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유산을 물려주다-라훌라의 출가
부처님이 까삘라에 온지 칠일 째 부처님과 제자들이 공양청을 받아 궁중으로 왔다는 소식을 들은 야소다라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야소다라] “내 옛날 라훌라로 인하여 사까족들의 비방을 받았었지. 싯다르타가 왜 말없이 집을 나갔겠는가? 아내의 역할이 소홀했나, 아내에게 무슨 불만이 있었나, 아내가 뭘 잘 못했나, 며느리와 시부모간의 갈등을 보다 못해 집을 나갔는지, 마음에 들지 않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인가, 그들은 뒤에서 이렇게 수근거렸지. 오늘 부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그들의 의혹을 깨끗이 씻어 주리라.”
야소다라는 아들을 왕자의 신분에 맞게 멋지게 치장을 시켜 공양이 행해지는 장소로 데리고 갔다. 부처님이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챙겨 자리를 정돈하기를 기다려, 야소다라가 라훌라에게 말한다.
[야소다라] “아들아, 천이백 제자를 거느린 황금빛으로 빛나는 천신의 아름다운 풍채를 지닌 저 수행자를 보아라. 저 수행자가 너의 아버지이다. 그분에게는 많은 보물이 있단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분을 보지 못했지. 그분께 가서 말하거라. ‘아버지, 저는 당신의 아들 라훌라 왕자입니다. 제가 관정을 받으면 왕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재산과 보물이 필요합니다. 제게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예전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유산의 상속을 요청하거라.”
부처님은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사는 분인데, 무슨 가진 것이 있다고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라 했을까?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라훌라는 왕세자 싯다르타의 아들이니 언젠가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나, 지금은 나이가 어린데다가 아버지 싯다르타가 권력을 떠났기 때문에 장차 왕위계승 문제가 터졌을 때 라훌라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유산을 달라는 의미는 장차 일어날 라훌라의 왕위계승문제에 아버지로서 무슨 대책이 있느냐를 넌지시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세간적인 유산인 왕위계승을 말한다. 둘째, 싯다르타가 빔비사라왕의 귀의를 받고 천 명의 브라만계급 출신의 제자를 거느린 것을 보니 그분의 깨달음이 확실하다. 라훌라에게 아버지가 깨달은 소식을 전해달라고 요구하면 어떨까. 이것은 출세간적인 유산이 되는 다르마(Dharma/法)를 의미한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으로 남편에게 세간적인 유산과 출세간적인 유산을 물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라훌라] “수행자여, 당신의 그늘은 즐겁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소년은 가사 자락을 붙들고 뒤따라간다.
[라훌라] “수행자여, 저에게 유산을 주소서. 수행자여, 저에게 물려줄 유산을 주소서.”
그런데 “수행자여, 당신의 그늘은 행복합니다.”는 어른들이 쓰는 상투적인 어법이다. 어린애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어색해 보인다. 여덟 살의 어린 라훌라는 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을 했을까? 아직 어린 라훌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한 것이다. 야소다라가 부처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라훌라가 대신 한 것이다. 라훌라는 아버지를 따라 니그로다숲까지 따라갔다. 숲으로 들어선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사리뿟따를 불러 말한다.
[붓다] “사리뿟따여, 이 아이가 아버지의 유산을 원하는구나. 아이가 찾는 왕손의 유산은 윤회에 얽혀들어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보라, 나는 내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고귀한 유산을 물려줄 것이다. 그를 세상을 뛰어넘는 진리의 상속자로 만들리라. 라훌라를 출가시켜 사미로 받아주거라.”
[사리뿟따] “부처님이시여, 라훌라를 어떻게 출가시켜야 합니까.”
마하목갈라나가 라훌라의 머리를 깎이고 가사를 입혀주었으며, 사리뿟따는 보살피고 지도해 줄 스승(은사)이 되어 주었다. 니그로다숲의 수행자들이 모두 우물가로 모여 머리에 물을 뿌려주며 법왕의 계위를 이은 라훌라를 축복해주었다. 부처님이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왕좌도 아니고, 재산과 보물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까삘라 성을 나올 때 이미 더러운 오물을 버리듯 던지고 나온 것이니, 이제 새삼스레 버렸던 것을 다시 주워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왕의 자리에 오르면 권력의 속성에 따라 탐욕과 질투에 물들어 암투와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착취와 살생을 저지르게 될 터인데, 왜 사랑하는 아들을 타락과 파멸의 길을 걷게 하랴. 너는 나를 따라 세상을 뛰어넘는 길을 가자. 출가하여 나의 교단으로 들어와 스님으로 살아가라.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nibbida bahulo bhava/닙비다 바훌로 바와).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말라(mā lokaṃ punarāgami/마 로깡 뿌나라가미). 윤회하는 삶을 끝내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유산이다. 그것은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불사의 가르침이다.
그때 라훌라가 사라진 것을 안 숫도다나왕이 숲으로 달려왔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할아버지에게 머리를 깎은 손자는 자랑스럽게 발우를 들어보였다. 숫도다나왕은 쓰러지고 만다. 아들의 무릎에서 정신을 차린 숫도다나왕은 끝없이 흐느낀다.
[숫도다나] “태자인 네가 숲으로 떠났을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단다. 너의 빈자리를 채우려던 난다마저 출가하자 그 아픔은 더했단다. 하지만 살을 뚫고 뼛속까지 저리는 지금의 아픔만은 못하구나. 저 어린 것마저 데려가 버리면 이 늙은이는 누굴 바라보고 누굴 의지하란 말이냐.” 이어서 숫도다나왕은 미성년자가 보호자의 허락 없이 출가하는 경우 애통해 할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줄 것을 부처님께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소년이 출가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된다는 율을 정했다.
이제 부처님은 팔 일간의 고향방문을 마치고 새로 출가한 비구들과 함께 까삘라를 떠난다. 부처님이 고향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재회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함께 주고 떠난다. 숫도다나와 마하빠자빠띠, 야소다라는 재회의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난다도 떠났고, 라훌라도 떠났다. 많은 사꺄족 아들들이 부처님을 따라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까삘라 성의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도대체 무얼 위하여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였을까? 저렇게 집을 나가 얻어먹으면서 무얼 하겠다는 건가?
출가하는 이유
-맛지마니까야 랏타빨라경(Raṭṭhapālasuttaṃ/M82)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 보면
어리석어 재산을 모아두고 보시할 줄 모르나니
욕심 많게 재산을 쌓아두고
더욱 더 감각적 쾌락을 즐기려한다오.
땅을 폭력으로 정복한 왕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온 땅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바다 이쪽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다의 저쪽까지 탐낸다오.
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그와 같이
갈애를 버리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면
불만족한 상태로 몸을 버리나니
세상의 욕망에는 만족이 없다오.
친족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 흘리며
‘아이고, 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네.’라고 울부짖지만
수의로 감싸서 운반하고는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태워 버린다오.
그 많던 재산 놓아둔 채 수의 한 벌만 입고
불타는 막대기에 찔리면서 불태워지니
죽는 사람에겐 친족도 친구도
안식처도 의지처가 될 수 없나니.
상속인이 재산을 가져가고
망자는 업에 따라 제 갈 길 가야하니
죽을 때는 자식도, 아내도, 재산도, 토지도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오.
돈이 많다 하여 오래 살 수 없고
부자라고 늙지 않을 수 없다오,
인생은 짧다고 모두가 말하듯
영원한 것 없으며 흘러갈 뿐이라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죽음 앞에는 평등하며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똑 같이 죽음을 맞네,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에 얻어맞아 쓰러지건만
지혜를 닦은 사람은 죽음 앞에 흔들리지 않는다오.
재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지혜이니
그 지혜로움으로 궁극적인 목표 얻나니,
어리석음으로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고
생을 거듭하도록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오.
모태에 들어 다음 생을 받으니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윤회한다오,
자기의 얕은 지식으로 자기를 믿는 사람
태중에 들어 다음 생으로 떠밀려갈 뿐.
마치 도둑이 강도에 사로잡혀
저지른 악행으로 괴로워하듯
사람이 죽은 후엔 다음 생을 받고나서
전생에 저지른 악업을 자책한다오.
달콤하고 즐거운 한없는 쾌락이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괴롭히나니
감각적 쾌락에 묶이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왕이여, 나는 출가하였소.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사람도 그와 같아,
젊은이든 늙은이든 명이 다하면 떨어지나니
왕이여, 난 이것을 잘 알기에 출가하였소,
사문의 삶이 확실히 더 훌륭하다오.
<참고>
①법구경 인연담에 보면 “왕자 라훌라는 부처님께로 갔다. 라훌라가 그를 보는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마음이 기뻤다. 그는 이와 같이 ‘수행자여, 당신의 그늘은 즐겁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역에 맞는 말을 했다.”고 나온다. 어린 라훌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한 것이다. <법구경(담마빠다/Dhammapada) 인연담 13~14 난다와 관련된 이야기, 전재성님 역>
②사미(沙彌/Samanera/사마네라): 남자로서 처음 출가를 하면 6개월 또는 1년 동안 행자(行者)생활을 하여 승려가 될 자질과 스스로의 결심을 다짐한 뒤, 은사(恩師)를 정하고 사미계를 받아 사미가 된다. 보통 20세까지는 사미로 지내다가 만 20세가 되면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가 된다. 불교 교단 최초의 사미는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Rahula)이다.
③라훌라가 어려서 혼자 소꿉장난을 할 때 한 줌의 모래를 집어 들고 ‘오늘 내가 이 모래알처럼 많은 가르침을 얻기를 바란다.’ 고 기원했다.
라훌라8살 때(부처님 세수37):출가시켜 사미계를 받게 하고,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설함. 사리뿟따를 은사로 모심.
라훌라15살 때(부처님 세수44살): 사리뿟따 밑에서 7년 동안 사미훈육을 받음, 거울법문 해줌.
라훌라18살 때(부처님 세수47살): 세숫대야 법문을 해주고, 위빳사나 교육을 시킴.
라훌라20살 때(부처님 세수49살): 비구계를 받게 함.
부처님의 자식교육은 철저하였다. 라훌라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도 은밀하게 스스로 행할 바를 실천하며, 인욕행(忍辱行)과 계율준수를 잘 하였기에 부처님으로부터 밀행(密行)제일이라는 칭찬을 받는다.
첫댓글 얼마나 세밀하게 글로 옮겨 주신지 맑은 수채화의 열두폭 그림이 절로 그려집니다. 부처님의 음성이며 움직임까지 그림이 아니라 한편의 감동 드라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