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가 오징어 게임인가요? ◈
브라질, 파라과이, 과테말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대한민국의 헌정사에서
중대한 두 가지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나라들은 모두 대통령제 민주주의(presidential democracy)를
채택하고 있으며, 행정부의 수반을 탄핵하여 끌어내린 전례가 있어요
이 두 가지 중대한 공통점을 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건전한 민주주의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남미형 중우정치의 나락으로
벌써 떨어지진 않았나 우려하게 되지요
갖은 범죄 혐의에 휩싸인 자당 전 대표를 엄호하기 위해
검사 탄핵을 남발하며 공공연히 대통령을 탄핵하겠다 떠벌리는
거대 야당의 폭주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이미 탄핵에 중독된 듯한 국회에 묻지 않을수 없지요
정치가 무슨 서바이벌 게임인가요?
몽테스키외와 로크 등 3권분립을 제창한 근대 입헌주의 사상가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행정부의 독재를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입법부에 탄핵 소추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동시에 그들은 의회 독재의 위험을 내다보고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권을 강구했지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의회 해산권 등은
의회 독재를 막는 행정부의 권한이지요
또한 그들은 입법부의 모든 활동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를 법제화했어요
실제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탄핵의 조건, 절차 및 심의 과정을 최대한 신중하게 제약하고 있지요
자유민주주의는 정교한 입헌주의의 원칙 위에서
시행착오와 숙의(熟議)의 과정을 거쳐 고안되었어요
그렇기에 남미와 대한민국을 제외한 대다수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행정부 수반에 대한 의회의 탄핵이 성공한 사례가 희소하지요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 미국의 헌정사에선
오직 3명의 대통령만이 도합 네 차례 하원에서 탄핵 소추되었지만,
매번 상원의 탄핵 심판에서 최종적으로 기각되었어요
그 밖의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난 경우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요
정부 권력의 분립과 제약을 생명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조치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지요
극한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반독재의 극약 처방이란 말이지요
정당한 절차로 국민 다수의 의지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의회가 쉽게 몰아낼 수 있다면 선거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남미 정치의 난맥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위헌적 탄핵 소추권 행사는
이미 군사 쿠데타의 기능적 등가물이 돼 버렸지요
과거엔 군부가 총칼로 권력을 탈취했다면,
이제는 민주의 외피를 쓴 세력이 헌법을 악용해서
권력을 찬탈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지요
특정 정당이 당파적 목적을 위해 탄핵 카드를 악용한다면
법치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사망할 수밖에 없어요
탄핵의 선례를 가진 나라에서 여소야대의 대통령은
작은 비위만으로도 부당하게 정치적으로 탄핵당할 수 있지요
반면 여대야소의 대통령은 특대형 위법행위를 하고서도
탄핵당하긴커녕 외려 국회를 등에 업고서 의행합일(議行合一)의 독재를
자행할 수 있는 부조리가 발생하지요
독재 견제의 최후 수단이 의회의 정치적 무기로 악용되는 순간,
고대 그리스의 철인이 예언했듯 민주주의는 난장판(anarchy)이 되고 말아요
바로 그 점에서 어느 나라에서나 탄핵 소추권을 파당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공화국의 공적이 아닐까요?
자유민주주의에서 탄핵 소추권은 독재 권력을 막는
최후의 보루일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제22대 대한민국 국회는 개원 초장부터 탄핵 카드를
마구 꺼내 쓰고 있지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첨단의 산업 강국 대한민국에서
대기업들은 기술 혁신으로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데,
국회는 왜 그렇게 깃털처럼 가벼워야만 할까요?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2016년 8월 대통령을 축출한 브라질의 선례를
바로 뒤따라 불과 97일 만에 대통령을 탄핵하고 파면했던 나라이지요
이제 진정 라틴아메리카와 더불어 일탈적 민주주의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공화국의 기본 이념을 되살려 3권분립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인가?
이는 입법과 탄핵 폭주를 자행하는 거대야당의 선택에 달려 있어요
의회정치의 타락을 보면서 국회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지요
“탄핵 중독 의원님들, 정치가 오징어 게임인가요?”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국회 법사위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를 19일과 26일 두 차례 열기로 했어요
증인으로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 최은순씨,
이종섭 전 국방장관, 임성근 전 해병 1사단장 등 39명을 채택했지요
민주당은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30만명을 돌파한 것을 명분으로 청문회를 밀어붙였어요
국민동의청원을 근거로 탄핵 청문회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지요
문재인 대통령 때도 146만명이 탄핵 청원을 했지만
탄핵 청문회는 열리지 않았어요
상식 밖이기 때문이었지요
민주당은 이런 상식 밖 일을 예사로 하고 있어요
탄핵은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정도가 심해
공직 수행이 불가할 때 내리는 극단적 조처이지요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면 더욱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요
그런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이 든 사유는
청원 처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수사·재판 중인 사안이거나
일방적 의혹이지요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전쟁 위기 조장’
‘강제징용 친일 해법 강행’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방조’ 등도 탄핵 사유라고 했어요
이런 저급한 선동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민주당이 더 잘 알 것이지요
한국은 정치 양극화와 국민 분열이 매우 심한 나라이지요
어느 대통령이 집권하든 탄핵 청원이 올라오면
어렵지 않게 1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요
그때마다 탄핵을 한다고 나서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엇그제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당시 146만명의 탄핵 청원이 있었는데
그때는 청문회를 왜 안 했느냐”고 묻자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당시 국회 법사위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했지요
대통령 탄핵이란 엄중한 문제를 놓고
법사위원장이 무책임한 말장난을 하고 있어요
민주당은 얼마 전 이재명 전 대표 수사 검사 3명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지요
이것을 비롯해 민주당이 현 정부 출범 후 발의한 탄핵안만 11건에 달하지요
탄핵 소추 전 사퇴한 방통위원장 2명까지 합치면 13건이지요
취임도 하지 않은 방통위원장 지명자에 대한 탄핵도 예고했어요
언젠가 민주당은 탄핵을 장난감처럼 휘두른
그 댓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될 것이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이 9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관련 청문회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의 건을 가결하고 있어요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 위원장의 의사진행에 항의하며 회의장을 퇴장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