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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어제 저녁에 설교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하지도 못한 영상을 보게 됐어요. 채명신 장군에 관한 영상이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원래 이북 분이신데 월남을 하시고 김일성이 같이 일하자고 직접 만나서 말을 했는데 김일성 앞에서 거절을 하고 남하하였던 분이세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신학자가 되려고 하시다가 육사에 들어가서 6.25 전쟁 때는 육군 중령으로 있으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가장 유명한 것은 주월 맹호 부대장으로 월남 파병의 초대 총사령관이셨어요.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을 추진해서 그렇게 허락을 받게 하신 분이세요. 그만큼 유명하신 분이신데 이분에게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 당시 6.25 때 1951년에 백골병단이라는 특수 부대를 만들어서 북한군으로 위장을 하고 북한 내부로 들어가서 적진에 침투해서 북한군 유격부대 지대장인 길원팔 중장을 체포해서 사살을 했습니다. 길원팔 중장은 그 당시 북한에서 서열이 상위에 들어가는 고위급이에요. 그 사람을 체포해서 사살함으로써 굉장히 큰 전과를 이루었는데요. 길원팔 중장이 마지막 죽으면서 채명신 장군에게 부탁을 합니다. “내가 고아 한 명을 양자로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는데 이 애를 데리고 가서 공부시켜 달라”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 약속을 하고 그 고아 소년을 데리고 남하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 이름을 채명준으로 개명해서 남동생으로 입적을 해요. 그리고 남동생으로 입적한 이분을 끝까지 공부시킵니다. 서울대를 졸업시키고 대학원을 졸업시키고 한양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을 하다가 은퇴를 합니다. 그것은 정말 좋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유신을 반대해요. 5.16 군사 정권을 행사하던 분이시고 또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중장에서 육군 참모총장으로 올라갈 입장인데 거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 봤을 때 “군인은 정치에 그렇게 개입하면 안된다” 라는 소신 때문에 반대합니다. 반대를 하다가 육군 중장으로 예편을 해요. 그리고 어떤 다른 업적을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때문에 그에게 출세길이 앞에 있는데 참모총장이 끝이 나고 나면 또 뭐 되겠습니까? 외교부나 아니면 대사나 아니면 장관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입장에 있는데 모든 걸 포기합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지켜요. 그리고 이분이 가장 유명해진 것은 마지막에 소천하셨을 때 2013년 소천하셨거든요. 소천하실 때 장군 묘역에 안치하지 말고 병사의 묘역에 함께 안장해 달라고 유언을 하십니다. 월남전에 파병했던 우리 병사들이 죽었던 그 묘지에 함께 묻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해서 지금도 병사의 묘에 묻혀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순복음교회 장로로서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시다가 소천하셨어요.
그리고 동생 채명준 장로는 교수님으로도 계셨지만 원래 이름은 최준경이래요. 끝까지 형님과 동생으로 살게 된거죠. 인천 송월 교회에서 장로님으로 계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속독법을 익히시고 성경을 만독을 했대요. 그러면 5일인가, 일주일에 1독을 해야 되고 2~30년 읽어야 돼요. 근데 성경을 만독을 했대요. 그리고 합동 신대원도 졸업을 하셨고요. 그래서 목회학 석사도 받으시고 중간에 전도사로도 봉사를 하신 분이에요. 마지막은 장로님으로 섬기시다가 2020년에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이걸 왜 소개해 드리냐면 이 두 분이 가장 위급할 때, 생명이 목전에 있을 때 하나님께 모든 걸 맡겼던 그 일, 그리고 평화기 때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무엇을 이루려고 한게 아니고 그리스도인으로 끝까지 살아갔다는 거예요. 그리고 채명준 장로님이 성경을 만독을 하고 난 다음에 하셨던 고백이 너무 멋있어요. 성경을 만독하신 분이 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결국 인간의 죄와 피만 보인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예요. “인간의 죄와 그것을 다 없애기 위한 용서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피만 보인다” 이게 고백이에요. 너무나 큰 감동으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0절에서 14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아멘.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지고 서로 미워하겠대요. 언제요? 그것은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섰을 때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때 이야기예요. 우리 때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때 보면 서로서로 사랑합니까? 용서하려 합니까? 이해하고 덮어주려 합니까? 아니면 조그마한 일만 있어도 오픈해서 모든 사람이 비난합니까? 위로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 다 심판자가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미워하는 것이 정상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불법이 성한다고 했어요. 불법이 뭘까요? 불법은 미워하는 것이에요. 사실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에요. 사탄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다가 저주받은 자입니다. 그가 불법자예요. 불법이 성한다는 것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 성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모든 인류가 보면 다 자기를 자꾸 높이려고 그래요. 낮아지려고 하는 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식는다고요? “사랑이 식어지리라. 사람 마음속에 사랑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놀랍게도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잃으면 안돼요? 사랑을 잃으면 안돼요! 오늘의 주제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잃지 말라고 하고 계십니까? 사랑을 잃지 않아야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리를 자꾸 이야기하면서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내가 마음에 영접했으면 구원이 절대 취소되지 않는다고 자꾸 이야기해요. 이거는 교리예요. 성경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서 만든 교리, 인간의 생각이에요. 말씀은 그렇게 전하고 있지 않아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끝까지 견디는 자예요. 아까 제가 채명신 장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끝까지 견딘거예요. 6.25 전쟁 때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 정권을 피하여 신앙 때문에 남하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적하여 끝까지 싸웠습니다. 마지막까지 정권을 잡은 세상의 위정자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지켰고요. 세상에 출세하는 것보다도 믿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하지 않고요. 낮은 곳 병사의 자리로 내려오셨어요. 그리스도인으로 끝까지 산 거예요. 그리고 적군이지만 그가 부탁했던 자기의 양자를 끝까지 동생으로 입적하여 공부시키고 형제의로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은 끝까지 무엇을 잃지 않아야 되요? 사랑이 식어지면 안돼요. 절대로 식어지면 안돼는 이 사랑에 대해서 오늘 좀 더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5절부터 21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아멘.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곧 불법자가 정권을 잡는 것이죠. 여기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적그리스도가 우상으로 서는 그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이에요.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했습니다. 환난의 때입니다. 우리 때도요. 환난이 올때 아까 채명신 장군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들어섰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피하여 도망갔습니다. 우리가 환난 당했을 때는 타협하라? 도망하라! 어디로 도망가요? 산으로 도망가라! 산은 아버지의 보좌입니다. 산은 보좌를 뜻합니다. 성전을 뜻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킬 곳으로 도망하라는 뜻이에요. 채명신 장군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도망하였죠. 홀로 도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일찍 독립운동가로 잡히셔서 일제의 감옥에 갇혀서 고문당하시다가 소천하셨대요. 그런 집안에서 이분도 남하 하신 거죠. 여기서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 이게 무슨 뜻일까요? 세상에 소망 두지 말라는 거예요. 재물이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다. 무엇입니까? 입는 문제, 아까는 먹는 문제죠. 지금은 입는 문제예요. 먹는 것 입는 거 걱정하라? 걱정하지 마라. 먼저 네 생명을 구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날에는 아이를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아이를 뱄다는 것이 세상의 근심 걱정이 꽉 차 있는 거죠. 애를 낳아야 되잖아요. 세상의 근심 걱정을 배고 있지 말라!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어요. 젖먹이고 있어요. 무엇입니까? 소망이에요. 얘가 커서 무엇이 될까? 하고 애를 꼭 붙잡고 있잖아요. 세상에 소망 두고 살아라?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환난이 왔을 때 우리 때입니다. 세상 근심 걱정, 세상 소망 다 내려놓고 아버지께로 오라는 거예요. 우리가 고난의 때, 환난의 때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부터 44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아멘. 두 번째 말씀은 우리 때 정확히 이방인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채명신 장군이 평소에 평화기 때도 누구에게 주목합니까? 예수님께 주목하고 그 삶을 예수님께 드려요. 그래서 자기의 결정을 신앙에 비춰서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 임함도 그러하리라” 무엇입니까? 노아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을 알던 때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안다고 구원받은게 아닙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내가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릴 것이니 너는 방주를 지어라” 노아가 방주 짓고 있는거 다 알아요. 그런데 그들이 처음에는 협조했다가 다 흩어집니다. 환난이 없잖아요. 우리 때 마찬가지입니다. 평화기 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돼요. 그 말씀 아래에 있어야 돼요. 대부분은 자기 생각에 빠져버립니다. 시집가고 장가 가고 다 자기의 일상으로 돌아가요. 아까 젖 먹이는 자와 아이 밴 자가 된 거예요.
그러나 노아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붕에 있던 자가 돌아가지 말라고 한것 같이 겉옷을 버리고 도망가라 한 것 같이 노아는 그 말씀 따라 살아가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는 예비할 것이냐? 아니면 나의 일상에 주목하여 살아갈 것이냐? 우리에게 지금 묻고 있습니다. 그때 예비했던 자는 두 사람이 밭에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가고요. 하나는 버려둬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해요. 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함께 말씀하세요. 무엇입니까? 예비하라는 거예요. 그 예비하라는 말씀 밑에 무엇이 나옵니까? 밑에 말씀은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것은 예비하는 자, 목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목사가 있을 것이고 더디 오실 거라 생각하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예비하지 않게 하는 목사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이 두 종류의 목사를 말씀하시면서요. 성도들이 예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목사는 내가 복을 줄 것이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예비치 못하게 하고 더디 올거라고 하였던 목사들은 하나님이 놀라운 말씀을 하세요. 밑에 볼까요?
마태복음 24장 48절부터 51절 까지 입니다.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놀랍게도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사실 제가 여러분께 부드럽게 말씀드렸어요. 이 말씀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악한 종이라 하셨어요. ‘주인이 더리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무엇입니까? 같은 교인들이죠. 성도들을 말씀으로 때리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고 무엇입니까? 세상에 취하게 하는 거예요. 자기 소망에 취하게 하는 겁니다. 세상으로 가게 하는 거예요. 아이를 배게 하고 아이를 키우게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뭐라 하십니까?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이건 환난에 들어가는 거죠. 환난에 들어가서 여기에서 돌이키면 고마워요. 뒤에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외식은 제가 위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구에게 외식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바리새인, 사두개인들, 제사장들이에요. 그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그리고 ‘사탄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세요. 무엇입니까? 지옥을 간다는 이야기예요. 주의 종이 되면 뭐합니까? 환난에 들어가서라도 돌이키지 않으면 한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때도 돌이키지 않으면 지옥을 갈거라 말씀하세요. 사실은 제가 이 말을 하기가 너무 두려워서 말씀을 안드린 거예요.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은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에 잘못 주목해 버리고 “우리는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하다가, 마음 놓고 있다가 언젠가 주님이 오셨을때 버림받으면 어떡합니까? 저는 말씀대로 가르칠 것입니다. 교리때문에 성경을 변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마태복음 25장 보겠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구조가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성도에게 예비하라] 말씀하셨고 밑에 장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예비시키라고 말하고 계십니까? [목사에게 예비시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장 구조도 똑같습니다. 두 번째는 [예비하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예비해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예요. 25장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6절에서 13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아멘.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 모두 주님을 기다려 등불을 들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에 들어가려고 그런 거예요. 나름대로는 깨어 있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주님 오신다고 할때,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갑자기 등불이 꺼져 갑니다. 등불은 성령님이시죠? 그런데 이 등불을 밝히려면 자기 그릇에 기름이 있어야 돼요. 그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매를 가는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 두 교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파는 자에게 가서 기름을 사라’예요. 파는 자가 있다는 거에요. 또 목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어떤 파는 자에게 가서, 무슨 기름을 사야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있겠죠. 그 설명이 밑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성경 구조를 알고 보면 똑같습니다. 앞에는 ‘예비하지 못하게 하는 목사, 예비하게 하는 목사’예요. 뒤에는 ‘그릇의 기름을 예비할 수 있게 하는 목사, 그릇의 기름을 예비하지 못하게 하는 목사’ 볼까요? 두 목사는 다 예수님 오신다고 믿는 목사님들이에요.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19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무엇입니까? 예수님 떠나셨다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떻게 되신다고요? 오신다! 예요. “돌아오신다”예요. 돌아오셔서 그 종들과 “어떻게 했니?” 하고 회계를 해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분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요. 주인에게 가지고 있는 소유가 뭐예요? 예수님의 소유가 뭘까요? 여러분이에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능을 따라 천국 백성을 만들라는 거예요. 다섯 달란트 받은 자도 열심히 일해서 천국 백성을 두 배로 만들었어요. 두 달란트 받은 분도 열심히 일해서 두 배로 만들었어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 성도만 붙잡고 “우리 교회, 우리 교회만 휴거 되야돼” 하고 꼭꼭 숨어 있었던 거예요. 땅에 파묻고요. 이 말씀은 마지막 때 주를 기다리는 신부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예요. 소극적으로 예수님이 우리 안데려갈까봐 겁이 나가지고 숨어 있으라? 열심히 복음 전파하고 열심히 일하라? 열심히 일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열심히 사셔야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26절부터 30절 같이 읽겠습니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아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지옥 보내는 분으로, 벌 주는 분으로 그렇게 아는 거예요. 두려움 때문에 지옥 갈까봐 벌벌 떨고 앞으로 나가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의 사랑에 주목한게 아니에요. 그분의 심판에 주목한 거예요. 그랬더니 자기 심판받지 않은 것만 간직하고 있었던 거에요.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차라리 그 성도를 다른 목사에게 맡기지, 왜 네가 데리고 있었냐, 그들에게 그릇의 기름을 예비 못하게 했지 않냐’ 꾸중하세요. 그리고 뭐라 하십니까? 성도들이 받을 축복을 그를 관리했던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거예요. 성도를 잘 관리하면 목사에게 축복이 큽니다. “그 축복을 차라리 다른 자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 목사는 어떻게 됩니까?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요. 아까 그 악한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위선자가 받는 율에 처한다 하셨죠. 지금은 바깥 어두운 곳이에요. 그래서 제가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그렇지만 천국은 아니에요. 이도 똑같이 벌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목사는 ‘도’ 아니면 ‘모’ 아주 복을 받든지 아주 쫄딱 망하든지 입니다. 그릇의 기름을 예비하라는 말씀을 처음부터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을 끝까지 지키라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24장 25장은 마지막 백보좌 심판으로 결론 내리신 거예요. 말씀은 계속 성도분들께 ‘예비하라’ 말씀하셨고 뒤에는 목사에게 ‘예비시키라’ 말씀하셨고요. 두 번째는 예수님이 오신다고 준비하는 교회에 ‘어떻게 예비할 것인가?’를 말씀하신 거예요. 25장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33절 같이 읽겠습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이제 결론이죠. 무엇입니까? 양과 염소예요. 목사와 성도가 없습니다. 양과 염소를 나누세요. 마지막 결론입니다. 볼까요?
마태복음 25장 34절부터 40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 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백보좌 심판은 제가 보기에 제일 어려운 말씀 중에 하나예요. 왜냐하면 실제 경험하지 못하면 말씀이 열리지가 않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양들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세요. 이들은 어떤 상속자들이에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기 위하여 나라를 예비하셨어요. 천국을 예비하셨어요. 그 나라를 상속받으라 하세요. “너희들은 자격이 있다” 말씀하시는데 그 자격의 내용이 나와요. 무엇입니까? 사랑이에요. 무엇이라고요? 사랑이에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끝까지 사랑을 실천해요. 누구 때문에요? 예수님 때문이에요! 예수님 때문에 그들이 한거예요. 그래서 “내가 주릴 때에” 예수님이 주리 셨다고 말씀하세요. 예수님을 위하여 산 것이에요. 삶이에요! 성경은 정확히 우리게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 따라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에요. 근데 이 말씀을 우리가 왜 오해하게 되냐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천국 간 것 같거든요. 예수님을 위하여 물 한 잔만 줬어도 천국 가는 거 같잖아요. 그 뜻이 아닙니다.
어떤 성도님이 오셔서 저에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위해 제 모든 삶을 드렸습니다” 1시간인가, 2시간 동안 열심히 말씀하세요. 듣던 저도 감동을 받아가지고 꼼짝을 못하고 듣고 있다가 너무 지쳐가지고 “무슨 말씀하려고 그러세요?” 제가 물어요. 그러면 결론이 없어요. 뭐냐면 ‘니가 나를 알아봐야지’ 이 뜻이에요.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각을 뜨고, 각이 뭔가 했더니 구약에 나오는 제사 지낸 이야기들,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서 내 자신의 삶을 드리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좋으신 분이다 싶은데 그분과 같이 살아보니까 각은 한 번도 안뜹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게 없습니다. 말하고 삶이 틀려요. 하나님이 그런 분하고 몇 개월 살게 해주셨거든요. 입으로 각 뜬 분은 삶으로 각을 안 뜨더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면 그렇게 살게 돼있어요. 진짜 십자가를 만나잖아요. 아무 기억이 안나요. 왜 기억이 안 날까요? 당연한 거예요. 예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주셨잖아요!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그 은혜 때문에 새 생명을 얻었는데, 내가 한 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내가 재산 좀 바친 게 뭐가 중요하다고, 내가 뭣 좀 한게 뭐가 중요하다고,,, 제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예수를 위해서 한게 있어도 기억이 안나요. 왜냐하면 당연한 거예요.
예수님 앞에 나갈 때 죄송한 것밖에 없어요. ‘그때 이렇게 살았을 걸, 그때 이렇게 말했을 걸, 그 형제에게 내가 괜히 화를 냈네. 내가 괜히 성질만 내고,,’ 그게 미안하기만 하고요. 하나님 앞에 죄송하기만 해요. 내가 뭐를 했다고 하나님 앞에 각을 뜨고, 뭐를 하고, 내가 했던 일들 하나도 기억 안납니다. 내가 잘못한 것만 기억나요. 여러분 부모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진짜 효자들은 잘못한 것만 기억나요. ‘그때 엄마한테 화 안낼 걸, 밥이라도 그때 따뜻하게 한번 더 드릴 걸, 엄마한테 다정하게 말할 걸,, 내가 왜 그랬을까?’ 미안하고 후회만 돼요. 제 이야기예요. 엄마한테 내가 잘했던 거는 기억이 안나요. 왜요? 당연하니까요. 양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돌아보면 이 사람들은 당연한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났더니 그 은혜가 감사하고 예수님과 가족이 된거예요. 그의 아내가 된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기억이 안나요. 그래서 예수님께 “우리가 뭐 했는데요?” 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너희가 했던 거 내가 다 안다. 그러므로 너희의 상속을 받아라” 하시는 거예요. 염소는 어떻게 할까요? 밑에 볼까요?
마태복음 25장 41절부터 46절 같이 읽겠습니다.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른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아멘. 염소들은 예수님을 뭐라 부릅니까? "주"라고 불러요. 그럼 이런 분들이 교회에 안 다니는 분들이에요? 교회 다니신 분들이에요? 교회 다니는 분들입니다. 이 말씀은 교인에 관한 얘기예요. 처음부터 예비하였던 자, 예비하지 않는 자. 교인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이웃을 사랑하고 살지 않았다고 말씀하세요. 여기서 보면 이분들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언제 안했습니까?” 라고 강변을 해요. 이분들이 나름대로 주를 위해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안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자기들이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안했습니까?”라고 얘기해요. 저에게 와서 자기가 각 떴다고 자랑하신 그분 이야기 비슷한 거예요. 오시면 가끔 가다가 그 말을 제가 들었는데 요즘은 안오시더라고요. 전에 한 번씩 오셔가지고 저에게 그래서 제가 몇 번은 당했어요. 그 다음에는 조금 하다가 스톱하고 “알았으니까 뭐 말하고 싶으세요?” 하면 그때부터 얼굴이 굳어지세요. ‘나를 모르는구나. 성령이 없는 없는 자인가 보다’ 생각을 해요. 무엇입니까? 염소는 무엇 때문에 교회에서 일을 했다는 뜻이에요? 자기를 높이려고 해요.
자기를 높이는 일들을 해온 거예요. 교회에서 목사 되고, 장로 되고, 집사 되고, 모든 일들이 자기를 위하여, 자기 명예를 위하여,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일들을 한거예요. 그것이 예수님을 위해서 했어요? 자기를 위하여 일한 것이에요. 그들 역시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뭐라 하십니까? “나를 위하여 한 게 아니다. 너를 위하여 한 것이다” 하세요. 여러분 돌아보셔야 돼요. 양은 자기를 십자가 아래에 낮춘 자예요. 염소는 십자가가 일회성이 된거에요. 예수를 믿어요. 십자가를 붙잡았어요. 그런데 그 십자가가 내 삶 속에 늘 실제가 되어 있어요? 일회성이에요? 고백안에 들어가 버린 거예요. 잘못 교리 잡으면 큰일 납니다. 여러분 삶 속에 항상 돌아보셔야 돼요! [십자가를 그때 감사하고 지나가고 다시 나를 높이고 있는지? 나를 위해 살고 있는지? 십자가 아래에서 그 사랑에 감격하여 살고 있는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을 잃지 않는 자 ,십자가의 사랑이에요. 이 말씀은 놀랍게도 마태복음 5장이 연결됩니다. 산상수훈과 똑같은 말씀이에요. 5장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양과 염소 얘기가 마태복음 5장과 7장에 같이 나옵니다.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4절 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무엇입니까? 이 두 가지 말씀이 성경 말씀 전체의 이야기예요. 아까 성경을 만독하셨던 최명준 장로님이 고백하셨던 그 고백과 똑같습니다. 볼까요? 어떤 자가 천국을 소유합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요! 너무나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에요. 어디 아래에 낮아져야 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그러면 천국 가기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쉬워요. 하나님은 천국을 가기 쉽게 만드셨습니다. 예수 믿어서 초보 신앙인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이분이 곧 돌아가셔서 어디로 들어가세요? 천국에 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이 천국 문을 우리가 쉽게 들어올 수 있게 만드셨어요. 그런데 누가 그 천국을 가기 어려워해요? 내가 힘들어해요. 하나님은 생명을 다하여 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하셨고 예수님은 그 길을 걸어가셨어요. 근데 사람들이 가기 힘들어해요. 기초는 똑같습니다. 내가 그 길을 안 가려고 그래요.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방해를 해요. 그래서 어려워지는 거예요.
여기서 애통하는 자가 나와요. 이게 가장 기초입니다. 무엇입니까? 애통은 우리가 어릴 때 회개하는 걸로 알았어요. 회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헬라어로는 [펜테오]라고 적혀 있어요. 타인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내가 회개하고 슬퍼하고 있습니까? 타인의 죽음을 슬퍼합니까? 타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돌아가신 거예요. 돌아가신 것을 슬퍼한다는 뜻이에요. 이것을 히브리로 바꾸면 [아발]이라는 뜻이에요. [아발]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혹은 족장들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누구를 구약에 비유하고 있냐면 야곱이 요셉이 죽은 것을 형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애통하며 슬퍼하는 그때 ‘아발’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무엇입니까? 정말로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느끼는 심각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모세가 돌아가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슴을 치고 그들이 슬퍼하던 그것을 [아발]이라 합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돌아가심 이에요. 십자가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가 너무너무 가슴 아파하며 그 십자가 아래로 내려가는 거예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 예수님과 가족이 되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에요. 예수님과 가족이 되고 나의 왕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바로 천국에 내가 데려갈 것이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간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세요. 정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갔다면 그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하여 예수를 위하여 살 것이에요. 그 사랑에 감격하여 감사하여 예수를 위해 살았더니 양들이 자기가 했던 일들을 기억합니까? 하나도 기억 못 합니까? 기억 못합니다. 회개할 것만 많고 후회되는 일만 많아요. ‘내가 그때 왜 그랬던가, 내가 그때 왜 그렇게 잘못 살았던가’ 그 생각만 나요. ‘우리 엄마한테 좀 더 잘할 걸’ 그 생각만 나요.
그래서 이 말씀에 모든 성경이 다 포함됩니다. “십자가 아래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것임이요” 우리 마음을 십자가 아래에 낮추고 그의 사랑 안에 삽시다! 그의 사랑 안에 거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성경은 구원이 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씀을 어기기 때문에 내가 자꾸 높아지고 교회 좀 다니다 보면 구원받은 것 같으니까 이제는 ‘나 나 나’ 하고 또 자기를 높이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가끔 오셔가지고 상담받을 때마다 제가 깜짝깜짝 놀라는게 왜 자꾸 자기를 모르냐고 물어요. 자기를 모르면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구만’ 성령을 왜 자기 높이는데 써요? 예수를 높여야죠. 그런 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양이 아니에요. 염소예요. 마태복음 7장 보겠습니다. 염소들의 특징이에요.
마태복음 7장 15절부터 20절 같이 읽겠습니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아멘. 거짓 선지자들은 무엇으로 안다고요? 열매로 안다 했습니다. 열매가 무엇일까요? 십자가를 만나면 사랑하는 자가 돼요. 예수님의 사랑을 만났더니 나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낮아져서 살게 돼요. 그러면 그 열매도 무엇이 열려요? 사랑이 열립니다. 그런데 잘못 열리면 무엇이 열립니까? 자기 욕심이 열려요. 자기를 높이는게 열려요. 그래서 그들의 열매를 보라 하신 거예요.
마태복음 7장 21절부터 23절 까지 읽고 오늘 메세지 마치겠습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아멘. 예수를 진짜 믿는다면 삶이 바뀐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들이 열매맺는 삶을 살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고 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살 때 자기가 사랑을 실천한다고 생각합니까? 늘 죄송해합니다. ‘또 잘못했네’ 자꾸 말씀을 돌아보고 나를 자꾸 회개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뭘 잘했다고 고개를 듭니까? 제가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 앞에 나와서 할 때만 좀 고개를 살짝 들고 일상 생활에 돌아가서 보면 회개할 것뿐이에요. 후회되는 것뿐입니다. 왜요? ‘그때 말 한마디 할 때 왜 그렇게 말 못 했을까? 겸손하게 말 못하고 또 오해하고, 짜증 내고, 신경질 내고 그랬을까?’ 우리 그러기 너무 쉽죠. 십자가 아래 늘 회개하며 삽시다. 늘 낮아져 삽시다. 그러면 주님이 인정해 주세요. 놀랍게도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 갑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있어야 됩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낮아지면 그의 뜻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염소들 이야기죠.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요” 1시간 2시간 동안 이야기하는데 끝이 없어요. 자기가 했던 했던 거, 하나님을 위해 살았던 거 다 기억하고 있어요. 왜요? 자기가 높은 자니까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오늘날도 여러분 나가시면 “나는 주의 종이고 주께서 나를 위해서 말씀하시고, 뭐를 하시고” 자기 이야기 엄청나게 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유튜브 들어가 보십시오. 그런 분들은 제가 말씀으로 말씀드립니다. 염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염소한테 속지 마십시오. 왜 그들에게 염소라 말씀하시냐면 내용이 나와요.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무엇을 행하는 자들이에요? 불법을 행하는 거예요.
법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 외에는 내가 도무지 전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노니 이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견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비록 천사일지라도(갈1:8~9)” 우리는 십자가를 전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안에 내려갈 때 예수를 믿는 즉시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 안에 낮아지는 삶, 섬기는 삶 그리고 늘 자신을 돌아보고요.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내가 괴물이에요. 우린 괴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 괴물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너 일 잘하고 있지 않니? 너 참 똑똑하고 잘났잖아. 남이 안 알아주면 안돼지. 알아줘야지. 너는 반드시 남이 알아줘야 되는 좋은 위대한 사람이야’ 내 속에서 괴물이 올라옵니다. ‘너한테 기분 나쁘게 말하네. 가만히 있을 거야? 너 또 당할 거야?’ 괴물이 올라옵니다. 그 괴물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날마다 다스려야 돼요. 나의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의 괴물을 다스리고 십자가의 사랑 안에 낮아지는 섬기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은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론이에요. 성경은 구원을 쉽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고백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거예요. 쉽다고 쉬운 건 아니에요! 너무 쉽게 만들었더니 교인들이 나가서 뭐합니까? 거짓말도 하고, 자기만 복 받으려 하고, 염치도 없고,, 제가 제일 힘든게 식당 가서 다른 분들이 밥 먹고 있는데 갑자기 “주여!” 하는 분들이에요. 밥 먹다 체해요. 옆에서 놀래가지고요. 다른 분 생각을 해야지요. 전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예수 천국!!” 얼마나 놀랍니까?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우리 몸으로 전해야 됩니다. 삶으로 전해야 됩니다. 인격으로 전해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 돌아와요. 여러분의 삶 속에 늘 그리스도인의 삶, 섬기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을 좇아 어떤 자를 구원하시는가를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과거에 하와가 자기를 높이려 하다가 멸망당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로서 늘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