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서 안디옥은 외국 선교의 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행 13:1-3)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던 곳이며(행 11:26) 이방인 개종자의 할례 문제에 관한 논쟁이 처음 있었던 곳이다(행 15:1,2;갈 2:11-21). 이와 같이 이방 지역 선교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안디옥 교회는 초기에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베드로에 의해 지도되었다. 전하는 역사에 의하면 베드로는 A.D 50년경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동굴에서 예배와 말씀을 인도 했다고 한다. 2세기에는 익나티우스와 데오빌로, 3,4세기에는 루시안, 데오도르, 크리소스톰(407년 사망) 등의 유명한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로마와 함께 중요한 신학적 본산(本産)이 되었다. A.D 526, 528, 529, 540년에 있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던 안디옥은 페르시아에 넘어갔으나 유스티안 비잔틴 황제에 의하여 탈환되었다가 A.D 636년 아랍인에게 넘어갔다. 그후 십자군, 아르메니안에 의해 침공을 받았으나 이 중에서도 그 중요성은 유지되어 실크, 유리세공, 비누, 고리 가공등이 번성하였다. 그러나 마물국 술탄이 1268년 황폐화시킨 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1516년 터키가 차지했을 때는 작은 도시로 남았다. B.C 300년 5월 22일 도시가 세워질 때부터 많은 신전과 공공건물이 장식되었고 아폴로신전에서 열린 경기와 연회의 화려함과 극치는 동쪽 모두에 잘 알려졌다. 안디옥 고고학 박물관에는 로마시대 모자이크 바닥이 남아있고 실피우스(Silpius) 산 정상에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망대가 위치하고 그 망대는 몇 번 재건되었다. 산 기슭에 있는 성 베드로 동굴교회는 초대 안디옥 성도들이 모였던 장소로 여겨진다. 동굴 안에는 매우 낡은 아마 비잔틴 시대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가 있다. 베드로 교회는 1983년 로마 교황청에서 신성한 장소로 선언 되었다.
베드로 동굴교회
베드로 동굴교회
베드로 동굴교회
본래 이곳은 암굴 형태였는데 1098년 십자군 6차 전쟁 시 이곳을 정복한 십자군들에 의해 예배 드리던 이곳을 발견하여 교회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오랜 세월 현 상태를 유지해 왔으나 뒷산의 낙석으로 훼손되어 2008년 6개월 동안 윗 부분 등을 보수 하였다.
베드로 동굴교회
베드로 동굴교회 입구
베드로 동굴교회 내부
베드로 동굴교회 내부
사도 베드로 상
사도 베드로 상
사도 베드로 상
왼손에는 천국 열쇠, 오른손에는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있다. 베드로상은 터키 정부에서 박물관으로 지정한 뒤에 세워진 것이다.
제대
제대
제대 부조, 알파와 오메가
제대 돌 의자
제대 돌 의자
제대 돌 의자
비잔틴 시대 바닥 돌 모자이크
내부 뒷편 창문
베드로 교회 소개문
내부 우편쪽 비상통로(도피로)
비상통로(도피로)
이 도피로를 따라 나가면 외부와 연결되며 동굴교회 뒷편의 실피우스산으로 도피할 수 있다.
도피로 바깥편
뒷산 실피우스 산의 피난 동굴들
뒷산 실피우스 산의 피난 동굴들
안디옥 실피우스산
안디옥개신교회(광림교회에서 개척)
터키 안디옥 개산교회는 2000년 6월 29일 광림감리교회에 의해 창립 되었다. 1993년 안디옥을 성지 순례한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가 안디옥 선교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7년간의 기도 끝에 1999년 안타키아 시청 옆의 건물을(지상3층, 지하1층) 매입하여 봉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