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또한 교만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역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비참하게 생각되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한 비교를 통해서는 올바른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항상 나쁘게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우리 각자 각자는 유일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쌍둥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얼굴이 똑같아 보여도 그 부모는 어떻게든 구분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차이를 느끼지 못해도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늘 새로움을 가지고 당신의 일을 해 오셨지요.
오늘과 어제를 비교해보십시오.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잘 따지고 보면 비슷해보여도 너무나도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날씨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틀립니다.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도 다르고, 그날 먹은 식사의 내용 역시 다릅니다.
이렇게 늘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하느님의 일에 있어서 비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면 비교의 삶이 아닌,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대신 그들의 고유함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비교하려는 순간, 예수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오신 세례자 요한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뒤에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시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본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인 요한에게 일러바치지요.
세례는 세례자 요한의 고유한 행동인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따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세례를 베풀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의 인기는 엄청났었지요.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인간적인 욕심에서 볼 때,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냥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히 존경과 사랑을 받는 편을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대답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대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충실한 것, 주님께서 맡겨주신 고유한 일에 대해
비교 없이 묵묵히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 요한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영광은 자신이 아닌 주님이 받아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은 날마다 기쁨이고 기적입니다(크리스토퍼 디브).
얼굴을 가려라(‘좋은생각’ 중에서)
제갈량의 아내 황 씨는 재능이 뛰어나고 됨됨이가 훌륭해 남편이 승상의 자리에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제갈량은 늘 깃털 부채를 들고 다녔는데, 이는 아내의 부탁이었다.
그녀가 부채를 선물한 데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황 씨가 제갈량에게 말했다.
“친정아버지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은 포부가 크고 기개가 드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비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표정이 환했지요.
하지만 조조에 대해 말할 때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군요.
손권을 언급할 땐 고뇌에 잠긴 듯 보였고요.
큰일을 도모하려면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침착해야 해요. 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세요.”
제갈량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늘 부채를 손에 쥐었다.
부채질을 한 번 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 황 씨가 말한 ‘얼굴을 가리라.’라는 말은 침착하라는 의미였다.
그녀는 마음이 고요해야 태연함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감정에 쉽게 흔들리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또한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안에서
우리는 고요한 마음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부채는 무엇일까요?
주님이 계시잖아요.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
첫댓글 저도 부채가 필요해요. 주님 뒤에 숨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