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갯벌은 추수 끝난 들판처럼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갑자기 전등사가 보고 싶다는 아내의 청에 따라 사람 적은 월요일에 찾아온 강화도.
새로 생긴 4차선 도로 따라 달리니 1시간 남짓 걸려 벌써 강화대교를 건너고,
역사탐방 강사 아니랄까봐 첫 코스는 갑곶돈대.
- 고려를 침공한 몽골 군이 건너지 못하고 발만 구르다 되돌아간 곳.
당시 몽골 군이 "우리 군사들의 갑옷만 벗어 메워도 물길을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그 이름을 갑옷 갑, 꿸 곶 자를 넣어 지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
조선 시대에 들어와 병자호란 → 병인양요 → 신미양요 → 운양호사건이 벌어진 파란만장한 역사가 벌어진 현장.
그러나 지금은 썰물이 빠져나간 텅빈 바다를 갯벌만 지키고 있고,
역사의 주인공들은 오랜 세월 풍상에 깎여 글자가 지워진 비석으로만 서 있어 역사무상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삼별초의 땅 강화도.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는 몽고 침략에 대비하여 해협을 따라 돌과 흙을 섞은 외성을 길게 쌓았습니다.
이름하여 광성보.
성 안에는 신미양요 때 순국한 군사들과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
결사 항전의 의지를 상징하는 대포가 바다를 향해 포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성 안은 조용했고, 아내와 함께 걷는 산책 길은 사람이 없어서인지 참으로 편안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선조들의 희생과, "양귀비보다 더 붉은 그 마음"이 내 가슴 속으로 가만가만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전등사 들어가는 길에는 이미 단풍이 다 사그라진듯 붉은 단풍도 갈색으로 색깔이 바랬습니다.
-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처음 전해진 불교,
전등사는 9년 후인 381년 진나라의 아도화상이 건너와 지었으니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첫 사찰.
아내의 가을 정취 흐트릴까봐 여기까지에서 역사 공부 접기로 하고 ^^^,
약수 한 잔 마신 뒤 큰 나무 아래 마련된 벤취에 앉아 경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관광객 몇 분도 옆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 있다 다가온 내 연배 비슷한 아주머니 한 분,
대웅전의 팔작지붕하며, 색깔이 벗겨진 단청을 칠하지 않는 이유,
서까래 밑에 조각된 벌거벗은 사람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맙게도 이 곳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역사문화 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어 '초록은 동색'이니 반가왔습니다.^^^
덕분에 10분 넘게 아내 눈치 보지 않고 역사공부 잘 할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아내도 산 길 오른 피로도 풀 겸, 옛날 이야기 삼아 그 선생님의 해설에 귀 기울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다시 바다 쪽으로 나와 해안도로를 타고 굽이마다 나타나는 갯벌을 구경합니다.
밀물이 드러오면 바다가 되고, 썰물 되어 나가면 갯벌이 되고.
바다는 어디 가나 볼 수 있지만,
갯벌은 썰물 때만 볼 수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춰 갯벌 구경 실컷 할 수 있으니 우리 부부 오늘 복을 많이 탑니다.^^^
초지진 → 동막해수욕장→ 외포리 → 풍물시장 → 강화대교.
석모도 가는 배 타는 외포리 선착장 시장에서 새우젓 어리굴젓 사고, 차 위에서 직접 파는 순무 두 단 싸게 사고,
풍물시장에서 큰 배추 4통과 대추 한 되 사고, 아내는 신이 났습니다.
나도 질세라 광어 큰 놈으로 한 마리 회 떠서 포장하고, 내친 김에 작고 통통한 생굴 한 사발 곁들여 샀습니다. ^^^
집에 오자마자 벌인 술상,
두 시간 숙성 시킨 탓도 있겠지만, 소주 한 잔에 역사의 고향, 강화 바닷 바람 물씬 밴 광어회 참 달고 맛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