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10일
제목 에덴이 아름다운 세 가지 이유
본문 창1:31
먼저 창세기1:31의 말씀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날이니라.” 이 본문을 가지고 “에덴이 아름다운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환경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순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천만 습지와 국가 정원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가면 “에덴동산 같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사람의 생각 가운데 에덴은 아름다운 곳이라는 인식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 에덴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들은 에덴은 왜 아름답다고 여기십니까? 꽃과 나무 때문이라고 답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진짜 아름다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 에덴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스러운 어울림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마칠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마지막에 만든 사람 때문이 아니라, 엿새 동안 만든 그 모든 것들 때문입니다. 에덴이 아름다운 이유가 분명합니다. 모든 피조물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때문입니다.
순천만 국가 정원은 비옥한 농토를 매워서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입니다. 좁은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합리적인 국토 이용 방법이 아닙니다. 이번 정원박람회 개최를 위해 천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 정원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인위적으로 기획하고 예산을 투하하여 만든 정원은 어쩐지 부자연스럽습니다.
에덴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러운 어울림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정원은 인위적으로 꾸밈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화려해 보이지는 않으나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순천시 개방정원 공모를 했을 때 정원 전문가들이 우리 교회를 다녀갔습니다. 그 후 그분들은 정원 관련 세미나에서 우리 교회를 두고“순천에 천혜의 정원 조건을 갖춘 한 곳이 있다”라고 했답니다. 정원은 자연스러워야 에덴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화려한 꾸밈보다 자연스러워야 아름답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리는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2. 에덴이 아름다운 두 번째 이유는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사람 어느 한 편만 좋아서는 안 됩니다. 지난 8월1일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에 봉사자를 포함하여 5만 명이 모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준비 부족도 원인이 되었지만 갯벌을 메운 곳에서 야영을 함은 최악의 어울림입니다. 애당초 갯벌을 정복한 사람과 정복당한 갯벌은 어울릴 수 없습니다.
만일 잼버리대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새만금 개발 이전 생명이 꿈틀대던 부안 갯벌에서 체험활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원더풀, 뷰티풀을 외치며 행복해했을 것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울릴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꽃과 나무만으로 아름다운 에덴이 된다면 순천은 이미 에덴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박람회 개막식 때 해고된 정원 해설사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소외되고 꽃과 나무에만 관심이 집중된다면 에덴이 될 수 없습니다. 입장객의 숫자로 성공을 판가름할 수 없습니다. 입장료를 낸 사람들은 꽃과 어울리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구경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꽃을 애틋하게 보살피는 손길은 없고 사진 찍기에만 바쁠 따름입니다.
국가 정원은 태생의 한계가 있습니다. 기획과 연출 그리고 정치인들의 정치 행위까지 개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에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에덴을 모방할 수 있는 정원은 가정과 교회에서 가꾸는 정원에서나 가능합니다.
우리 교회가 정원을 가꾸고 있는데, 에덴을 흉내 낼 수 있는 시험대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정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정원이 아름다워지려면 온 교우들의 어울림이 더해져야 합니다. 아직은 어울림이 부족합니다. 몇몇 성도들의 관심과 수고만으로는 에덴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정원이 에덴이 되려면 온 교우들이 함께 꽃을 심고 가꾸는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 예산으로 심고 가꾸는 많은 꽃보다 나의 수고가 깃들여 있는 한 송이의 꽃이 백번 더 아름답습니다. 교우들이 풀을 뽑고 꽃과 나무와 어울릴 때 에덴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연을 아껴준다면 자연은 사람에게 몇 배나 더 좋은 선물을 안겨줄 것입니다. 정원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에덴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3. 에덴이 아름다운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의 어울림 때문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닐었습니다. 타락 이전 아담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최상의 어울림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과 어울림이 지속되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에덴의 행복을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과 하나님의 어울림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울림이 깨어지니 더 이상 에덴은 아름다운 낙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림이 깨져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없는데, 하나님과 어울림이 깨어지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타샤 투더라는 분은 혼자서 30만 평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자급자족하여 환경 훼손이 일절 없는 자연주의의 삶을 살았습니다. 높이 존경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합니다. 꽃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듯이 하나님과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꽃만 가지고는 에덴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과 잘 어울리는 관계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깨뜨린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를 해결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이 되셔서 죄를 지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잃어버린 에덴을 찾아 주려 하심입니다.
요한복음 20:11~15에 보면 십자가에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사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라고 말합니다. 동산지기의 본래의 뜻은 정원사입니다.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농부의 모자를 쓰고 손에는 삽을 들고 있는 정원사로 묘사했습니다. 얀 반 에이크라는 화가도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릴 때 손에 삽이 들려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잃어버린 에덴을 복원하시는 정원사의 모습입니다. 그의 손에 들린 삽으로 우리 영혼의 죄악 된 잡초를 뽑아내심으로 하나님과 어울리기에 합당한 자로 만드시는 참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계시록 22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완성할 에덴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에덴의 회복자이십니다. 회복될 에덴을 누릴 자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를 깨끗케 한 자들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회복될 에덴 정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니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덴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어울림이 있을 때만 아름답습니다. 교회 정원은 하나님, 사람, 꽃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원은 땅 위에서 에덴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도 없는 교회에서 에덴을 말하고 꿈꾸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결론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가 꾸밈없는 정원을 가꿈으로 에덴의 자연스러움을 모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정원을 가꾸면서 자연과 사람이 어울리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어울림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들에게 정원은 이렇게 가꾸는 거라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꿈을 꾸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들이 정원을 가꿈으로 하나님,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에덴의 아름다움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