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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19.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요리골목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아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영월 영감 - 이태준
작년 가을,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성익은 집에 들어서자 사랑 마루에 웬 누르퉁퉁한 지우산과 검은 지까다비 한 켤레가 놓인 것에부터 눈이 미치었다. 한 손에 찬거리를 사든 길이라 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들은즉, 자기는 처음 보는 어른인데, 아이들더러, 나두 너희 할아범이야 하는 것을 보아, 아마 당신 아저씨뻘 되는 양반인 게라고 하였다. 옆에서 어린것 하나는, 아주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야 하였다. 나와 뵈니, 정말 성익도 어렸을 때는 무서워하던 영월 아저씨였다.
성익은 참 뜻밖이요 오래간만에 뵙는 아저씨였다. 혼인한 지 십 년이 넘는 성익의 아내는 이번이 처음이도록 여러 해 동안을 뵐 수 없던, 생사조차 모르던 영월 아저씨였다.
젊어 영월(寧越) 군수를 지내어 영월댁이라, 영월 영감이라, 영월 아저씨, 영월 할아버지로 불리어지는 인데, 키가 훤칠하고, 이글이글 타는 눈방울이 늘 술취한 사람처럼 화기 띤 얼굴에서 번뜩일 뿐 아니라 음성이 행길에서 듣더라도 찌렁찌렁 울리는 데가 있는 어른이어서, 영월 할아버지 오신다 하면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었다. 위엄은 아이들이나 하인배에뿐 아니라 그분과 동년배요 항렬로는 도리어 위 되는 이라도 영월 영감이 오는 눈치면 으레 물었던 담뱃대를 뽑아 들고 길을 비키었다.
심경에 큰 변화를 일으킨 듯, 논을 팔고 밭을 팔고 가대와 종중(宗中)의 위토(位土)까지를 잡혀 쓰면서 한동안 경향 각지로 출입이 잦았었다.
그러나 무슨 이권이나 세도를 얻으려 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가 한번은 그런 예사로운 출입으로 나간 것이 소식이 끊이기를 십오륙 년, 대소가가 모두 궁금하게 여기던 것조차 이제는 지쳐 버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서울서 문득 찢어진 지우산과 지까다비로 조카 성익의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간 어디 가 계셨습니까?”
“일소부주(一所不住)지, 안 당긴 데 있나…….”
음성이 높은 것, 우묵하게 꺼지기는 하였으나 그 푸른 안정이 쏘아나오는 눈, 그리고 저녁상에서 성익은 갈비를 다시 구워 올 것도 없게 실패쪽처럼 벗겨 자시는 것을 보면 그 식사나 기력의 정정함도 옛 풍모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마와 눈시울에 잘고 굵은 주름들은 너무나 탄력을 잃었다. 더구나 머리와 수염이 반이 넘어 흰 것을 뵙고는, 가슴이 뿌지지했다.
“아저씨두 인전 반백이나 되셨군요?”
“반백은 넘었지. 허!”
하고 그 수염을 한번 쓸어 보면서,
“빈발여하백(?髮如何白)고 다인적학로(多因積學勞)라더니 내 백발은 적학로도 아니고…… 허허!”
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조카가 이것 저것 물었으나 별로 대답이 없이 손자 되는 어린것의 머리만 쓰다듬다가,
“세월밖에 헤일 게 없구나! 대답할 게 없으니 아무것두 묻지 말아…… 내가 다녀갔단 말 시굴집에들 알릴 것두 없구…… 네게 온 건 돈 얼마 변통해 쓸까 하구 왔는데…….”
하였다. 성익은 그래도 그 동안 대소가 소식들부터 알려 드리고 나서,
“얼마나 쓰실 일입니까?”
물었다.
“한 천 원 가까이 됐으면 좋겠다.”
성익은 얼른 마루 아래 놓인 이 아저씨의 지까다비 생각이 났다. 이분이 금광을 하시는 것이나 아닌가? 하였으나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말을 먼저 받았다. 아무튼 비록 행색은 초췌할망정 생사조차 알리지 않다가 십여 년 만에 찾는 조카에게 자기 개인 밥값 같은 것이나 궁해서 돈 말을 할 영월 아저씨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성익은 할 수 없이 무리를 해서 모아 온 고완품(古翫品)에 손을 대었다. 고려청자 찻종 하나와 단계석(端溪石) 벼루 하나를 이튿날 식전에 들고 나가 천 원은 못다 되고 칠백 원을 만들어다 드리었다. 돈이 칠백 원이란 말만 들었을 뿐, 영월 영감은 헤어 보지도 않고 빛 낡은 양복 조끼 안주머니에 넣더니 저녁때가 가까웠는데도 떠나야 한다고 나섰다. 비는 그저 지적지적 내리었다.
“애장품을 없애 줘 미안타. 그러나 그런 건 누가 보관튼 보관돼 갈 거구…….”
하면서 마당에 내려 화단에서 비에 젖는 고석을 잠깐 눈주어 보더니,
“어디서 구했니?”
하였다.
“해석입니다. 충남 어느 섬에서 온 거라는데 파는 걸 사왔습니다.”
“넌 너의 아버닐 너무 닮는구나! 전에 너의 아버니께서 고석을 좋아하셔서 늘 안협(安峽)으로 사람을 보내 구해 오셨지…… 그런데 난 이런 처사취미(處士趣味)엔 대반대다.”
“왜 그러십니까?”
“더구나 젊은이들이…… 우리 동양 사람은, 그 중에두 우리 조선 사람이지, 자연에들 너무 돌아와 걱정이야.”
“글쎄올시다.”
“자연으루 돌아와야 할 건 서양 사람들이지. 우린 반대야. 문명으루, 도회지루, 역사가 만들어지는 데루 자꾸 나가야 돼…….”
이렇게 영월 영감은 목소리가 더 우렁차지며 얼굴이 더 붉어지며 가을비에 이끼 끼는 성익의 집 마당을 부산하게 나섰다.
*
돈을 언제 갚는단 말도, 어디 와 있다는 말도, 성익도 기다리지도 않았지만 전혀 소식이 없다가 꼭 돌이 되어, 요 전달 하순이었다.
하루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성익에게 메신저 보이가 왔다. 박대하란 환자를 대신해 쓴다 하고 곧 좀 외과 진찰실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박대하란 영월 영감이다. 성익은 곧 달려갔다. 간호부가 가리키긴 하나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얼굴 온통이 붕대 뭉치가 되어 진찰대에 누워 있었다. 멀겋게 부푼 입술이 번질번질한 약을 바르고 콧구멍과 함께 숨을 쉴 정도로 내어 놓아졌을 뿐, 눈까지 약칠한 가제에 덮여 있는 것이다. 송장이 아닌가 싶었다.
“이분이?”
“네, 박대하 씨라구요. 광산에서 다치셨대요. 입원을 허실 턴데 시내에 보증인이 있어야니까요.”
하고 간호부는 환자의 귀 가까이로 가더니,
“불러 달라시던 분 오셨에요.”
하였다. 환자의 육중한 입술이 부르르 떨리었다. 성익은 덤썩 환자의 손을 끌어 쥐었다. 뜨거웠다.
“성익이냐?”
분명히 영월 아저씨였다.
“네, 이게 웬일입니까?”
“뭐, 허, 답답해라…… 대단친 않구…… 자꾸 보증인인갈 세래 널 알렸다.”
“다치신 덴 얼굴뿐입니까?”
“그럼.”
“어디서 다치셨는데, 누구 같이 온 사람두 없습니까?”
간호부가 복도로 나와 같이 온 사람을 가리켜 주었다. 우중충한 복도에 섰는 흙물이 시뻘건 동저고릿바람의 장정이었다.
“당신이오?”
“네.”
남포를 놓는데, 세 방을 한꺼번에 놓는데, 심지 하나가 중간에서 불이 꺼지는 것을 보고 그것마저 들어가 대려 놓는데 먼저 타들어간 것이 의외에 빨리 터졌다는 것이다.
“광산은 어디요?”
“거기가 양평따입지요. 그런데 과히 오래 가든 않는답니까?”
“글쎄, 아직 모르겠소.”
하고 성익은 그제야 의사에게로 왔다. 머리를 돌에 맞아 뇌진탕을 일으켰으나 반 시간도 못 돼서 정신을 차렸다는 정도니까 꿰맨 자리만 아물면 뇌엔 별일이 없을 것이요, 얼굴은 전면적으로 매연과 모래에 타박상을 받았으나 큰 상처는 없고, 안과에서 보았는데 눈도 동공은 상하지 않았으니까 중증의 결막염 정도니까 며칠 치료하면 뜰 수 있으리란 것이다.
성익은 다행으로 알고 아저씨를 병실로 옮기고 곧 입원 수속을 끝내었다. 그리고 아저씨께 돌아오니 그의 앞에는 광부가 꾸부리고 무슨 부탁을 듣고 서 있었다.
“아마 한길은 더 울렸으리…….”
“그렇습죠.”
“허니 천변두 울리지 않었나 조심해서들 보구, 내 나가길 기대릴 게 아니라 따내게들…….”
“그립죠.”
“서덕대보구 따들어가다 재바닥만 비치거든 감석을 골라 내게 좀 보내 달라구 그러게.”
“네.”
“어서 떠나게. 중상은 아니라구 염려들 말라구 그리게.”
“네, 그럼…….”
광부가 나간 뒤에 성익은 잠깐 멍청히 서서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다른 침대 하나에는 아직 환자가 없다. 두 쪽 유리창에도 도시의 하늘답지 않게 전선줄 한 오리 걸리지 않고 유리 그대로 멀뚱하다. 누워 있는 영월 아저씨는 번질번질한 부푼 두 입술이 있을 뿐, 모두 흰 붕대와 흰 약과 흰 홑이불에 덮여 있다. 비었다기보다 시체실에 혼자 섰는 것처럼 서뭇해진다. 저분이 금광을? 그럼, 저분이 여태껏 찾아다닌 것도 금이던가? 금? 그럼, 내 돈 칠백 원도 금광에 투자한 셈이던가? 성익은 씁쓰레한 군침을 입 안에 다시며 침상 앞으로 나섰다.
“아저씨?”
“성익이냐? 이거 답답해 어디 견디겠나!”
영월 영감은 시울이 팅팅히 부어 떠지지 않는 눈을 눈썹만 슴벅거려 본다.
“그런데 어쩌실려구 뻐언히 위험한 델 들어가셨습니까?”
“인정처럼 고약한 게 없거던…… 첨에는 심질 십여 척씩 늘이구두 뒤돌아볼 새 없이 뛔나오더랬는데 것두 몇 해 다뤄 보니 심상해져 겁이 어디 나? 사람이 비켜야만 터질 것처럼 믿어진단 말이야.”
“그런데 아저씨께서 금광을 허시리라군 의욉니다.”
“어째?”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막연이겠지…… 힘없이 무슨 일을 허나? 금 같은 힘이 어딨나? 금 캐기야 조선같이 좋은 데가 어딨나? 누구나 발견할 권리가 있어, 누구나 출원하면 캐게 해, 국고 보조까지 있어, 남 다 허는 걸 왜 구경만 허구 앉었어?”
“이제 와 아저씬 금력을 믿으십니까?”
“이제 와서가 아니라 벌써 여러 해 전부터다. 금력은 어디 물력뿐이냐? 정신력도 금력이 필요한 거다.”
“그래 광을 허십니까?”
“그럼.”
“허면 꼭 금을 캘 걸 믿으십니까?”
“암, 못 캐란 법은 어딨나? 왜 못 될 걸 믿어?”
“그러나 사실에 성공하는 사람이 천에 하나나 만에 하나 아닙니까?”
“억만에서 하나기루 그 하나이 자기가 되길 계획해 못쓸까? 사람이란 그다지 계획력이 미약한 걸까?”
“글쎄올시다.”
“글쎄올시다가 아니야. 그렇게 막연히 살아 무슨 전도가 있나? 천에 하나 만에 하나가 저절루 자기가 되길 바라선, 요행히 되길 바라선 건 허영이지, 건 투기지. 그런 요행이야 천에 하나 만에 하나밖에 없을 게 당연지사겠지. 그러나 끝까지만 나가면야 천이면 천, 만이면 만 다 성공할 게 원측이지.”
“그래두 일생을 광산으로 다녀두 보따리를 벤 채 죽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
영월 영감은 부푼 입술이 거북한 듯 말 대신 고개를 젓는다.
“참, 말씀 그만두시죠. 입술두 퍽 부셨는데.”
“말꺼정 못 하군 정말 죽은 거 같게…… 그런 것들은 다 투기자들이지. 물욕부터 앞서 제가 실패한 원인을 반성할 여유가 없이 나가구, 또 뻔―히 경험으로 봐 안 될 것두 요행만 바라구 나가거던…… 그런 사람들 실패하는 거야 원형이정이지…… 나두 벌써 십여 차 실패다. 그러나 똑같은 실팬 한 번도 안 했다. 똑같은 실팰 다시 허기 시작허면야 건 무한한 거다. 그러나 금을 캐는 데 있을 실패가 그렇게 무한한 수로 있을 건 아니지. 실패를 잘만 해서 실패된 원인만 밝혀나간다면야 실패가 많아질수록 성공에 가까워 가는 게 아니냐? 난 그걸 믿는다.”
“……”
“조선 땅엔 금은 아직 무진장이다. 어느 시대구 어느 나라서구 불변가치를 갖는 게 금밖에 또 있니? 금만한 힘이 있니?”
“……”
“금을 금답게 쓰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들 금을 캐내니? 땅이 울 게다! 땅이…….”
하고 영월 영감은 홑이불을 밀어던지고 석수처럼 돌때에 뿌우연 손을 올려 가슴 위에 깍지를 꼈다.
*
이튿날부터 영월 영감은 광산에서 기별이 오기를 기다렸다.
“몇 자 안 내려가 재 바닥이 비칠 건데…… 맥형 생긴 게 틀림은 없는데…….”
그리고 사흘부터는 의사를 조르기 시작하였다.
“허! 이거 일월을 못 보니 꼭 죽었소그려. 언제나 눈을 뚜? 머린 이내 아물겠소?”
“맘이 급허시면 더 더딥니다. 눈은 차츰 부기가 낫기 시작합니다만 머리야 젊은 사람과 달라 어디 그렇게 빨리 아뭅니까?”
“내가 늙어 그러리까?”
“조그만 헌디 하나라두 연령관계가 큽니다. 신진대사 차이가 크니까요.”
의사가 나간 뒤 한 시간이나 지나서다. 속으로는 그저 그 생각이었던 듯,
“내가 지금 사십만 같애두! 사십만…….”
하고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이론이 그렇지, 그것 아무는 데 며칠 상관이 될라구요.”
“어디 이것뿐이냐? 매사에 일모도원이다! 넌 올에 몇이지?”
“서른둘입니다.”
“서른둘! 호랑이 같은 때로구나! 왜들 가만히들 있니?”
“……”
한참 침묵이 지나서다.
“너 낼 산에 좀 갔다 와다우.”
“산에요?”
“광산에 가, 그새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두 좀 알구, 나온 걸 어떤 돌이구 간에 한 가지씩 가져오너라. 엊저녁 꿈엔 돼지를 다 봤는데…….”
“돼지요?”
“미신이나 금광 허는 사람들이 돼지 보길 바라지들…… 돼질 보면 금이 난다구들, 허허…….”
영월 영감은 차츰 제 빛이 돌아오는 입술에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
성익은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이튿날 자동차로 양평(楊平)을 지나 풍수원(豊水院)이란 데로 왔다. 여기서는 사람을 하나 사가지고 동북간으로 고개라기는 좀 큰 산을 넘어 아저씨의 광산을 찾았다. 다복솔이 깔린 펑퍼짐한 산허리에 서너 군데나 생흙이 밀려 나와 사태난 자리처럼 쌓였다. 가까이 가보니 흙이 아니라 모두 돌이었다. 굿막과 화약고도 이내 나타났으나 사람이라고는 질통꾼 서너 명만 보였다. 질통꾼들에게 서덕대를 물으니 굿 속에서 작업중이라 한다. 굿 속으로 따라 들어가려 하였으나 바닥이 질고 천반에선 여기저기 기름과 철분에 시뻘건 샘물이 낙숫물 떨어지듯 하여 달리 차리지 않고는 들어설 수가 없다. 우선 서덕대를 좀 나오라고 이르고 땀이나 들이려 냉장고같이 시원한 굿 초입에 서 있었다. 굿 속은 키 큰 사람은 모자가 닿으리만치 낮다. 통나무로 좌우 벽선과 천반을 버티어 들어갔다. 간드레 불을 든 질통꾼들이 한 삼십 간 들어가서는 꼬부라져 사라지고 만다. 거기까지는 수평이다. 그 뒤는 캄캄하여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뿐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 쿠웅쿠웅 바위 울리는 소리가 은은히 돌아나온다. 그쪽은 저승과 같이 아득하고 신비스럽다.
‘저 속에서 금이 난다!’
성익은 담배를 피워 물고 생각하였다.
그 몇만분지, 몇십만분지의 일인 금을 얻으려 산을 헐고 바위를 뚫고…… 그 적은 비례의 하나를 찾기 위해 몇만 배, 몇십만 배의 흙을 파내고 돌을 쪼아 내고…… 성익은 고개를 기다랗게 내밀어 광산 전체를 쳐다보았다. 까맣게 올려다보이는 석벽도 이 산의 봉우리는 아직 아니었다.
‘하나를 위해 구만 구천구백구십구의 헛일을 해야 하는…….’
성익는 한숨이 나왔다. 어렸을 때 풀기 어려운 산술 숙제를 받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내 또, 아저씨의 ‘사람이란 그다지 계획력에 미약한 거냐’ 하던 말도 생각난다.
‘계획? 나 자신에겐 지금 무슨 계획이 있는가?’
성익은, 굿막 퇴장에 걸터앉아 아무 의식이 없이 머르레한 눈으로 건넌산을 바라보는, 그 풍수원서 데리고 온 사람의 꼴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 같은 허무함을 느끼었다.
다시 붙인 담배를 반이나 태웠을까, 그때 굿 속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내가 서이관이오.”
하고 나서는 서덕대는 늙은 푼수로는 야무진 목소리다.
“우리 광주 영감 좀 어떠신가요?”
“차츰 나가십니다. 도무지 감석인갈 보내지 않으니까 궁금허시다구 좀 가보래 왔습니다.”
“허!”
서덕대는 굿막 퇴장으로 와 담배부터 피워 문다. 전체가 까맣고 딴딴하게 몽친 것이 엿누룽갱이 같은 늙은이다. 침을 찍 뱉어 버리더니,
“영감 운이 아직 틔질 않어…… 영감 운이 틔셔야 우리네두 고생한 끝이 나겠는데…….”
하는 꼴이 좋은 바닥이 아직 비치지를 않는 모양이다.
“그럼, 아직 광석이랄 게 나오지 않습니까?”
“나오기야 나오죠. 허잘것없는 게 나오니, 그런 거야 자동차비가 아까워 어떻게 보내 드리나요.”
“더 따들어가면 좋은 게 나올 것 같습니까?”
“허! 그걸 장담헐 수 있나요. 장담두 많이 해봤죠만 이전 내 입으룬 장담 않죠.”
“그럼 이 광산이 영감 보시겐 신통치 않은가 봅니다그려?”
“것두 장담 아뇨? 내 눈두 과히 어둡진 않죠. 금전밥을 먹는 지두 서른대여섯 해 되죠. 당구 십년 격으루 산을 보면 대강 짐작은 납니다만 난 인전 산 보구 쫓아다니진 않소.”
“그럼, 뭘 보십니까?”
“산에 한두 번 속았겠소? 난 인전 광주 보구 쫓아다니지요. 이 영감님 모시구 다니는 지두 벌써 칠 년째죠만 인덕이 그만허시구야 금줄 못 잡을 리 있나요.”
성익은 겉옷을 바꿔 입고 서덕대를 따라 굿 속 작업현장을 구경하고, 물이 충충히 괴어 개구리들만 끓는 쨉이라는, 수직으로 내려뚫은 광구도 몇 군데 구경하고는 그래도 질이 좀 나은 것이라는 회색 차돌 몇 덩이를 싸들고 풍수원으로 넘어와 밤을 자고 이튿날 오후 한시나 돼서 병원으로 돌아왔다.
*
병원에서는 영월 영감보다 의사가 더 성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부가 성익을 보자,
“잠깐만 거기 계셔요.”
하고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일이 있다는 듯이 의사 있는 데로 달려가는 것이다. 성익은 가슴이 섬뜩하여 주춤하고 섰었으나 두어 방만 지나가면 아저씨의 병실이라 우선 병실로 가 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문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성익이냐?’ 불러 봄직한 그가 문 소리 난 것도 모를 뿐 아니라 두 손을 쳐들어 합장도 아니요 박수도 아닌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맡에는 보지 않던 얼음주머니도 달려 있다.
“아저씨?”
“……”
“아저씨?”
“누구야…… 응?”
성익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저야요, 성익이야요.”
“오오.”
그제야 영월 영감은 벌떡 일어나 앉는다.
“누세요.”
“이리 내…….”
그러나 눈은 아직 열리지 않는다. 한 손으로 한쪽 눈을 억지로 벌리려 한다. 성익은 얼른 붕산수에 적신 약솜을 뜯어 눈곱을 닦아 드리었다. 그리고,
“어디 어디…….”
하고 내어미는 아저씨의 손바닥을 보고는 광석을 놓기 전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저씨 손바닥이…….”
“어서 이리 내.”
성익은 아저씨의 다른 편 손바닥도 펼쳐 보았다. 양편이 똑같다. 검붉은 포돗빛의 혈반이 은단 알 만큼, 녹두알만큼 꽃 피듯 번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것이다. 그러나 당자는 아직 자기 피부에 그런 이상이 나타난 것도 모르는 것 같다. 광석 하나를 받아 들더니 광선이 제일 환한 쪽으로 상체를 돌린다.
“가져온 것 다 인내라.”
신문지에 싼 채 다 그의 앞으로 가 펼쳐 들었다. 더듬더듬 하나씩 하나씩 모조리 만져 보고, 들어보고, 그 다시 푸르스름해진 입술에 갖다 혀끝까지 대어보곤 하더니 그 중에서 역시 서덕대가,
“모두 요눔만 같애두.”
하던 것을 용하게 골라 내어 한 손으로 눈곱 닦은 눈을 벌리었다. 그 눈에 유리창은 너무 밝았다. 광선이 아니라 독한 연기를 쏘인 듯 눈물이 펑 쏟아져 다시는 벌리지도 못하고 만다.
“누세요. 제가 말씀 드릴게요.”
“서덕대가 뭐래?”
“퍽 좋은 바닥이 나왔답니다.”
“어떤?”
“차돌인데 맥이 넓구 여간 질이 좋지 않다구 안심허시랍디다.”
“노다지가 나오다니?”
“네?”
성익은 아저씨의 정신상태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아저씨?”
아저씨는 두 손에 한움큼씩 광석을 움켜쥔 채 얼음주머니를 뒤통수로 때리며 벌떡 뒤로 드러누워 버린다.
간호부가 그제야 나타난다. 이쪽에서 뭐랄 새도 없이,
“선생님이 좀 오시래요.”
하고 앞선다.
의사는 다른 환자의 처방을 끝내어 간호부에게 주어 버리더니 이렇게 말한다.
“지금 들어가 보셨지요?”
“네, 손바닥에 그런데…….”
“네, 네…….”
의사는 영월 영감의 진찰부를 꺼내 놓더니 보지는 않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모두 피하 출혈이 현저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떤 딴 증세가 난 겁니까?”
“패혈증입니다. 더 의심할 수 없는…….”
“패혈증이라뇨?”
“피가 썩는 겁니다. 어떤 상처로 미균이 들어가 가지군…… 아마 그 머리 다치신 상처겠죠…… 광산 같은 데서 애초에 소독이 완전히 됐을 리 있습니까?”
“걸 어째 진작 모르셨나요?”
“건 모릅니다. 발증이 되기까진 모르는 겁니다. 또 미리 안댔자 지금 의학으론 테라폴 따위 살균제나 놓는데 그런 걸룬 절망입니다.”
“절망이야요?”
“벌써 피 대부분이 상했습니다. 가족에 곧 알리시구 유언이라두 들어 두시죠.”
성익은 복도로 나와 한 십 분 동안 제정신을 차리기에 애를 썼다. 정신을 차려 가지고는 우선 우편국으로 가 이분의 두 아들에게 다 전보를 쳐주었다. 그리고 성익은 또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얼른 자동차로 종로로 와서 광석 표본을 진열창에 많이 늘어 놓은 무슨 광산 사무손가를 찾았다. 팔지 않는다는 것을, 성냥갑만한 유리갑에 넣은 노다지 한 덩어리를 억지로 샀다. 영월 영감은 의사의 예언대로 최후의 맑은 정신이 돌아왔다. 방 안은 으스름한 황혼이다. 성익은 간호부에게 불을 켜라 일렀다. 그리고 약솜으로 아저씨의 두 눈을 닦고 최대한도로 띄어 드리었다. 지느러미 상한 고기 눈처럼 머르레한 눈동자는 이내 눈물에 잠기고 만다.
“아저씨, 이걸 자세 보세요.”
“이게…… 에! 노다지로구나!”
“많이 나왔습니다.”
“오! 오…….”
영월 영감은 말이 놀라는 것처럼 우쩍 상반신을 일으켰다. 두 주먹을 뛰려는 말발굽처럼 움켜들었다. 주먹은 손가락 가락가락 부르르 떨리면서 펼쳐진다. 그러나 눈은 자기 힘으로 떠지지 않는다. 부들부들 팔째 떨리던 주먹은 탁 자기 얼굴을 휩싸 때리더니 ‘아휴!’ 하고 성익의 팔에 쓰러지고 말았다.
성익은 차마 유언을 묻지 못하였다.
두 아들이 나타났을 때는, 영월 영감은 이미 시체실로 옮겨진 뒤였다.
*
성익은 아저씨의 화장장에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맏상제 봉익에게 물었다.
“자넨 몇이지 올에?”
“형님보다 내가 두 살 아래 아뉴?”
성익은 눈을 감고 잠깐 멍청히 흔들리다가 중얼거리었다.
“서른! 서른둘! 호랭이 같은…….”
출전:문장1~2(193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