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0에 기상하여, 호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배낭을 꾸린다.
- 12;00에 호텔 로비에서 집합하기로 하여, 회원들께서는 박물관이나 시내 구경을 나가기도 한다.
나는 호텔에 머물면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 회원들께서 대장님에게 맛사지가게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대장님께서는, "내가 중국 각지를 다니며 맛사지를
다 받아보았지만, 유일하게 하얼빈에서만은 맛사지를 받아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얼빈의 추위에 꽁꽁 얼어있는
몸을 가지고 맛사지를 받다가, 잘못하다가는 얼어붙은 뼈가 부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이리하여, 하얼빈에서는 한 분의 회원도 맛사지가게에 들리지 못했다.
- 버스를 대절하여, 배낭을 실은 후에 '731부대'를 향해 출발한다 (12:00).
도중에 가게에 들러 점심용으로 과자와 음료수 등을 구입하였다.
- 버스에서 731부대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서로 주고 받는다.
관광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없는 배낭여행에서는, 회원들간에 알고있는 자료를 서로 대화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매우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 731부대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몇년전 모 총리지명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웃지못할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731부대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총리지명자의 답변 왈, "독립군부대의 명칭이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 머..)
(*) 731부대 :
-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비밀 세균전 실험기지로, 1932년에 설립하여 1945년까지 생물, 화학무기의 개발 및
생체실험을 행하였다.
초대 부대장인 의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의 이름을 따서 '이시이 부대'라고도 불리며,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다.
- 중국, 한국, 몽골, 러시아의 군인과 시민,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생화학병기의
실험재료로서 (일명, 마루타 - 통나무로 불림)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그중에는 일부 흑인과 유럽인도 포함되었다.
731부대에서 개발된 생화학무기로 인해 수십만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
- 일본의 패망 후, 동경 극동국제군사재판 때 일본의 생체실험문제가 언급되었으나, 미국에 항복한 자들은
그들이 실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미국에 제공하고 소련에 넘겨주지 않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만주에 남아있던 일부는 소련군에 체포되어,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처벌받았다.
이 부대의 잔인한 행위는 국제연합에 의해 전쟁범죄로 선포되었다.
- 731부대와 관련된 많은 과학자가 나중에 정치, 학계, 사업, 의학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시이 시로 부대장은 도쿄대학 학장을 지냈다.
이시이 시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 38선 근처에 유행하던 새로운 전염병인 유행성출열혈에 대한 자문을, 미국이 그에게 협조요청하였기
때문이다.
- 731부대에 도착하니 (12:30), 출입문이 닫혀있다.
정문 앞에 있는 안내소에 비치된 게시판을 보니, 지금은 점심시간인 모양이다.
('731부대' 정문)
(당시에 위병초소였으나, 지금은 안내소로 사용중인 건물)
(개관 안내문)
- 731부대 근방을 돌아다니다가, 13:30에 출입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간다.
예상 외로 관람료가 무료이다.
아니, 별것도 아닌 오만것에 관람료를 받는 중국에서 이게 웬 일인가?..
아마도, 일제의 잔혹함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하고 짐작해본다.
- 한국어 안내가이드는 없으며, 한국어 설명 이어폰을 15위안에 대여해준다.
- 건물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알아서들 대충 사진을 찍는 분위기이다.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한국어 설명을 들으면서, 1시간 30분 정도 관람을 하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 인류역사상 어쩌면 가장 잔인한 생체실험장이라 할 수 있는 세균전 비밀기지를 돌아보면서, 관람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또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하는가 ?
- 한 전시장에 비치된 조각상은, 당시에 일본군의 군의관으로서 생체실험을 실시했던 인간의 양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앞쪽은 이웃집 할아버지같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의사의 상이, 뒷쪽은 장검을 짚고 있는 무서운
일본 군인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의사와 군인의 양면 조각상)
(의사 조각상)
(군인 조각상 - 조각상 앞에 거울이 있어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 인물자료실에는, 이 부대 창설의 주역이자 초대 부대장이었던 '이시이 시로'에 관련된 자료가 여러장 비치되어 있다.
('이시이 시로' 사진)
- 각종 생체실험 장면을 재현한 방들을 둘러본다.
산모와 어린애까지를 포함해 소위 '마루타'라고 불리우는 생체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실험을 했었는지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았기에, 이러한 조각상 정도로는 그 참혹함을 전혀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체실험 조각상)
(마루타들을 묶어놓고, 세균이 든 도자기폭탄을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장면)
(생체실험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
- 전시실을 나오면서 나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표현의 과장법이 유난히 발달한 중국에서, 중국인들이 일제점령하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울분과 통한의 역사 현장인 731부대 전시실의 풍경 때문이다.
- 나는 관람 전에, 중국인의 과장을 잘하는 기질로 인해, 731부대 전시실이 엄청나게 끔찍하고 잔악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당시의 풍부하고 자세한 자료를 중심으로 사실적으로 꾸며놓고 있어, 어쩌면 담담하기까지(?) 한
전시실 풍경이다.
내 생각을 들은 한 회원께서, "전에는 전시실 분위기를 어둡고 무섭게 꾸며놓았었는데,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바꾸었다는
말이 있다더라" 라고 이야기한다.
- 그러나, 전시실 밖으로 나와 건물벽에 쓰여진 한 귀절의 표어를 보는 순간 나는, '아, 그렇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前事不忘 後事之師' ( '전사불망 후사지사' - 과거의 일을 잊지 말고, 후일의 스승으로 삼자 )
이보다 더 무섭고 확실하게 후손들에게 알려줄 전시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전시실을 나서는 벽면에 쓰여진, '前事不忘 後事之師' )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엇을 전하려는 조각상인지 알 것 같다)
(731부대를 나서며)
- 점심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저녁식사를 오후 4시에 하자는 대장님의 전화를 받고, 대절버스로 하얼빈역 앞에 있는
dico's에 도착했다 (오후 3:40).
- 버스에서 내려 배낭을 챙겨 메고, dico's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하얼빈팀과 백두산팀은 헤어지게 된다.
야간열차를 타고서 백두산팀은 연길로 향하고, 하얼빈팀은 다시 대련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정 들자 이별'이라더니, 이제 서로 낯이 익기 시작하였는데 작별을 나누게 된다.
- 중국 음식과 맥주, 소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6:30), 하얼빈팀과 석별의 인사를 나눈 후에 하얼빈역으로 향한다.
(저녁식사 식당)
(저녁식사 중)
(식당 옆에 위치한 여행사에 비치된 기상안내판 - 오늘 최저날씨가 영하 27도로 적혀있다)
(하얼빈역의 야경)
(역 주변 풍경)
- 오늘 타게 되는 기차는, 하얼빈에서 도문까지 가는 그야말로 완행열차다.
모든 역마다 정차하며, 급행열차와 교차하는 역에서는 급행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멈추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하랴 ?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누워갈 침대칸 표가 있지 않은가.
- 어김없이 기차표 또뽑기가 진행된다.
어라, 나는 오늘도 하층 침대칸을 뽑았네..
- 침대칸 좌석을 찾아 배낭을 정리한 얼마후, 기차가 하얼빈역을 출발한다 (오후 7:33).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하얼빈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니, 일말의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추위에 온 정신이 집중되었기 때문인지, 안중근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이 곳임을 되새겨보지도 않고 떠난 것 같다.
- 내 옆자리의 조선족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연길 과기대학교 여학생으로, 여자 친구와 같이 하얼빈 빙등제를 구경하고서, 혼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연길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모아산 트레킹을 듣게 되었다.
별로 험하지도 않고, 산 위에서 연길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 조선족 여학생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옆 칸에 있는 대장님께서, 자기 옆자리 승객과 자리교환을 승락받았으니
대장님 칸으로 오라고 한다.
"아, 싫다. 그 자리로 가봐야 술자리가 벌어지는식당칸이 될텐데, 이 자리에 그냥 있겠다."고 우겼으나,
대장님의 재촉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자리를 옮겼다.
- 내가 자리를 옮겨 하층 침대칸 두 좌석이 확보되자 마자, 술자리가 준비되고 주류파들이 모여들어, 기차 안이 소등되는
밤 10시까지 술잔치가 이어진다.
- 술자리가 끝난 후 세면장으로 가 세면을 마치고, 완행열차 침대칸에 몸을 눕혔다 (밤 10:30).
첫댓글 일본과의 관계때문에 예전에 비해 많이 정리되고 보여주는게 덜하고 박물관처럼 변했따고 하는데도,, 오싹했어요..
매일밤 술잔치를 벌인 주류파 1인입니다.ㅋ 사진 곳곳에 숨어있는 제 모습을 찾는 재미와 자세한 여행담으로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 드네요. 즐겁고 감사합니다.^^*
공주자매님 (자매공주님인가?)의 정다운 모습을 보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던 기억입니다.
사다리타기 연습을 많이 하셔서, 다음 여행 때는 한밤에 술사러 나가는 노역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약수터님의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그림이, 아직 이곳을 가보지 못한 분 들에겐 비참한 역사에 대한 정보를~~, 함께 다녀왔던 우리 일행들에겐 즐거운 추억의 되세김이 되겠네요~**
박행장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