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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김 만 선
이백여 호의 촌락을 단숨에 삼키려던 탁류는 마을에서도 제일 드높은 장덕수네 중방에서 늠실대다 물러나갔다. 첫 장마로서는 좀처럼 드문 일로 적이 초조하였었다. 그러나 다행한 일로 비가 멈췄다. 언제나 비만 멈추면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윗말 너머 사장(沙場)이 얼굴을 내밀며 이어 탁류는 앞강 뒷강으로 갈리었다. 쇠똥 같은 거품도 적이 가라앉고 걸찍하게만 된 탁류의 수선도 덜해졌다. 그러고도 한 밤을 지내서야 동네 앞뒤로 뻗친 얕은 길이 드러나고 두 길을 얽어멘 샛길도 트였다. 가까이 또는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피난민들은 푸석한 낯으로 모여들었다.
텅 비었던 집집 마당에 흰옷이 가득 널려지고 울타리마다 벽마다 물거품으로 허리를 둘러 준 탁류는 멀찌가니 강변 버드나무 아래로 물러섰다. 동네는 어수선해졌다. 여기저기 골목에서 헤어지는 여인네들의 치맛바람에 가라앉으려던 흙 냄새는 코를 찌르고 비린내까지 풍긴다. 삼대를 두고 코에 익은 향기다. 탁류가 침범할 때마다 초조하고 안타깝던 말 사람들의 마음은 이 향기로 말미암아 용궁님 〔龍宮神〕과 조상에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이었다.
김씨는 광 속 높이 치단 옷장을 열어 본다. 세간은 높이 시렁을 짜고 달아 간수를 하였으나 물거품은 장 밑에 줄을 그었다. 김씨의 움직임은 바빠진다. 저고리를 꺼내고 치마를 집어내고 또 저고리를 꺼낸다. 한가지 두가지 꺼낸 옷은 펼쳐진 채 옆에 쌓인다. 장 속으로 손이 차츰 깊어진다.
“이를 어째!”
혀를 찬다. 손에 은조사 깨끼저고리를 들고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오므라진다. 더위 이상으로 등에 땀이 배었다. 팔의 동작은 더욱 더 바쁘다. 밑바닥이 가까워졌다.
“에그머니!”
드디어 억울함을 혼자서는 견디지 못한다.
“얘 이것 좀 봐라.”
마루에 말라붙은 탁류의 앙금과 시달리고 있던 며느리의 걸음도 결레를 쥔 채 맘속으로 바쁘다.
“이그머니나!”
며느리의 손으로 옮아간 세루 두루마기는 천근이다. 깃 쪽은 회색이 초록으로 멍이 들었다.
“아범 거지?”
“네.”
“빠질까?”
“빠지긴 하겠지만…….”
“그렇기나 했으면…….”
김씨의 손은 또 하나의 반닫이로 옮아간다. 집히는 대로 척척 내놓는다. 또 들어가는 손이 깊어지자,
“에그머니나!”
하는 비명을 연발한다.
“왜들 그래?”
안방에서 나오는 남편은 장판지를 한아름 안았다. 그도 안방에서 풀에 젖은 장판을 걷어 내고 있었다.
“좀 와봐요.”
“왜.”
“옷에 무색이 속속들이 들었구려. 이런 원통할 데가 어딨수!”
“빨면 그만일 텐데 왜들 걱정야.”
남편은 마루 끝에 주저앉아 담배만 빤다.
“에그, 속시원한 소리두 작작 하슈. 글쎄 실어 내잘 때 실어 냈으면 한시름 잊었죠.”
“그럴 줄 누가 알았어!”
김씨는 그만 한숨만 짓는다.
“언제나 이 고생을 면헌담…….”
“고생이 무슨 고생이야!”
남편의 어조는 심술을 담았다. 그러나 동네 또 뉘 집들과 같이 물이 시렁 위까지 침범하리라고야 누가 예측하였으랴.
남편 지영호는 가래침을 마당 가운데로 힘차게 날린다. 동시에 그의 눈은 무너진 토담과 부러진 거적 울타리 기둥에 머무른다. 두 눈은 사납게 부릅뜬다. 중간 기둥의 힘을 잃은 울타리는 밖으로 비스듬히 쓰러져 흔들흔들 위태롭다.
“아범 어디 갔니?”
“글쎄요, 고대 있었는데요.”
할 뿐 며느리는 광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몰라?”
지영호는 며느리를 흘긴다.
“아버지 말야?”
뒷간 문을 열어젖힌 채 손녀가 앉았다. 끙끙 하면서도 빤히 내다보고 참례다.
“너, 봤니.”
“저 ― 아랫말루 내려갔어.”
대답을 하면서 손녀는 궁둥이를 들었다 놓고 또 들고 한다.
“너, 왜 그러니.”
“자꾸만 물이 쳐올라와.”
“허, 이놈의 자식! 허란 건 하나두 않구…….”
울타리도 자빠진 채 똥통의 물도 쳐내지 않은 채 그대로다. 아랫말로 갔다니 벌써 노름판을 꾸몄단 말인가.
“냉큼 가 불러와!”
손녀에게 와락 소리를 지른다.
손녀 경희는 목을 움츠러뜨린다. 시선을 얼른 뒷간 널판으로 떨어뜨리고 대답을 않는다. 그만 일어서고 싶으나 짐짓 더 끙끙 한다.
“얼른 가봐!”
“채 뒤나 보거든 야단이슈.”
김씨가 편을 들어 준다.
“임자가 좀 데려오우.”
“어딨는 줄 내가 아우.”
“어디긴 어디야. 늘 파묻혔는 데겠지.”
“설마 벌써부터 그럴라구. 그놈들도 사람인데.”
“흥! 설마…….”
그러나 아내는 줄에다 옷을 널기에 분주하다. 줄에 가득해 가는 옷들은 경희를 가려 준다. 살며시 일어난 경희는 김씨 할머니만 믿고 살금살금 대문으로 향한다. 그러나 문턱에 이르자 할아버지 호령에 발이 딱 붙는다.
“가니?”
“…….”
경희는 마음에 없는 대답을 고개로 한번 끄덕한다.
대문을 나서 울타리를 끼고 언덕을 단숨에 내려간 경희는 뽕나무 앞 갈랫길에 이르자 걸음을 멈춘다. 아버지가 내려가던 길은 분명 아랫말로 통한 오른짝이다. 또한 아버지가 있을 곳도 짐작에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쇠돌네 집에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희는 몸을 돌려 강변으로 통한 좁은 길을 곧장 달린다. 흙투성이가 된 오이밭을 치나고 호박밭을 지나 탁류 속에 익숙지 못해 골고루 자빠진 옥수수밭을 다 가, 수양버들 앞에 이르러 숨을 돌린다. 강변길 중간에 의좋게 가지를 끌어안은 두 버드나무는 알맞게 서늘한 그늘을 펴고 그 아래에 조무래기들이 모였다. 경희는 그늘 속에 몸을 감추며 집을 핼끔 돌아다본다. 뽕나무 옆으로 할아버지의 머리가 쓰러진 울타리 위에서 어른거릴 뿐이다.
버드나무 상가지에는 쇠돌이가 걸터앉아 가지에 걸린 고구마 넝쿨을 떼어 휘저으며 까불고 나무를 타지 못하는 나머지 조무래기들은 손을 쳐들고 목이 말라 조른다. 그러나 좀처럼 던져 주지는 않으며,
“아― 맛나.”
하고 감질만 북돋워 준다. 장마 덕분에 수양버들을 타본 엄서방의 고구마 넝쿨도 마지막 하나가 놈의 손에 요리가 되어 간다.
“남 줘.”
경희도 손을 벌려 본다. 헤살수로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고 고구마 하나가 경희의 이마를 갈기고 땅에 떨어진다. 풋고추만한 놈이다. 조무래기들은 왁작 경희를 밀치고 여러 손이 땅을 긁는다. 나무 위에서는 눈을 부라린다.
“경희야, 경희!”
하지만 들은 체들도 않는다. 계집애에 대한 대접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끝끝내 한 놈이 모래 고물을 묻힌 채 입 속으로 잽싸게 쳐넣고 몸을 빼친다. 만족한 웃음까지 띄우며…….
“이 자식 보자.”
쇠돌이는 우선 별러만 두고 또 이리저리 넝큘을 뒤진다. 한 알갱이도 없다.
경희를 내려다보고 민망한 듯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없다!”
하고 넝쿨을 높이 치던지고 내려올 자세를 취한다.
넝쿨은 훨씬 높이서 재주를 넘고 가지에 걸려 춤을 춘다. 경희의 고구마를 약탈한 놈이 먼저 강변으로 달아나고 쇠돌이가 잡으러 쫓고 그 뒤를 한 떼가 쫓는다. 망설이던 경희도 쫓는다. 조금 후 꿈틀거린 강변 언덕길에 조무래기들의 경주하는 모양이 봬졌다 숨어 버린다.
지영호는 쓰러진 울타리에 기둥을 바꾸어 대고 있다. 기둥을 새로 세우고 울타리를 당기어 새끼로 바쁘게 얽어맨다. 그의 마음은 초조하다. 그는 뜻하지 않은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을 전하고 간 사람들은 용궁당 제사에 쓸 떡쌀을 걷으러 왔던 아랫말 사람들이다.
쌀 한 보시기나 돈 십 전 한 닢을 내놓지 않고 용궁님을 저주하더란 엄서방에 대한 그들의 비방은 오히려 동정을 갖게 한다. 생기는 곳이란 꼬박이 고구마밭만을 하늘같이 믿는 터에 반년 농사가 불과 사오 일 동안에 전멸이 되었다. 엄서방이 아니라도 그 지경을 당했으면 감사를 올리자는 이번 용궁당 제사에 쌀 한 톨이라도 보탤 정성은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하여간 그러한 것은 엄서방에서 한한 일이겠으나, 또 한 가지 뗏목을 찾으러 멧목 주인이 나섰다는 소문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뗏목을 찾으러 다닌다니 뻔뻔스럽다. 윗강으로부터 탁류 속에 잠겨 흐르는 흩어진 뗏목들을 보고만 지나쳤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때는 어디가 찾는단 말인가.
죽음을 무릅쓰고 그것도 배를 가진 까닭에 건져 내었다. 탁류 가운데로 배를 저어 뗏목보다도 더 까불며 가까스로 하나 잡으면 뒤에서 꿈틀거리는 다른 한 개를 욕심만 내며 아랫강 철교 밑까지 밀려가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러한 뗏목을 주인에게 뺏긴다니 그만큼 어수룩할 수는 없다. 뗏목 주인을 동정해야 할 양심을 좇기에는 너무나 노력이 아깝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배를 채운다는 것과는 성질이 다를 것 같다.
뗏목을 건진 사람은 한두 사람들이 아니다. 배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한 개라도 더 탐을 냈다. 그들은 훨씬 많이 그보다 극성스럽게 서둘러 강변에 쌓아 놓았다. 차츰 그의 초조하던 마음은 가라앉는다. 혼자만 속을 태울 것은 없을 것 같다. 무슨 일을 당하든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당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니 한편 든든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다른 것으로 인해 또 초조해진다. 아들의 일이 마음에 걸린다. 홍수가 난 동안만 잠잠하던 노름을 또 시작한 모양 같다. ‘설마’ 하고 믿으려던 순간만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으나 추측을 그리로 돌리면 금시로 가슴의 피가 파르르 떤다.
일손도 허둥허둥 되는 대로 얼버무려 놓고 손을 턴다.
“요년은 가더니 뭘 해.”
울타리 너머로 강변길을 더듬어 본다. 가까스로 내밀었던 배를 편 울타리의 키는 발돋움을 하게 한다. 훌쪽해진 강물만 느리게 움직일 뿐 그 외는 버드나무들까지도 꼼짝 않는다.
그는 마루 앞으로 가 기둥에 걸린 밀짚 벙거지를 왁살스럽게 떼어 쓰며,
“돌아오거든 가칠목으로 곧 보내라.”
애꿎은 며느리에게 쏘아던지고 집을 나선다.
쇠돌네 문 앞을 지나려던 그는 그대로 지나지를 못한다. 잠시 인기적을 살핀다. 그러나 꼭 닫힌 집 안은 고요하다.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 문 틈으로 엿본다. 추측에 어그러져 노름꾼들은 없다. 웃통을 벗어 붙인 쇠돌 어머니만 마루에 함부로 자빠졌다. 시든 젖통이 마루에 늘어졌다. 홑치마만 걸친 아랫도리는 치맛자락이 옆으로 물려 허벅다리 궁둥이가 시원스럽게 봬졌다. 용궁당에서는 한창 일이 벌어졌을 때에 한가하게도 낮잠을 잔다. 용궁당이 아니라도 밥술을 얻어먹을 좋은 수라도 생겼단 말인가. 노름꾼을 붙이는 것쯤으로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조금도 탐스립지가 않다. 아내의 마른 몸뚱어리를 본 것보다도 더 불쾌해진다. 그는 성큼 물러선다. 아들이 와 있지 않은 것만이 다행하다. 그는 긴 한숨을 어깨로 몰아낸다.
아직은 장마 뒤끝이라 판을 차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안심을 해서는 안 된다. 철도 체면도 무시하는 그들이다. 이때라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오늘 밤부터라도 시작할는지 모른다.
그는 앞으로 아들에게 대할 태도를 생각해 본다.
‘돈짝만 뵈지 않으면…….’
그러나 그것만을 가지고는 안심할 수가 없다. 일상 되풀이하여 속아 온 생각이다. 그 위의 수단을 필 줄을 안다. 걸핏하면 세간을 집어내 간다.
‘그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 좀더 감시를 엄하게 해서 그 짓을 막아야 한다. 그러면 이번 장마를 기회로 마음을 잡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도 별도리는 없을 것이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돈을 꾸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고, 더구나 한번 속아 본 돈놀이하는 장주사가 또 월수를 줄 리는 없다.
다만 겁나는 것은 죽겠다는 발악이다. 톡톡히 나무라면 빌지도 않고 그렇다고 거역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곳이 귀담아 반성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끝끝내는 으레 죽겠다는 것이다.
“어서어서 그래나 주었으면 남이나 속편히 살겠다!”
하고 소리를 질러 버렸던 것이었다. 그런 뒤면 그의 마음은 끝없이 슬프다. 아들을 두어 보지 못한 고독 이상으로 가슴이 아픈 슬픔이다. 죽을 것까지야 무엇이 있는가. 죽을 결심까지 한다면 그만한 결심으로 신용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정도 안 가는 말이다.
지영호는 흥분이 될 대로 되어 아랫말로 향한다.
아랫말 웅덩이에서는 쇠돌이 패의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장마는 그들에게 또 한 가지의 소일거리를 제공하였다. 버들 아랫가지에는 질서 없이 적삼 고의가 함부로 걸렸다.
“휘저라, 휘저!”
쇠돌이의 지휘가 떨어지자 벌거숭이들은 팔로 물을 때리고 젓고 발로 짓밟고 법석을 한다. 물 속의 진흙이 풀려 웅덩이의 물은 점점 걸어진다. 얼굴에 튄 흙물이 말라 변양이 된 것들도 모른다. 걸찍해진 흙탕물 속에 여기저기서 메기의 큰 입이 드러난다. 숭어의 머리도 봬진다. 그러나 새 공기를 마신 고기들은 또 숨어 버린다. 조무래기들은 쫓아가다 실망하고 더욱 흙탕물을 만들어 놓는다.
경희는 조그마한 복어를 두 손으로 쥐고 가에 서 있다. 복어의 꺼칠한 배는 공같이 둥글고 바람이 들었다. 복어를 내려다본 경희는 웅덩이 속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복어를 잡던 때와 같이 쉽게 고기들은 갓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뒤에 있다, 뒤에! 아니 쇠돌이 뒤말야.”
경희의 신기한 발견이다. 쇠돌이 뒤에 긴 수염을 단 메기가 큰 입을 벌리고 어름어름한다.
“어디야 어디?”
홱 돌아선 쇠돌이는 잠시 허둥댄다. 그러나 바로 앞에 있는 메기를 발견하고 덥석 두 손으로 잡는다.
“잡었다!”
높이 쳐들린 메기는 힘없이 꼬리를 몇 번 휘젓다 잠잠해진다.
“어구―― 크구나.”
다른 놈들은 감탄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감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제 것은 아니니깐. 더욱 눈올 부릅뜨고 고기를 찾는다.
경희의 눈도 부러움에 가득 찬다. 제 것을 내려다본다. 복어의 배가 꺼졌다. 깜짝 놀라 복어의 항문에 입을 댄다. 훅훅 바람을 잡아 넣는다. 복어의 배는 다시 등글게 팽팽해진다. 한숨을 가늘게 쉬고 또 눈을 웅덩이로 보낸다.
그 순간 발밑이 뭉클한 게 징그럽다. 무엇인지 발밑을 파고든다.
“엄마!”
놀라 물러선다. 그 바람에 복어를 놓쳤다. 발밑을 본다. 뱀장어다. 그러나 경희는 뱀장어를 잡으려 않고 놓친 복어를 찾는다.
물 위에 뜬 복어는 둥근 배를 위로 두고 젖혀진 채 달아나지를 않았다. 가에서 조금 밀려 나갔다.
“쇠돌아! 내 복어 좀 봐!”
경희는 쇠돌이를 부른다.
“있니? 어딨어?”
반가운 낯으로 쇠돌이는 물 속이라 느리게 달려온다.
“여기 이것 좀 봐.”
경희는 발을 구른다.
그러나 쇠돌이가 젖혀진 복어를 발견하고 잡으려 할 때 복어의 배는 훅 꺼지고 달아난다. 죽은 줄로 알았던 복어는 지금까지 죽은 듯 꾸몄던 것이리라. 경희의 호홉은 색색 급해 간다.
“이놈 자식!”
복어에게 놀림감이 되었으니 쇠돌이도 화가 났다.
“난 몰라, 힝…….”
경희는 쇠돌이에게 트집을 잡는다.
“왜 날 보구 그래.”
쇠돌이는 돌아서며 입을 삐죽 내민다.
경희는 눈물어린 눈으로 잊었던 뱀장어를 내려다본다. 뱀장어는 아직도 구멍을 찾는지 머리를 진흙에다 비비고 있다. 경희는 징그러워 잡을 생각을 못 한다. 그러나 쇠돌이에게 알려 주기는 싫다.
“경희야!”
강 건너에서 부르는 것 같다. 귀를 의심하고 참아 본다.
“아, 이년 경희냐!”
재차 버들잎에 스쳐 경희의 귀를 찌른 음파는 강 건너 산허리에 부딪쳐 또 한번 그러나 가늘게,
“아, 이년 경희야!”
하고 울린다.
경희워 가슴은 덜컹 내려앉는다. 할아버지의 음성이다. 하지만 또 참는다. 살그머니 무릎을 꿇고 뱀장어의 허리를 꽉 잡는다. 뱀장어는 쉽사리 잡혔다. 그러나 무릎을 펴기도 전에 스르르 손에서 빠져 한 손마저 꼬리를 쥐었으나 끝끝내 물 속에다 떨어뜨렸다. 경희는 물 속을 내려다보며 아까운 한숨을 뽑는다.
“경희야!”
할아버지의 성화가 또 귀를 찌른다. 그 자리를 단념할 수밖에 없다. 길로 올라와 할아버지에게로 달음질친다.
“요년! 요 매친년 같으니, 거기서 뭘 하는 거야!”
길에 딱 버티고 선 할아버지의 호통은 대단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할아버지의 때리는 손을 피한 경희는 달아나려 한다.
“어딜 가는 거야?”
“쇠돌이 집.”
“쇠돌이 집엔 왜?”
잡시 경희는 멈칫한다.
“아버지 부르러.”
“아 인제 겨우― 다 그만둬…… 그만두구 어서 집으루나 가. 뭐 나 옷을 그렇게 적시고 매친년 같으니…….”
할아버지는 무섭게 흘기고 쫓아오려고 한다. 그러나 그대로 돌아서 둑으로 올라간다.
하루가 지나도 뗏목은 처치가 못 되었다. 헐값으로 팔아 없애려고 하였으나 마땅한 사람이 나서지를 않는다. 사고는 싶어들 하나 그들도 뗏목 주인이 찾으러 올까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지영호 자신도 집에다 쌓아 놓기는 싫다. 그래 그는 동네에서 살 만한 사람을 물색한다. 장주사 외는 살 만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어제라도 장주사를 찾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작은 아궁이에 불을 지핀 안방 건넌방의 새로 바른 새 벽은 누릇누릇 말라 간다. 뜨거운 김이 엉기어 방방에 자욱하고 마루로 퍼지고 마당에 선 지영호의 낯까지 홋홋하다. 아들은 마루에 누워서 꼼짝도 않는다. 어젯밤도 새벽에야 들어왔다. 오정이 가깝도록 조반도 안 뜨고 자빠졌다.
지영호는 장독대에 놓인 빨랫방망이에 눈독을 들인다. 그놈으로 자는 놈의 볼기를 실컷 패고 싶다. 그러나 꾹꾹 참는다. 참으려니 눈꼴만 틀려 간다. 그는 큰기침을 청하고 애써 가래를 모아 대문 밖으로 날린다. 그는 가래를 쫓아 밖으로 나선다.
마을 한가운데 제일 높은 곳에 장주사의 집과 나란히 선 용궁당에서는 제사떡 반기를 나르기에 여러 여자들이 분주하다. 쇠돌 어머니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떡함지를 안았다. 칼로 떡을 썬다. 손바닥만한 것을 옆에 쌓인 쟁반에다 한 조각씩 놓는다.
“어 이구 오줌이나 누어야겠다.”
별안간 쇠돌 어머니는 벌떡 일어난다.
“그대루 앉어서 싸지, 누긴 뭘 눠.”
여인 하나가 짓궂게 치맛자락을 붙든다.
“왜 오줌떡을 좀 먹구 싶어서.”
모두들 깔깔 웃는다. 마당 한편 끝에 한데 뒷간으로 쇠돌 어머니는 신을 찍찍 끈다. 그러나 다 가지도 못해 그는 지영호의 시선과 마주친다. 대번에 눈을 아래로 깔고 모르는 체한다.
“쇠돌 어머니 날 좀 보슈.”
하고 지영호가 부른다.
“우리 앤 요즘 안 가우?”
가까이 오며 지영호는 은근히 묻는다.
“언젠 우리집에 왔에요.”
쇠돌 어머니는 입을 삐죽 내민다.
“아니, 요 며칠 말요.”
“색시엥게 반한 사람이 우리집에 올 턱 이 있어요.”
“색시라니? 누구 말요.”
지영호는 눈을 부룹뜬다.
“흥! 모르시는 모양이군…… 아마 지금두 장덕수 첩 집에 있을걸요.”
쇠돌 어머니는 어디까지든지 빈정 대는 태도다.
그러나 지영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홱 돌아선다. 가슴이 선뜩해진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장주사를 찾아 뗏목을 팔아 볼까 했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끔한다. 그는 한달음으로 집으로 뛰어간다.
집에 들어온 지영호는 먼저 장독대로 간다. 방망이를 집는 손은 떨린다. 다시 마루로 가 신을 신은 채 마루 위로 올라가 방망이를 쥔 팔이 머리 위로 쳐들리고 아들의 볼기를 향해 떨어진다. 철썩! 누웠던 몸이 발딱 튄다.
“왜 이래요?”
아들은 눈을 흘긴다. 그러나 사정없이 또 철썩!
“이놈 자식! 이젠 더 할 것이 없데!”
이번에는 등에서 또 퍽!
“할 것이 없어 남의 집 계집을 건드려!”
아들은 대번에 풀이 죽는다. 외면을 하고 매를 피할 생각도 않는다.
“이거 미쳤수!”
부엌에서 튀어나온 아내는 남편의 괄에 매달린다.
“놔! 놔두라니깐!”
지영호는 뿌리치려 하고 아내는 작척을 한다.
“미쳤수 미쳤어! 왜 이러슈.”
그래도 아내는 방망이를 뺏으려고 한다. 방망이째 아내를 밀친 지영호는 주먹으로 아들의 볼을 지른다. 발로 걷어찬다.
“나가 죽어라 죽어! 너 같은 놈은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야!”
암만 쳐도 반응이 없다. 주먹만 아프다. 전신은 더욱 와들와들 떨린다. 제풀에 지친 지영호는 마루 끝에 펄썩 주저앉는다. 담배를 입에다 물려다 말고 갑자기 마루를 땅땅 치며 몸부림을 친다. 울음이 칵칵 막힌다.
“네놈 때문에 다른 식구들까지 못 산다. 무슨 낯으로 살란 말야. 얼굴에 똥칠을 해주어두 유만부득이지 남의 계집을 건드린단 말이 웬 말야!”
영문을 모르던 그의 아내도 눈이 둥그래진다. 광으로 뛰어들어가 숨은 며느리의 어깨도 흔들린다. 아들만 목석같이 꼼짝도 않는다.
“이대론 못 산다. 나가라 나가…… 툭하면 죽겠댔지, 어서 죽든지 나가든지 해!”
아들 점용이는 고개를 홱 쳐들고 일어선다. 오만상으로 찌푸렸다. 잠시 아버지를 무섭게 노리고 섰던 그는 허리춤을 고쳐매고 밖으로 나간다.
“나갈 테거든 영영 나가!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말어라.”
마지막 다짐을 하듯이 아들의 등에다 씹어 던진다. 광에서는 며느리가 흑흑 느낀다. 지영호의 입에서도 탄식이 나온다.
“집안 꼴은 될 대루 되었다.”
노름으로 신세를 망치고도 게다가 한술 더 떠, 계집도 하고많은 중에 한 동리 계집을 건드린단 말이야. 장덕수가 알면 어찌 될 것일까. 머지않아 큰 소동이 나고야 말 것이다.
없어지려거든 멀리멀리 떠주기나 했으면 좋겠다. 언제는 제가 벌어 살림을 보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 일년 동안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알뜰히도 식구들을 볶았다. 제가 나간다고 눈 하나 거듭떠볼 식구도 없을 것 같다.
“죽은 셈만 치면 고만이다. 죽은 셈만 칠 테야!”
울타리 너머 허공에다 대고 소리를 치도록 그의 분은 좀처럼 풀리지를 않는다.
강물은 전대로 맑게 개고 폭양은 아무 일이 없었던 듯이 내리쪼인다. 한낮의 미적지근해진 강물에는 선유객이 차츰 늘고 벌거승이 수영객들은 가에서 물을 즐기게 되었다. 수양버들들은 느른하게 마디의 힘을 잃었으나 강변의 풍경은 오히려 풍성하다.
사공으로 돌아간 지영호는 돈벌이에 바빴다. 저녁까지도 경희를 시켜 들어다 먹고 팔이 삐근하다. 주머니애는 지전장 수가 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집을 한번 나간 채 소식이 없는 아들을 생각하고 항상 가슴이 뭉클하다.
아내는 뒤로 아들의 거처를 수소문하는 눈치다. 있음직한 곳으로 쫓아가고 경희를 풀어 놓는 모양이다. 지영호 그도 아내에게 지지 않게 알아볼 만큼 알아보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번번이들 머리를 젓는다.
며느리의 슬픔보다도 아내의 성화가 더해 간다.
“어서 좀 찾어보슈. 가만히만 있지 말구.”
“쓸데없는 소리 말어!”
“그럼 어떡 헐랴우.”
“내버려둬. 저 아쉬면 어련히 들어올라구.”
누구보다도 설레는 마음을 억제하고,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경하게 식구들을 나무라는 그다.
아들과 계집과의 정이 얼마나 두터운지는 모른다. 계집은 아직 동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거취를 캐어 볼 용기까지는 안 난다. 혼자 몸을 감춘 것만이 다행이고 또 그러한 동안만 장덕수를 만나도 죄스런 마음이 덜하다. 오히려 잘된 양도 싶다.
그러나 또다시 집안을 생각할 때 고독이 가로 걸린다. 나가란 말을 고깝게 들었다 하더라도 너무나 애비의 진심을 몰라준다. 도망을 하지 않고도 일은 처리할 수가 있을 것이고, 굳이 도망을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용렬한 자식이다. 늙은 애비만을 믿고 달아나다니 원통하기도 하다. 애비를 부려먹는다고만 해서가 아니다. 마음이라도 위로를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못쓸 버릇만 놓아 주면 벌어들이지를 않아도 좋다. 그것만을 다행으로 감지덕지 맞아들이겠다.
‘애비를 생각지 않는 놈, 괘씸한 놈!’
하고 단념도 해보려 하나 그럴수록 그의 마음은 도리어 아쉬워 간다. 애써 건진 뗏목만 하여도 아들이 속만 썩이지 않았던들 진작 땔나무라도 처분이 되었을 것이 아니냐. 뗏목 주인에게 뺏기고 겨우 품삯으로 십 원을 받게는 안 되었던 것이다.
밤늦게야 배를 탄 젊은 남녀는 돌아갈 생각들을 않는다. 쏘곤쏘곤 얘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아랫강 철교에 기차가 지나간다. 막차인 모양이다. 칸칸마다 환한 불빛은 어둔 장막을 통해 아릉아릉 까분다. 기차가 지나가자 보트 구락부의 전등이 마지막으로 꺼지고 어둠은 한충 더 짙어졌다. 사방은 죽은 듯 고요하다. 뱃머리에 거슬리는 물결 소리만 찰싹찰싹 가늘게 또렷하다.
“혼자 살자구 이 지랄인가.”
혼자 중얼거리고 그는 한숨을 짓고 하늘을 쳐다본다. 아까보다도 수가 늘어 총총한 별들은 제가끔 반짝인다. 하늘이 가깝게 내려앉았다. 가만히 부는 바람에도 우수수 쏟아져 강물을 끓여 놀 것만 같다.
별안간 동쪽 하늘에서 별 하나가 꼬리를 달고 바로 앞산 너머로 떨어진다. 그 위에는 은하수가 강의 허리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다.
지영호는 다시 동리로 눈을 돌린다. 캄캄한 속에 희미하게 번진 다만 하나의 불빛이 띌 뿐이다. 그의 집에서 비치는 전등일 것이다. 불현듯 또 마음이 설렌다. 점룡이가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는 기침을 짓물고,
“너무 늦었는뎁쇼.”
하고 휘장 안에 또 한번, 말을 건다. 그러나 남녀는 쏘곤댈 뿐 못 들은 모양이다.
“고만 노시죠.”
하니 그제서야 휘장 안에서는, '
“더 놉시다.”
“시간이 늦었는뎁쇼.”
“늦었으면 상관 있소.”
“제가 재미 없으니깐 그렇습죠.”
“왜?”
휘장 안의 목소리는 좀 거만해진다.
“순사에게 들키면 혼날 테니깐 그렇습죠.”
이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다. 여자가 가자고 일어서는 눈치다. 그러자 휘장이 제쳐지고 사내만 나오더니 지영호의 손에 무엇을 쥐어 준다.
“저― 위로 갑시다.”
하고 남자는 다시 휘장으로 들어간다. 그칠 줄 모르는 남녀의 얘기는 또 계속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얘기는 영 분간할 수가 없다.
노를 술슬 저으며 지영호는 쥐어 준 것을 펴볼 생각을 않는다. 보지 않아도 지전일 것이다. 그는 야금야금 위로 향해 노를 젓는다. 동리에 남은 전등 하나마저 높아지는 강변 언덕 너머로 습고, 배는 어느덧 은하수 밑까지 왔다.
이때 멀리서 여자의 음성이 들려 온다. 지영호는 귀를 기울인다. 누구를 찾는 모양이다. 여자의 부롬에 뒤이어 어린애의 부름이 꼬리를 단다.
차츰 가까워지는 것 같다. 아버지를 부르짖는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부르짖음은 떨린다. 어린애의 목청은 길게 가련하다. 다시 멀어진다. 꽤 오래 강변에서 헤매인다. 가까워졌다 또 멀어진다.
‘누가 물에라도 빠졌나?’
지영호는 쉬었던 노를 움직인다. 반동적으로 그는 은하수를 뒤로 더 올라간다. 정말 자살사건이면 시끄러워진다. 자기의 이러한 꼴을 뵈기도 싫다. 은하수도 꽤 멀어진 데서 배를 멈춘다. 아버지를 찾는 애달픈 여인의 부르짖음도 뚝 그친다.
아침해도 동쪽 산 위에서 멀어진 때 밝은 햇빛을 기하는 듯 말이 없는 남녀를 강 건너 마을로 실어다 주고 천천히 그는 동리로 향해 노를 젓는다.
새 젓독을 실은 늘배에서는 아침을 짓는 모양이다. 늘배 중간 새 젓독 틈에서 바가지를 쥔 팔이 드나든다. 강물을 퍼들인다. 배에서 솟는 가느다란 연기는 까물까물 흔들리다 곧 지워진다. 그 옆 배에서도 상투잡이 사공이 기지개를 펴며 머리를 든다. 통통 가칠목에서는 널을 깎는 자귀 소리가 부지런하게 들려 온다. 비단결 같은 물결이 파르르 잔주름을 잡는다.
동리로 올라가는 길에 지영호는 여러 사람과 마주친다. 물동이를 인 여인을 제치고 물장수와 마주친다. 전에 없던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눈치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는 새삼스럽게 실망한다. 어젯밤에도 점용이는 돌아오지를 않은 모양이다. 영 나간 놈을 기다리는 자신이 우스워도 진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 그는 아들의 이름을 부를 뻔하였다. 아들은 번듯이 제 방에 누워 있지를 않은가. 모든 감정이 씻은 듯 사라진다. 다만 반가울 뿐이다. 텅 빈 것 같은 건넌방이 팔았던 세간을 다시 장만한 때와도 같이 대번에 마음이 든든하다.
급한 마음에 재촉을 할 것도 없이 아내는 그에게 전말을 보고한다. 하지만 그 설명은 조금도 반가울 것이 못 된다. 그의 얼굴은 금시로 험악해진다.
급기야 점용이는 장덕수와 충돌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계집과 도망을 하려던 직전에 발각이 되었다 한다. 장덕수와 싸움이 벌어지고 장덕수를 댓돌에다 메어치자 신음하는 소리를 뒤로 어머니는 점용이를 때려 가며 집으로 끌고 왔다고 한다.
“그렇 때면 임자는 집을 비게 된단 말유.”
아내는 그를 원망한다. 아내의 말과 같이 그가 어젯밤 집에만 있었어도 옷을 갈아입으러 잠깐 집에 들렀던 아들을 꼭 잡았을 것이고, 며느리가 강변으로 헤매며 찾는 소리에 쫓아만 왔어도 그런 변은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영호는 어젯밤 일을 후회하기 전에 몇 번이나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주저앉는다. 소리도 못 지르고 몸만 와들와들 떤다. 노름꾼 아들을 두었다 해서 낯이 따갑던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이제는 이 동리에서 떠나야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여차이다. 장덕수의 태도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는 힘없이 몸을 일으킨다. 얼마 후 지영호는 용궁당 뒤 깨끗한 솟을대문 앞에서 기웃거린다. 드디어 두려운 마음으로 장덕수를 찾는다. 장덕수 아닌 장주사가 그를 맞는다. 그러나 장주사는 인사를 할 여유도 주지 않고 험악한 낯으로 그에게 대든다.
“그놈이 인제 할 짓이 더 없지! 살인까지도 하려는 게 아냐?’,
하며 장주사는 담뱃대를 고쳐 쥐고 한 발 다가선다.
“그럴 리야 있었겠습니까?”
“아니라니, 그럼 뭣이야?”
장주사의 등뒤에서 그의 아내가 표독하게 덤벼든다.
“저두 모르구 그랬겠습죠.
“잘못한 게 없단 말이지? 에이 괘씸한 놈들 같으니!”
장주사는 지영호를 칠 듯이 팔을 쳐들다 놓는다.
지영호는 비는 수밖에 없다. 그가 장주사를 찾은 것은 빌기 위한 것이다. 불끈하는 욕을 참으며,
“아녜요, 그러게 제가 사과하러 온 것이 아닙니까. 제 놈두 인제 생각이 있겠죠. 저 역 그놈을 그대루는 내버려두질 않겠으니 한 번만 용서를 해줍쇼.”
“흥! 이런다고 일이 무사할 줄 알어! 고소할 테야!”
“사람을 반쯤 죽여 놓고도 빌면 된단 말야? 에이 염치없는 놈들 같으니 !”
장주사의 아내는 이를 악물고 덤빈다. 며느리도 한 발 다가서며 지영호를 노린다. 그러나 차마 대들지는 않는다.
지영호는 점점 거북하기만 해진다. 그대로 빠져나오고 싶다. 하지만 그는 한 결음 더 다가서며,
“어떻습니까?”
하고 안을 기웃해 본다.
“볼 것도 없어!”
장주사는 그를 밀친다.
지영호는 도리어 화가 난다. 장주사의 서두는 품은 고소라도 하고 말 것 같다. 해볼 대로 해봐라. 나도 모른다.
“고소를 안 할 줄 아니? 고런 놈은 한번 혼이 나봐야 알어!”
장주사는 더욱 악을 쓴다.
지영호는 슬며시 빠져나온다. 아니 간 것만 못하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 모욕을 당하러 갔었던가. 이것도 그 잘난 아들로 인해 받는 욕이다. 그들의 서두는 품은 당연하리라. 그는 생각할수록 치가 떨린다. 점용이가 없어졌다 해서 아쉬워하던 자신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지영호는 집에 들어서는 길로 곧장 아들의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아들의 멱살을 찹아 일으키고 밖으로 끌려 한다.
“무슨 염체로 자빠졌는 거야? 네 집야? 네 애비야? 반갑지 않다. 어서 나가, 어서!”
그들의 소동을 감추어나 주려는 듯 별안간 비가 처마끝 양철을 두드린다. 방 안이 컴컴해졌다. 질핏하게 안 끌리려는 점용의 얼굴은 더 한충 오만상이다.
“콩밥을 먹거나말거나 난 모른다. 내 눈앞에서 보이지만 말아 다우.”
지영호는 한 손으로 문설주를 쥐고 아들을 부득부득 잠아끈다.
“나가죠, 나가요.”
꼼짝도 않던 아들은 순순히 일어난다.
“일껏 붙들어 논 걸 덧들여 노면 어떡해요! 제발 좀 내버려두슈.”
아내는 발을 구르며 애원을 한다.
“어머니 고만두세요.”
아들은 문지방을 넘어서려 한다.
“글쎄 넌, 가만히만 있어. 울지 말구 너두 좀 들어와 붙들어라!”
김씨는 아들을 밀치며 며느리를 꾸짖는다. 그래도 며느리는 경희를 부둥켜안고 울기막 한다. 비는 천둥을 섞어 억수같이 쏟아진다.
점용이는 다시 펄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한참 만에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허겁을 해서 김씨는 아들의 팔을 덥석 붙든다.
“어딜 가니?”
“…….”
아들은 대답을 않는다.
“미친 짓 말구 어서 앉어라.”
김씨는 사정없이 힘껏 아들을 떠민다.
아들은 힘없이 또 주저앉는다.
멍하니 얼이 빠진 눈으로 그러한 꼴을 바라보는 치영호는 더 욕을 해야 할지 달래야 할지를 정치 못한다. 전에 죽겠다고 서두르던 때 이상으로 아들의 표정은 심각해 보인다. 정말 죽으려나 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방을 피해 마루로 나와 앉는다. 애꿎은 담배 연기만 뻑뻑 뿜어 논다. 비바람에 연기는 퍼지지를 못하고 그의 얼굴에서 싸고돈다.
비는 줄기차게 쏟아진다. 우연히 시작된 비는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어도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나 장마가 이렇게 가까울 수는 없다. 장마는 아니리라. 동리에서는 태평한 낯으로 아직도 궁금한 점용이의 사건을 조상에 놓고 씩둑거린다. 점용이가 집에만 파묻혀 있는 것도 신기하려니와 계집을 때려만 주고 도망을 하게 내버려둔 장주사의 처사도 괴이하다. 정장을 하려면 계집을 쫓을 리는 없다. 장주사로서는 아들의 방탕을 막으려 애쓰던 참이니 오히려 이번 기회를 반갑게 맞이했을는지도 모른다. 동리 사람들의 호기심은 얼마큼 김이 빠졌다. 연놈을 한 묶음에 매놓고 뚜들겨야 하는 데 그들의 흥미는 있는 것이다.
모두가 무거운 침묵 가운데 비가 또 한 밤을 새우고 나니 동리에서는 남의 일에만 마음을 잡힐 여유가 없어진다. 강의 물은 또 배가 불러지고 벌써 거품이 내려온다. 이틀 만에 강물이 불은 것은 상류지방에 비가 많이 왔다는 증거이고 거품은 본격적 장마가 될 징조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강변에 나가 밀물을 유심히 살핀다. 밀물은 바득바득 언덕으로 기어오르기만 한다. 배의 닻을 끌었다. 언덕에 묻었던 것을 다시 언덕 너머로 옮기게 된다.
그 동안 말랐던 뒷강에도 물이 트였다. 잡풀을 쓰러뜨리고 물끝은 쏜살같이 달아난다. 그 뒤를 받치는 물결은 점점 범위를 넓게 잡는다. ‘설마……’ 하고, 용궁님을 믿으려 하던 그들은 완전히 수심에 쌓인다. 올해는 십이룡치수(十二龍治水)로 가물어야 할 해운이다. 이렇게 비가 많고 장마가 잦은 것은 어떠한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몇 번이나 몰래 튀어나가려는 아들을 붙들기에 지영호는 지쳤다. 틈틈이 강변으로 나가 배도 보살펴야 하겠으나 그러할 겨를이 없다. 쏟아지는 비는 아들을 감시하는 데 큰 위협이 된다. 그는 수면부족으로 눈꺼풀이 뻣뻣해졌다. 아내가 눈을 뜬 것을 기회로 그는 대신 눕는다. 금세 코를 곤다. 그러나 이내 잠이 깨었다. 악몽에 시달리던 그를 누가 부른다. 깜짝 놀라 눈을 뜬 것이다.
“성님!”
꿈속에서 부르는 것같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성님! 나오세요!”
뽕나무 앞쯤에서 부른다. 멀리서도 비에 젖은 고함이 수선스럽게 귀에 거슬린다. 전번 장마 때의 광경이 번개같이 지나간다. 정신이 홱 들어 몸을 벌떡 일으킨다.
“성님! 주무시는 게 뭐예요!”
“네― 나가우.”
그는 당황하게 밖으로 뛰어나간다. 언덕도 채 못 내려가 그는 주춤한다. 길이 막혔다. 어느새에 언덕 아래까지 밀물은 침범하고 있다. 강변 언덕을 넘고도 하루는 되어야 탁류는 오이밭까지도 덮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서두는 장마는 난생 처음이다.
“아, 이거…….”
그는 다음 말이 막힌다.
“큰일났에요…… 지금이라두 피난들을 해야겠는데요.”
그러나 피난보다도 지영호는 강변 배들에 매단 배가 궁금하다.
“배는 어떻게 되었을까?”
“성님 배두 여기 떼왔에요.”
사공인 동료는 친절히도 뒤를 가리킨다. 그제서야 동료의 배 뒤에 빈 배를 발견하고 가슴을 쓰다듬는다.
“얻른 준비하세요.”
동료는 배를 대어 주고 윗말로 저어 간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동리는 떠들썩해진다. 서로들 이웃에 소리를 지른다. 별안간 천둥이 창문을 흔든다. 뒤받아 번갯불이 전등을 깜박이게 한다. 빗발은 더욱 험악하게 퍼붓는다.
지영호는 광에다 시렁을 짠다. 기둥의 새끼 자국도 가시지 않은 지금 또다시 새끼로 오리목을 얽어매야 한다. 그도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어쩌는 수가 없다.
“쓸데없는 짓일랑 그만둬요.”
아내의 핀잔은 잠시 그의 손을 쉬게 한다.
“그럼, 어떻게 할 테야.”
“지난번에 속구두 또 꾀만 부려요.”
“괜찮어. 두 번째 장만데 큰일은 없겠지.”
그는 계속해서 얽어맨다˚
“고집만 부릴 게 아녜요. 이번일랑 제ㅡ발 내 말대루 실어 냅시다.”
그러나 그는 굳이 손을 멈추지 않는다. 세간을 올려놓을 자리를 마련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반닫이를 들척이며 아내에게 거들기를 청한다.
“어서 이리 좀 와― 너두 이리 오너라.”
며느리는 거역을 못 하고 방으로 들어오니 아내는,
“난 모르겠수. 어서 재주껏 해보시구려.”
하고 영 모르는 체하려 한다. 점용이나 일어나 거들었으면 좋으련만 내다보지도 않는다.
“자니?”
“안 자요.”
며느리는 민망한 낯으로 대답한다. 그도 아들을 부를 생각까지는 못 하고 다시,
“어서 이리 와!”
하고 아내를 재촉한다.
날이 밝았다. 동리는 뺑 돌아 탁류에 싸이고 완전히 고도화하고 말았다. 길마다 막히었다. 이웃과의 왕래도 끊어졌다.
경희는 대문을 나서 물 앞으로 다가선다. 양산을 어깨에 메고 앉는다. 몸뚱이 전부가 우산 안에 폭 싸인다. 밀물은 밀려들었다. 뒷걸음질치고 또 밀려온다. 더 늘지도 않고 그대로만 있는 것 같다. 경희는 울타리 밑의 전나무를 꺾어 발 앞에 꽂아 본다. 그리고 경희는 청개구리에 눈이 팔린다. 청개구리는 언덕으로 뛰어올라가다 다시 물로 떨어진다. 물 속에서 물을 발딱 제치고 또 껑충 뛴다.
경희는 잠깐 잊었던 꽂은 전나무를 내려다본다. 전나무 가지는 없어졌고 밀물은 발밑에서 널름거린다. 한 발쯤 도로 물러나고 또 전나무 가지를 꺾으려 한다. 그 순간 짐짓하던 천둥 소리가 귀를 찌른다. 경희는 깜짝 놀라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엄마, 물이 자꾸만 늘어.”
“거 참 큰일났다.”
“그럼 가칠목 할먼네로 그전처럼 가나.”
“이번두 그렇게 될라나 보다.”
“그럼 언제? 이따가?”
경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밖을 유심히 내다본다.
“에그머니나! 뒷물이 터졌네!”
뒷집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마루 밑으로부터 탁류는 소리도 없이 앞마당으로 펴진다. 헌짚신이 밀려 나온다. 경희의 꽃나막신이 둥실 떠내려간다.
“엄마 내, 내 나막신 봐!”
경희는 마루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나막신은 장독대 앞으로 가다 슬쩍 방향을 돌려 대문간으로 쏠려 간다.
앞강 뒷강의 물이 합쳐진 탁류는 더욱 빠르게 불어만 간다. 지영호네 문턱을 넘어서고 골목 안으로 깊어 간다. 그제서야 피난민들은 급하게 서둔다.
“어서들 나와!”
지영호는 배를 문간에 대고 식구들을 재촉한다.
“여보! 이리 좀 들어오슈!”
아내는 도리어 그를 찾는다.
“왜 그러는 거야. 어서들 나오라니깐.”
쫓아들어온 지영호는 방 안에 번듯이 누워 있는 아들을 재촉한다. 그러나 아들은 들은 척도 않는다.
“어서 나와!”
“난 안 나가요.”
아들은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남들 기대려!”
밖의 배에는 집 식구들이 차지를 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아들은 슬쩍 돌쳐 눕는다.
“이거 왜 이러나!”
별안간 장정이 들이덤벼 점용이를 일으켜 놓는다.
“죽구 싶은가 죽구 싶어! 물 느는 것 봐!”
점룡이는 도수장으로 끌리는 소같이 걸음도 무겁게 끌려 나온다.
“답답한 사람두― 어쩔려구 그러는 거야!”
뒷집 젊은이는 점룡이를 업어다까지 주며 또 핀잔을 준다.
노는 뒷집 젊은이가 맡았다. 지영호는 뱃머리에 서서 긴 장대를 쥐고 배가 집집의 담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배 안에서는 경희 혼자 즐겁다. 늘 다니던 길 위를 배로 가는 맛이 이상하고 기쁘다. 집집마다 손가락질을 하며 뉘 집이라고 재재거린다.
“쇠돌이 집야, 쇠돌이 집.”
경희는 또 소리친다. 경희 엄마도 쇠돌네를 유심히 본다. 피난한 지도 오래인지 텅 비었다. 마루 위에 높이 치달린 장릉은 더욱 집안이 쓸쓸해 보인다.
“얼른들 나오지 뭣들 해!”
뉘 집에선지 피난을 재촉하는 고함이 들려 온다.
쇠돌네를 지나 배는 골목에서 쏠리어 탁류에 볶인다. 골목 안에서 깨진 바가지쪽이 급히 내려오다 배에 부딪칠 뻔하더니 홱 옆으로 쏠린다. 배 안의 사람들은 힘찬 탁류의 물결을 돌려보고 말들이 딱 그친다. 경 희마저 눈이 둥그래져 할아버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못한다.
골목 안의 탁류를 안은 채 뱃머리는 홱 방향을 돌린다. 바로 옆은 거센 탁류가 지나간다. 지영호는 바쁘게 장대를 집어 옆으로 돌린다. 장대는 물 속에 다 들어가고 손잡이만 남는다. 그는 엎드러져 장대 끝을 어깨에 대고 힘껏 뱃머리를 들버티며,
“안으로 돌려 돌려!”
하고 소리치며 뒤를 돌아본다. 이마에는 핏대가 불끈 퉁겨졌다.
뒷집 젊은이는 노를 가누지 못한다. 위로 솟는 노를 가누기에만도 오히려 몸의 중심을 잃을 뻔한다. 두 사람의 허둥대는 꼴을 보고 배 안의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 간다. 배 꽁무니는 거센 탁류 속으로 밀려 나간다. 노는 점점 무거워진다. 탁류는 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다. 점용이는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먹들먹하나 일어나지는 않고 고개를 더욱 숙인다.
지영호는 장대를 물 속에서 빼어 뱃머리로 좀더 나가 급히 물 속에 처넣는다. 땅에 꽂혀지자 힘껏 앞으로 당기고 또 엎드려 장대 끝에 어깨를 대인다. 위로 미는 듯하다. 몸째 배를 옆으로 밀친다. 배는 조금 앞으로 밀린다. 발버팀을 옆으로 고치고 그대로 밀친다. 배는 제법 물결을 헤치고 밀린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장대를 뺀다. 다시 물 속에 잽싸게 박는다. 장대 끝은 뱃전 위에서 머무른다. 뒤에서 노를 젓는 바람에 배는 쑥 거센 물결에서 벗어난다. 배는 골목을 건넜다.
장대를 빼들고 지영호는 가쁜 숨을 돌린다. 남은 사람들도 잇대어 한숨을 짓는다. 배는 밀리고 남은 힘으로 남의 문간을 친다.
“경희 할아버지세요! 우리도 좀 태주세요.”
하고 고함이 빈집인 듯싶던 안에서 들려 온다. 활짝 제쳐진 일각대문으로 마루에서 동동 발을 구는 세 식구가 보인다.
“입때 뭣들을 하셨수.”
지영호는 문간 기둥을 잡으며 외친다.
“용궁당으루 가세요.”
“용궁당으룬 가 뭘 해요. 가만히들 계슈.”
지영호는 그대로 배를 마당으로 들이댈까 생각한다. 그러기에는 대문이 좁다. 그는 배의 밧줄을 집어 기둥에 얽는다.
“용궁당으루 안 가세요?”
집 안의 아낙네는 또 따진다.
“쓸데없는 소리 말구, 어서 나와요!”
배 안의 김씨도 외친다.
지영호는 배에서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간다. 비에 젖은 옷은 새삼스럽게 걷어 올릴 필요도 없다. 허벅다리까지 물에 젖는다.
“용궁당으로 가두 금세 쫓겨날 걸 가문 뭘 해요. 이 물 는 것을 보시구려.”
마루 앞에 이르러 지영호는 돌아서 팔을 젖힌다. 노파를 먼저 업는다. 그의 뒤를 따른 젊은이는 사내놈을 업는다. 젊은이는 또 한번 아낙네를 업어 오고 세 사람을 더 실은 배는 그만큼 물 속에 가라앉고 물결은 뱃전에서 찰랑찰랑한다. 그러나 배는 아무런 고장도 없이 둑에 이른다.
둑에서는 몇 사람이 와쩍 달겨든다. 서로들 헤집고 나선다. 김씨는 그들에게 뺑 둘러싸인다.
“어때요?”
“부쩍부쩍 늘어만 가는걸…… 비가 멈춰야만 하지 않우.”
김씨의 한숨을 따라 모두들 한숨을 짓는다.
“우리집은 아직 괜찮어요?”
“앞길로 와서 못 봤지만― 누님 집이구 물에 안 쟁긴 집은 없으리다.”
“앞서 장마에 기울어진 건넌방을 고치지도 못했는데…… 쓰러지지나 말었으면…….”
젊은 여자는 안타까운 낯으로 힘없이 물러선다.
둑 위는 피난한 사람들로 덮였다. 북쪽의 저쪽 끝은 빗발에 서리어 또렷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저마다 우산도 다 갖지 못했다. 비에 젖은 사람들은 전신을 와들와들 떤다. 한군데 붙어 있지를 못한다. 번차례로 둑 아래로 달려와 물의 느는 품을 유심히 겨냥댄다.
“훨씬 늘었어!”
하고 뒷사람에게 알린다. 뒤로 그 말이 펴지고 물이 는 것 이상으로 한숨이 늘어 간다. 둑 위는 와글와글 더한충 수선스러워진다.
김씨의 조금 뒤에서 갓난이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린다. 젊은 어머니는 젖도 안 주고 볼기만 친다.
“이 웬수년의 자식! 남의 속도 모르고 왜 보채는 거냐!”
젊은 어머니는 옆에 세간을 끼고 섰다. 농짝이 있고 뒤주가 있고 그 뒤에 찬장이 우뚝하고 오지항아리들, 화덕까지도 지키고 섰다. 김씨의 눈에는 점점 그러한 것들만 뜨인다. 분한 마음에 가슴을 부근거린다. 세간을 실어 낸 집은 한두 집이 아니다. 세간들은 사람 틈에 간간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김씨는 홱 몸을 돌려 남편에게 급하게 가까이 간다. 화가 난 표독한 소리를 와락 지른다.
“임자두 눈이 있으면 좀 보우. 다들 실어 내질 않었나― 어서 가 실어 와요.”
“아주머님두― 인젠 안 돼요.”
뒷집 젊은이가 질색을 한다. 남편도 잠깐 흘기고,
“실어 내다 비에 적시면 날 게 뭐얘 물은 일상 늘기만 할 줄로 아는 게로군.”
하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 김씨는 더 조르지를 못한다.
그러나 물은 줄 줄을 모른다. 한없이 늘어만 간다. 빗발은 바람에 들볶여 이리저리 헷갈린다. 용궁당 지봉까지만 가까스로 분간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윗말까지도 빗발이 겹겹이 줄을 늘여 희미하게만 내려다뵌다. 그 뒤는 하늘과 강물이 맞닿아 합동이 되었다. 강변 버드나무들도 띄엄띄엄 탁류 위로 고개를 쳐들고 그 빛도 거무스름한 게 울상이 된 것도 싶다.
앞뒷강 탁류의 거품은 부걱부걱 부풀어 노란 꽃밭을 싣고 달아난다. 멧목이 그 속에 얼마나 파묻혔는지 누구 하나 찾아볼 생각들을 못 먹는다. 뗏목보다도 버리고 나온 집들이 궁금하다. 둑 아래 가까운 집들은 지붕만 남기고 아랫도리는 고스란히 물 속에 잠긴 것에 눈이 팔린다. 그 집들과 가리워진 자기네 집들과를 눈어림으로 높이를 재어 보고 제가끔 한숨을 지을 뿐이다.
피난민들을 가득 실은 배가 하나 또 둑에 닿는다. 그들은 새로 온 소식을 퍼뜨린다. 밀물은 용궁당 마당을 덮기 시작한다고 한다.
“용궁당에? 아이구, 그럼 내 집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용궁당 마당과 처마를 맞대고 사는 사나이의 부르짖음이다.
용궁당에는 그 근방 사람들이 거지반 다 모여 있을 것이다. 빈 배는 자분참 뱃머리를 돌려 마을로 향한다.
지영호는 배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여맨다. 둑으로 내려서 닻을 치켜들며,
“자네 같이 가보려나?”
하고 뒷집 젊은이를 돌아본다. 젊은이는 대답 대신 배로 성큼 뛰어든다.
“어딜 들어가요! 임자는 고만둬요!”
아내는 달겨들어 지영호의 팔을 잡는다.
“염려 말구 놔둬.”
아내의 팔을 뿌리치고 그도 성큼 배로 올라선다.
“그런 힘으루 세간들이나 나르슈.”
“그런 소갈찌없는 소리 좀 봐. 사람들이나 살구 봐야지 세간이 그렇게 중해!”
그는 아내를 홀기고 장대를 들어 배를 밀친다.
이때 둑에서는 갑자기 피난민들이 한곳으로 모인다. 점점 엉기어 아우성친다. 높이 쳐든 손에 주먹밥이 한 덩이씩 쥐어진다. 누가 주는지도 모르는 주먹밥이다. 그러나 한 덩이라도 더 얻으려 극성을 피운다.
“밥이나 얻어먹구 가요!”
김씨는 아직도 남편의 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외친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들려 오지 않는다. 남편의 배는 좁은 길로 숨어 버린다. 하는 수 없이 김씨는 몸을 돌려 주먹밥을 얻으러 간다.
점용이는 주먹밥도 먹으려 않는다. 엉거주춤 앉은 대로 꼼짝도 않는다. 그의 눈은 마을에 딱 붙어 있다. 아버지의 배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난빈을 실은 배가 나타난다. 그 뒤에서 아버지의 배도 따르고 있다. 점용이는 잠시 외면을 한다. 우산으로 앞을 가리고 만다. 그러나 우산은 차츰 쳐들리고 그의 눈에는 아버지의 애쓰는 모양이 들어온다.
탁류에 쏠리는 배는 쉽사리 뚝 가까이 저어 온다. 그러나 물결이 옆으로 꺾여 큰물에 합치려는 곳에 이르러서는 좀처럼 벗어나지를 못한다. 배는 둑으로 머리를 두려 하나 꽁무니는 물결에 쏠려 뒷걸음질을 치려 한다. 간신히 배는 둑으로 빠져나온다. 점용이는 은근히 한숨을 쉬고 또 외면을 한다.
앞강 탁류 속에 초가집 한 채가 실려 내려온다. 거품을 헤치지도 않고 누런 꽃밭에 싸인 듯 고스란히 지붕이 둥근 채 밀려온다. 뒤미쳐 초가집 한 채가 앞옛집을 쫓는다. 그러나 두 집은 일정한 사이를 둔 채 흐른다. 철교 밑까지 무사히 흘러와 앞집은 철썩 기둥에 부닥친다. 조금 사이를 두고 또 철썩! 뒷집마저 산산이 헤진다. 하늘은 그 소리에 성난 듯 별안간 우루루 천둥을 한다. 번갯불도 없는 마른 천둥이다.
배에서 피난민들이 내리기도 바쁘게 지영호는 장대로 둑의 언덕을 밀친다. 배는 스르르 둑에서 물러나간다.
“임잘랑 이제 고만두지 뭣 하러 또 들어가는 거요!”
그의 아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외친다. 그러나 천등 소리에 아내의 말은 그 자리에서 지워지고 만다.
별안간 앉았던 점용이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우산도 아내에게 처맡기고 둑 가로 달려간다.
“아버지! 제가 갈 테니 이리 오세요!”
하고 점용이는 소리친다. 그의 외침도 끝은 천등 소리에 지워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소리를 들었음인지 둑을 유심히 돌아다보고 그대로 지붕 뒤로 사라진다. 점용이는 시름없이 돌아선다. 천둥은 잠깐 멈춘다.
그러나 점용이가 제자리로 가기도 전에 동리에서 와르르 소리가 그의 귀를 찌른다. 그는 홱 돌아선다. 눈을밝혀 자기 집을 찾는다. 홰나무 옆의 자기 집은 말짱하다.
“뉘집야!”
둑 사람들은 일제히 둑 가로 몰려오며 제 집들을 찾는다.
“어구 이를 어쩌나!”
훨씬 뛰에서 여자의 울음 섞인 비명이 들려 온다. 울음 소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가까워진다. 쇠돌 어머니가 울며 봬져 나온다.
둑 사람들은 모두 쇠돌네를 찾는다. 쇠돌네 집은 둥실 떴다.
“저기 저기!”
이번은 딴사람이 조바심친다. 물결에 휩쓸려 내려오는 쇠돌네 집은 한 집의 귀퉁이를 특 건드리고 만다. 건드린 집은 한쪽이 힘없이 무너지고 또 불쑥 지붕이 솟는다.
“아이구 큰일났네. 어떻게 산단 말인가!”
조바심치던 사나이는 펄썩 땅에 주저앉는다. 그 집 식구들의 통곡이 터져 나온다.
또 딴 곳에서 와르르 기와의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지붕은 보이지를 않는다. 기와집은 그 자리에서 쁠쁠이 헤어진 것이리라. 뉘 집일까. 저쪽 가에서 울음이 터진다. 세 집 식구들의 울음은 뚝을 차지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더욱 불안한 눈으로 제 집들을 지킨다.
지붕이 솟는 것을 발견하기 전에 둑엣사람들은 배들이 사라진 곳에서 엎어진 배가 제풀로 흘러내려오는 것을 발견한다.
“저게 웬일야?”
모두들 불길한 예감에 몸서리친다. 그 중에서도 점용이의 눈은 한층 크게 떠진다. 가까워질수록 엎어진 배는 그래도 낯이 익다. 아버지의 배인 듯싶다. 그러면 아버지 신상에 무슨 변고가 생겼단 말인가.
“뉘 배야? 사람들을 태워 가지고 나오다 그랬나?”
옆에서도 배가 엎어진 것으로 인정한다. 점용이는 둑 비탈로 급하게 내려간다. 빗발을 통해 떨리는 마음으로 배를 살핀다. 빈 배는 진정 아버지의 것이다. 배보다도 앞서 놋대가 탁류 속에 잠겨 외로이 내려온다. 그러나 탁류 속에 잠겼다 솟고 또 잠기고 하는 사람의 머리를 발견한 그는 머리가 아찔해진다. 머리는 또 솟는다. 이마에 수건을 동여매었다. 탁류 속에서 헤어 나오려는 모양이나 또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점용이는 정신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려 한다.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누가 덜미를 잡아나꾼다.
“급하게 굴지 말어. 가만히 있어!”
엄서방은 점용이를 꼭 잡고,
“허리띠를 끌러요!”
하고 둑 위로 소리친다.
“아이구 난 어떡허란 말이냐?”
하며 김씨는 울음을 터뜨리고 아들을 잡으나 이끌어 올리지도 못한다.
허리띠는 수없이 둑 비탈로 떨어진다. 여러 손들은 바쁘게 잇대어 논다. 엄서방은 그 한끝을 점룡의 허리에 둘러맨다. 탁류 속의 머리는 둑을 향해 솟다 또 옆으로 꺾여 쏠린다. 점용이는 풍덩 물로 뛰어든다. 두 팔을 갈라 빼내고 탁류를 헤치고 급하게 나간다. 그의 몸도 옆으로 쏠리고 움직임이 괴로워진다.
그는 드디어 눈앞에 솟는 머리를 휘어잠으려 한다. 그러나 뒤에서 허리를 잡아다린다. 잇대인 허리끈도 한 뼘쯤 모자라 그는 헛손질을 한 것이다. 머리는 또 탁류 속에 가라앉는다. 둑에서도 허리띠를 잡은 사람들이 옆으로 쫓아오며 끈을 늘여 준다. 점용의 움직임은 다시 자유로워진다. 급기야 그는 머리를 잡고 만다. 그러나 그는 탁류 속으로 딸꼭 가라앉는다. 물에 빠진 사람은 점룡의 손이 머리에 닿자 점용의 몸을 끌어안는다. 점용이는 위로 솟으려 애를 쓰며 그러나 점점 둑으로 이끌려 간다.
둑에 이르렀을 때에는 점용이도 구역이 나고 정신이 흐릿하다. 그도 탁류를 마시었다. 그러나 늘어진 아버지를 보고 바짝 정신을 차린다.
“정신 차려요! 여보 정신 차려요!”
김씨는 남편을 흔들며 소리치는 목소리도 떨린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지영호를 받아 대강 물을 토하게 한다. 엄서방의 무릎에 엎으러진 지영호는 결찍한 물을 입으로, 코로 토한다. 엄서방은 덜 깬 지영호를 들춰업고 철교로 달아난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따뜻한 방에다 뉘어 몸을 녹여 주어야 한다. 점용네 식구들만 그 뒤를 따른다.
동리에서 배 하나가 나타난다. 피난민들을 실었다. 사방은 바야흐로 어둠이 덮이기 시작한다. 둑 위에서는 화톳불이 여기저기 일기 시작한다. 배는 둑에 와 닿는다. 마지막 피난민들을 실어 왔다. 뜻밖에도 지영호의 뒷집 젊은이도 배에서 내린다. 그는 지영호와 동리로 가다 기와집이 쓰러지는 바람에 배가 뒤집히고 자기는 그 옆집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다행한 한숨을 짓는다.
그러나 그들은 둑에서 떨어지지를 못한다. 소리 없어진 동리를 초조한 마음으로 지킨다.
준좌하던 천둥 번개가 또 시작된다. 천둥은 그들의 바로 머리 위에서 귀를 찌른다. 뒤미처 창백한 번갯불이 어둠을 밝혀 준다. 와르르 소리가 동리에서 또 난다.
“뉘 집야?”
그러나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큰일났어 !”
누가 어둠 속에서 탄식을 한다.
“용이 열둘이나 된다더니 웬셈야'”
또 한 사람이 한숨을 짓는다.
다시 그들은 입을 다문다. 입을 열면 더욱 마음이 불안해질 것을 두려워함이다. 그들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만 멈추기를 고대한다.
그들은 한 밤을 둑에서 지내었다. 밤새도록 간간이 요란한 소리를 들은 그들은 희미한 새벽 어둠을 통해 집을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서는 불이 날 지경이다. 눈을 의심해 본다.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차츰 어듐은 지워지고 그들 앞에 드러난 동리는 탁류뿐이다.
탁류는 싹싹 쓸어 갔다. 강변의 그 큰 버드나무까지도 알뜰히 몰아갔다. 버티었던 우산을 던지고 그들은 통곡을 한다. 집터조차 짐작할 길이 없다.
날이 밝기도 전에 벌써 돌아와 있던 지영호의 부자도 어안이 벙벙해진다. 마지막 지붕이 솟는 것도 보지 못한 게 원통하다. 아버지의 임종을 못 본 것 이상으로 슬프다.
앞으로 살아 나갈 것이 걱정이다. 거처를 어디로 정하고 배까지 잃었으니 밑천이 있어야 벌이도 하지 않느냐.
그러나 지영호만은 그래도 마음이 든든한 듯싶다. 잃은 모든 것에 비해 오히려 남음이 있는 두 생명을 찾은 것이다.
삼대를 두고 살아오던 집과 고향을 잃은 것은 여름마다 고역을 당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던 미련에 희생된 것밖에 없다. 언제든지 한 번은 이러한 꼴을 당했을 것이리라.
지영호는 아들을 돌아보며,
“할 수 있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나 생각해 보자!”
하니 아들은 눈물어린 눈으로 아버지의 말을 받고 시선을 돌려 없어진 동리를 노린다.
(《조선일보》, 1940. 1.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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