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도
보리고개를 없애
국민들 배부르게 하고
나라를 이렇게 부강하게
만든 업적은
인류기원이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일이기
에
그의
생각만으로
눈물이 나오고
고개가 숙여지는데
비방하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
은
어떤
인간인가요
같은 하늘아래 살기 싫으면
제발 떠나가주었으면 좋으련
만...
죽은 金대중 金영삼 盧무현
좌좀 귀신들과
인간망종 文재앙은
위인 朴정희를 보거라!!
♧ 그리운 그 사람
"그 車가 네 車냐?
그 車가 네 아버지 車-냐-?"
이 글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
구사법 동기인 김병희 전 인
하공대 학장의 회고록에서 발
추레한 내용입니다.
5.16 혁명시절
최고회의 의장실에 무상출입
하게 된 나는 박정희와 30년
지기였건만,
그때 나는 인간 박정희의
새로운 片貌(편모)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으로 들어
섰을 때의 첫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
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
다.
장식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특별한 기물도 없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는 인상
을 받았다.
특히 그가 앉는 의자는 길가
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손님용 나무 의자와 조
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품인 "청
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
"바이스로이"를 피웠는데,...,
그것도 저것도 아닌 "아리
랑"을
그가 피우는 것을 보고 몰랐
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
다.
또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마침 그는 점심을 들기 시작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단돈 10원짜리 냄비가락국수
한 사발과 단무지 서너 조각
이
그날 식단(食單)의 전부였다.
마침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가락국수를 50 그릇이
나
살 수 있는
500 원짜리 고급 식사를 마
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받아써다.
"동서고금을 통해 한 나라의
최고 집권자가 이렇게 험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깊은 감명(感銘)을 받았
다.
朴의장의 애국심은 지나치다
고 보일 때도 가끔 있었다.
그는 당시 장충단 공원에 있
는 의장공관을 쓰고 있었는
데,
어느 눈비 내리는 겨울 아침
에 국민학교 6학년인 장녀 근
혜 양을 운전병이 지프차로
등교시켜 준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그 사실을 알게
된 朴의장은 근혜 양을 불러
다
끓어 앉혀놓고,
"그 차가 니(네) 차냐,?
그 차가 아버지 차냐?" 하고
힐책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고만 있는 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차는 나라 차야, 나라 차
를 니(네)가 감히 등교용으로
쓸 수 있는가 말이다!"
아득한 옛날, 대구사범
1학년 때 생각이 떠오른다.
박물 시간에
어느 식물 꽃 단면을 확대경
을 보아가며 크고 세밀하게
그리는 작업을 한 일이 있었
는데,
여러 급우들이 그린 것들
중
에서 최고 평점인 "G"를 박
(朴)군이 차지했었다.
그는 일찍 경북 선산군 구미
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
여, 그와 같은 수석들 만이 응시했던
대구사범의 9 : 1이라는 입
시경쟁을 돌파한 엘리트였
고..,
그 엘리트들 중에서도 "G"라
는 평점을 받을 만큼
그의 두뇌는 비상했던 것이
다.
그랬기에 천군만마를 질타하
는 작전계획이라면
저 미국 육사 출신의 엘리트
들조차
우리 朴장군을 따를 수 없다
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랬기에 쓰러져 가는 이 나
라의 구출을 위한 한강도강작
전
(漢江渡江作戰)에도 성공하
지 않았던가-?
정희야-!
너와 나는 대구사범에 입학해
서 본관 2층이었던
1년 2조(組) 교실에서 처음
으로 만났지-,
이름 글자로는 드물던 "희
(熙)"를 우리 들은 공유 했기
에,
나는 너에게 비록 성(姓)은
달랐어도 형제와도 같은 친근
감을 느꼈었다.
내가 보던 너는
항상 모든 일에 총명했다.
게다가 너는 또 의분을 느끼
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어느 날은 박물교실의 뒤뜰에
서
개구출신 S군과
약골(弱骨)인 주재정君이
싸웠는데,
깡패와 같았던 S는
주 군을 단숨에 때려 눕혀놓
고, 그래도 모자라서 맥주병
을 깨어 머리를 쳤는지라
유혈이 낭자(狼藉)했다.
모두가 겁을 먹고 도망쳤는
데,
오직 우리 朴군만이 뛰어들
어
그 S를 때려눕히고
주 군을 구출했었다.
그 용기와 그 지모와
그 애국심이 朴군의 그날
(5.16 혁명)을 있게 했건만-,
그에게 넘겨진 대한민국은
GNP 83 弗의 세계 153개국
중
152번째로 못 사는 나라였다.
헐벗은 백성들이 4월 남풍에
대맥(보리)이 누렇게 익기만
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
다.
이른바, 우리 겨레의 비운(悲
運)이었던 보릿고개를 알았
기에, 그는 10원짜리 냄비우
동으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그런 것조차도
못 먹는 불쌍한 동포들의 굶
주림을 걱정했을 것이다.
또 체인스모커(chain
smoker)인 그가 담배 없이
는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니
피우기는 해야겠는데-,
그 옛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궐련은커녕 한 봉지의 장수
연(長壽煙)이나 희연(囍煙)
조차도 손쉽게 못 얻어 피우
시던 일을 회상하면,
그 "아리랑"을 피우기조차 송
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 朴正熙-!
그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렸
으니
어찌 나의 이 추모의 情을 알
리오.
오늘에 와서 그를 비방(誹謗)
하는
일부 인사들도 많지만,
진정 그를 아는 사람이 몇이
나 될까?
나는 그 당시 그를 가까이 모
시면서 만사에 청렴결백했던
그를 보았지만
아무리 맑게 한다 해도,
후일의 가족을 위해
어느 구석진 곳에 그들의 생
활비 정도는 나올 무엇인가는
마련해 두었으리라고 보고 있
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으니,
이 세상에 그처럼 결백한 집
권자가
또 어디 있었을까,
박대통령의 비리를 찾아보려
고 26년간 뒤지고, 까고, 파
고,
흝어봐도 찾을 수가 없으니,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그가 쓴 광화문, 화령전, 운한
각, 현판도 뜯어낸 좌파들-!!,
장관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자라부터 챙기는
썩어빠진 것들이
박대통령을 매도하려 발버둥
친다.
좌파 놈들아-!!
똑바로 알아라!!
당신들 제아무리 폄훼하려
발광해도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은 대
한민국 중흥의 시조로써 역사
에 길이길이 남을 것임을....,
박정희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그는 죽어서 진정 그 가치를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높이
평가받게
될 것임을....,
김병희 前 인하공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