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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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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백세청풍(百世淸風)
오대댁손자 추천 0 조회 170 07.06.26 14:3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청풍계(淸風溪) 탐방 길에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 집터에서

백세청풍(百世淸風) 글씨를 보았다고 하니 어느 분이 해설을 부탁한다.

 

청풍계(淸風溪)에 대한 글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고 또 글씨만 길게

다룰 수 없을 테니 따로이 백세청풍(百世淸風)에 대하여 몇 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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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청풍(百世淸風)’ 글씨가 있는 곳은 다음 지점이다.

 

 

 

구글 :  청풍계. 청운 초등학교를 옆 골목을 약 200M 가량 올라 가

(故) 정주영씨 댁 못 미쳐 오른 쪽 집.

 

 

 

사진: 백세청풍 글씨 있는 집

오른 쪽 거울 아래 보이는 판은 안내 금속판이다. 쇠로 칸살을 지른 담

틈새로 들여다 보니 과연 정원 안쪽 암벽에 글씨가 있다.

 

 

 

사진: 백세청풍 글씨1

 

 

백세청풍(百世淸風) 이란 ?

 

구글 검색엔진에서 백세청풍을 치니 문건이 2,290 개 나온다.

 

함안 서산서원에는 백세청풍 현판이 걸려 있고, 해주 수양산과 금오산에는

글씨 새긴 비석이 있다. 서예에서 즐겨 쓰는지 안중근 의사도 백세청풍

휘호를 남겼다.

 

초기화면에 캐치프레이즈 삼아 띄워 놓은 문중(門中) 사이트도 여럿 있고

또 무심코 클릭하니 배꼽티 입은 여자가 나와 어리둥절하였더니 닉네임

‘백세청풍’ 이 꾸미는 사이트다.

 

백세(百世)는 일백 세대이니 30년 곱하기 100 하면 3,000년이 되나

구체적 숫자가 아니라 ‘오랜 세월 또는 영원’을 뜻한다.

 

청풍(淸風)의 청(淸)은 매섭도록 맑고 높다는 뜻이고,

(風)은 바람이 아니라 군자(君子)의 덕(德)이요 절개다.

 

따라서 백세청풍이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요,

대표적으로 은나라가 망하자 의롭지 못한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우리나라 해주가 아니라 중국 산서성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뜻한다.

 

뭘 하나 배우면 원산지보다 더 철저히 외골수로 파고 드는 것이

우리나라 특징이다. 사육신 성삼문은 고사리는 주나라 것 아니더냐?

그냥 굶지 그건 또 왜 먹나? 하며 백이와 숙제 조차 나무란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 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 것인들 긔 뉘 따헤 났나니.-성삼문

 

 

 

선원 김상용의 대명일월 백세청풍 (大明日月 百世淸風)

 

비록 성삼문이 평가절하 했지만 백이와 숙제의 절개는 국난을 당할수록 더

생각나는 법이니 안중근의사가 백세청풍(百世淸風)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오랑캐에게 임금이 삼배구고두 하는 모욕을 당한 후

조선조 선비들은 존주양이(尊周攘夷)를 최고의 가치로 친다.

 

(明)-문화의 중심-떠 받들어야 함-존주(尊周)

(淸)-야만-힘에 굴복했으나 배척해야만 함-양이(攘夷)

 

 

 

사진: 백세청풍바위 안내판

 

 

없어졌다는 글씨  대명일월(大明日月) 그냥 밝은 해와 달이 아니다.

명나라 세월 반드시 되찾아야 할 그 날이다.

 

 

이 없어진 글씨 대명일월(大明日月)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요,

남은 백세청풍 (百世淸風) 주자(朱子)의 글씨라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주자의 필적과 맞는지?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흘러 들어 왔는지?

알 수 없고 다만 그런 설(說)이 있을  뿐이다.

 

 

사진 : 백세청풍 글씨 2

 

글씨를 새긴 연대

 

안내판에는 선원 김상용이 새겼다고 하지만 아닐 것 같다.

 

(없어졌다는 글씨) 대명일월(大明日月)은 병자호란 후에 유행한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들어 오자 강화읍 남문 문루에

화약을 쌓아 놓고 스스로 폭사하였으니 비슷한 시기지만 차이가 있다.

 

또 대명일월을 썼다는 우암 송시열은 선원 김상용이 폭사할 즈음에는

아직 젊은 선비다. 당대 명필이라면 젊은 사람 글씨라도 받겠지만

우암은 글씨로 유명한 분이 아니다.

 

따라서 백세청풍만 있다면 몰라도 대명일월과 세트로 있었다면

선원이 아니라 그 후손이 우암의 글씨를 받아다 새겼을 것 같다.

선원 김상용, 청음 김상헌 형제들 후손 그리고 우암

모두 노론 핵심으로 서로 교분이 깊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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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6.26 20:09

    첫댓글 종친님 고맙습니다 대명 일월 백세 청풍 좋은글과 정보주심 항상감사드님니다 잠시머물다갑니다 건강하세요, 스크랩할게요

  • 07.06.27 09:59

    백세청풍 그렇군요 이곳에서 유래된 말인가봐요 풍광이 가히 아름답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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