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잊을 수 없는 10경기
등록일 : 2015.01.06 조회수 : 680
역대 아시안컵에서 잊을 수 없는 10경기를 선정해봤다. 사진은 2015 아시안컵 트로피의 모습. 아시안컵은 다양한 명승부와 스타 탄생의 산실이다. 차범근, 황선홍은 아시안컵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으며 이동국은 아시안컵 득점왕에 오르며 대한민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었다. 이란과 일본은 고비마다 한국을 괴롭혀온 장본인이다. 역대 아시안컵 명승부 10경기를 선정했다. 이 경기들을 살펴보면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1. 아시안컵 초대 챔피언 등극(1956년 1회 대회 풀리그 3차전, 한국 5 - 3 베트남)
득점자 : 성낙운(5분), 우상권(2골, 41분, 58분), 최정민(2골, 57분, 66분)
출전선수 : 함흥철, 차태성, 박재승, 손명섭, 김진우, 김지성, 최정민, 성낙운, 김영진, 우상권, 김동근
당시 아시아축구의 중심지인 홍콩에서 1956년 제1회 아시안컵(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지역예선을 거쳐 4개팀이 최종 본선무대에 올랐다.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에서 한국은 남베트남과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첫 경기에서 이스라엘을 잡은 한국은 남베트남과의 경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자력 우승이었다. 7년 전 사이공을 방문한 한국은 남베트남과 3-3으로 비긴바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과 동남아시아 팀들간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남베트남은 지역예선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물리친 난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남베트남을 상대로 5골을 몰아치며 5-3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광복 이후 최초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안는 쾌거를 달성했고 아시안컵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2. 10만 홈 관중의 위력(1960년 2회 대회 풀리그 2차전, 한국 3-0 이스라엘)
득점자 : 조윤옥(2골, 14분, 65분) 우상권(26분)
출전선수 : 함흥철, 차태성, 김홍복, 손명섭, 김찬기, 유광준, 정순천, 문정식, 최정민, 조윤옥, 우상권
1960년 서울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안컵 풀리그 2차전은 한국 축구사에 기억될만한 한판이었다. 상대는 이스라엘. 당시 아시아 축구의 양대 산맥인 한국과 이스라엘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한국 관중들의 위력이었다. 당시 경기가 열린 효창운동장은 개장 후 첫 대회로 아시안컵을 치렀다. 효창운동장의 수용규모는 최대 2만명. 하지만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 경기장 일대는 물론 그라운드까지 관중이 들어차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27명이 부상당하고 경기장 한쪽 부분이 붕괴되기까지 했다. 다행히 대회조직위원회가 경기장에 있는 관중을 그라운드 밖으로 밀어내면서 경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10만에 달하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상대편 선수들을 향한 과격한 언동으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한국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이스라엘을 몰아 붙이며 3-0 완승을 거뒀다.
3. '갈색폭격기' 차범근의 첫 태극마크(1972년 대회 조편성 경기, 한국 0-0 이라크(승부차기 패배))
출전선수 : 이세연, 김호, 김호곤, 김경중, 박영태, 고재욱, 황재만, 차범근, 박수덕, 이회택, 박이천
1972 태국 아시안컵은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등장했다.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갈색 폭격기’ 차범근이다. 차범근은 조편성 경기에서 첫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차범근의 첫 상대국은 당시 ‘중동의 떠오르는 강호’ 이라크였다. 당초 한국은 이스라엘과 지역예선을 치르기로 했으나 이스라엘의 기권으로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해 12년 만에 정상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첫 경기부터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다. 양 팀은 두 번째 키커까지 모두 성공했다. 한국의 세 번째 키커는 차범근. 그러나 차범근은 공을 골대위로 날려버렸다. 뒤 이어 찬 황재만과 박수덕도 실축하며 한국은 이라크에게 2-4로 패했다. 이날 페널티킥 이후로 그는 거의 페널티킥을 차지 않았다. 차범근은 데뷔의 기쁨과 함께 아픔도 함께 겪었다.
1980 아시안컵에서 펼쳐진 역대 두 번째 남북대결에서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A매치 첫 승을 거뒀다. 4. 남북간 A매치 첫 승리(1980년 대회 준결승, 한국 2-1 북한)
득점자 : 정해원(2골, 80분, 89분)
출전선수 : 조병득, 최종덕, 조영증, 홍성호, 장외룡, 이강조, 이영무, 조광래, 정해원, 최순호, 이정일(이태엽-황석근)
1980 쿠웨이트 아시안컵 북한과의 준결승은 한국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남북대결 명승부였다. 1년 9개월 전 아시안 게임 결승에서 맞붙어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역대 두 번째 남북한간의 A매치였다. 경기는 혈전이었다. 양팀의 전력이 비슷한데다 결승 문턱에서 만난 터라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잠잠했던 분위기를 깬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 박종헌이 페널티킥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후반 들어 한국은 교체카드를 다 사용하며 동점골을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후반 35분부터 '기적의 10분'이 펼쳐졌다. 후반 35분, 후반 44분 정해원이 멀티골을 기록하며 한국을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려놓았다. 10분 사이에 터뜨린 두 골로 정해원은 단번에 영웅이 됐다.
5. '황새' 황선홍의 A매치 데뷔전-데뷔골(1988년 대회 조별리그 2차전, 한국 2-0 일본)
득점자 : 황선홍(13분) 김주성(35분)
출전선수 : 조병득, 박경훈, 조윤환, 구상범(여범규), 정용환, 조민국, 정해원(김봉길), 김주성, 변병주, 함현기, 황선홍
70년대 차범근이 아시안컵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듯이 황선홍도 카타르 아시안컵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황선홍은 건국대 재학 시절 아시안컵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매치 경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축구명문학교도 아닌 곳에서 대표팀 선수가 나왔다는 것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황선홍의 A매치 데뷔무대는 다름 아닌 한일전이었다. 중요한 대회에서 황선홍은 전반 13분 만에 선제골을 터트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은 전반 35분 김주성의 추가골에 힘입어 일본을 2-0으로 물리쳤다. 황선홍은 이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했다.
1996 아시안컵 8강 이란전에 선발 출전한 '야생마' 김주성도 한국의 비극적인 참패를 막진 못했다. 6. 이란전 비극적 참패(1996년 대회 8강전, 한국 2-6 이란)
득점자 : 김도훈(11분) 신태용(34분)
출전선수 : 김병지, 홍명보, 허기태(박광현), 이영진, 신홍기, 하석주, 김주성(이기형), 고정운, 유상철, 서정원(신태용), 김도훈
한국의 이란전 2-6 대패는 한국 축구사에 비극이었다. 한국은 김도훈과 신태용의 골로 전반을 2-1로 앞선 채 마쳤다. 그러나 후반전 2-2 동점골을 내준 뒤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란 알리 다에이에게 4골을 내주며 참패를 당했다. 한국이 한 선수에게 4골을 허용한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아랍연방전에서 리야드에게 6골을 내준 이후 처음이다. 3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며 아시아 수준을 넘었다고 자부했던 한국 축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패였다. 이날 패배로 박종환 감독은 대회를 마무리하고 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날 이후 한국과 이란의 악연은 계속된다. 최근까지 5회 연속 8강에서 맞붙는 등 아시안컵 대회 때마다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7. 라이온킹 이동국의 포효(2000년 대회 8강전, 한국 2-1 이란)
득점자 : 김상식(90분) 이동국(99분, 골든골)
출전선수 : 이운재, 강철(이동국), 김태영, 홍명보, 박지성(하석주), 심재원, 윤정환, 이영표, 김상식, 최철우(노정윤), 설기현
2000 레바논 아시안컵은 이동국의 시대였다. 이동국은 조별예선 2차전까지는 잠잠했다. 하지만 3차전 인도네시아전부터 잠재력이 폭발했다. 이동국은 인도네시아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골감각을 되살렸다. 이동국의 골감각은 이란전에서도 이어졌다. 한국은 지난 1996 아시안컵에 이어 8강에서 이란을 다시 만났다. 당시 이란은 한국에게 치욕적인 2-6 패배를 안겨줬다. 이란은 만만치 않았다. 이란이 후반에 터진 선제골로 1-0 앞선 상황. 정규시간이 모두 흘렀고 한국의 패색이 짙었다. 그 순간 김상식의 오른발 슈팅이 이란의 골망을 갈랐다. 이어진 연장전에서도 양 팀의 치열한 접전은 계속됐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동국이 있었다. 이동국은 연장 전반 9분 골든골을 터트리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지난대회 대패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되갚아 줬다. 이후 이동국은 2골을 추가하며 대회 6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8. 이란과의 계속된 악연(2004년 대회 8강전, 한국 3-4 이란)
득점자 : 설기현(16분) 이동국(25분) 김남일(68분)
출전선수 : 이운재, 최진철, 이영표, 이민성(박요셉), 김진규, 박진섭(안정환), 김남일, 정경호(차두리), 설기현, 이동국, 박지성
한국은 이란과 끈질긴 인연이 이어졌다. 지난 3개 대회 연속 8강 맞대결이 펼쳐졌다. 지난 2000년 아시안컵에서는 이동국의 골든골로 승리를 가져갔다. 끈질긴 인연만큼이나 양팀의 경기는 일진일퇴 공방전이었다. 이란이 선제골을 넣으면 한국이 따라붙는 형국이었다. 전후 반 통틀어 무려 7골이 나왔다. 일진일퇴 공방전 속에는 이란의 알리 카리미가 있었다. 전반 10분 선제골에 이어 전반 20분 역전골, 후반 31분에는 발끝으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지난 1996년 다에이에게 4골을 내준 악몽이 떠오르는 경기였다. 한국은 이동국이 전반25분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고군분투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 카리미를 막지 못한 한국은 해트트릭을 내주며 이란에게 3-4로 패했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주역들을 이끌고 44년 만에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아쉬움 속에 대회를 마무리했다.
2007 아시안컵 3,4위전 승부차기에서 이운재는 멋진 선방으로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9. '거미손' 이운재의 선방(2007년 대회 3,4위전, 한국 0-0 일본(승부차기 승리))
출전선수 : 이운재, 강민수, 김진규, 김치우, 오범석, 김두현(김치곤), 김정우, 오장은(이호), 염기훈(이근호), 이천수, 조재진
이라크에 패한 한국은 눈물을 삼키며 일본과의 3,4위전을 준비했다. 일본과는 숙명의 라이벌인 만큼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120분간의 혈투를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하지만 승부차기에는 든든한 수문장 이운재가 있었다. 이운재는 아시안컵 주장을 맡으며 토너먼트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이운재는 여러 차례 일본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내며 승부차기까지 이끌었다. 이운재의 선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란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도 선방을 했던 이운재는 일본전 승부차기에서도 마지막 결정적인 선방을 보여줬다. 한국이 여섯 번째 키커가 골을 넣은 가운데 이운재가 마지막 하나만 막으면 한국의 승리였다. 일본의 여섯 번째 키커는 하뉴. 하뉴가 찬 공이 가운데로 향했다. 이운재는 순간적으로 넘어지며 손을 뻗어 공을 막아냈다. 이운재의 선방쇼에 힘입어 한국은 일본을 물리치고 아시안컵 3위에 올랐다.
10. 결승 문턱에서 일본에 좌절(2011년 대회 준결승, 한국 2-2 일본(승부차기 패배))
득점자 : 기성용(23분) 황재원(120분)
출전선수: 정성룡, 이영표, 조용형(김신욱), 차두리, 황재원, 구자철, 기성용, 박지성, 이용래, 이청용(손흥민), 지동원(홍정호)
2011 카타르 아시안컵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팬들의 기억 속에 환희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 시작은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은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고 원숭이 골 세리머니를 펼쳐 구설수에 올랐다. 중앙수비수 황재원은 연장전에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연장 전반은 지옥이었다. 연장 전반 7분 페널티킥 반칙을 범하며 일본에게 역전골을 내줬다. 하지만 연장 후반 종료직전 기적 같은 슈팅이 나왔다. 문전 앞 혼전상황에서 황재원의 슈팅은 그대로 일본의 골문을 갈랐다. 승부차기에서 한국은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가 잇따라 실축했다. 51년만에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결승무대 앞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