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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파스
상운초등 6학년 최우정
빨주노초파남보
색색 어우러진
무지개를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자라날
나무들도 그리고
높고 파아란
가을하늘을 닮은
내 꿈도 그리고
이렇게 많은 것을 그리고도
아이들의 장난으로 부러지고
작아져도
그 고통 꾹 참고
아이들 위해
나무를 그리고
꿈을 그린다.
-제24회 청량문화제 초등운문 장원-
약
봉화중 2-2 석도훈
음악이 흐른다.
약사의 정성은
박자가 되고
쇠약한 환자들의 희망은
음정이 되고
어린아이들의 투정은
가사가 되어
약은 노래한다.
약사의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환자들의 희망이
어느새 절망으로 바뀌지 않기를
어린아이들도 의젓해져
투정 따윈 필요치 않기를.......
쓴 약일수록 몸에 좋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약은 노래한다.
나는 다짐한다.
비록 지금 갖가지 쓴맛이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할지라도
언젠간 그 쓰디쓴 약이
내 생활의 보배가 되리라 믿고
그 쓰디쓴 약을
기꺼이 이겨낼 것을.......
약은 노래한다.
또, 나는 다짐한다.
음악이 흐른다.
-제24회 청량문화제 중등운문 장원-
팔뚝
소천고 1-1 김은영
저마다의 팔뚝에
사랑하는 친구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이 화가나 있을 때
양팔을 걷고 세상의 원망을 담아
벽을 힘껏 쳤을 때
쓰여진 그들의 이름을 보며 다시
웃을 수 있게 말입니다.
저마다의 팔뚝에
오늘, 제일 빛나는 별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운 밤에 몰래 우시는 어머니가
양팔을 걷고 눈물을 훔칠 때
빛나는 그것을 보며 이름을 보며
내일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게 말입니다.
저마다의 팔뚝에
타인과 웃는 법이 쓰여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쉽게 다가가기 못하는 용기 잃은
자들에게
양팔을 걷고 타인과 악수를 나룰 때
쓰여진 법을 보며 용기를 찾을 수
있게 말입니다.
나의 팔뚝에
삶의 길이 쓰여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길을 들어섰을 때
양팔을 베고 지쳐 잠이 드려할 때
쓰여진 내 삶을 보여 잠에서 깨어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말입니다.
-제24회 청량문화제 고등운문 장원-
택배
상운면 운계리 이금수
엄마가 오셨다
핏줄처럼 이어진 탯줄을 타고
무어가 그렇게 그리웠는지
밤새 잠 한숨 못 주무시고
돌아돌아 물어물어
젖비린내 그 향기를
두 손 담뿍 담아
가득 채우고
따가운 햇살이
싸뿐히 내려앉은
코스모스 인사하는
탯줄을 따라
쉼 없이 달려와
헐떡거리는 엄마는
시집 올 때 타고 온
꽃가마에서 내려
그렇게 나에게 들어오셨다
정아하게 땋은 머리 풀어 헤치시고
단정히 묶어 메신 허리 춤
풀어 놓으실 제
방안 가득 퍼지는 김치 냄새는
30여년 가슴깊이 묻혀 있었던
아기 적 입안 가득 채워주시던
엄마 생명 이어준 젖 향기여라
택배는 엄마를
나에게로 모시고 오는
열여섯 어릴 적
꽃가마인 것을......
-제24회 청량문화제 주부운문 장원 -
얼굴
춘양 초등 6-1 김 혜 미
어느날,4학년 연구실 안에 덩치 큰 아줌마와 아이가 선생님과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우리는 호기심에 연구실 창문 사이로 그아이의 얼굴을 서로 보려고 밀치고 있었다.
“야! 이민환, 쟤 누구야?”
“내가 어떻게 알어?”
“전학왔나봐......어떻게 생겼어?”
“봐야돼. 기다려봐. 우선 딱 보이는건 얼굴이 무지커!”
민환이가 까치발을 하고 본 후 말하였다.
“ 여자야, 남자야?”
“여자다!”
“못생겼어? 예뻐?”
“못생긴 것 같은데.......”
“야,야! 선생님 오셔~”
우리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얼른 교실로 들어갔다. 잠시뒤, 선생님과 그아이가 교실로 들어왔고 아이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돼지같애.”
“왕돼지! 식육점에 가지.”
실컷 떠들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조용히 하세요. 오늘 우리반에 새친구가 전학왔어요. 자, 소개해야지.”
“네. 얘들아, 안녕? 나는 봉화초등학교에서 온 김자현이라고 해.”
새로 전학 온 여자이이는 뚱뚱하고 눈이 아주 이상하게 생겼었다.
“이름이 김자현인가봐.”
“그러게.......”
쉬는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모두 자현이에게 가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살아?”
“백화다방 3층에......”
“공부는 잘해?”
“수학만, 조금잘해.”
자현이가 전학온 후부턴 우리반 아이들은 즐거워하였다. 자현이를 좋아해서가 아닌 놀리고 괴롭힐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현이는 우리에게 한 짓은 없었다. 단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우리들은 놀리고 괴롭혔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언젠가, 급식소에 점심을 먹으러갔던 자현이는 5,6학년 언니오빠들에게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다.
“페르시안처럼 생겼다.”
“코가 없나봐.”
자현이는 밥도 안먹고 그대로 나가버렸고, 자현이를 위로해 주는 친구 한명도 없었다.
“이 돼지야!”
“이게 죽을려고!”
“돼지가 말도 하시네, 사람맞냐? 어떻게 저렇게 생겼을까?”
“니네 정말 왜 그래? 내가 못생긴게 죄야? 그게 그렇게 죄냐고!”
자현이는 소리를 지르더니 엉엉 울러버렸다. 자현이가 놀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내가 갑자기 미워졌다. 자현이는 더서럽게 울고 아이들은 당황해했다. 나도 괜히 눈물히 맺히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현이가 그렇게 우는데도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는 친구 하나도 없었다.
“야! 너희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굴만 보고 판단하지마!”
나는 그렇게 외치고, 자현이와 교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엉, 엉, 엉.......”
“자현아, 미안해. 함부로 우리마음대로 얼굴만 보고 판단했어. 미안해. 우리 생각이 짧았었어.”
어느새,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자현이와 나는 울음을 겨우 그치고 교실로 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큰 함성소리에 놀랐다.
“자현아, 미안해!”
아이들은 자현이와 나를 한순간에 감쌌고 미안하다고 사과만 계속 했다.
나는 그때서, 깨달았다. 무조건 얼굴로 판단하는건 좋지 않다고......
정말 한 마디로 감동이였고, 그후론, 우리반 아이들은 누구를 괴롭히거나 놀리지 않았다.
얼굴이 예쁘고 못생긴건 사람의 성격과 상관없다. 그 일이 있고나서, 친구의 소중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고, 우리친구들 모두, 외모를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등부 산문 장원-
산
상운중 1년 임보람
가을 길을 걷던 때가 어제 같은데 지금 나는 눈길을 걷고 있다.
오늘은 함박눈이 내렸다. 방학한지 한 십여일 쯤 되어 처음 내린 눈인 것 같다. 할머니 댁에 온지도 한 이주쯤 되었다.
나는 할머니 댁이 정말 싫다.
가게 하나 없고 사람도 없고 하루 내내 닭장에서 들여오는 장닭과 칠면조 소리만 그윽한 산촌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따분한 할머니 집에서 그 날도 혼자 나와 서성거리고 있다. 윗동네에 작은 집에 사는 유일한 꼬마아이를 만났다. 예지라는 아이였다.
“안녕, 언니”
할머니 집에 와서 유일하게 아는 아이여서 나 역시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예지야”
나는 그 꼬마와 꼬불꼬불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조용히 쬐금씩 내리던 눈이 오후가 되자 펑펑 내렸다. 난 첫눈에 어린아이 처럼 마냥 좋았다. 꼬마도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는 한참 즐거워 하며 밭두렁을 넘나들며 썰매 만들거리를 찾아다녔다. 우리는 밭가에서 요소비료포대를 발견하여 풀 찌끄러기와 지푸라기를 넣어서 폭신한 썰매를 만들었다.
꼬마와 나는 높은 산에 묘자리를 닦아 놓은 경사진 곳에서 썰매를 탔다.
꼬마와 나는 몇 번을 넘어지면서 기쁜체로 산을 헤매며 좀 더 높은 곳을 찾아 다녔다.
세 시간 쯤 지나서 눈 때문에 옷이 젖고 날씨는 점점 추워 졌다. 할머니 집에 와서 아직 산에 오른 적이 없어 그때의 산길이 왜 그렇게 복잡했던지......
결국 산 속에서 꼬마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그 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젠 너무 깜깜해져 겁은 물에 손수건이 젖듯 점점 스며 왔다. 하지만 꼬마가 또 울까봐 훌쩍거리면서도 꼬마의 손을 꼭 잡고 길을 찾아 헤멨다.
무서웠다. 그 때의 기억은 내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어디에서 할머니 목소리와 낯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았구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이와 손을 잡고 뛰어내려오다 산에서 넘어져 눈물 콧물 흙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웃으면서 내려왔다. 할머니가 날 또 불렀다.
“보람아. 보람아”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할머니 나 여기 있어요”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또 한번 눈앞에 물안개가 피었다.
나는 할머니를 부등켜 안고 울었고 꼬마아이는 아빠의 등에 엎혀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할머니 집에 와서 혼날까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따뜻한 구들장을 내주시고 고구마를 삻아 주셨다. 나는 그때 그 고구마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홀짝거리면서도 고구마 두개를 다헤치웠다.
지금 와서 보면 참 예쁜 추억이 된 것 같다.
그 날의 산 속에서의 할머니 사랑은 내게 정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고 따뜻하고 너그러운 할머니의 그 작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를 선물해 주었던 것 같다
남은 방학동안도 할머니 집에 머물렀는데 역시 따분하고 심심한 일상이었지만, 그 이후로 산에 오르진 않았던 것 같다.
가끔씩 할머니 집에 갈 때면 그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이름 없는 산을 나는 할머니 산이라고 부른다.
-중등부 산문 장원-
팔뚝
소천고 1년 이창림
나는 언제나 농사꾼의 팔뚝을 본다.
아버지 팔뚝에 힘이 많다는 건 우리 집이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옛날 아버지의 팔뚝은 내게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내가 원하는 건 모두 해줄 수 있었고 한 팔만으로도 나를 부쩍 들 수 있었다. 8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팔씨름을 해 보았고 당연하겠지만 졌다 아버지의 팔뚝은 내 온몸의 힘을 합친 것보다 셌고 나는 평생을 보내도 그 팔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이후 시골로 이사 온 우리 집은 가정불화가 잦았다.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 나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 집안은 조금 평안해졌다.
가족들과 대화도 늘었다 9년간이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팔뚝을 최근에서야 다시 보게 되었다. 팔씨름도 다시 해 봤다. 여전히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느꼈던 난공불락의 팔뚝은 이제 더 이상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장난삼아 맞은 아버지의 주먹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버지의 팔뚝을 만져 보았다. 변함없이, 아니 농사일을 하며 예전보다 더 굵어지고 튼튼해진 팔뚝이었다. 아버지가 약해지신 것일까? 내가 튼튼해진 것일까?
인천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을 찾아 오실 때부터 아버지는 당신의 팔뚝에 모든 미래를 거셨다.
그는 고집이 있으셨다. 인맥이 넓어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일체의 도움을 거부했다. 아버지의 팔뚝은 그의 자존심이었다. 아버지가 아플 때 그의 자존심은 한결 꺾이셨다.
나는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모두 자기가 맡으려 한다. 어떤 책임도 일도 자기 손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팔뚝은 너무 많은 걸 지탱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러하여 아버지의 팔뚝은 강하지만 약하다. 어깨에는 항상 붕대를 감고 계시고 항상 파스를 붙이고 계신다.
지금 아버지의 팔뚝을 본다. 항상 양복에 가려져 하얬던 팔뚝은 이제 검게 변했다. 힘쓸 일이 없어 형제 중에서도 제일 약했다는 아버지의 팔뚝은 이제 한눈에 봐도 튼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시골로 내려온 아버지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때의 아버지는 일주일에 겨우 한번 집에 오셨을 뿐이다. 그 뒤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의 팔뚝을 믿는다. 여전히 부족한 팔뚝이겠지만 또한 여전히 믿을 수 있는 팔뚝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격정의 길로 빠질 것이다. 끊임없이 좌절하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 때 날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은 아버지의 팔뚝일 것이다.
내게 사랑을 느끼게 해 준 것은 아버지의 팔뚝이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말할 수 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고등부 산문 장원-
택배
박순녀
요즘같은 세상에 생활을 편리하게 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 가장 편리해진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택배”의 등장이 아닐까 한다.
인터넷 사용으로 인하여 먼 이국땅에 있는 친구에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메일을 이용하여 이 곳의 소식과 사진까지도 첨부하여 빠른 시간에 알릴 수도 있지만, 밤새 쓴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봉투에 봉하여 우체국 까지 갈 때의 그 설레임이 없어진 지 오래이고 휴대전화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연락이 되는 편리함에 비해 감당해야 할 만만치 않은 사용료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쉬고자 할 때는 휴대전화의 존재가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택배” 는 편리함만 지니고 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지일까?
얼마 전 제주도로 시집간 여동생이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친정어머니께서는 온갖 김치와 맛난 마른반찬류를 만들어 부쳐 주시고는 연방 세상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하더라도 이틀만이면 보낸 이의 물건을 반갑게 받아 볼 수 있으니 수긍이 간다.
그리고 친정어머니께서는 으레 봉화에서 며칠 밤을 주무시고 가실 때에는 당신의 조그만 소지품 가방만 들고 가시고는 이곳에서 딸이 챙겨 주시는 농산물은 택배로 부치라 하신다. 당신의 연세에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에 비한다면 실로 많이 편리해졌다.
젋은 시간에 이러한 편리함으로 인하여 수요가 많아지자 택배사도 많이 생겨나고 경쟁적으로 가격과 서비스 면에서 좋아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일전에는 직장으로 온 택배사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는 퇴근 시간에 맞춰 배달을 해주십사 약속을 하고는 깜빡 잊고 볼 일을 보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달음질 쳐서 집에 돌아오니, 택배사 아저씨가 물품수령 확인을 받으려고 한관문 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약속을 잊은 것에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냥 현관 문밖에 두고 가지 그랬냐며 미안함에 호들갑을 떨었더니, 아마도 친정 어머니나 시어머니께서 보낸 물건인 것 같다고 확인을 부탁하였다.
상자의 겉에 쓰여 진 필체는 일흔이 훨씬 넘으신 시어머님의 것이 분명한데 우리집 아파트의 동수가 없음에도 당신의 흐릿한 기억으로 A동 000호라고 쓰시고는 수령인의 이름만은 분명하게 며느리의 이름이었다.
아마도 대단지 아파트라면 내손에 들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맞벌이 며느리가 음식 만들 시간이 없다고 우리 가족에게 챙겨 먹일 음식이라라!
상자를 열어보니, 과연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먹거리가 푸짐하다.
이만큼의 분량이라면 몇 달 동안의 먹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택배를 보내는 이의 마음과 받는 이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지금 봉화는 송이 축제의 시작으로 가을을 알리는 갖가지 과일들이 시장에서 목을 빼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님께 드릴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도 두어 박스 사고 좋아하시는 도토리묵도 챙겨서 며칠 뒤 보내 드리겠다고 전화를 드려야겠다.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 택배사는 가장 바쁜 계절이 되겠지......
-주부 산문 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