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식당
글 德田 이응철
모르는 동네에 가서 맛있게 먹을려면 기사식당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주로 기사는 협의로 운전기사를 뜻한다. 운전기사는 활동범위가 드넓다.
때문에 음식을 여기저기서 골고루 맛본 것은 당연하리라.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기사식당이 반긴다. 기사들의 입맛에 적중하는데 신경을 쓰기에
반찬 맛이 후덥하고 깔끔하다. 가성비는 적어도 반찬 하나 하나가 다 맛있고 정성스러움을 기사는 안다.
ㅡ맛있게 잘 먹었다. 그 집 값이 저렴하고 반찬이 맛깔스러워!
이런 소문은 기사들 입과 입으로 전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왠일인지 내자는 언제나 기사식당을 지날 때면 내게 약속이나 한 듯 후덥한 입맛을 구구절절 전한다.
언제부터 아내는 기사식당에 흠뻑 빠졌을까? 새벽 생생정보통신 T.V프로를 선호하는 아내는 전국에 기사님들이 추천하는
식당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기사식당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안양에 오우회에 절친한 친구를 만나면 시끌시끌해 분위기는 없지만, 맛 하나는 끝내준다고 언제나 간 곳이 기사식당이란다.
그 때 맛본 제육볶음은 어찌나 구미를 당기게 하는지, 그런 좋은 이미지들이 기사식당파에 속한 연유라고 실토한다.
엊그제였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갔다가 귀향하면서 시간도 점심 때를 훌쩍 지나고 저녁은 좀 이른 시간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정차해 기웃거리더니 인근 기사식당으로 가자고 내게 채근한다.
원래 기사식당파(?)라 건강검진때도 나는 흰죽 한그릇 반으로 속을 채웠지만, 아내는 그야말로 빈 속이 아닌가!
시간도 넉넉하고 애마도 끌고 나오지 않은 터라 흔쾌히 따라간 곳은 터미널 옆이 눈길을 끈다. 새 건물이었다.
ㅡ오늘은 동태탕입니다.
ㅡ죄송합니다. 5천원에서 6천원으로 인상.
한주일 메뉴가 반긴다. 얼핏봐도 매일 색다른 반찬들이 눈길을 끈다.
오후 4시경 -한산할 텐데 식당 안은 제법 손님들이 드나든다. 승무원 석과 분리한 일반석은 주로 할머님들이 홀로 저녁을 드신다.
뷔폐였다. 식혜도 있고 커피도 있어 챙기는 모습이 쭈볏하지 않아 얼핏봐도 한두번 온 솜씨가 아니다.
언젠가 스위스 시골마을에선 온동네 사람들이 아침이면 한곳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는 풍경이 방영된 적이 있다.
요즘처럼 고물가로 만원 한장 들고 나가도 칼국수, 짜장면 커피 들기도 버겁다. 외식이 사실상 부담으로 모든이들의 욕구를 바윗덩이처럼 완전 가로 막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ㅡ 잘 먹었습니다. 흐드러진 호박나물을 고향 음식처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ㅡ네! 감사합니다. 내일 모레 말복末伏 때 오세요! 삼계탕을 준비중이니까요
ㅡ네? 현금 6천원에 삼계탕을?
어제 삼복의 마지막 말복末伏날 문우가 전화가 왔다. 더 좋은 곳이 있으니 하고 초대 물꼬를 기사식당으로 틀었다.
정오 12시ㅡ. 찌는듯한 무더위 찜통속에서도 입구부터 긴 줄이 나래비를 틀어 놀랐다. 예상밖이었다.
한주먹이 될까 아니면 약간 클까하는 삼계탕을 뷔폐 첫머리에 얹어준다. 신기했다.
동행한 강작가도 놀란다. 자리를 겨우 비집고 눈을 들어 보니, 큰 식당 안이 완전 만원으로 북새통이었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하고 먹는데, 아니 정년퇴임한 친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손을 흔든다. 더 놀란 것은 그친구가 와서
옆친구를 소개하는데 보니 아뿔싸! 대학동기로 내게 잘 해주던 친구가 썬글라스를 낀 나와 생면부지처럼 곁을 두다가
반색을 한다. 대학 때 보고 처음이니 반세기가 넘어 만난 셈이 아닌가! 강릉이 고향인데 춘천에 거할 줄이야!
일찌기 친구는 항상 군자였다. 강릉친구들의 근황도 전해들었다. 초등에 있다가 대학교수로 나간 함봉진 친구의 소식도 듣고 ㅎ
아니, 여기저기 아닌 낯 익은 문우들이 반긴다. 만남의 광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삼계탕보다 친구들 만남에 마냥 배부른 날이었다.
무엇보다 모두 저렴한 가격에 사로잡히고, 고향 맛이 나는 호박나물이 공통분모임에 틀림없으리라.
기사식당의 맛을 톡톡히 본 그날, 나오면서 사장님께 제일식당을 만남의 광장으로 교체했으면 좋겠다고 조크를 했다.
연일 무더운 찜통더위가 긴 터널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물가는 연일 고공행진으로 채소 몇 포기는 사오면 이내 녹아버린다.
수박 반쪽에 9900원, 참외 세개에 7천원-. 아예 외식은 꿈도 꾸지 못하던 작금의 날에 이건 어인 횡재인가?
아내가 저녁하기 귀찮으니까 서둘러 오늘도 너덧시경 가자고 채근한다. 현찰 6천원에 커피까지 제공하는 이곳을
폭염속에서 값진 보물을 주운 느낌이다.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