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속에 숨어있는 엽록소 알갱이처럼.. 형제들의 간증 속에 숨을 쉬는 알갱이인 내가 참 좋아
주님의 나라 속에 자그맣게 열린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자아도 시간도 사라져 버린 태고적인 꿈을 꾸는 가창동산 위로 눈발이 분분히 내린다.
하늘에서 은빛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상위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족했던 스로보니게 여인의 상위에서 떨어지듯이 그렇게 떨어져서 내리고..
주님의 성전의 문지기로 족했던 다윗처럼..
주님의 나라의 길섶에 앉아 하늘에 내리는 눈발을 보고 가는 것만으로 저-만치서 행복이 밀려오는 이 느낌 주님의 나라는 시각도 청각도 아닌 이런 느낌으로 오는 것이겠지
“나이를 먹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서 늙어 간다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시구절 처럼 주님의 나라는 푸른 영혼의 안테나를 세우고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푸른 나라이겠지. 생물학적인 나이를 잊은 목사님에게서 그러한 푸른청춘을 본다.
남편과 자식을 여윈 상흔을 안은 박완서는 마흔살에 문학에 등단을 하면서 그녀의 속울음이 오히려 문학의 감동을 자아냈다. 윗트니스리의 걸작인 라이프 스타디는 70세에 시작하여 89세에 완결했다.
안철수는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역사의 흐름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목사님을 보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다 흐름의 때를 기다려 흐름의 물결속에 죽음을 실행하며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목사님은 겨울빛이 되어 저-만치 흘러간다.
주님의 죽으심의 그루터기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에는 죽음의 강물 만이 은빛처럼 유유히 흘러갈 뿐인가 보다.
소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선미.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선미 인생의 옥합의 산산조각은 속울음과 함께 맑은 소리를 내더니 하늘 위로 올라가 함박눈이 되어 깊은 산-속에도 마당 장독대 위에도 내린다
겨울 산을 지키는 겨울 나목처럼 이름 없는 들풀이 되어 주님의 길을 묵묵히 살아가며 교회를 지키는 형제들의 머리위에도 함박눈이 내리고..
겨울나무는 겨울 성자처럼.. 자신의 그 푸르던 잎과 아름다운 잎들을 떨구고 빈 마음인 채로 돌아와 계절의 섭리에 순응하며
비가 오면 빗길로 걸어가고 눈이 오면 눈길로 걸어가는 인생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겨울나무는 피조물의 운명인 벌거숭이가 되어서
선악도 자아도 시간도 별빛처럼 쓸려 가버리고 남은 자리에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버린 태고적인
주님의 동산인 겨울의 동화 속에 푹 잠들어 있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