ 맥놀이 종소리가 되고 싶었다/ 나 돌아가고 싶다/ 치마를 둘러 입을 때마다/ 아버지는 학이 되었다/ 모든 시간들은 동백꽃이다/ 누구나 바다를 건너고/ 모두 산이 된다/ 쓰러지는 그 자리가 꽃밭이다/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죄를/ 갯샘 물로 씻는다." - 박남인의 '탑립마을 자운토방' 전문
깃대봉 자락길을 내려가면 탑립 해변이다. 오봉산은 우뚝하고 상당곶(上堂串)은 탑립 해변 서쪽에 돌출해 있다. 곽의진 작가의 생전 집필실 자운토방(紫雲土房)은 아낙들이 봄동을 캐는 밭 건너편에 있는 것 같다. 오래전 여귀산 산행 때 곽의진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에야 다시 이곳 여귀산 자락에 왔다. 세월이 무상하다. 탑립길에서 자운토방을 향하여 머리 숙여그녀를 추모하였다. 탑립길을 따라 탑립마을로 올라간다. 여귀산(女貴山)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는데 상만리로 옮겼졌으나, 예전에 있던 탑 때문에 ‘탑립(塔立)’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언덕 탑립길에 돌탑들을 줄지어 조성하여 탑립(塔立)마을을 증거하고 있다.
탑립마을을 지나 탑립길을 따라 올라가면 국도 제18호선 진도대로와 탑립길이 만나는 강품미재 고개에 이른다. 강품미재는 강풍미재라고 불리는 것 같다. 이 고개에 '소설가 곽의진 文藝學堂' 표석, 곽의진 작가의 시비와 돌탑 등이 세워져 있다. 곽의진 작가의 시비에는 '솟는 해를 보았는가 그대' 작품이 적혀 있다. "여귀산 아랫자락 오봉에 올라/ 갓 잡아 올린 힘센 숭어처럼/ 허덕이는 소망을 품고 기다린다// 해무를 헤치고 시나브로/ 태초의 꿈이 꿈틀댄다// 거룩한 한반도 끝 남녘 바다/ 저 켠 하늘가 붉게 물들면서/ 섬과 섬 사이로 솟아오른다/ 천년을 살아/ 솟아오른 붉은 햇덩이/ 찬란하다"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서는 여귀산과 오봉산이 신성시되는 것 같다. 여귀산은 진도지맥을 이루는데 여기서 분기한 산줄기가 죽림리 바다로 떨어지며 오봉산을 일으키는데, 故곽의진 작가는 이 오봉산의 산봉을 자운봉(紫雲峰)이라 이르고 자신의 집필실을 자운토방(紫雲土房)이라 이름하였다.
故박남인(朴南人, 1960~2023) 시인은 진도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여귀산(女貴山)을 이렇게 읊었다. "그곳엔 분명 신이 산다/ 새벽 안개가 도장기미에 닿을 때면/ 나무들은 푸른 머릿결을 감으러/ 죽림 바닷가로 걸어 내려간다/ 봉수대 위에 등신불로 길게 누워/ 소신공양을 하던 나무들/ 남도석성 선소 바닷가에 모여들던 삼별초/ 물에 부은 병사들 산딸나무 열매로/ 검붉게 젖은 발들 태웠던 배가 되었다더라/ 남동 후박나무숲에 살던 김대례/ 큰당골은 씻김을 할 때마다/ 소문의 파도살에 소박맞은 여인이/ 호랑이굴을 타고 올라 마고신녀가 되었다며/ 나무나무 나무야 노래 불렀다/ 산에 기대여 사는 것/ 여귀산 등성이 동백꽃으로/ 살아간다는 것/ 할롱 물살따라 까만 바다옷이 뜬다/ 하루하루가 개펄에 숨바꼭질하는/ 대바구 신세가 낮술을 뿌린다/ 장구포 멀리 바라보면/ 여귀산은 질베 위에 드러누운 나신이다/ 갯샘 들기름 한 병 머리에 이고/ 벌바우골 오르는 신녀들의 산/ 접도 구자도 대섬 갈매기섬/ 산타령이 둥둥 떠 다닌다." - 박남인의 '여귀산' 전문
강품미재 고개 탑립길에서 탑립임도를 따라가며 방금 걸어온 깃대봉 해안과 접도를 내려본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여귀산 정상에 올라서 감상할 때 진면목을 살필 수 있다. 지난 시절의 여귀산 추억을 떠올리며 그 풍경을 눈앞에 그린다. 아름다움에 몸을 떨던 시간이 오롯이 살아온다.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탑립 임도는 임회면 죽림리와 상만리를 경계한다. 상만리는 임회면 법정리이고 귀성리는 그에 소속된 행정리이다. 죽림리와 작별하고 귀성리 들녘을 내려보며 귀성마을로 내려간다. 예전에 이곳이 황금리라 불렸기 때문에 지금도 옛 지명을 살린 황금기미 포구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포구에는 귀성리 짹별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포구 안쪽에는 귀성마을, 중앙의 들녘에는 월평마을이 자리하여 귀성리 지역의 마을은 세 군데에 분포하고 있다.
귀성리를 아름답게 하는 자연 풍경은 여귀산과 오봉산, 황금기미 포구일 것이다. 귀성리를 문화적으로 귀성(貴星)답게 하는 것은 국립남도국악원과 아리랑마을관광지일 것이다. 장고 모양으로 건축된 아리랑체험관과 여귀산 서쪽 자락에 넓게 자리한 국립남도국악원은 진도의 문화적 정신의 빛을 드높이 휘날리는 진도의 문화적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을 곽의진 작가와 박남인 시인이 이끌지 않았을까? 박남인 시인은 '진도문화원'의 <진도문화> 편집국장과 <예향진도신문>의 필진으로 진도문화를 이끌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박남인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바다>(2012) '자서(自序)'에 자운(紫雲) 곽의진 작가는 그의 시집을 이렇게 칭송했다. "고향 노래 불러주는 시인 있으신 것 고맙고, 고향에서 그대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 고맙고, 막걸리도 고맙고, 빛나는 5월 아카시아 향도 고맙습니다. 어느 곳에서, 반쯤 취한 채 청징淸澄한 시어 줍는 그대 보았습니다. 꾸미지 않은 진정성 돋보입니다. 왜일까요? 박남인 시인의 시를 읽는 동안 가슴이 뜁니다. 마치 내가 첫 작품집을 만들 때와 같은 울렁거림입니다." 그로부터 8년 뒤 2020년 <몽유진도> 시집을 출간하고 3년 뒤 박남인 시인은 작고했다. 진도 출신의 장진희(1961~) 시인은 박남인 시인을 보내는 마음을 눈물겹게 이렇게 토해냈다.
덕분에/ 따듯했던 마음/ 풍요로웠던 영혼/ 그 시절 가는구나// 마른 바람 분다// 너는 감나무집 아들이었다/ 굽은 허리 굽은 손가락으로/ 나물 무쳐주고/ 막걸리 내오시던 엄매가 애두로워/ 아깝디아까워/ 술동무들 몰고 가던/ 운림산방 쌍계사 앞/ 감나무집/ 막내아들이었다// 절집 목탁소리 들리고/ 아름다운 꿈 그리는 붓질 소리 들리고/ 아배의 아리랑이 석달열흘 이어지던/ 감나무집// 아배 엄매도/ 감나무집도 떠나고/ 눈에 잡힐 듯 숨어 있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찾아나선 네 영혼// 흰 가운 입은 아내를 따라/ 닻배소리 닿는 섬 섬을 타고/ 탑이 서는 마을을 지나/ 강강술래 노는 소리 가득찬/ 시앙골 갱번을 돌아/ 여귀산 밑에 섰다/ 짠물에서도 말갛게 솟아나는/ 강계 갯샘은/ 네 시어의 발원지였다// 와경산수처럼/ 드러누운 그리움이/ 네 발길마다에 찍힐 때/ 네 시어는/ 두서도 없이 퐁퐁/ 누워서도 솟아났다// 봄이 늦게 오는 바닷가 마을에/ 샛바람 불어오면/ 청자네서 다시 만나/ 막걸리 한잔 기울이자고// 바다는 뒤집어지고/ 파도가 하얗게 소나무숲을 할퀴는 날/ 앞섶을 열어제쳐 보자고// 여귀산에서/ 하늬바람 불어와/ 강계 조개들 눈 뜨면/ 청자네가 갯벌에 나가 캐온 조개에/ 막걸리를 딱 한잔만 하자고// 헛된 약속을 했다// 그 바다에서 너의 넋처럼 건져 올린/ 미역과 다시마를 팔아/ 오늘 나는 장터에서/ 할매들 꾸깃꾸깃한 지폐/ 애써 다듬어 펴서/ 너의 노잣돈을 마련한다// 쑥물 향물 청계수/ 씻김 받고/ 선녀 같은 호상들 이끄는/ 꽃상여 타고/ 애소리 들으며// 가라/ 이승의 아름다움 모두 안고/ 한번이면 족했던/ 시절도 안고/ 영영/ 가라/ 아리랑 강강술래 놀며/ 닻배노래 부르며/ 하늘로 배 띄워라" - 장진희의 '떠나는 종호에게' 전문. *박남인은 박종호의 필명이자 가명으로, 80년대 당시 수배중일 때 쓰던 가명이라 한다. 남쪽 사람 남인.
국립남도국악원 앞에서 길고 긴 서해랑길 8코스 탐방을 끝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상살이에서 연고가 없는 먼 남쪽 끝 진도 섬에 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진도에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은 크다. 왜? 진도 사랑의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보도여행안내팀 버스는 국립남도국악원 앞에서 서울을 향해 출발한다. 진도와 작별하며 곽의진 선생의 장편소설 <꿈이로다 화연일세>에서 추사 김정희가 해남으로 떠나는 초의선사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읊은 이별시로 무상함을 달랜다. "만나자 이별이니 이런 슬픔 또 있을까/ 헤어지기 어려워 발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내가 그대의 시를 매일 읊을 것이니/ 그대의 시를 좀벌레가 슬지는 않을 것이네/ 덧없이 늙어가는 이 한 몸/ 소매에 스며드는 가을빛 기운 쓸쓸한데/ 그대 뱃길을 마름풀이 붙잡을 것이네/ 해남현으로 그대가 떠난 후/ 나는 국화 피고 지는 것 보며 이 외로움 달래리라"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4.7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49분
서해랑길 이정목은 정코스 탐방로인 해안길로 안내하여 아리랑마을관광지 5.7km, 종점 6.3km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죽림마을을 거쳐 여귀산 자락의 우회로로 탐방하려던 탐방객들이 되돌아온다. 왼쪽 뒤에 여귀산이 솟아 있다.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여귀산은 진도군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세의 규모도 커서 임회면 동북부를 거의 덮고 있다. 임회천의 발원지이며, 18번 국도가 남쪽 산록을 지난다. 임회면 용호리 용호마을에서 보면 산의 모습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귀산은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오르면 산록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식생이 무척 우거져 있다. 반면 산 정상은 상당히 오르기 힘든 바위산으로 되어 있다. 산지 주능선과 산정에서 남쪽을 조망하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볼 수 있고, 아래로 오봉산과 연대산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일출과 낙조는 유명하다. 정상부의 산죽 군락지는 그 옛날 정상에 봉화대가 있어서 봉화대를 지키던 봉화수들이 기거했던 곳인데 호랑이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여귀산의 전해오는 명칭 유래는 없다. 계집 녀(女)자에 귀할 귀(貴)자를 쓰고 있는데, 여자 산신령이 다스리는 산으로, 귀한 여인이 나올 풍수를 지녔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산지 모습이 마치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가 가야금을 타는 형상이라 하여 풍수지리가들은 옥녀탄금형의 산이라 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안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다 뒤돌아서서 죽림리 안들을 내려본다. 오른쪽 맨 뒤에 봉호산과 무지개재가 가늠된다.
죽림길을 따라 죽림리 해안으로 나간다. 오른쪽 밭에 진도의 명품 대파가 자라고 있다.
왼쪽에 죽림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죽림수산이 있다.
해안으로 나가는 죽림길 오른쪽 빈터에 그물을 펴서 말리고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이어간다.
왼쪽 바다는 죽림어촌계 어장이므로 바다 생물을 채취할 수 없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앞의 골짜기는 시앙골이라 이른다.
해안으로 나가는 죽림리 시앙골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여귀산이 왼쪽 뒤에 보인다.
죽림리 시앙골에 세워진 이정목은 글씨가 지워져 있다. 죽림 시앙골~탑립, 거리 6km, 소요시간 55분이라고 적혀 있다.
시앙골에서 해안으로 나와서 걸어온 시앙골을 돌아본다.
중앙 뒤쪽 언덕을 넘어 죽림리 시앙골로 내려와 해안으로 나왔다.
시앙골 해안이 뒤쪽 헌복동 해안으로 굽이돌아 이어진다.
왼쪽 뒤에 접도, 오른쪽 뒤에 의신면 구자도리에 소속된 매섬, 상구자도와 하구자도 등이 보인다.
구자도리(九子島里)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1800년경 한씨와 석씨(石氏)가 처음 입도하였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모양이 개처럼 생겼으므로 개섬, 또는 구자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구자도, 갈명도, 밀매도를 병합한 후 구자도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하였고, 1982년 1월 1일에는 구자도리(拘子島里)를 구자도리(九子島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식생은 곰솔과 그리고 지질은 모래밭과 자갈밭이며, 남쪽과 동쪽은 바위로 되어 있다. 의신면의 남부 바다에 있으며, 상구자도와 하구자도의 2개의 작은 섬으로 되어 있다. 회동과는 11.6㎞에 있다. 교통망은 옛날에는 정기 여객선이 왕래하였으나 인구 감소로 현재는 접도의 수품항(1종항)에서 사선으로 가거나 굴포에서 갈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중앙 뒤에 의신면 구자도리에 속하는, 왼쪽부터 매섬, 상구자도, 하구자도, 구자서도를 가늠한다. "구자도리(九子島里)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7세대에 30명(남 20명, 여 1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임야 526㏊, 농경지 45㏊이다.논이 없고, 밭이 조금 있으나 경작을 하지 않아 쌀과 채소를 육지에서 공급하고 있다. 주민의 전체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죽림리 시앙골 해안에서 계단을 올라 깃대봉 자락길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하구자도와 구자서도가 보인다.
죽림리 시앙골 해안에서 철계단을 올라 깃대봉 자락길로 이어간다.
왼쪽은 임회면 죽림리 헌복동 해안이고, 중앙 뒤는 의신면 금갑리 접도이다.
왼쪽에 의신면 금갑리의 접도, 중앙에 의신면 구자도리(九子島里)의 왼쪽부터 매섬, 상구자도(上九子島), 하구자도(下九子島), 구자서도(九子嶼島)가 가늠된다. 접도의 수품항에서 구자도리로 들어갈 수 있으며, 중앙 뒤쪽에 완도군 보길도가 있을 것이다.
구자서도(九子嶼島)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 구자도리에 속하는 무인도. 구자서도는 구자도리[상구자도와 하구자도 2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짐]의 하구자도 북서단 서쪽 400m 지점에 자리한다. 팽목항[진도항]과는 15.02㎞, 회동과는 11.6㎞ 떨어져 있다. 도서의 대부분은 국유지로 이루어진 바위섬으로 식생이 희박하고 식수도 없으며 토양 피복이 일부에 불과하다. 구자서도는 본래 진도군 명금면(明今面) 지역이었다. 모양이 개처럼 생겼으므로 개섬, 또는 구자도(狗子島)라 하였는데, 1914년 소구자도, 갈명도, 밀매도를 병합하여 구자도리라 하고 의신면에 편입하였다. 구자서도는 개섬, 구자도(狗子島), 구자서(狗子嶼)로도 불린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왼쪽 완도군 보길도 지구에서 오른쪽 진도군 조도 지구로 이어진다.
깃대봉 자락길을 따라 올라간다. 중앙 뒤의 임회면 죽림리 오봉산과 상당곶(上堂串), 왼쪽의 임회면 굴포리 죽도를 확인한다.
깃대봉 자락길에서 중앙 뒤의 오봉산과 왼쪽 뒤의 죽도를 확인한다. 오봉산이 바다에 떨어지며 돌출한 곳을 상당곶(上堂串)이라 이르며 오봉산 바위봉 아래에 곽의신 작가의 집필실이었으며 그녀의 유해가 묻힌 자운토방이 있다고 한다.
죽도(竹島)는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屈浦里)에 속해 있으며, 시누대가 자생하여 죽도(竹島)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섬의 남동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섬 중앙에 해발 66m의 봉우리가 있다. 굴포항에서 2.7㎞ 떨어져 있으며, 가장 가까운 섬은 구자도로 6.7㎞ 거리에 있다. 임회면 굴포등대에서 조망이 가능하며, 교통수단은 소규모 어선이다. 1가구가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 생활권은 진도이며 부 생활권은 임회면 십일시리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깃대봉 자락길의 위험 구간인 밧줄이 설치된 곳을 통과한다. 오봉산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 죽도를 확인한다.
의신면 구자도리에 소속된, 왼쪽부터 매섬, 상구자도, 하구자도, 구자서도를 가늠한다.
상구자도(上九子島)는 섬의 모양이 가늘고 긴 형태로, 개처럼 생겼다 하여 개섬 또는 소구자도라 하였다. 1600년경 경주 석씨가 상구자도와 하구자도에 나뉘어 정착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구자도, 갈명도, 밀매도를 병합하여 구자도리라 하고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상구자도는 진도군 조도면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목포항을 직선기점으로 50.4㎞ 지점에 위치하며, 가장 근접한 섬은 하구자도로 남쪽으로 0.41㎞ 떨어져 있다. 동북쪽에 매섬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에 의신면 금갑리 접도, 오른쪽에 의신면 구자도리에 소속된 왼쪽부터 매섬, 상구자도, 하구자도, 구자서도를 가늠한다.
구자도리 주민의 전체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수산물로는 멸치, 아나고, 감생이, 우럭, 돔, 상어와 조개류로는 고동, 해삼, 전복, 해조류로는 자연산 미역, 톳, 가사리, 모자반 뜸부기이다. 주로 김양식과 톳 양식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마을의 공동 재산은 마을회관이 있고, 식수는 급수선을 이용하여 물을 조달하며, 저수탱크가 있어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전력은 자가 발전과 공동 발전을 하여 사용하였으나 2007년부터 내연발전소를 이용하여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시설물은 하구자도와 상구자도를 합쳐 소규모항 2개소, 항만시설은 선착장 3개소, 물양장 2개소, 방파제 2개소가 있다. 하구자도에는 하구자 등대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진도 깃대봉에 다정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 해 맺힌 열매들이 아직도 가지에 옹기종기 달려 있다.
장미과 다정큼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활엽 관목 또는 소교목. 남부 난대지역 표고 700m 이하 해변의 산록 양지에 자생한다. 쪽나무로도 불린다. 원산지는 한국, 일본, 타이완이다. 완도 주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과 울주 목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등 주요 상록수림에서 각종 난대 수종과 함께 다정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꽃은 양성화로 백색인데, 가지 끝에 원뿔꽃차례로 5∼6월에 핀다. 열매는 이과로 공 모양이다. 흑자색으로 흰색 가루가 있으며 10∼11월에 익는다. 민간에서는 잎·가지·뿌리를 각종 통증이나 타박상에 사용하였다. 특히 나무껍질은 고급 염료재로 명주실이나 고기그물을 염색할 때 이용된다고 한다. 공해에는 강하나 추위에 약해 경기 이남 지방에서만 식재할 수 있다. 정원의 관상수나 생울타리용으로 유망한 수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편안한 깃대봉 자락길을 통과하여 탑립 해변으로 내려간다. 중앙 뒤에 오봉산이 솟아 있다.
깃대봉 자락길을 내려오면 임회면 죽림리 탑립해안이 펼쳐지고 오봉산이 솟아 있다. 왼쪽 바다로 돌출한 곳은 상당곶(上堂串)이라 이르며 그 오른쪽에 곽의신 작가의 집필실 자운토방이 있으며 그 뜰에 곽의신 작가가 묻혀 있다고 한다.
탑립해안의 깃대봉 출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8코스 종점 4km 지점이다.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왼쪽 깃대봉 자락에서 탑립해안 출입구로 내려왔다. 왼쪽 뒤에 하구자도와 구자서도가 보인다.
탑립길을 따라 탑립(塔立)마을로 올라간다. 중앙 뒤는 해발 458.4m 여귀산이며, 왼쪽은 보덕산인 듯.
여귀산(女貴山)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는데 상만리로 옮겼다는 설이 있으며, 예전에 탑이 있어서 ‘탑립(塔立)’으로 불렸다고 한다. 탑립리가 속한 죽림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대숲이 많으므로 죽림리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이면의 탑립리를 병합한 후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남쪽 해안을 조망하며 입지한 마을로 여귀산(女貴山)[459m]을 배후산지로 입지하고 있으며, 주변의 기반암 노출 산지는 빼어난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죽림제에서 흘러온 물로 농업용수를 하여 농사에 이용하고 있다. 임회면의 남동부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은 바다, 서쪽은 상만리, 북쪽은 여귀산을 넘어 용호리로 연결되어 있다. 교통로는 국도 18호선의 도로가 마을 뒤를 동서로 지나 의신면을 거쳐 진도읍으로 연결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봉산(五峰山)은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이라고 불렀다. 오봉산에는 일제 강점기 때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돌로 쌓은 도리장이 있는데, 도리장에 포를 장치해 배가 지나가면 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탑립 들녘에서 아낙들이 봄동 배추를 거두고 있다. 중앙 뒤의 여귀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왼쪽 산봉을 거쳐 오봉산으로 이어진다.
탑립 들녘에서 봄동을 거두는 봄 풍경이 다사롭다. 오른쪽에 솟은 오봉산에는 연대(煙臺)가 있다고 한다. 곽의진 작가가 귀향하여 집필활동을 했던 자운토방은 오방산 아래 왼쪽 바닷가 상당곶에 있으며, 그녀는 자운토방 뜰에 묻혀 있다고 한다.
오봉산연대(五峰山煙臺)는 각종 옛 문헌 자료에 기록된 ‘상당곶연대(上堂串烟臺)’와 동일한 유적이다. 서쪽에 굴포연대와 남도진, 동쪽에 사구미연대와 금갑진이 있다. 오봉산은 여귀산의 한 갈래로 남쪽 해안을 향해 돌출해 있는데, 특히 정상 부분은 급격한 단애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오봉산연대는 여귀산 남쪽에 자리한 해발 204m 높이의 오봉산 정상부 자연 암반 위에 약 30×60㎝ 크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막돌 허튼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규모는 높이 3.5m, 직경 약 9m이며, 둥근형으로 되어 있다. 오봉산연대 주변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원래는 연대가 몇 개 있었다고 하지만 2024년 기준 한 개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오봉산연대 바로 남쪽에 도괴된 석축들이 산재해 있다. 오봉산연대는 2012년 2월 29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관련 조례에 따라 진도군 향토유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탑립천 옆 탑립길을 따라 탑립마을로 올라간다. 오른쪽 뒤에 여귀산 정상이 보이고, 맨 왼쪽 산봉은 보덕산일 것이다.
맨 왼쪽 뒤에 여귀산, 그 오른쪽은 작은여귀산이다. 여귀산 능선을 북쪽에 두고 남쪽 기슭에 탑립마을이 자리한다.
탑립길을 따라 탑립마을을 지나간다. 왼쪽 뒤에 여귀산, 그 오른쪽에 작은여귀산이 보인다. 오른쪽 언덕의 느티나무가 그윽하다.
흔하지 않은 성씨의 소두영님과 설남예님 부부의 민가를 지난다. 뒤쪽에 여귀산과 그 오른쪽에 작은여귀산이 솟아 있다.
탑립길을 따라 탑립천의 다리로 올라간다. 왼쪽 뒤에 여귀산, 그 오른쪽 뒤에 작은여귀산(벌바위)이 솟아 있다.
탑리길의 탑립천 다리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그 건너편은 탑립 버스정류소이다. 8코스 종점 3.3km 지점이다.
탑리길의 탑립천 다리 건너편에 대숲이 으슥하다. 대숲이 많다고 하여 이곳 지명은 죽림리(竹林里)가 되었다고 한다.
탑리길을 따라 돌탑이 서 있는 탑립을 지나간다. 탑리길 앞쪽 언덕에 보덕사(寶德祠)가 있다.
탑리마을에서 왼쪽으로 꺾어 탑립천의 다리를 건너고 탑립 버스정류소를 지나 탑립 위로 올라왔다. 뒤쪽을 진동골이라 이르는 듯.
김해 김씨의 사우(祠宇) 보덕사(寶德祠)가 탑리길 북쪽 언덕에 자리한다.
탑리길을 따라 돌탑이 서 있는 탑립(塔立)을 지나 고개로 올라간다.
임회면 죽림리와 상만리를 경계하는 오봉산이 오른쪽에 솟아 있고, 그 아래 서해 바다가 펼쳐지며 왼쪽 아래는 탑립 해안이다.
탑리길 북쪽 언덕에 '힐탑 in진도' 펜션이 자리한다.
탑리길은 강품미재를 넘어 국도 제18호선 진도대로와 만나며, 서해랑길은 강품미재에서 왼쪽 보덕산 임도로 이어간다.
왼쪽 해안에 깃대봉이 솟아 있고, 그 뒤 서해 바다에 의신면 금갑리에 소속된 접도 섬이 길게 이어져 있다.
서해랑길은 강품미재에서 왼쪽 탑립 임도로 이어가고, 탑립길은 오른쪽으로 돌아가 국도 제18호선 진도대로와 만난다.
탑립길을 따라 강품미재로 올라왔다. 탑립길 북쪽 언덕에 돌탑과 쉼터정자가 조성된 탑립공원이 있으며, 뒤쪽에 작은여귀산이 보인다.
탑리길 강품미재에서 잠시 진도대로로 올라와 표석을 살피니 '소설가 곽의진 文藝學堂' 표석이 서 있다. 곽의진은 진도를 대표하는 문학가인데, 고향 진도로 귀향하여 오봉산 아래 자운토방(紫雲土房)을 짓고 문예학당에서 집필활동을 하였다.
곽의진(郭義珍, 1947년 2월 21일~2014년 5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시인이다. 배우 겸 연출가 우현의 장모이기도 하고 딸은 배우 조련이며 둘째아들은 영화감독 조운이다. 전남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 출생이며 서울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3년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학위 이후 1985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를 수여하였으며, 1983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시절,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굴렁쇠 굴리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4년 5월 25일 SBS 프로그램 《자기야 백년손님》에 사위 우현과 함께 출연 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향년 68세로 별세하였다.
창작집 '비야 비야', '남겨진 계절', '얼음을 깨는 사람들'을 출간하고 1990년 전남매일에 장편소설 『부활의 춤』을 연재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1995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와우리에 귀향하여 집필실에 '자운토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작가 활동을 계속하여 왔다. 1996년 1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만 2년 동안 문화일보에『꿈이로다 화연일세』를 연재했다. 이 작품은 남종문인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조선조 말 대화가 소치의 생애와 예술을 그린 소설로, 전남의 전통 문화와 선비 정신을 중앙에 널리 알렸다는 평을 받았다. 동포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전남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사)삼별초역사문화연구위원회 이사장으로서 진도 역사 알리기에 힘쓰는 동시에 작품 활동을 꾸준히 했었다. - 위키백과
국도 제18호선 진도대로와 탑립길이 만나는 강품미재 맞은편에 탑립마을 표석과 그림이 새겨진 돌들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은 탑립길 강품미재에서 탑립 임도로 이어간다. 강품미재는 강풍미재라고도 불리는 듯.
탑립 임도 입구의 탑리길에 진도를 대표하는 작가 곽의진의 시비와 돌탑이 서 있다.
곽의진 시비 옆에 돌탑과 서해랑길 이정목이 서 있다. 8코스 종점 국립남도국악당 2.2km 지점이다.
탑립 임도에서 탑리길과 국도 제18호선 진도대로가 만나는 강품미재를 돌아보았다. 중앙 뒤에 여귀산, 그 오른쪽에 작은여귀산이 보인다.
탑립 임도에서 오른쪽에 솟은 여귀산과 왼쪽 아래에 자리한 국립남도국악원을 살펴보았다.
탑립 임도를 따라 오봉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방금 전에 중앙 왼쪽 뒤 깃대봉 자락길을 걸어 중앙 아래 탑립 해안으로 내려왔다. 중앙 맨 뒤에 접도가 길게 누워 있다.
앞의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아리랑마을관광지갈림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아리랑마을관광지로 내려간다.
탑립 임도의 아리랑마을관광지 갈림목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아리랑마을관광지 1km, 8코스 종점 1.3km 지점이다.
탑립 임도에서 아리랑마을관광지 방향으로 내려가며 걸어온 탑립 임도를 돌아본다. 왼쪽에 경주 이씨 묘지가 있다.
귀성리 짹별마을과 황금기미 포구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왼쪽 뒤 바다에 임회면 굴포리에 소속된 죽도가 떠 있다.
탑립 임도에서 귀성리 마을로 내려가며 귀성리 들녘을 내려본다. 중앙 뒤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왼쪽에 오봉산이 솟아 있고, 그 서쪽 자락에는 과수농원에는 매화꽃과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임회면 귀성리 황금기미 포구와 짹별마을이 중앙에 자리하고, 그 왼쪽 뒤 바다에 임회면 굴포리에 소속된 죽도 섬이 있다.
귀성마을로 내려간다. 오른쪽 뒤에 여귀산이 솟아 있고, 왼쪽 뒤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자리한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은 국립국악원의 소속기관으로서 유서 깊은 남도의 예술문화를 향유하고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전속공연단인 남도국악단의 국악공연은 물론 일반인들의 국악연수, 국악체험과 국악 연구를 위한 국악 관련 국가 음악기관이다. 국악 전문연수와 공연을 통한 국악 보급 활동 및 국악을 통한 건전한 여가문화 선도와 이를 통한 국민정서 함양, 문화소외지역 주민에게 국악문화를 체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전통문화의 향유권 제공 및 자연환경과 국악 활성화를 통한 지역 문화예술 관광자원화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설립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리랑마을관광지 입구로 내려가는 아리랑길에 귀성리회관이 자리한다.
아리랑길을 따라 귀성마을을 지나간다. 오른쪽 뒤에 솟은 여귀산은 듬직하다.
임회면 귀성리 아리랑마을관광지 입구에서 아리랑길을 따라 국립남도국악원으로 올라간다.
아리랑마을관광지 입구에 귀성리 버스정류소가 있다. 중앙 뒤에 국립남도국악원, 맨 오른쪽 뒤에 아리랑체험관이 있다.
여귀산 아래에 아리랑마을관광지에 장고 모양의 아리랑체험관이 있고, 맨 왼쪽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자리한다.
아리랑마을관광지는 진도군 임회면 귀성리 일대에 조성된 관광지이다. 여귀산 남쪽 자락으로 오봉산(五峰山) 봉수대 아래 동네인 이 지역은 ‘항구미’라 하여 경관이 아름다운 어촌으로 짹별, 월평, 귀성 등의 동네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남도국악원이 여귀산 기슭에 자리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탄성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수평선상에 제주도의 한라산이 떠오르고, 새벽이면 수평선상에 샛별인 금성이 떠올라 예부터 노인 장수촌으로 일컬어 왔다. 아리랑마을에는 아리랑체험관과 홍주촌이 조성되어 있다. 아리랑체험관은 진도아리랑과 더불어 전국 팔도 아리랑과 진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광객들이 직접 배워서 불러 보는 체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6개의 전시실[역사아리랑 전시실, 이야기팔도아리랑 전시실, 진도 문화지도, 진도아리랑 전시실, 진도의 전통놀이, 노래아리랑 체험실]이 있다. 홍주촌에서는 조선시대 전통생활 경험과 함께 진도홍주의 제조 과정을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주요 전통 민속주를 전시하고 있다. 총 6개의 공간[안방, 부엌, 행랑채, 전통주 전시장, 외양간, 안채]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귀성리는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황금리’라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 황금기미 포구라 이르는 듯.
앞에 동초(東樵) 이창의(李倡義)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왼쪽 뒤에 국립남도국악원, 오른쪽 뒤에 여귀산이 있다. 국립남도국악원 왼쪽 건물은 진악당, 그 오른쪽 건물은 사무연습동, 그 뒤에 사랑채와 달빛마당, 그 왼쪽에 달빛마당이 자리한다.
국립남도국악원은 국악 전용 극장인 ‘진악당(珍樂堂)’은 지하 1층, 지상 3층[5,537㎡] 규모로 520석의 객석 수를 가지고 있다. 원형 야외 공연장인 ‘달빛마당’은 158㎡의 규모로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객석이 마련되어 있다. 15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채’는 숙박 시설이며, 사랑채 옆에는 120명 정도의 인원이 소규모 공연과 여러 가지 행사를 할 수 있는 야외 소공연장 ‘별빛마당’이 있다. ‘사무연습동’에는 국립남도국악원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지원과와 사업 운영을 담당하는 장악과, 그리고 원장실과 자료실 등의 핵심 사무 시설과 남도국악단의 전체, 분야별, 개인별 연습실과 세미나실, 강사 대기실 등이 있다. 지상 3층[1,323㎡]의 ‘국악연수관’은 소연습실[3실, 35㎡/42㎡], 중연습실[3실, 97㎡], 대연습실[1실, 319㎡]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리랑길 왼쪽에 공공미술 프로젝트 진도 '움직이는 미술관'이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진도 '움직이는 미술관'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한국화 하태환 대표가 열차에서 전시하는 것을 보고 컨테이너 칸칸마다 동선을 잡아서 움직이는 미술관을 생각하면서 만든 곳이다. 진도 출신 작가 37명이 참여하였고 그 중 25명이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 및 심사위원으로 특선 이상의 작품들로 전시되어 있다. 남종화에 대한 주제와 외부에 전시되어 있는 설치미술은 현대적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전시관은 총 5개로 작은 컨테이너들이 이어져 있고, 통로를 지나면서 전시관 안팎을 오가며 각 전시관의 설치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색다른 체험의 공간이 되어 준다. [출처]「공공미술 프로젝트」진도 '움직이는 미술관'|작성자 진도군
2021 공공미술 (문화 뉴딜) 프로젝트 진도 '움직이는 미술관' 출입구를 지나 아리랑길 삼거리로 올라간다.
아리랑길 왼쪽 전신주에 서해랑길 9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국립남도국악원 입구에 서해랑길 안내판이 서 있다.
2022년 8월 3일 서해랑길 10코스와 9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여 이곳에서 마쳤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나 2023년 3월 5일 8코스 탐방을 이곳에서 마치게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2년 5개월이 흘러서야 8코스 탐방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다.
안내도 맨 위쪽 운림산방이 있는 첨찰산 쌍계사 일주문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진도군 의신면과 임회면 지역을 통과하였다.
아리랑길 삼거리 전신주에 서해랑길 9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서해랑길 9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는 전신주에서 아리랑길 삼거리를 건너 국립남도국악원 방향으로 올라간다.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999년 9월에 민속예술의 보고 진도에 국립남도국악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2000년 7월에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기본계획에 따라 여귀산을 등지고 절경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373번지 12만 5천여㎡(3,8000평)의 부지에 연면적 9천56㎡(2,892평)의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 총 사업비 325억원 규모로 확정한 뒤 2000년 12월에 국제적인 규모로 설계 및 공모하였다. 2001년 11월 27일에 기공식을 하고 2년 8개월의 공사를 시행하여 2004년 3월에 국립남도국악원 건물을 완공하였다. 2004년 3월부터 개원준비를 위해 준비 기획단을 구성하여 2004년 7월 7일에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2004년 7월 개원과 더불어 국립남도국악원의 전속공연단으로 창단할 남도국악단의 단원을 전국적으로 공모하여 2004년 8월 1일자로 전속공연단인 남도국악단을 창단하였다. 2006년 7월 6일 전통 및 창작 국악 보급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하여 국립남도국악원 내에 남도국악방송(南道國樂放送)을 개국하였다. 2014년 광주국악방송이 개국함에 따라 광주국악방송의 보조국으로 바뀌었다. 2024년에는 개원 20주년을 맞아 개원 20주년 기념토론회, 굿음악축제, 해외동포 초청 순회공연 등의 기념사업을 추진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뒤에 귀성마을과 오봉산이 있고, 중앙 뒤에 월평마을과 황금기미 포구가 내려다 보인다.
아리랑길 삼거리 오른쪽에 서해랑길 안내판, 그 왼쪽 전신주에 서해랑길 9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왼쪽에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그 뒤에는 '달빛마당', 오른쪽에 '사무연습동', 그 뒤에는 '사랑채'와 '별빛마당'이 있다. 오른쪽 뒤에는 여귀산이 솟아 있다.
국립남도국악원은 국악 전용 극장인 ‘진악당(珍樂堂)’은 지하 1층, 지상 3층[5,537㎡] 규모로 520석의 객석 수를 가지고 있다. ‘사무연습동’에는 국립남도국악원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지원과와 사업 운영을 담당하는 장악과, 그리고 원장실과 자료실 등의 핵심 사무 시설과 남도국악단의 전체, 분야별, 개인별 연습실과 세미나실, 강사 대기실 등이 있다. 지상 3층[1,323㎡]의 ‘국악연수관’은 소연습실[3실, 35㎡/42㎡], 중연습실[3실, 97㎡], 대연습실[1실, 319㎡]을 갖추고 있다. 그 외에도 교육 연수생과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음수대, 자판기, 카페테리아, 연못, 벤치, 계단폭포, 분수대, 전통 민속놀이 체험 공간, 안내센터, 주차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국악이라는 전통예술을 통하여 앞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알림으로써 문화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국가 브랜드 제고 및 우리 전통문화 홍보와 문화외교 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예술문화기관으로서 의의가 크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 아리랑마을관광지에 장고 모양의 아리랑체험관이 있고, 오른쪽 귀성마을 뒤쪽에 오봉산이 솟아 있다.
귀성리(貴星里) 지역을 내려본다. 왼쪽에 귀성마을과 오봉산, 중앙에 월평마을, 해안에 황금기미 포구와 짹별마을이 보인다.
임회면 상만리에 소속된 귀성리는 행정리이다.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황금리’라고 불렸었으나 그후 귀한 땅이라 귀(貴)자, 길성(吉星)에서 성(星)을 따서 귀성이라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귀성리에는 총 59세대에 129명이 살고 있다. 주요 성씨는 박씨, 이씨, 김씨 등이며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쌀·보리 농사와 미역·김 양식업이다. 현재 귀성리에 아리랑마을을 조성 중이며, 마을 뒷산인 여귀산에는 국립남도국악원이 위치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아리랑길 삼거리에서 서해랑길 9코스 탐방로인 아리랑길을 따라 올라가면 진도대로의 귀성삼거리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