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91년전에 경북영덕의 한 시골에서 한 계집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면서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가
혼기가됨에 선도보지않고 출가를 해 시집을 오니 영덕 지품면이다 가난한 시골에 시집을 왔으니 시부모와 조부모까지
많은식구들을 보살피리니 얼마나 고생을 했으며 밥굶기를 밥먹듯이 했으리라고 상상해본다 결혼을 하여 남매를 놓고
생활이 조금유택해 지려고 했으나 6.25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울때 남편은 공산당에게 속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먹고살기위해 자식을 공부시키기위해 누나는 어린 동생을 보고 보따리장사를 시작하는데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이동네
저동네를 다니며 장사를 했으니 그래도 풍족한 생활을 하지못했다 딸은 학교에 보내지못하고 아들은 지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다가 지금의 아내와결혼후 딸만 내리3명을 낳았다 그고에서 남매는 서로 정을 나누며 오누이로
지내다 누이는 아이를 낳다가 힘이없어 죽으니 어르신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했을까 생각해본다
교회에온 아들 지금부터는 삼촌이다 우리마을로 이사를 와 남선압출 에 다니며 부인은 식당을 다니다 몇년후에 영덕
국수집을 대구 북구청에 장사를 시작하니 손녀들은 모두 할머니의 차지였으리라 그래도 시간이나면 봄나물 부터 쑥 등을
캐어와 반찬을 만들고 큰손녀가 심장병으로 수술을하고 어려운 시기가 모두 지나간다 정결하고 깔끔하신성격에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머리가 날린다며 문을 닫으라고하신다
손녀 둘을 시집보내고 하나만 남았으니 경로당에도가시고 금호강변으로 산책을 다니시다 나물도 뜯어오고 하시다가 나이가
들어가매 힘도없어지고하여 요양보호를 받고 내가요양보호 서류와 신청도해주고 요양보호사로 1달 금무한것이 우연하게도
안동의 권무섭어르신(명심보감 금춘햇살)이다 매생신때마다 케익도 사다드리고 말벗도 해주며 병원에 입원과 치과치료 삼촌
의병으로 병원에입원하면 병간호도 해주며 절친하게 지냈다 그러더니 몸이약해지고 병이나니 누어서 계시다가 주간보호로
3년이다되어가다가 병이중하다기에 집에서 간호하기로하고 내가 요양보호를 해드리다 아내가하지말라고해 그만드고 몇일후
에돌아가시니 에 고 몇일만 더해드릴걸 하는 후회가된다 하늘나라에계실 어르신 그곳에서는 자식과 자손들의 행복을 빌어
주시고 늘 행복하소서 끝으로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첫댓글 얼마전에 할머니 요양사로 한달가량 일하신다더니 그분이 박두리 할머니셨군요.
육선생님 말씀처럼 일 그만두자 3일만에 돌아가시니 안타깝네요.
연세는 뭐 아까울 것도 없지만 구순까지 살면서 고생한 고생담을 육선생님이 임종처럼 들었던가 봅니다.
이제 그 자손들은 마음을 모아 잘 사시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