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떠받든 동네 넉넉한 부처의 달이 떴다. / 무원 스님
다문화 사찰 일구는 봉천동 명락사 무원 스님
외국 노동자·조선족·새터민 등 ‘세계인 공동체’
다름 배려해 자기식 신앙·문화 생활 꽃 피우게
서울 관악구 봉천4동 894의 4 남부순환대로변에 자리한
‘대한불교 천태종 명락사’엔 포대화상이 있다.
절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대화상의 상은 뚱뚱한 풍채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호탕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누구에게나 아무런 격의를 두지 않은 주지 무원(51) 스님의
넉넉한 품과 웃음은 영락없는 포대화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저 사람만 좋다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지금까지 가는 곳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절을 창건한 것을 보면 그야말로 허허실실이다.
인천시 남구 도화동의 옹색한 주택에 있던 연화사를 검단의 벌판으로 옮겨
6년 전 5천여평의 대가람을 세운 것을 비롯해 그가 전국에 세운 사찰만 무려 14곳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큰절이 된 이곳 명락사도 그가 30대 초반이던
1991년 다른 건물 한 층에 세들어 살던 것을 옮겨 터전을 닦았던 곳이다.
그는 그렇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뒤 미련없이 또 다른 무의 처소에서 새 삶을 시작하곤 했다.
대각국사의 뜻을 잇기 위해 1967년 상월 원각 스님이 세운 신생 불교종단 천태종이
불과 40여년 만에 2백만 신자를 갖춘 3대 종단으로 우뚝 서게 한 주역 중 한 명인 셈이다.
그러나 천태종은 신자 30여만명으로 전국 최대사찰인 부산 삼광사를 비롯한
대찰을 거느리며 영남·충청 일대에선 상당한 세를 떨쳤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종단의 세 확장에만 관심을 쏟을 뿐
세상의 자비 보시에 눈을 뜨지 못하고 보수성 짙은 전형적인 신생종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6년 전 그가 천태종 사회부장으로 서울에 나타나
‘나누며 하나되기’ 운동을 펼치는 등 대외적인 자비행을 이끌면서
천태종의 모습은 괄목할 만큼 달라졌다. 남북을 수십 차례 오가면서
대각국사 의천의 사찰인 개성 오관산 영통사에 29채의 전각을 세우는 일을 주도한 것도 그였다.
그런 그가 최근 명락사에 똬리를 틀어 서울로 입성하면서
절을 짓는 것과는 다른 ‘불사’를 꿈꾸고 있다.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조선족과 북녘 동포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서울 속의 세계인 공동체’로 가꾸겠다는 것이다. 3년 전부터 인천 황룡사에서도
새터민(북한동포)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의 정착을 위해 절로 1박2일씩 초청해왔던 그다.
이 일대는 서울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중 하나다.
외국인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불교권인 동남아시아에서 왔다. 서울은 건물의 숲이다.
그러나 가난한 외국인노동자들이나 새터민들에겐 익숙한 종교공간에서
쉬면서 부담 없이 밥 먹고 고국 친구들과 어울릴 곳 하나 찾기 어려웠다.
이를 너무도 잘 아는 무원 스님은 그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배불리 먹고 쉬고
어울릴 수 있게 하는 것 공간으로 명락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원 스님은 명락사에 이미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열었고,
새터민들과 조선족으로 이뤄진 새터민예술단의 모임과 공연연습장을 제공해주고 있다.
다음달 2일 ‘부처님 오신날’엔 이 일대 노인들을 초청한 경로위안잔치를 열어
새터민예술단의 공연을 통해 다문화가 한데 어울리는 축제의 장을 펼칠 계획이다.
전쟁의 상흔이 깊은 이라크인들을 돕는 운동을 벌이고,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을 초청해 지원하고 함께하면서
“겉모습은 다르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우리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깨달은 그이지만,
굳이 하나임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름을 배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절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천태종의 의식을 강요하지 않고
자기 고향의 예법대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눈칫밥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바꾸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수십년 전 돈 벌러 사막으로 갔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들도 몇년 뒤면 자신의 고국을 한국처럼 만들 주역이 되고,
한국과의 민간 교역을 주도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고,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곧 한국과 한국인의 미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포대화상의 웃음 속에서 아이들만이 아니라
온갖 다른 얼굴색들이 봄새싹처럼 생기발랄해지고 있다. 드디어 봉천동에도 봄이 왔다.
2009. 4. 8.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