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성과 문명으로 불안과 고통에 맞서려 하지만 잔잔하고 포근한 삶을 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대인들이 옛사람들보다 더 배우고 똑똑해졌다 뻐기지만 지난날 동굴에서 불을 피우며 겁을 먹던 인간들이나 천둥번개에 놀라 벌벌 떨던 인간들과 견줬을 때 덜 불안하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인간들은 괴롭게 살다가 외로움에 시달리며 죽어갑니다. 삶의 불안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종교와 신화 같은 것을 만들고, 그것으로 세상의 이치나 원리들 풀어냅니다. 21세기에도 종교와 신화에 귀 기울이고 눈길을 들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인간들이 겪었던 두려움과 호기심은 오늘날이라고 그리 크게 줄어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종교와 신화를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믿어’버리는 건 어마어마하게 다릅니다.
여러 고민 끝에 어떤 종교든 ‘믿음’을 갖고 ‘좋은 신앙인’으로서 사는 건 괜찮은 일이지요. 사람을 대하는 몸가짐을 새로이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개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휘몰아치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잠깐 다독여주는 빨간약 바르는 것처럼 ‘믿음’을 사곤 합니다. 단 하나의 안경을 쓰고 그것만으로 세계를 읽어내려 하지요. 한국 개신교를 한국 사회와 아울러 따지고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구마을 통틀어 한국에서만 갑자기 이렇게 개신교가 판을 치는 건 ‘사회병리’현상이고, 아닌 게 아니라 교회당들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벌이곤 하니까요.
여기서 영화 <아고라>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를 찍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 <씨 인사이드> 같이 탄탄한 줄거리에 돋보이는 영상으로 수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감독입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아메나바르에 빠져든 이들이 수두룩하지요. 연출력을 인정받은 그는 많은 투자를 받아 ‘블록버스터’ <아고라>를 찍었고 이 영화는 2009년과 2010년 지구동네에 개봉하여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봉 날짜가 잡혔다가 미뤄졌고 언제 개봉할지 깜깜합니다. 이러다가 흐지부지되겠지요. 그 까닭은 이 영화가 종교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오직 진리만을 위해 애쓰던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 얘기를 다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에 채찍질에 시달리다가 콘스탄티누스의 정치 꼼수에 따라 기독교는 ‘국교’에 이르지만 그렇다고 ‘피비린내’가 그치진 않지요.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죽임은 더 일어나는데, 이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립니다.
인간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거들먹거리는 건 꼴사납지만 그렇다고 ‘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벌이는 숱한 어리석은 짓거리들을 역성들 순 없지요. ‘사랑의 신’을 등에 업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미워하는 건 빙충맞은 짓거리들 가운데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누군가’는 끝없이 변합니다. 영화 <아고라>에서처럼 그리스신들을 믿던 이들과 싸우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교인들을 물리치자 이번엔 유태인들을 잡아 족치죠. 역사에서도 이들의 적은 끝없이 바뀝니다. 무슬림과도 대판 싸우다 끝내는 자기들끼리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쪼개져 치고받지요.
바로 이 지점을 아메나바르는 건드립니다. 과연 ‘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던 이들은 왜 내내 쭉 하염없이 ‘누군가’를 닦달하고 죽이려 안달하는 걸까? 영화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드잡이하면서 세력을 넓히다가 끝내 국교로 올라선 뒤 다른 종교인들을 짓밟는 시대를 담아냅니다. 이 장면들이 어느 누구에겐 거북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1800년 전의 기독교인들과 한국개신교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가 개봉을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샌가 이 사회에서 주름 잡는 이들은 죄다 개신교인들, 그 가운데도 몇몇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고 영화 <아고라>가 그들 입맛에 맞지 않을 건 뻔하죠. 그들이 콧김을 불었는지 또는 알아서 기는지 모르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영화 <아고라>가 개봉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한국사회가 어디로 치닫고 있는지 영화 내용보다 더 소스라치게 보여줍니다.
첫댓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odnet77&logNo=130138196907 잘 소개해 놓았네요.. 핵심을 더 명료히하면.. 기독교의 역사는 종교성과 진리에 대한 깨우침의 역사가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한 역사라는 거...
참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이네요... 토렌트로..봐야징~~
보고싶은분 메일주소남겨드리면 보내드릴께요~
mks2328@naver.com 이주소로 영화보내주세용~~!!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