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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놨다] 유미경
씬1. 남궁의 아파트 (낮)
정갈한 실내 스케치 된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여행사진(남궁상 혼자 찍힌)과
상당량의 CD와 LP판이 인상적이다.
이 위로 나직한 첼로 선율 흐르고.. 잠시 후,
드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철컥 철컥! 평화를 부수는 거친 소리.
누군가 밖에서 강제로 문을 열려하고 있다.
그제야 거실 탁자 옆에 쓰러져 있는 남궁상(40, 남)이 보인다.
이하 남궁의 시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다.(119 구급 대원들)
깨끗한 거실바닥을 밟고 돌아다니는 대원들의 운동화.
남궁(E) (가물가물한 의식, 그 와중에도) ..어, 운동화네!
남궁 (운동화 벗으라고 말하고 싶으나) 우... 우, 우.. 우
대원1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남궁(E) 운동화.. 그 지저분한 신발 벗으라고~!
대원1 내 말 들려요? 이봐요! (옆 대원에게) 혈압부터 재.
대원2 (혈압측정기 꺼내서 재는)
남궁 (축 늘어져서 대원2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
남궁(E)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백 삼십 분짜리 CD 두 장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저걸 몇 번이나 들은 걸까? 열 번? ..스무 번? 아, 목말라..! ..평온했던 내 일상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은홍 (누워있는 남궁의 프레임 안으로 얼굴 들어온다. 흐릿했다가 선명해지는) 궁상씨, 괜찮아요?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남궁(E) 이 여자다! 평화로운 휴일 같던 내 삶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 이 모든 일의, 원흉!
은홍 궁상씨..!
남궁(E) 저리 가! 제발, 가! ..가라구, 쫌 가!!!
남궁 (의식 가물가물해지더니 기절한다)
은홍(E) (다급한) 궁상씨! 궁상씨!
화면 거꾸로 흐르면서 그간 있었던 일들 빠르게 리와인드 된다.
씬2. 남궁의 방 (낮)
곤히 자고 있는 남궁.
알람시계 울리자마자 발딱 일어나 알람 끄고,
기지개 켜며 곧장 침대를 빠져나간다.
자막. 한 달 전.
씬3. 남궁의 주방 겸 거실 (낮)
신문을 잡지 크기로 접어 한 손에 들고 읽으며
다른 손으로 밥 먹는 남궁.
남궁(NA) 어느 날 깨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는 말처럼..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마흔의 문턱에 서 있었다. 마흔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여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국 그릇 공기 하나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 탈탈 털어
수저 한 쌍만 꽂혀 있는 수저통 옆에다 엎어놓는다.
남궁(NA)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일상은 어느덧 편안함이 되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쓸데없는 욕망들이 정리되어 간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 위에 양복 상의를 걸치는 남궁.
휴대폰 울린다. ‘엄마’라고 떠 있다.
남궁(NA)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도 좀 더 넓은 아량을 가지게 된다. 물론..
남궁 (받는)
남궁모친(F) (버럭) 니가 지금 제정신이야!!!
남궁(NA) 예외는 있다.
남궁모친(F) 뭐 코털 좀 정리해?! 그게 선 자리 나가서 여자한테 할 소리야?!
남궁 아무리 그래도 코털은 아니지요~ 그런 여자랑 무슨 로맨틱한 대화가 되겠습니까, 어머니?
남궁모친(F) 누가 너더러 연애하래? 결혼하랬지! 양심 좀 있어봐라~ 마흔도 넘은 놈이 뭘 바래!?
남궁 아직 마흔 안 됐거든요?
남궁모친(F) 이럴 바엔 차라리 모자의 연 끊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 혼자 늙어죽는 꼴 보느니 그게 낫겠어. 다신 나한테 전화하지 마! (끊는)
남궁 (전화 보며) 이래놓고 또 먼저 할 거면서..
씬4. 회사 로비, 엘리베이터 앞 (낮)
남궁,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다.
우현(E) (늘어지게 기지개 켜듯) 으~~ 남궁부장아~
남궁 (보면)
우현 (어깨를 크게 스트레칭하며 온다. 와서 크윽~ 심하게 트림한다)
남궁 (인상 쓰며 코 막고 손 휘젓더니) 밤새 얼마나 또 들이부운 거야?
우현 조간신문하고 같이 집에 들어갔지.
남궁 니가 이팔 청춘이냐?
우현 어우~ 속 아파 (하며 배를 문지르더니 뿌웅~ 장면 멈춤. 이 위로)
남궁(E) 세상의 온갖 드러운 짓을, 이 자식은 꼭 내 앞에서만 한다.
우현 아~ 콧물난다! (하며 손으로 콧물 슥슥 문지르더니, 남궁 보고) 야, 너 흰머리 있다..! (하며 그 손으로 흰머리 뽑으려 한다)
남궁 (기겁하며) 야, 됐어. 치워! (피하며 엘리베이터 타고)
여직원 둘(신미영, 고은선) 인사하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씬5. 엘리베이터 안 (낮)
문 닫히려는데.. 잠깐만! 같이 가요! 뛰어오는 누군가.
닫히던 문이 다시 열리면, 은홍(40, 여)이다.
은홍 고맙습니다! (들어오다 우현과 눈 마주치자 어색하게 까딱 인사)
남궁(E) 텐미닛. 이 여자 별명이다. 얼마 전 구매부 부장으로 스카웃돼서 처음 회사에 왔을 때, 나도 호감을 가졌었다, 10분 정도는. 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기대는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다.
(인서트)
은홍 (핏대 세우며 통화하는) 뭐?! 밥 먹으러 가야 된다고? 당신들 일을 고따우로 해놓고 지금 밥이 넘어가?!! 내가 가서 목구멍에 호수 끼고 밥 넘기게 해줘?!! 당장 약속한 물량 제대로 갖다 놔~ 밥줄 다 끊어버리기 전에!!! (전화 탁! 끊더니 포효하는) 으아~~~
(현재)
은홍의 코트 가슴께 눌러 붙은 토마토 주스자국 눈에 띈다.
남궁(E) 칠칠맞게.. 뭐야, 저게?
남궁 (은홍에게) 거기 옷.. (하는데)
우현 (손수건 건네며) 옷에 뭐 묻었네. 이걸로 닦아요.
은홍 (내려다보고 우쒸! 하더니 손수건 받아서 닦는)
여직원(미영) 전에 같은 회사 다니셨죠, 두 분?
은홍 (손수건 멈췄다가 계속 닦는) ...
우현 이부장은 지사에 있었고 난 본사에 있어서 만날 일이 없었어요. 그렇죠, 이부장?
이때 땡! 엘리베이터 열리자
은홍 잘 썼어요. (하며 손수건 우현에게 주고 휙 내리는. 장면 멈춤.)
남궁(E) 말을 의도적으로 씹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려는 여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젊을 때나 매력으로 통한다는 걸 노처녀들은 쉽게 망각한다.
직원들 우르르 내린다.
씬6. 사무실, 영업2부 (낮)
대형건물 한 층을 각 부서가 구획을 나눠서 쓰고 있다.
오전 시간의 분주함이 느껴지는 영업부.
거래처와 통화하고, 컴퓨터로 작업한 문서 프린트하고, 한쪽에서는 그것을 받아들고 가서 복사하고..
창가 쪽에 위치한 자신의 책상 앞에 서서 영업부 상황을 일갈하는 남궁.
남궁 비위들 좋네~! (이 소리에)
직원들 각자 할 일 하면서 재빨리 책상 위 물건들 치우기 시작한다.
흐트러진 볼펜, 늘어져 있는 서류, 겹쳐진 종이컵, 탬블러, 귤껍질, 거울 등
남궁 (뭔가 발견하고) 안영진!
남직원1 (전화 통화 몰두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먹다 남은 커피 치우려다 서류에 쏟는다) 아씨..
남궁 자~알 한다! 누차 말했지!? 책상 위 상태가 바로 당신들 마음 상태라고!
여직원1(미영) (이어폰 꺼내서 귀에 꽂는)
남궁 거기 뭐 있는지 보면 당신들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다 보인다고!
(뭔가 더 말하려다 직원들 보면)
듣는지 마는지 남궁에게 등을 보인 채로 각자 할 일만 하는 단절된 자세.
벽 같은 모습들..
남궁(E) 피곤하냐? 나도 피곤하다.. 잔소리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 건데.. 나이 들어서 그런가..
남궁 귀찮다, 나도. (이 위로)
은홍(E) (열정적으로 잔소리하는) 유진아씨, 사람 말 못 알아들어?
씬7. 여직원 휴게실 (낮)
눈 말똥말똥 굴리고 앉아있는 진아(27, 여)
은홍 초등학생이야? 아님 어디 모자라? 왜 자꾸 똑같은 말 반복하게 만들어? 와~ 진짜!!
진아 (풋- 웃는)
은홍 (!) 설마.. 웃었..어?
진아 ...
은홍 내 귀가 어떻게 됐나 해서 묻는 거야. 웃었어?
진아 (끄덕이더니 또 웃는)
은홍 (경악) 웃겨? 내 말이? (버럭) 내가 우스워?!!! 여자 부장이라고 깔보는 거야? (이때 여직원 둘(미영, 은선)이 들어오자) 다 나가!!!
여직원들 (깜짝 놀라서 나가는)
은홍 (윽박지르는) 말해봐. 뭐가 웃겨? 뭐가 웃긴데~?! 같이 좀 웃자!
진아 (잔뜩 주눅 들어) 그게 아니라 저는.. 부장님 말투가 너무 웃겨서.. (이제 닭똥 같은 눈물 흘린다)
은홍 (어이없는) ..적당히 해라, 어?! 곤란한 상황 눈물로 때우려는 너 같은 여우들, 내가 모를 줄 알아?!
진아 (흑!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씬8. 여직원 휴게실 근처 (낮)
방금 쫓겨났던 여직원들(미영, 은선) 대화하며 걸어온다.
여직원1(미영)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설치지 않냐? 저 할망구!
여직원2 (은선) 위에서 이뻐하잖아~ 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노처녀 히스테리 장난 아니었대~
여직원1 (미영) (절레절레) 저게 다 남자의 양기가 결핍돼서 저런 건데~
사무실에서 나와 회의실로 이동하는 남궁. 여직원들과 스치고.
여직원실에서 나오는 진아를 본다. 눈물 번진 얼굴로 화장실로 뛰어가는.
뒤이어 나오는 은홍. 남궁 보고 눈인사 까딱하더니 휙 가버린다.
뭔가 일이 있었음을 감지하는 남궁.
씬9. 회의실 (낮)
은홍, PT한다. 과장급 이상 회의 진행 중. (홍과장-41세, 남)
은홍 올 상반기 영업3부에서 성과를 올린 베트남 딸기 수출을 앞으로 저희 구매부가 직접 핸들링하게 됐는데요.
남궁 (PT자료에 낙서한다. 은홍을 마녀처럼 묘사한)
은홍 회사에서 글로벌화 글로벌화 노래하니까 영업부가 거기 발맞추려 애쓴 건 잘 알겠는데..
남궁(E) 1초.. 2초.. 3초..
은홍 (딱 맞춰) 대체 수출대금이 어떤 조건으로 우리한테 들어온다는 건지..
남궁(E) 1초... 2초.. 3초...
은홍 (강하게) 안전장치는 하나도 안 돼 있고! 프로세스 엉망이고! 계약 조건은 말도 안 되게 불평등하고!!
남궁(E) 3초의 침묵.. 임팩트를 위한 저 여자의 수법이다.
은홍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과장님?
홍과장 (당황해서 웃는) 그건.. 차차 개선하면..
은홍 (정색) 이제 와서 그 사람들이 자기들한테 불리한 걸 받아들이려 할까요? 이런 걸 저희한테 던져주시고 나중에 문제 생기면 나 몰라라 하시겠죠?
전무 (질책하는) 홍과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홍과장 (머리 긁으며 쩔쩔매는)
남궁 (쩔쩔매는 홍과장 보다가 은홍 노려본다)
씬10. 회의실 앞 (낮)
간부들 먼저 나가고 은홍 나오면, 남궁 뒤따라 나온다.
남궁 저기 이부장. 아까 우리 여직원한테 뭐라 그런 겁니까?
은홍 부족한 게 있어서 조언 좀 했는데.. 뭐요?
남궁 그런 게 있으면 직속상관인 나한테 먼저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부장이 직접 다그칠 게 아니라! 도대체가 기본이 안 돼 있잖아!
은홍 기본이요?
남궁 방금 회의실 상황도 그래요.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홍과장을 개망신 줘야겠어요?
은홍 (뭐라 얘기하려하는데)
남궁 그렇게 출세가 하고 싶어요? 동료 약점 물어뜯으면서?!!
은홍 비슷한 부류라 감정이입이 상당히 되시나본데..
남궁 뭐, 뭐요? 비슷한 부류, 뭐가 어째?
은홍 내년에 원주 내려가신다면서요? 그냥 조용히 계시다 내려가세요. 괜히 주변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가는)
남궁(E) 뭐, 피곤? 지금 이 회사에서 가장 피곤하게 구는 게 누군데!!
씬11. 남궁의 아파트 (밤)
남궁, 식탁 앞에 앉아서 누군가에게 열변을 토한다.
남궁 사회의 암적 존재야 그 여잔! 뽑아내야 돼, 당장! 혼자만 잘 살겠다고 동료를 팔아먹어?! 그런 인간들 때매 이 사회가 자꾸 암울해지고 험악해지는 거라구~!
아래 화면 밀고 들어온다.
씬12. 은홍의 집 근처 (밤)
손에 케이크 상자와 샴페인 들고 친구와 통화하며 걸어오는 은홍.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이하 교차.
은홍 말도 마. 오늘 웬 찌질이가 달려 들어가지고! 사십 평생 첨 들어보는 소릴 그 찌질이한테 들었어. 기본이 안 돼 있대 나더러!
남궁 텐미닛! 십 분에 한 번씩 감정이 바뀌어. 인간이~! 말이 돼? 생글생글 웃다가 중간 단계도 없어. 갑자기 히스테리야!
은홍 직원들이 자기 싫어하는 것도 모를 걸? 혼자 세계에 빠져서 지가 제일 잘 난 줄 알아!
남궁 호르몬이 주체가 안 돼서 기분이 널을 뛰면 시집이나 가던가! 그럼 남편만 고생하면 되잖아. 왜 주변 사람들까지 죄다 괴롭히냐고~!
은홍 혼자 늙는 거 아무나하는 거 아니더라~ 지금도 이상한데, 앞으론 얼마나 더 이상해질까?
남궁 이상한 여자 때매 입이 너무 더러워졌어. 빨리 입을 씻어내야 돼. (하더니 쨍! 상대 맥주잔에 제 잔을 부딪치는데)
앞에 앉은 것은 커다란 곰 인형이다....
은홍 나? 난 괜찮지~ 이대로 대만족이야. ..외로움? 엄마랑 분가도 하고 새 직장 적응하느라 그런 여유부릴 틈 없어. ...그래, 고맙다! 안 그래도 집에 가서 혼자 독립축하 파티하려고 케잌도 샀어. ..그럼~ 지금부터 진짜 솔로 생활 만끽 할 거야! .. 그래, 한 번 놀러 와. (전화 끊고 보니 어느 새 집 앞에 다 왔다. 안으로 들어가는)
씬13. 은홍의 집, 거실 (밤)
은홍, 들어와서 불 켜는데..
눈 휘둥그레져서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은홍 도, 도..도도.. 도둑이야!!!!!
난장판이 된 집안이 보인다.
씬14. 은홍의 집 앞 (밤)
지나가던 남궁. 어느 집 앞에 경찰차 세워져 있는 걸 본다.
주민들도 나와서 끼리끼리 모여 웅성거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서서 기웃기웃 보다가 이내 시들해져서
제 갈 길 가는 남궁.
경찰과 집 앞에 서서 얘기 나누던 은홍. 그런 남궁을 발견한다.
씬15. 오뎅 바 (밤)
들어오는 남궁. 우현이 먼저 와서 술 따르고 있다.
남궁 집으로 오지. 왜 사람을 불러내. 귀찮게~
우현 남궁부장아~ 뭐가 이렇게 힘드냐~
남궁(E) 예전부터 그랬다, 이 자식은. 팔 부러져 깁스하고 있는 나한테 지 손가락에 가시 뽑아 달라고 징징대던 놈이다.
남궁 이번엔 또 뭔데?
우현 와이프가 나더러 여자 생겼다고 난리 친다.
남궁 잘 좀 하지. 어떡했길래 그런 오핼 받아?
우현 쌩판 오해는 아니고.. 새벽에 베란다 나가서 여자랑 속닥대는 걸 본 거지.
남궁 (!) 여자, 누구? 너 애인 생겼어?
우현 (은근 자랑질) 부럽냐? 난 솔로인 니가 더 부럽다! 넌 결혼하지 마라~
남궁(E) 이 자식이 내게 해주는 유일한 조언이다. 지는 결혼해서 애 둘씩이나 낳고 사는 주제에.
남궁 마셔라.
씬16. 은홍의 집 안 (밤)
난장판인 집 안.. 이 위로 엄마와 통화하는 은홍의 목소리.
은홍 (전화) 그럼~ 밥 먹었지. 케이크 사다가 혼자 축하파티도 했어.
하지만 떨어뜨려 깨지고 으깨진 케이크 보인다.
은홍 (전화) 엄마나 나 없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셔. ..문단속 다 했어. 무섭긴..! 나 이제 마흔이거든? 어린애 아니야~ 이제 자야겠다. 피곤해. ..응 엄마도 잘 자.. (전화 끊는데)
난장판인 집안 보면서 눈물 난다. 무릎 세우고 고개 숙이는데
휴대폰 벨소리. 보면 발신자가 ‘그 놈’이다.
은홍, 꺼버리더니 눈물 슥슥 닦고
쓰러진 의자부터 세우며, 정리 시작한다.
씬17. 한가로운 동네 풍경 (낮)
씬18. 서점 안 (낮)
주인장, 돋보기 쓰고 두꺼운 책 읽고 있다.
문에 달린 풍경 딸랑~! 소리 나서 보면 은홍이 들어온다.
은홍 아저씨, 주문 한 책 왔어요?
주인 (책 내밀면 호신술의 기초) 그 집 밤손님 들었다지?
은홍 네. 요즘은 집에 들어가기가 겁난다니까요.
주인 그래서 이거 읽는 거야? 도둑놈 또 오면 때려잡으려고?
은홍 이거라도 읽어야 맘이 편할 것 같아서요. 안녕히 계세요.
은홍 나가면, 직소퍼즐 쌓여있는 곳 앞에 서 있는 남궁 보인다.
남궁(E) (은홍이 방금 나간 출입구 보며) 이 동네 사나?
남궁 (퍼즐 상자 하나 골라들고 와서) 얼마에요?
주인 (손가락으로 액수 표시하고) 새로운 취미 붙이셨나?
남궁 네?
주인 한동안은 오디오 서적만 주구장창 사가더니 또 한동안은 낚시 책만 쭉 사가고 또 바둑 책만 사가고.. (상자 눈으로 가리키며) 이게 새로 붙인 취미야?
남궁 시간이 잘 갈 것 같아서요. 천 피스 다 맞추고 나면 성취감 정돈 있겠죠? (그러다 이내) 근데.. 이 동네, 도둑 들었어요?
주인 좀 전에 그 처자? 이사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그런 일 생겼지 뭐야~ 혼자 사니 얼마나 무섭겠어.
남궁 (뭔가 생각하는데.. 휴대폰 벨 울린다. 받는) 어. 우현아.. (놀라는) 뭐? 홍과장이?!
씬19. 장례식장 (밤)
낚시터에서 활어 들고 웃고 있는 홍과장의 영정사진.
단체사진을 확대한 모양인데, 옆에 서 있는 남궁 얼굴이 살짝 보인다.
우현 (영정사진 보며) 홍과장아,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고 있냐~ 보는 사람 마음 더 아프게..
진아 그제께만 해도 저한테 농담 걸고 그러셨는데.. 믿어지지 않아요. 근데 심근경색이 뭐예요?
남궁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있는데, 그게 막혀서 산소 공급이 안 되니까 괴사가 일어나는, 그러니까 썩는 거야. 심장이. ..쓰러졌을 때 빨리 병원으로 옮겼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거지.
우현 넌 이 와중에도 잘난 체가 하고 싶냐?
남궁 아니, 물어보니까..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진아 그나저나 장례식장이 북적북적해서 다행이에요. 홍과장님 덜 외로우시겠죠?
남궁 (그 말에 둘러보니)
사람들로 꽉 채워져 북적대는 장례식장 안.
인파는 계속해서 몰려들어 부의금을 내기 위해 긴 줄까지 만들고 있다.
남궁의 시선에 테이블 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은홍이 보인다.
진아 (나가는 은홍 보며) 이부장님 많이 속상하시겠다.
우현 이부장? 이부장이 왜?
진아 사람들이 그러던데.. 이부장님이 회의시간에 홍과장님 엄청 깼다고.
우현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진아 홍과장님 그것 때매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면서요? 심근경색이 스트레스랑 관련 있다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남궁 ...
씬20. 장례식장 화장실 근처 (밤)
남궁, 계단 올라가는데.. 은홍, 내려온다.
남궁 (스치는데) 저기 혹시..
은홍 (보는)
남궁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홍과장 때문에 괜히 자책하고 그러지 말라구요.
은홍 자책이요? 그걸 왜 해요, 내가? 내가 홍과장님 저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남궁 (약간 당황) 그러니까요..
은홍 별꼴이야.. 진짜!
남궁 당신!
은홍 (보는)
남궁 근데 진짜 일말의 가책도 없어? 보통 누가 죽으면 내가 그 사람한테 했던 짓 하나하나 다 걸리던데? 빌려준 돈을 억지로 받아냈다거나 밥 같이 먹기 싫어서 일부러 피했다거나.. 이런 사소한 것까지!
은홍 이게 바로 찌질이들의 특징이지.
남궁 (!) ..찌질?
은홍 가책 갖지 말라고 어쭙잖게 위로했다가 가책 안 갖는다고 하니까 바로 왜 안 갖냐고 화를 내네? 아.. 찌질이가 아니구나? 미안해요. 위, 선, 자! (가는)
남궁(NA) 또 당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저 여자와는 절대로 엮이지 말자고!
씬21. 장례식장 안 (밤) (남궁의 꿈)
(마치 같은 장소에서의 시간경과처럼 자연스럽게 연결)
아무도 없는 텅 빈 장례식장 안.
청소 아줌마가 빗자루로 먼지 앉은 빈소 바닥을 쓸고 있다.
가면서 모르고 빗자루로 사진을 툭 건드리자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나는 영정사진. 남궁의 얼굴이다!
(프레임이 홍과장 옆에 있던 남궁으로 옮겨진 형태)
씬22. 남궁의 방 (낮)
눈 번쩍 뜨는 남궁.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남궁(NA) 죽은 홍과장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연배 동료의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은 의외로 깊었나 보다. 그날 이후로 몇 번이나 비슷한 악몽을 꿨다.
남궁 꿈도 참... (진정시키고 있는데)
알람시계가 울린다.
남궁, 손을 뻗어 끄려는데.. 먼저 날아오는 누군가의 팔! 시계를 쳐버린다.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시계.
놀라서 보면, 웬 여자가 남궁 옆에 엎드려 누워있다.
남궁 (!!) 이게 뭐지?! (건들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살피는데)
엎드려있던 여자 잠결에 몸을 젖힌다. 은홍이다!
남궁 (너무 놀라 입을 막는) (E)이 여자가 왜 여기..?! (뭔가 떠오른다)
씬23. 장례식장 주차장 (밤, 과거)
술 취한 은홍을 우현이 자기 차로 데려가려 한다.
진아 (말리며) 이부장님은 계면동 주민이니까 저희랑 같이 가시면 돼요. (남궁에게) 그렇죠, 부장님?
남궁 (못마땅하게 은홍 보는)
은홍 (취해서 흔들흔들)
씬24. 남궁의 차 안 (밤, 과거)
남궁 운전하고, 은홍 옆에서 자고, 진아 뒷좌석에서 종알댄다.
진아 (은홍 보며) 맞네, 속상했던 거.. 아닌 척 버티니까 더 슬프다..
남궁 쿨쿨 잠만 잘 자는데, 어디가 슬퍼?
진아 눈물 안 보이세요? 보세요. 여기 맺혔잖아요.
남궁 (보면 은홍 눈가에 눈물 맺혀있다) 눈물은 하품하다가도 나오는 거고~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거! 특히, 여자의 눈물!
진아 은근 시니컬하시다니까~
이때, 은홍의 휴대폰 벨 울린다. ‘그 놈’
진아 (보고) 그 놈? 발신자 명이 그 놈이네?
은홍 (그 말에 눈 뜨더니 휴대폰 꺼버린다)
진아 깨셨어요? 누구에요, 그놈이?
은홍 (다시 눈 감는)
남궁 (혼잣말처럼) 다 듣고 있으면서 자는 척하긴..!
은홍 (눈 감은 채) 시비 걸지 말고 조용히 가시죠?
남궁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진아 (진화하듯) 부장님! 내일 동호회 나오실 거죠?
남궁 어? ..가야지.
진아 저보다 늦게 가입했으면서 어쩜 그렇게 커필 잘 만드세요? 요리도 잘 하시죠? 부장님 같은 남자가 남편이면 정말.. (하는데)
은홍(E) (꺽꺽 웃는다)
남궁 (인상 팍 쓰며) 진짜 이 여자가!! (하고 보면)
은홍 (울고 있다. 눈 감은 채 흐느끼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점점 격하게. 술김에 더 우는) 미쳤나봐..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닦아내며 억지로 웃는) 이거 슬퍼서 우는 거 아냐! (엉엉) 버릇이야, 술버릇! (엉엉)
진아 ...우리 기분도 꿀꿀한데 어디 가서 한 잔 더 해요, 네?
남궁 주사 있는 여자 상대하기 싫은데..?!
씬25. 오뎅 바 (밤, 과거)
코 팽팽 풀고, 휴지 테이블에다 올려놓는 은홍. 이미 잔뜩 쌓였다.
인상 쓰는 남궁.
은홍 (주정 퍼레이드) 홍과장 그렇게 된 거 진짜 나 때문 아니겠지? 나 때문이면 콱 죽어버릴 거야~ (엉엉) / (진아 보고) 나 너 싫거든? 너 진짜! ..왜 이렇게 이쁜 거야~? / (남궁 보고) 당신 그렇게 쳐다보지 마. 기분 나빠. 혼자 고결한 척! 혼자만 똑바른 척! 그래 나 비틀비틀 아등바등 산다! 뭐? 그게 뭐! / 니편 내편 가르고 사람 차별하고 구별하고 너 그거 몸에 딱 뱄더라? 지금도 봐. 너 술 한 잔도 안 마셨지? 나랑 술 마시기 싫다 이거지?
진아 그게 아니라 우리 부장님은 술 세 잔만 들어가면 가시거든요. 정신이 저쪽으로다가.
남궁 (원샷 하고) 됐죠?
은홍 동정하지 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동정이야. 내가 불쌍해?
남궁 (또 원샷) 동정 아닙니다.
은홍 음~ 그래! 딱 거기까지지..! 절대 선을 안 넘어 당신은! 넘으면 클 나! 브라보~ 인간승리! 굿~!
남궁 (또 원샷)
진아 (휴대폰 벨 울린다. 받으며 나가는) 어, 아빠! ...여기? 장례식장 왔다가 지금 가려구~
남궁 (눈이 풀린다. 정신 차리려고 머리 흔드는)
(점프)
남궁 (취한) 왜 우리한테 뭐라 그래? 우리가 자식 낳지 말라 그랬어~ 정부정책이 한 발 늦어서 그렇게 된 걸 왜 마치 우리가 인구증가율을 떨어뜨리는 주범인 것처럼 매도하냐구, 왜!
은홍 (취한) 난 말야. 궁상씨~ 결혼 안 했다고 이기적이고 삐뚤어졌을 거라고 보는 그 편견! 그게 제일 싫어! 그럼 결혼한 지들은 다 성숙한가?
남궁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혼하네 마네 난리치고, 애들 인생이 지 인생인양 들입다 집착하고, 그게 성숙인가?
씬26. 노래방 (밤, 과거)
서로 어깨동무하고 노래하는 은홍과 남궁.
말~ 달리자아~! 말~ 달리자아~!
손 잡은 채 위로 들고 좌우로 움직이면서..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노래 다른 것도 무방. 죽이 잘 맞고, 단결하는 분위기 낼 수 있는 곡)
씬27. 남궁의 아파트, 방 (밤, 과거 - 낮, 현재)
거의 완성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퍼즐이 침대 위에 놓여있다.
인사불성 된 은홍을 부축하고 들어오는 남궁.
힘들어서 침대에 매다 꽂는데 바닥으로 떨어지는 퍼즐! 어?...어어!!
남궁 (열 받아서 퍼즐 조각을 은홍에게 던지며) 이부장! 발 닦고 자! 일어나서 발 닦어! 에이씨~ 발 닦고 세수하기 전엔 내 침대 올라오지 마! 저리 가! (밀어낸다)
침대 밑으로 쿵 떨어지는 은홍.
(시간경과)
아까 남궁에게 발견된 모습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져서 자고 있는 은홍.
휴대폰 벨 울린다. 한참 만에 받는.
은홍 알아서 일어난다고 깨우지 말랬지! 깨우지 마~ 이럼 독립한 의미가 없잖아~ (속 쓰려서 괴로워하다가) 여기, 뭐지!? (얼른 옷 상태 보고 놀라는) 엄마, 잠깐만! 내가 이따 전화할게 (끊고, 바닥에 떨어진 블라우스 입는다. 침대 빠져나와 방문 열었다가 뭔가 보더니 소리 안 나게 얼른 닫는. 상황 파악되고 골치 아프다)
씬28. 남궁의 거실 (낮, 현재)
간단히 빵과 달걀로 아침식사 준비하는 남궁.
그 뒤로 살금살금 방을 나와 밖으로 나가는 은홍이 보인다.
남궁, 문소리 듣고 잠시 멈췄다가 하던 일 계속한다.
에이 씨~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표정.
이때 휴대폰 문자 온다. 보면, 엄마.
[생일 축하해. 너 낳고 미역국 먹은 내가 불쌍해서 미역국 끓였어. 니 건 없어. 억울하면 장가가!]
씬29. 은홍의 집, 거실 (낮)
출근 채비 마친 은홍,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온다.
바닥에 널려있는 어제 입었던 옷 뒤져서 휴대폰 찾아낸다.
휴대폰에 달린 호루라기 잠시 보는 은홍.
들고 부리나케 나간다. 옷 옆에 퍼즐조각 한 개 떨어져있다...
씬30. 회사 복도 (낮)
걸어오는 남궁. 저만치 앞에 은홍이 가는 게 보이자 얼른 옆으로 숨는다.
남궁 아, 내가 왜 그랬지? 왠지 말린 느낌인데..
우현 (뒤에서 나타나는) 뭐하냐? (같은 곳 보면 은홍은 없다)
남궁 (나와서 걷는)
우현 어제 이부장이랑 진아씨 잘 데려다줬어? 별 일 없었구?
남궁 무슨 별 일!?
우현 반응이 뭐 이렇지? 그냥 물은 건데? ..뭔 일 있었구나?
남궁 (생각하기 싫은 듯 도리도리하며 가는)
우현 (쫓아가며) 뭔데 그래~? 어?
씬31. 회의실 (낮)
PT하는 우현.
은홍, 남궁을 슬쩍 쳐다보면
고집스럽게 이쪽은 한 번도 안 보는 남궁.
(점프)
간부들 우르르 나가고
남궁, 나가려는데
은홍 거기 좀 서 봐요!
은홍, 남궁을 똑바로 쳐다보고, 남궁 시선 피한다.
은홍 더우면 잠을 못 자는 스타일이라. 자다가 옷을.. 그런 거 같은데.. 아무 일 없었죠, 우리?
남궁 (기억 안 난다) 난 취해도 실수 같은 거 절대 안 합니다.
은홍 그러시겠죠. ..근데 왜 피해요?
남궁 피했다구요? 내가 언제.. 왜요? 내가 왜 그쪽을 피해요? 무슨 죄졌다고?
은홍 그럼 앞으로도.. 평소처럼 잘 지내면 되겠네요?
남궁 우리가 언제부터 잘 지냈다고.. 뭐.. 평소처럼 지냅시다. (일어나서 가는)
은홍 ...
씬32. 구매부 (낮)
은홍, 컴퓨터 작업하다가 휴대폰으로 시선 간다. 호루라기 고리..
(인서트)
어젯밤. 술 취한 남궁이 은홍의 손을 끌고 좌판 앞으로 간다.
남궁 (고르다가) 여깄다! (호신용 호루라기 휴대폰 고리 들고) 도둑놈 또 나타나면 이걸로 이렇게 (휘슬 세게 부는) 이렇게 쫓아내요.
은홍 (받는)
남궁 (시계 보고) 열두 시 넘었네? 아, 지겨운 나이 또 하나 먹었네!
은홍 오늘, 궁상씨 생일이에요?
(현재)
은홍, 휘슬을 입술에 대고 낮게 휘.. 다시 조금 더 세게 휘! 부는데..
진아(E) 이부장님!
은홍 (보면)
진아 (남궁과 같이 나가다가) 식사 안 하세요? 같이 가요.
남궁 바쁜가 봐. 그냥 우리끼리 가자.
은홍 (일어서며) 아뇨. 가요.
씬33. 가정식 백반집 (낮)
남궁 앞에만 미역국이 놓인다.
남궁 (의아해서 보는)
은홍 제가 부탁했어요. 오늘 생일이라면서요.
진아 오늘이 부장님 생일이에요? 선물 준비 못 했는데..! 회사에선 왜 아무 말도 없지? 원주 내려갈 사람이라고 아예 재껴 놓고.. (실수!)
은홍 우리 품앗이 할래요?
남궁 뭘 해요?
은홍 품앗이!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남궁이 사준 호루라기 흔드는) 서로 돕고 살면 좋잖아요. 밤에 별 일 없는지 안부 물어주고, 아플 때 약 사다주고,
진아 (끼어드는) 혼자 들어가기 쑥스러운 맛집, 같이 가주고!
은홍 한 동네 주민이니까 출근할 때 차 같이 탈 수도 있고.. 식재료 남는 거 있으면 나눌 수도 있고!
남궁 (미역국 은홍 앞에 놔준다) 미역국 안 좋아해요. 이부장이나 많이 먹어요.
은홍 ...
진아 (눈치 보다가 밥 먹는)
씬34. 직원휴게실 (낮)
창밖 내다보며 커피 마시는 남궁과 우현. 각자의 생각에 빠져있다.
남궁(NA) 새벽녘 꿈도 그렇고, 엄마의 간절한 메시지도 그렇고, 이대로 있다간 이상한 여자한테 코 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이 삼박자가 나를 한 방향으로 밀고 있었다.
우현 (한숨) 와이프가 이혼하재...
남궁 (컵 찌그러뜨리며) 아무래도... 결혼해야 될 것 같다.
우현 응?
남궁 근데, 누구랑 하지?
씬35. 카페 (밤)
사내커피동호회 <바리> 수업 중이다.
핸드드립 커피 내리는 남궁. 뜸들이기, 1차 추출, 2차 추출..
손놀림이 제법 노련하다.
진아(E) 부장님..
남궁 (커피 추출에 정신 팔려 안 보고) 어?
진아 이거요. (하며 라떼 잔을 내미는데.. 라떼에 하트가 그려져 있다) 생일 축하드려요~
남궁 (마시고, 미소) 우유스티밍이 잘 됐네!?
진아 어, 잠깐만요! (하더니 티슈 갖다가 입술 닦아준다) 묻었다..
남궁 ...
남궁(E)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인서트)
남궁,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다.
남궁(E) 추진하던 일이 어긋나서 기운 빠져 있을 때 이 아이가 다가왔다. 사내커피동호회에서 배운 거라며 자신이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건네주었다.
다가와 커피를 건네는 진아, 마시는 남궁.
남궁(E) 그것을 마시는 순간.. 마법처럼 휴식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도 사내 바리스타 동호회 회원이 됐다.
(현재)
진지하게 수업 들으며 커피 만드는 진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궁.
남궁(E) 생각해보니 이 아이 항상 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쳐있을 때마다 커피처럼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이 애의 마음은 뭐지?
씬36. 회사 복도 (낮)
남궁과 진아 걸으며 대화한다.
남궁 놀이공원?
진아 재밌겠죠? 부장님 놀이공원 좋아하세요?
남궁 (싫어한다) 어떻게 알았어? 나 되게 좋아하는데? 심장 두근두근 하고. 피가 막 거꾸로 솟는 기분.
진아 좋아하시는구나~ 잘 됐다! 이부장님도 좋아하시겠죠?
남궁 (실망하는) 이부장도 같이 가는 거야?
진아 그럼요~ 우리 멤버잖아요. 이부장님 빠지면 재미없죠. 시간이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가는)
씬37. 버스정류장 (밤)
은홍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남궁의 차가 와서 멈춘다.
남궁 타요!
씬38. 남궁의 차 안 (밤)
운전하는 남궁. 옆에 은홍.
남궁 이번 주말에 뭐해요? 바쁘죠?
은홍 안 바쁜데요.
남궁 놀이공원 좋아해요? 안 좋아할 거 같이 생겼는데..
은홍 되게 좋아하는데? 자유이용권 끊어서 아침 아홉시에 들어가면 밤에 문 닫을 때 나와요.
남궁 (쩝) 많이 좋아하는구나.. 그럼 누가 가자고 하면 가겠네?
은홍 누구요? ..진아씨?
남궁 얘기 들었어요? (내친김이다) 이부장 거기 꼭 가야 되나? 안 가면 안 돼요?
은홍 .. 왜요? 둘이서 가게요? ..궁상씨, 유진아씨 좋아해요?
남궁 궁상씨라고 부르지 좀..! 내가 그 말 얼마나 싫어하는데! 성은 남궁 이름은 상!
은홍 나 놀이공원 되게되게 좋아해요. 갈 거예요.
남궁 거긴 나중에 친구들이랑 가요~ 내가 표 끊어줄게!
은홍 ...
남궁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 ..품앗이! 그거 해요! 이번에 도와주면 나도 이부장이 부탁하는 거 뭐든지 다 들어줄께요. ...안 되겠어요?
은홍 (한숨 쉬듯) ..그래요 그럼..
남궁 진짜죠? 딴 말하기 없기?
은홍 나도 놀이공원 좋아하는데..
남궁 아참! 사람 미안하게~
이때 은홍의 휴대폰 벨 울린다. ‘그 놈’
남궁 (발신자 표시 보고) 그놈이네? 누구에요 그놈이? 전화 자주 오던데?
은홍 (꺼버리는)
남궁 수상하네..
은홍 ...
씬39. 놀이공원 몽타주 (낮)
솜사탕 들고 뛰어와서 남궁의 팔짱끼는 진아.
연인들처럼 솜사탕 떼어먹으며, 회전목마 같은 단순한 기구 타며,
즐거운 한 때..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면서 남궁의 고행이 시작된다.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팔팔한 진아와 달리
오돌오돌 떨면서 긴 줄 기다리는 남궁.
고난도 놀이기구 타고 환호하는 진아와
초긴장하는 남궁. 놀이기구가 움직이자 괴로워한다.
손 호호 불며 팔짝 팔짝 뛰며 추위 달래보지만
나중에는 포기하고 팔짱 끼고 덜덜 떤다.
그런 남궁을 또 어딘가로 끌고 가는 진아.
소 도살장 끌려가듯 무거운 발걸음 움직이는 남궁.
씬40. 아이스크림 가게 (밤)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을 각자 하나씩 앞에 두고 앉은 남궁과 진아.
남궁 (아이스크림을 물끄러미 보는)
진아 이부장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스크림 먹고) 오늘 재밌었죠?
남궁 (초췌해서) 응. 즐거웠어.
진아 저.. 부장님 실은요. 아까 친구들한테서 연락 왔는데, 오늘 파티한다고 오라 그래서..
남궁 파티?
진아 연말이잖아요.
남궁 밤새는 거야?
진아 네~ 근데 아빠가 알면 절대 허락 안 해줄 거예요. ..저 그 파티 꼭 가고 싶은데.. 제 편 돼 주심 안 돼요?
남궁 편? 어떻게?
(점프)
남궁 거짓말 하라고?
진아 자유를 위한 하얀 거짓말이죠. 안 돼요?
남궁 (내키지 않지만) 그러지 뭐.. 그럴게. 마음 푹 놓고 재미있게 놀아.
진아 (손잡는) 부장님! 감사해요~ 최고!
남궁 (웃는데..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뿌웅~)
남궁(E) 나이를 먹으면 방구가 샌다더니.. 진짜다!
진아 (당황하다가 웃는) 부장님~ 얼굴 빨개졌다~
남궁 (민망해서 같이 웃는)
남궁(E) 아..! 나이가 로맨스를 못 따라가는 아픈 현실!!
씬41. 남궁의 거실 (밤-낮)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시디를 거는 남궁.
천근같은 몸을 옷 입은 채 그대로 소파에 던진다.
이마에 식은땀. 으슬으슬 추운지 몸을 떤다.
남궁(E) 놀이공원 가고 싶어 했는데.. 데려갈 걸 그랬나? ... 텐미닛은 지금 뭐하고 있나...? 아니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지? 으~~~ 춥다!
(시간경과)
어제 옷 그대로, 식은땀 흘리고 숨 쌕쌕 거리며 누워있는 남궁.
잠시 후, 초인종 울린다.
씬42. 남궁의 현관 앞 (낮)
은홍이 장 본 물건 들고 서 있다.
은홍 (목소리 가다듬고, 할 말 연습한다) 재래시장에 갔다가 야채가 싸서 샀더니 너무 많네요. (아니다) 이거 드실래요? (문이 안 열린다. 다시 초인종)
아무 반응 없다..
휴대폰 꺼내 전화한다.
신호가면 문 건너편에서 소리가 난다.
은홍 안에 있는데... 왜 안 받지? (휴대폰 귀에 댄 채 문에도 다른 쪽 귀를 대보는데)
남궁(F) (다 죽어가는 목소리) 여..보..세..요..
은홍 (전화) 궁상씨? 무슨 일이에요? 어디 아파요? ...집에 있으면 문 좀 열어봐요. 궁상씨! ..궁상씨! (문 두드리며) 안에 있어요? 있으면 대답해요!! 남궁상씨!! (귀 대보다가 안 되겠는지 전화한다) 119죠?
씬43. 병원 전경 (낮)
씬44. 응급실 (낮)
남궁, 눈을 뜬다.
우현이 내려다보고 있다.
남궁 어떻게 된 거야? 니가 나 데리고 온 거야?
우현 그래 인마. 아프면 나한테 전화하지. 미련하게..
남궁 (살 것 같다.. 미소)
(점프)
우현 와이프가 이혼하재. 정이는 벌써 도장 찍었어. 나만 찍으면 돼.
남궁 니들 부부는 맨날 왜 그러냐~
우현 나 어떡해야 되냐, 남궁부장아~? 참아줬잖아. 쇼핑중독. 내 월급 반 이상 갖다 써도 참았다고! 오죽하면 애가 집에서 하는 놀이가 택배놀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게 택배기사거든! 그것도 참아줬잖아. 나더러 더 뭘 어쩌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데~!! (질질 짜는)
남궁 (티슈 뽑아 건넨다. 토닥토닥)
씬45. 우현의 차 안 (낮)
우현 운전하고 남궁 옆자리에 타고 있다.
우현 이렇게 바로 퇴원해도 되는 거냐?
남궁 의사가 그러잖아. 집에 가서 푹 쉬라고~
우현 이럴 때 옆에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건데..
남궁 ....
우현 (덤덤한) 이은홍 부장이랑은 무슨 사이야?
남궁 이부장하고 나? 무슨 사이긴 회사 동료 사이지.
우현 너희 집 앞에서 마주쳤어. ..둘이 사귀냐?
남궁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넌 이부장이 여자로 보이냐? 사람 아무 데나 찍어다 붙이지 마라~
씬46. 남궁의 거실 - 거리 (낮)
남궁, 병원에서 받아 온 약 털어 넣는다.
입 슥- 닦고, 휴대폰 들어서 어딘가로 전화하는.
남궁 (신호 가는 동안 헛기침으로 목소리 돋우는데)
진아(F) 부장님!
남궁 (전화) 지금 어디~?
진아(F) 친구들이랑 쇼핑 나왔어요.
남궁 파티는? 재밌었어?
진아 네. 좋았어요! 부장님, 어제 안색 안 좋던데.. 몸 괜찮으세요?
남궁 괜찮지 그럼~! 심장 두근두근, 피 거꾸로 솟는 기분 좋아한다니까!
진아 그럼 우리 날씨 풀리면 그것도 해요. 래프팅!
남궁 (!) 계곡에서 급류 타는 거? 고무보트 뒤집어져서 물에 막 빠지고 하는 그거 말이지?
진아(F) 아..! 패러글라이딩도 좋구요!
남궁 패러.. 좋지! 다해, 다해! 다 할 수 있어!
진아(F) 친구가 불러서 그만 가볼게요. 내일 회사에서 봬요!
남궁 그래. 그럼 회사에서.. (말 끝내기 전에 먼저 끊겼다. 그래도 기분 좋은. 벌떡 일어나더니 막 푸샵 한다.) 그럼.. 몸보신 좀 해볼까?
씬47. 마트 (낮)
소고기 안심, 등심, 닭가슴살 골라서 카트에 싣는 남궁.
은홍도 카트 밀며 장을 본다.
서로 반대쪽에서 오던 두 개의 카트가 딱 마주친다.
은홍 (눈인사 까딱하고 옆으로 지나가는데)
은홍(E) 안에 있어요? 있으면 대답 해봐요!! 남궁상씨!!
남궁 (은홍의 목소리가 생각난 듯) 어제 혹시 우리 집에 왔었어요?
은홍 (딱딱한) 제가요? 왜요?
남궁 아니.. 우리 집 앞에서 최부장이 만났다길래..
은홍 만났죠. 지나던 길이었으니까. 그 앞이 다 궁상씨 집은 아니잖아요?
남궁 (당황) 그렇죠. 그건..
은홍 고구마 좋아해요?
남궁 고구마? 맛있죠. ..왜요?
은홍 품앗이는 이것까지만 하죠? (하며 뭔가를 가리킨다)
고구마(40kg) 공동구매 신청서다.
은홍 양이 많으니까 하나 신청해서 같이 나누자구요. (종이 가져다 쓰는)
남궁 품앗이 계속하죠? 해보니까 좋은 거 같은데.
은홍 전 별루던데요.
남궁 (!) 그..랬..어요?
씬48. 마트 계산대 앞 (낮)
계산대에 물건 올려놓고 대화하는 두 사람.
은홍 (내심 걱정이지만 비꼬는 투로) 어제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는데.. 이십대 젊은 체력 쫓아다니느라 애썼겠어요? 병은 안 났어요?
남궁 그럴 리가! 젊은 기운 받아서 더 팔팔해진 거 안 보여요?
은홍 (한심한) 그래서 진도는 좀 나갔어요?
남궁 갑자기 웬 관심? 질투합니까?
은홍 (비웃듯) 질투는 무슨..
캐셔(E) 팔만 삼천사백이십 원입니다.
은홍 (카드 꺼내다가) 뭐가 그렇게 비싸요?
캐셔 이거 다 맞죠?
은홍 (물건 나누며) 제 건 이거뿐이에요. (남궁 가리키며) 나머진 이분 거구요. 같이 계산한 거예요?
캐셔 죄송합니다. 전 또 두 분이 부부신줄 알고..
남궁 (우리 둘이 부부? 새삼 은홍 보는)
은홍 (얼굴 붉어지는, 발끈)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세요! 우리가 어딜 봐서 부부에요? (하더니 가는)
캐셔 (황당해서 보는)
남궁 (어이없지만) 원래 좀 이상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지갑 꺼내는) 제가 계산할게요. 얼마라구요?
씬49. 마트 앞 (낮)
남궁, 산 물건 양손에 나눠서 들고 은홍에게로 뛰어간다.
남궁 자기 건 좀 자기가 듭시다.
은홍 (보면 자신이 골랐던 상품들이다. 채가는)
남궁 사람 무안하게 그렇게 대놓고 싫다고 말합니까?
은홍 뒷담화 까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남궁 내가 언제 뒷담화 깠다고..?
은홍 (흥! 비웃고, 가는)
남궁 (왜 저래?) 같이 가요.
씬50. 직원휴게실 (낮)
여행 잡지 뒤적이는 남궁. 옆에 우현.
은홍, 커피 뽑고 있다.
남궁 스키장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여자들은 뭐 좋아해?
우현 그런 건 여자한테 직접 물어야지. 이부장! 겨울여행 어디 가고 싶어요?
은홍 글쎄요. 뭐... 온천?
남궁 (안 보고 잡지 뒤적이며) 수준 참~ 넌 물을 사람한테 물어야지. 이십 대랑 사십 대가 같냐?
은홍 (어이없는)
남궁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명소 (찍는)
씬51. 사무실 (낮)
오십 대 초중반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진아부친 남궁상 부장님 뵈러 왔는데요.
여직원(은선) (가리키는)
씬52. 사무실, 영업부 (낮)
남궁 일하고 있다.
진아부친 (다가와서) 남궁상 부장님 되십니까?
남궁 (사무적으로) 어떻게 오셨죠?
진아부친 전 유진아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남궁상 부장님 맞으세요?
남궁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진아씨 아버님?!! (호감 가게 웃는) 네, 제가 남궁상입니다! 진아씬 지금 식사하러 나갔는데..
진아부친 딸 만나러 온 거 아닙니다. 부장님 뵈러 왔어요.
남궁 (긴장) 절요? 왜..
진아(E) 나중에 혹시 우리 아빠가 부장님한테 확인할지도 몰라요.
남궁 ....
진아부친 확인 좀 해주셔야 될 게 있어서요. *월 *일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진아(E) 일박 이일동안 회사에서 직원들과 다 같이 밤샘작업 했다고 좀 말해주세요.
남궁 (생각하는 척하며) *월 *일이면.. 아, 그 다음날까지 직원들 다 같이 밤 꼴딱 새서 일했는데.. 연말이라 바빠서요. 근데 그게 왜 알고 싶으신지..?
진아부친 (주먹 부르르 떨다가 남궁의 멱살을 잡는다) 니 놈이.. 니 놈이 감히 내 딸을!
남궁 왜, 왜 이러십니까 아버님!
진아부친 아버님? 그 입 닥치지 못해?! (하더니 뺨을 때리는)
남궁 (맞은 뺨 붙잡고 황당해서 보는)
진아, 은홍과 함께 들어오다가 이 장면 보고 달려온다.
진아 아빠! 왜 이래~ 부장님은 아무 잘못 없어!
진아부친 이 자식이 그러잖어. 그 날 직원들이랑 밤 꼴딱 샜다고! 니가 했던 거짓말 고대로 하잖어! 이 자식 맞지? 그 놈이지? 밤새 너랑 같이 있었다던 그 놈!
남궁 !!!
진아 부장님 아니야! 딴 사람이야~ 창피하게 정말 왜 이래!
진아부친 거짓말 하지 마!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해!
진아 내가 부탁했으니까! 아빠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달라고 내가 부탁했어! 아빠 이러는 거 진짜 쪽팔려! 나 오늘부터 집에 안 들어 가! 그런 줄 알아! 그 오빠 집에 들어가서 살 거야!
진아부친 뭐, 뭐라고!? (두리번두리번 하다가 가위 발견한다. 집어 들고) 너 이리 와. 머리 좀 밀자!
진아 (꺄악~ 비명 지르며 도망치는)
남직원들 (달려들어 진아부친 뜯어말리는)
여직원들 (진아 보호하는)
도망가는 진아와 가위를 휘두르는 부친. 이들을 말리는 직원들..
난리브루스 사이로, 허탈하게 서 있는 남궁이 보인다.
그런 남궁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홍...
씬53. 회사 건물 옥상 (낮)
은홍, 옥상 문 열고 나온다. 보면,
남궁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와서 열 식히고 있다.
은홍 (다가오는) 추운데 여기서 뭐해요?
남궁 혼자 있고 싶으니까 그만 가주시죠?
은홍 ..진아씨 단순한 사람이에요.
남궁 ...
은홍 궁상씨 감정이 어떤 건지 알아채지 못했을 거예요. 친근한 사촌오빠? 딱 그 정도 생각했겠죠. 그러니까.. 배신감 느끼지 마요. 상처받지 말라고요.
남궁 지금 그 말은..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으니까 아파할 자격도 없다 이겁니까?
은홍 말을 왜 그런 식으로 비비꼬아요? 그 뜻이 아니잖아요.
남궁 비비꼬는 건 이부장 장끼죠! 지금 고소하죠? 통쾌해 죽겠죠!? 나이 값 못하고 설치더니 꼴좋게 됐다~! 속으로 그러고 있죠?!!
은홍 (누르는) 속상한 건 알겠는데.. 말 좀 가려서하죠.
남궁 왜?!!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당신은 염장질러도 되고 나는 할 말도 못 해요?!!
은홍 (쏘아보다가) 관두죠. (가버리려는데)
남궁 (잡는) 아직 할 말 남았으니까, 듣고 가요!
은홍 (팔 뿌리치고, 노려보는)
남궁 사람 함부로 동정하지 마요. 우습게보지 말라고!! 내 꼴이 이렇게 됐다고 은근슬쩍 밀고 들어올 생각이면 더더군다나 꿈 깨라고요!! 내가 아무리 절박하고 외로워도 당신 같은 여자한테 위로 받을 만큼은 아니니까~! (가는)
은홍 (어이없는데.. 눈물 난다)
씬54. 크리스마스 거리풍경 (낮)
캐롤 흐르고..
반짝이는 전구들.. 선물들.. 그리고 연인들 모습 스케치 된다.
씬55. 남궁의 거실 (낮)
위의 캐롤이 실내 가득 울려 퍼지고 있다.
남궁, 한 손에는 와인 잔, 다른 손에는 퍼즐조각을 들고 맞춘다.
거의 다 맞췄다. 남아있는 조각을 모두 끼우고,
조각이 들어있던 통을 탈탈 터는데..
딱 하나가 빈다. 그림에 구멍이 났다. 비비안리의 코?
몸을 구부려 소파 밑 의자 밑 이리저리 찾는데.. 딩동!
택배(E) 택배요!
남궁 (보는)
(점프)
남궁, 커다란 택배상자를 열어보면 고구마(40kg)가 한 가득이다.
씬56. 은홍의 거실 (낮)
딩동! 딩동! 계속 울리는 초인종.
은홍 (가만히 보다가 현관문 연다)
남궁 (40kg 박스째 들고 들어온다) 왜 이렇게 늦게 열어요? 동사하는 줄 알았잖아요. (거실 바닥에 쿵 내려놓는)
은홍 이걸 왜 다 들고 와요? 반만 주면 되는데..
남궁 눈앞에 보는데서 정확하게 나눠야죠. (하며 둘러보는)
고지서, 신문, 옷가지, 쓰레기가 전부 제멋대로 굴러다닌다.
남궁 이 집에서 멀쩡한 건 이부장뿐이네요.
은홍 얼른 (고구마) 나누고 가요.
남궁 차도 한잔 안 줍니까? (콜록대는)
은홍 ...
남궁 품앗이 한 번 더 합시다.
은홍 싫다고 했잖아요.
남궁 이따가 나랑 고려호텔 레스토랑에 가는 거예요. 스테이크 먹으러.
은홍 (보는) 뭐하는 거예요?
남궁 (얼른) 사과하는 거잖아요. 미안했다고.
은홍 ...
남궁 나도 그날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은홍 ..
남궁 진아씨 일도 일이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봐요. 이부장 앞에서 그런 모습 들킨 게.
은홍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남궁 그러니까 그게.. 평소 어지간히 사람을 갈궜어야지~ 자존감이 낮아져서 그런 거잖아요.
은홍 그래서.. 사람 그렇게 열 받게 해놓고.. 달랑 스테이크로 때우겠다고요?
남궁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싫으면 할 수 없고.. (콜록 콜록 기침하며 가려고 하는데)
은홍 몇 시까지 준비하면 돼요?
남궁 (미소) 다섯 시까지 데리러 올게요. 그럼 이따 봐요. (나가면서 콜록댄다)
은홍 잠깐만요! (패딩파카 건네주는) 이거 입고 가요.
남궁 됐어요. 코앞인데..
은홍 연세 좀 생각하시죠? (억지로 입히는)
남궁 (입으면.. 쫌 작다)
은홍 (목도리 둘러주는) 얼굴 다 가려졌다! 아파트까지 단숨에 뛰어가는 거예요. 할 수 있죠?
이때, 은홍의 휴대폰 벨 울린다. 발신자 확인하고.
은홍 그럼 가세요. (하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남궁 (방문에 귀 대보다가) ...또 그놈인가? (나간다)
씬57. 아파트 공원 (낮)
걸어오는 남궁. 멈추더니 킁킁 파카와 목도리 냄새 맡는다.
남궁 무슨 향이야..?.. 좋네.... (눈 감고 음미하는데)
(인서트)
목도리가 여자의 팔로, 파카가 여자의 가슴으로 변한다.
앉아있는 남궁을 여자가 포근하게 백허그 하는 자세.
여자의 얼굴이 보이는데.. 은홍이다!
남궁 (눈 번쩍 든다)
(E) (두근...두근...두근...심장이 뛴다)
남궁 (자기 가슴께를 만진다) 설마... 심근경색?
이때, 남궁의 휴대폰 벨이 울린다. 최우현이다. 받는데..
우현(F) (심각한) 잠깐 좀 볼 수 있을까?
씬58. 커피숍 (낮)
우현 옷이 왜 그래?
남궁 그럴 일이 좀 있었어. 무슨 일이야? 연정씨가 결국 이혼하재?
우현 정이는 친정 갔어. 아직 그 상태고.
남궁 니네 부부문제 아니면 또 무슨 일인데?
우현 부부문제 맞아. 정이가 이혼하자고 한 건.. 사실 어떤 여자 때문이었어.
남궁 너 진짜 여자 있었어?
우현 내가 아니라. 그 여자가 자꾸 나한테 집착해서. 정이가 그걸 알고 화가 난 거야.
남궁 뭘 어떻게 집착했길래?
우현 밤마다 통화하고..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나 따라왔어.
남궁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그 여자가 우리 회사 사람이라는 거야?
우현 응.
남궁 나도 아는 사람?
우현 ..그래.
남궁 누군데?
우현 ...이은홍 부장
남궁 !!! .. 하지만 이부장은 스카웃 돼서..
우현 내가 이 회사 다니는 거 알고 있었어. 나 따라온 거야. 우리 둘이 예전에 사귀었던 거, 너 몰랐지?
남궁 !!!
(인서트2) 씬24
진아 (보고) 그 놈? 발신자 명이 그 놈이네?
은홍 (그 말에 눈 뜨더니 휴대폰 꺼버린다)
진아 깨셨어요? 누구에요, 그놈이?
남궁 니가 그놈이었어?
우현 뭐?
남궁 전화는 니가 한 거 아냐?
우현 사실 나도 그 여자 많이 좋아했다. 근데 결혼하고 잊고 있었어. 그러다 연정이랑 자꾸 어그러지니까.. 다시 보니까 좋더라. 그래서 몇 번 전화했어.
남궁 그러니까.. 니 둘 그동안 연애하고 있었냐?
우현 정신적인 것도 사랑이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남궁 (왠지 모를 배신감에 할 말 잃은) ....
씬59. 은홍의 거실 (낮)
외출 준비를 끝내고 옷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하며 의자에 앉아있는 은홍.
콤팩트 꺼내서 얼굴 한 번 다시 본다. 시계 보는데. 5시.
5시 15분. 자세 조금 흐트러진 은홍. 휴대폰 힐끔 본다.
5시 30분. 무릎 올려 턱 괴고 앉은 은홍. 휴대폰만 노려본다.
6시. 팔짱 끼고 있던 은홍, 휴대폰 들어서 남궁에게 전화한다.
씬60. 남궁의 거실 (밤)
휴대폰 진동하고, 발신자 이은홍 부장 뜬다.
그러나 외출복이 아닌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남궁.
다리 쭉 펴고 헤드폰 끼고 음악 듣고 있다.
씬61. 은홍의 현관 앞 (밤)
은홍, 휴대폰 귀에 댄 채 외투 챙겨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문 앞에 누군가 서 있다. 우현이다. 휴대폰 내리는..
씬62. 아파트공원 (밤)
은홍, 앞서 걸어가고 우현 바짝 뒤따라온다.
빙판 길에 미끄러질 뻔 하는 은홍. 우현이 얼른 잡아준다.
은홍이 손대지 말라며 우현을 확 밀어버리자 결국 같이 넘어지는.
씬63. 남궁의 거실 (밤)
남궁, 거실 유리창을 통해 이 모습 지켜본다.
굳은 표정으로 돌아서는.
씬64. 사무실 (낮)
남궁, 들어오다가 시선 저절로 은홍의 자리 향한다.
분주하게 일하는 은홍.
남궁 고개 팩 돌리고.. 시선 엇갈리며 은홍이 남궁을 본다.
자기 쪽은 쳐다도 안 보고 굳은 표정으로 가는 남궁을
속상하게 바라본다.
씬65. 주차장 (밤)
남궁, 차로 오는데 은홍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온다.
은홍 좀 태워줄래요?
남궁 딴 차 알아보세요. (차 문 여는)
은홍 (!) 어제 왜 안 왔어요?
남궁 가기 싫어서 안 갔어요.
은홍 .. 갑자기 왜요? 기다리라고 한 건 그쪽이잖아요.
남궁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부장이랑 거기 갈 이유가 없더라고. 아무리 옆구리가 허전하고 사는 게 무료하다고.. 아무하고나 어울리면 되겠어요?
은홍 아무하고나요?
남궁 이부장도 똑바로 된 사람 만나요. 외롭다고 아무나 찝적거리지 말고.
은홍 찝적거려요? 지금 누가 누굴 찝적거렸다는 거예요? 내가 궁상씨한테 찝적거렸어요?
남궁 나 말고..!
은홍 궁상씨 말고 누구요?!
남궁 ..최부장한테 얘기 다 들었어요.
은홍 우현이요? 우현이가 왜요?
남궁 둘이 사귀었다면서요?
은홍 ...
남궁 애당초 왜 이 회사에 온 거에요? 우현이 때문이죠? 보통은 헤어진 연인이 근무하는 회사라면 안 올 거 같은데..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은홍 그럼 안 돼요? 나도 최우현이 걸리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젠 친구 같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
남궁 우현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은홍 내가 나쁜 거예요?
남궁 나빠요. 아주!
은홍 !
남궁 당신 때문에 지금 그 집이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기나 해요?
은홍 ..나 때문이라는 거군요? 근데 난.. 왜 이렇게 억울하죠?
남궁 (차에 올라타고, 가버린다)
씬66. 남궁의 차 안 (밤)
운전하는 남궁. 혼자 남은 은홍을 본다..
씬67. 오뎅 바 (밤)
남궁, 들어오면 우현이 먼저 와서 술 따르고 있다.
남궁 (앉는) ...
우현 원주 발령 결정 났다며? 언제 출근이야?
남궁 다음 주 월요일.
우현 너 거기 가면 난 이제 누구랑 술 마시냐? 하소연 들어줄 놈도 없고..
남궁 와이프도 있고.. 애인도 있잖아..?
우현 연정인 삐쳐서 전화도 안 받아. 나 버림받았나 봐~ (우는)
남궁 (은홍과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
우현 은홍이한테 전화나 해볼까? (전화 드는)
남궁 (술 잔 꽉 쥔다)
우현 (전화 다시 내려놓는) 관두자.. 여기서 또 전화하면 인간 최우현 자존심은 끝장이다.
남궁 이부장이 뭐라 그랬는데..?
우현 찬바람 쌩쌩 불게 말 하더라. 좋아하는 사람 생겼으니까 다신 전화하지 말라고. 내가 한 건 사랑이 아니래.
남궁 ...
우현 외로우니까 마음 한 켠 내준 거뿐이라나? 내가 한 건 사랑이 아니고.. 자기 연민이고 집착이래. 무슨 말인지 알겠냐? ..니가 뭘 알겠냐~?
남궁 알아.
우현 안다구? 니가?
남궁 너 되게 의존적이야.
우현 뭐?
남궁 연민 강하고 집착 강하다고. 너 자신한테! 내가 친구로서 진심으로 충고 하나 하겠는데.. 너 되게 드러워~ 좀 씻고 살아. 응? 마음도 씻고, 몸도 씻고! 부탁해~ 또 보자. (나가는)
우현 (벙찐)
씬68. 오뎅 바 앞, 거리 (밤)
걷는 남궁. 조금씩 걸음 빨라진다..
마음이 급한 듯 달리기 시작한다.
씬69. 은홍 집 근처 거리 (밤)
은홍, 통화하며 걸어온다. 빙판 조심하며.
은홍 (전화) 목소리가 뭐 어때서. 아무 일 없어.. 괜찮대두. 추워서 그래.. 뭐 하러 올라와~ 신정에 내려갈 건데. 엄마, 걱정 좀 그만.. 엄맛!!! (빙판에 미끌. 뒤로 발랑 넘어지려는데)
남궁 (잡아주는)
은홍 (보고) 궁상씨...! (이내 오바하지 말자! 중심 잡고 밀어내려는데)
남궁 (그대로 팔 끌어당기는)
은홍 (안긴 채 놀라는)
엄마(F) (아까 비명소리에 놀란) 왜 그래, 은홍아? 무슨 일 났어?!
은홍(E) ..어. 일 났어 엄마.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 죽을 것 같애.
서로를 안은 채 마음을 주고받는 두 사람.
남궁(NA) 영원히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던 퍼즐 한 조각을 찾았다.
씬70. 남궁의 거실 (낮)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벽에 거는 남궁.
은홍, 빈 곳에 퍼즐 조각 끼운다. 완성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림을 감상하듯 나란히 서서 바라보는 은홍과 남궁.
남궁(NA) 천개의 조각 중 단 하나일 뿐인데 그 하나가..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다.
씬71. 서울역 플랫폼 (해질녘)
나란히 걸어오는 은홍 남궁(캐리어 든).
은홍 그거 알아요? 내가 그쪽 보호자였던 거?
남궁 무슨 소리에요?
은홍 그쪽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보호자 사인하잖아요. 거따가 내 이름 썼다구요.
남궁 지금 생색내는 거예요?
은홍 거따 이름을 딱 쓰는데.. 마음 여기가.. 따뜻해지는 거예요. 아.. 내가 이 사람 보호자구나..
남궁 뭐.. 다음에 실려 갈 일 있으면 내가 그쪽 보호자 해줄게요.
은홍 나더러 병원에 실려 가라구요?
남궁 품앗이.. 계속 쭉 하잔 얘기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은홍 (멈추고 보는)
남궁 (멈추고 보는)
남궁(NA) 마흔이 됐다... 나는 지금 평화로웠던 나의 일상을 무참히 부숴놓은 그 여자와 마주 서 있다.
은홍 매일 밤 안부전화 할게요.
남궁 고구마 보내줄게요.
은홍 신작 영화는 꼭 같이 봐요.
남궁 수도꼭지랑 전등, 내가 바꿔줄게요.
은홍 원주.. 일출 보러 갈게요.
남궁 보고 싶으면 전화해요. ...달려갈게요.
은홍 (미소.. 손 내미는)
남궁 (수줍은 듯 그 손, 잡는)
잡은 손 위로 흰눈이.. 하나.. 둘.. 떨어진다.
올려다보면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남궁(NA) 그녀도 마흔이 됐다... 이렇게 둘이 같이 손잡고 나이 들어가면.. 참 좋겠다.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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