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의 ‘수능 절대평가·폐지’ 제안이 던지는 질문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33학년도 내신·수능 절대평가 전환과 2040학년도 수능 폐지’ 제안은 우리 교육체계의 근본적 방향성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근식 교육감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었지만 대입이라는 벽 앞에서 학교의 변화가 멈추었다”며 기존 선발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개별 학생의 성장 이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대입 패러다임을 강조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 앞에서, 지금의 평가·선발 방식이 유효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제안이다.
이번 개편안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현 고1이 적용받는 2028학년도 대입으로, 선택 과목 상대평가를 즉각 폐지하고, 정시 비율에 대한 권고를 없애며, 특목·자사고의 수시 지원을 제한해 지역 균형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게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두 번째 단계인 2033학년도에는 내신 절대평가 전면 전환, 수능 절대평가화, 서·논술형 평가 확대, 수시·정시 통합 등이 제안되었다. 수능을 현행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단계 절대평가로 바꾸고, 모든 전형을 학생부 기반으로 재편함으로써 수능 중심의 대입 구조를 크게 약화시키겠다는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2040학년도에는 수능을 폐지하고 학교 교육과정 성취 중심의 전형을 정착시키며, 대학별 면접이나 서논술은 ‘보조 자료’로만 활용하도록 하는 구상이 제시됐다.
이 제안의 긍정적 의미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린다는 점에서 학생의 과목 선택과 학습 과정이 대학 평가와 연결되도록 하려는 시도다. 절대평가는 상대평가가 가진 ‘줄 세우기 경쟁’을 완화하고, 교실 수업과 평가가 학생의 성취 중심으로 이동하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다. 특히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시대에 획일적 전국 단일 시험을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질문은 현실적인 문제 제기이다. 대학 역시 다양한 전형 방식을 도입해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수능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도입은 변별력 약화 문제를 불러올 수 있고, 이는 결국 대학별 평가 강화로 이어져 사교육 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학생부 중심 전형이 확대될 경우, 학교 간 인프라·수업 질·교사진 역량의 차이가 대입 결과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구조적 불평등 문제가 강화될 수 있다. 재수생이나 비전형 경로 학생들에게도 불리한 제도가 될 수 있으며, 서울시교육청이 제안한 2040년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제도적 지원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방향은 이상적일 수 있지만 실행을 뒷받침할 현실적 설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논의는 단순히 시험 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교육이 경쟁 중심의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학생 개개인의 학습 과정과 성장을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선택과 연결된다. ‘2040 수능 폐지’라는 선언은 목표가 아니라 긴 과정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대학의 선발 기준 투명화, 학교 간 격차 해소, 평가 신뢰도 확보, 사교육 확대 방지와 같은 구조적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떤 제도도 공정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서울시교육청의 제안은 교육의 미래를 둘러싼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이번 논의가 단발성 이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회적으로 성찰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교육 제도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학생의 성장을 중심에 둔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