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이 댁 영심 씨
박춘삼과 노영심은 슬하에 1남1 녀를 두고 40여 년간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금슬좋은 부부이다. 다만 춘삼이가 걸핏하면 사업을 한다고 아내가 알뜰히 모아 둔 돈마저 날리기 일쑤라 살림살이가 넉넉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내는 불평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과일가게에 나가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식당에서 설거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억척같은 삶을 살아왔다. 사실 춘삼이는 허우대만 멀쩡했지 아내 덕에 가정을 꾸려올 수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아들은 장가를 보냈고 딸도 미국으로 시집가서 잘살고 있어서 건강만 하면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꼭 이럴 때 하느님은 시련을 주시는 것 같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말이다.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 춘삼이 아내 영심 씨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춘삼이 아내는 치매 진행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고 했다. 초기에는 건망증이 심한 정도로 여겼는데 언젠가부터 현관문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더니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먹고 방황하기도 했다.
특히 춘삼이 말에 의하면 아내가 바로 전의 일들은 금방 잊어먹는데 과거에 섭섭했던 감정이나 불평을 쏟아내고 뜬금없이 의부증까지 겹쳐져서 매일 매일 공박을 받고 산다고 했다. 춘삼이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옛날 사진첩을 꺼내서 아내와 함께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 아내도 잠시 추억에 잠기면서 행복한 얼굴을 하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도 아내는 사진첩을 꺼내서 유심히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내는 춘삼이에게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당신 옆에 있는 이 여자가 누구냐”고 따지더라고 했다. 춘삼이는 아내와 남해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고 아내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라
“당신 젊었을 때 사진이잖아” 하고 설명했으나 그 여자가 어떻게 자기냐고 하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시비를 걸더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들 내외에게 “너희 아버지가 젊었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사진이다” 고 내보였다고 한다. 물론 아들 내외도 사진의 주인공이 자기 어머니가 맞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장구칠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정을 안고 코로나로 혼란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영심씨의 상태가 심각해지고 춘삼이와 며느리가 번갈아 가면서 간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직 알아보는데 며느리는 가끔 혼동하여 때때로 누구냐고 낯설어한다고 했다. 아들 내외는 아직 어린아이들도 양육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어머니를 간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용기를 내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편할 것 같다고 제의를 했다. 그러자 춘삼이는 기분이 상해서“나 혼자 간병할 테니 너희들은 신경쓰지 말라”고 했으나 그 후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 아내는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춘삼이도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아내는 제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남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자기를 요양병원에 보내 달라고 했으나 춘삼이가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춘삼이 아내는 설상가상으로 낙상사고로 인하여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딸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외국에 살고 있어서 다시 춘삼이와 며느리가 번갈아 가면서 시중을 들며 간병했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데다가 가끔 대소변도 실수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춘삼이는 일단 며느리를 해방시키려는 생각으로 아내를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얼마 동안은 아내가 요양병원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처음에는 걱정을 하던 춘삼이도 마음이 놓여 병원에서 나와 개인적인 일도 볼 수 있었다.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춘삼이는 아내가 안정된 얼굴로 집에서 사진첩을 가져달라고 해서 심심해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춘삼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찾아갔는데 아내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아주 차가운 표정이었고 그날 따라 정신마저 또렷하게 보였다.
병상에 차분히 앉은 아내의 자리 옆에 어제 갖다 준 사진첩이 있었다. 춘삼이는 무심코 사진첩을 열어보다가 의아했다. 사진들이 거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춘삼이 독사진들과 아이들의 사진들은 남아 있었는데 유독 아내가 같이 찍은 사진들은 거의 없어졌다. 춘삼이는 아내에게 사진들을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담담한 표정으로 어제밤에 모두 태워버렸다고 했다. 춘삼이는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아내는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내인 영심씨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온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요양병원이라는 곳이 거의 인생의 종점에 가까워질 때 보내진다는 소문을 모 를리 없었을 것 아닌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곳으로 보내 달라고 했지만 설마 평생 반려자인 남편이 자기를 내칠 줄은 몰랐는데 배신감도 들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자기 같으면 힘들더라도 좀더 집에서 간병했을텐데 하는 섭섭한 마음에 몇날 몇일을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족들과 이승에서의 이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체념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어차피 사후 세계로 떠나는 영혼들이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두고두고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가슴 아파할 사랑하는 가족들의 짐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영심씨는 결국 “태워 버릴까 말까” 하고 헤일수 없이 망설이다가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그 소중한 추억들을 “태워 버리고 가자”고 결심한 것 같다.
(2024- 3 백우)
* 덧붙임
사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문제이지만 그보다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정신이 온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가지 사례에 접하였으나 직접적인 당사자나 부양가족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일 뿐이다. 실제로 당사자들이 받는 엄청난 심적 고통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다만 피상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라는 점을 실토한다.
흔히들 치매와 건망증은 다르다고 하나 대체로 건망증의 빈번함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잠그는 것을 잊어먹고 물이 흘러넘치는 실수를 자주 한다. 또는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고 조리하다가 깜빡 잊고 자주 태운다. 이런 단계는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아주 초기 증상이고 다음 단계가 되면 불안증세가 시작되는 것 같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증상이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실수할까 봐 자신이 없다. 혼자서 외출할 때나 집으로 돌아갈 때 전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면 어디서 내려야 할지 틀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차에서 내려서도 집으로 가는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자신감이 없다.
다음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사람을 자주 알아보지 못한다. 가족들조차 낯설어하고 경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끔 본인도 인식하면서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즉 온전하지 못한 자신을 귀찮아서 위해를 가하거나 내다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본능적으로 숨거나 기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생리현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수동적인 태도에서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섭섭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정제하지 못하고 쏟아낸다. 나아가 역할을 바꿔서 본인이 갑이 되고 가족들을 을로 몰아서 괴롭히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심하게 얘기하면 악마의 저주가 시작되는 것 같아서 자칫 가정이 파괴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옛날처럼 집에서 부모를 모실 수밖에 없을때는 가족 모두 고난의 행군을 피할 수 없겠으나 지금은 그런 희생을 감당하려고 하지를 않고 세칭 고려장인 요양병원으로 모시면서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자위하는 경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