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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던 소 아시아의 성도들에게 베드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방 유대인으로서 흩어져 살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련과 박해를 받았던 자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서신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야 할 고난을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베드로 전서에서 꼽은 요절을 통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이런 상황에 두심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왜 기쁨이 될 수 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고, 오늘은 그 말씀을 제 스스로 정리하여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요절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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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장 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불시험의 의미와 고난을 이상히 여긴 욥:
신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즉 고난을 받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신자들에게 불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과 박해를 당할 때 욥과 같은 마음이 들 것을 염려하고 신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생활을 더 권면한 것 같습니다.
욥은 고난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고난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별다른 애로사항 없이 풍족한 삶을 살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재산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그의 사람들을 다 잃었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나 악성 종기로 인해 육체적인 큰 고통이 생기자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차라리 죽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욥 3장 10절 어머니의 태가 열리지 않아,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이 고난을 겪지 않아야 하는 건데!” “욥 3장 21절 이런 사람들은 죽기를 기다려도 죽음이 찾아와 주지 않는다.(새번역)” 그는 그에게 닥친 재앙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왜 자신이 그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놀라는 것은 둘째치고 억울해하였으며 자신이 어떤 죄값을 치루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하였고,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그 시험이 자신의 믿음을 단단하게 할 것임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았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욥기 3장 20절 어찌하여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태어나게 하셔서 빛을 보게 하시고, 이렇게 쓰디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가?(새번역)”
불 시험은 베드로전서 1장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순금이 되기 위해 뜨거운 불에 정련 받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육적인 삶이 모두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살기 위하여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모두 제거됩니다. 예를 들면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 고난을 통해 작아져서 옛사람이 사라지고 현재의 믿음이 더욱 확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고난이 벌어졌을 때 이상한 일이라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고난이 왜 생긴 것 인지 불확실해한다거나 고난을 피하기 위해 타협하려고 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은 삼가야 할 일입니다. 이 고난을 피하게 된다면 신자는 속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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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장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을 때 신자는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일이고, 내가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셔서 그의 영광이 나의 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미:
그렇다면 신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이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자렛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고 몸소 하나님의 진리를 완벽하게 실천하신 분입니다. 또한 인간을 종 노릇 시키는 죄의 권세를 이기시기 위해 모든 수치와 고난을 겪으시며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예수님께서 받으셨을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 느끼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의 무게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셨어야 했으므로 인간으로서는 예수님이 짊어지셨던 십자가의 무게와 고통을 가늠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권세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죄의 결과로 생긴 죽음의 권세도 이기셔서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하여 신자는 다른 우상이나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확실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미:
이러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면서 생겼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제자들은 스데반의 순교사건 후에 페니키아, 키프로스 그리고 안디옥에 흩어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세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도들의 삶을 통해서 배우듯이 신자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전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다고 하여 고난을 받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을 각자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궁금해하고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가 의미하는 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서는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듯이 신자에게 있어서 그 무엇도 하나님의 뜻이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신자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듯 신자의 고난 역시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입니다. 신자의 고난은 결코 인간의 운명으로 발생한 것도 아니고, 인간의 악행 때문에 죄값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은 신자를 저주하려고 신자에게 고난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신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끄십니다. 그리고 신자는 고난을 통하여 죄를 버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거룩하게 거듭납니다. 이 과정을 신자가 잘 견뎌낸다면 그는 그의 마음에 복음의 증거가 새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그분의 증거들을 모으십니다. 이 복음의 증거들이 신자의 삶에 쌓여갈수록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서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되고,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따라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고난을 원하시는가:
하지만 왜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신자들을 양육시키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방법으로 신자에게 축복해주시지 않는 것인지 저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즐겨 말하는 삼박자 축복(영혼구원, 물질/명예/등등 물질적 축복, 건강)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주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내가 예수님을 믿는 다고 멸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하고 우러러 볼 텐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그런 방법이 아닌 고난이라는 방법을 주셨는가 궁금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는 제가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마음이 약해지면 항상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삼박자 축복은 거짓목자들이 퍼뜨리는 거짓복음이고 하나님의 진리에 반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든 신자에게 본을 직접 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왕 대접을 받지 않으시고 가장 미천한 자 취급을 받으며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기부인하기를 서슴지 말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세상이 사랑하고 좋아하고 소원하는 방법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미워하고 꺼려하고 하찮게 여기는 방법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계실 때 세상에 어떠한 악도 실천하지 않으셨고, 한 순간도 악한 마음을 갖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매 순간 선을 행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에,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며 살기에 세상이 신자를 미워하므로 고난을 받습니다. 이는 신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며 신자가 이를 인지한 순간부터 고난을 당하는 게 필수적인 일임을, 어쩌면 고난은 신자의 의무 중에 하나임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신자의 모습:
신자는 고난을 통해 죄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법을 배워 악이 아니라 선을 좇고 선을 실천하는 자로 거듭납니다. 또한 신자는 고난을 혼자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받는 것이고, 성령님께서 신자에게 이전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사실상 성령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데 신자가 자신의 모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면 고난 받을 때 성령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면 신자는 자신의 모든 희망과 신뢰와 의지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고, 하나님께 즐겁게 순종하면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매 순간 신자에게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시고 가르치시며 말씀으로 신자를 보호해주십니다. 신자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몰라서 낙심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 간청하면 성령님께서는 그에게 담대하고 평안한 마음을 말씀으로 주시고 그의 발걸음을 항상 주장하여 주십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자가 고난 받을 때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더 가까이 계셔서 합당한 말씀을 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고난 속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될지 모를 때 신자는 성령님께 간청하여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기쁨이란:
신자가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 알고, 신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되고 기쁜 일인가 알 수 있습니다. 신자로서 어떻게 기쁨을 가지고 고난을 받을 수 있는지 저는 매번 고난을 받을 때 고민합니다. 그럴 때 저는 제가 무엇에 가장 기뻐하며 사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 모든 공부를 다 마치고 좋은 직업을 갖는 것?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기쁜 일들을 생각해봤지만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을 능가하지는 못했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과는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확실히 약속하신 구원입니다.
신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구원을 알리십니다. 이 복음은 신자의 구원이 성취되도록 신자의 삶에 작용하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난도 구원을 위해 사용됩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비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에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형벌을 받아 지옥에 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신자는 죽음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심판하실 때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비신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희망도 없고, 죽음 후의 미래도 없고, 하나님께 약속 받은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위로가 없는 비신자들은 종말에 충격적인 삶의 끝을 보게 될 것 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살지 않고 종말에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회개해서 구원을 받으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성화되는 과정에서 이미 약속 받은 구원을 희망한다는 것은 신자에게 가장 기쁜 일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을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나의 안에, 내 삶에는 기쁨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제가 겪게 될 모든 고난에도 기쁨이 뒤따르게 될 것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고백: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저에 대해서 거짓말과 모함을 하고 다녀서 제가 큰 곤혹을 치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해자인데 오히려 피해자인 것처럼 모든 일을 짜맞춰서 연극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양쪽에 모든 얘기를 듣고 진실을 알아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이미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서 제 말을 들어주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이유없이 부끄러움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분해서 새벽에 자다가 잠이 깰 정도로 싫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친구도 이 사건으로 인해 제 곁을 떠났을 때 저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난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저는 이 고난을 피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아마 이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다른 새로운 곳에서 생활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와의 일 때문에 하이델베르크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와 제 학업생활을 주셨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습니다. 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고난을 피해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저에게 주시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삶에서 올바르게 그것을 실천하고자 살려 할 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저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가 저를 지나치게 미워하고 제가 피해자인데 저를 가해자로 만든 것이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지나친 면이 있지만 어쨌거나 충격적인 이 일을 통해 저는 제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의 종이 아니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인간관계까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에게서 저를 떨어뜨려 주셔서 제가 더 이상 그로부터 세상적인 유혹을 받지 않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를 박해하는 악한 자들을 또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절실히 알고 싶어서 잠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잠언 24: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이 잠언에서 저는 지혜를 배워서 지금 당장 그를 용서하지 못할지라도 미워하지 않고 분을 품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미워하는 것에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선택한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죄인인 저를 의롭다 여겨주셔서 의인이라 불러주시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저를 위해 단 것이던 쓴 것이던 최선의 것으로 모든 일들을 주관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보통 장을 볼 때나 새로운 물건을 사야 될 때 수많은 물건 중에서 저에게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오래 고민을 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충동구매를 하기 힘든 성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감사하게도 천국 아니면 지옥, 이 둘 중에서 선택하게 하셔서 제가 둘 사이에서 고민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저는 당연히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가서 세상에서 받은 걱정과 시름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지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천국과 지옥 중에서 무엇을 원하냐고 하나님께서 제게 물으실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천국에 가고 싶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렇게 입술로 고백하는 말 뿐만 아니라 제 행동으로도 그 마음의 결정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시스템에 입력한 대로 작동하는 로봇도 아니고, 백퍼센트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를 원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닮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저에게 함께 해주시고, 그때그때 마다 합당한 말씀을 가르쳐 주셔서 천국 가는 길에서 지옥 가는 길로 노선변경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 말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처럼 제가 저의 마음을 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게 하시고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망설임없이 실천하며 살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사랑하여서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세상의 악을 배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하여 제가 일생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눈 앞에서 보는 데 큰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고, 제가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기뻐하는 자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욥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을 바라보고 그것이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이유없이 나를 괴롭히는 악한 영의 것인지 질문하는 자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첫째,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뤄지며, 둘째,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 세째,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 네째,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예배자가 되게하려는 의도로 허락됨을 보입니다. 고난은 그 고난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궁극적인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으로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님께 깊은 영성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통해 그분께 집중하길 원하심을(잠언 20:30) (고후 7:9) 그리고 고난을 통해 그분께 의지해 감을 (고후1:8-10) (시편 119:71) 그리고 우리가 고난을 극복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길 원하심을(고후 1:4)(창50:20)을 이곳에서도 설교를 통해 공교롭게 이번주에 배웠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의 전부입니다는 고백이 마음에서 우러나오기까지 그분은 우리를 단련하고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때문에 우린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은혜안에 자라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