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록중, 하나 더 공유하고 싶어서 글 하나 남깁니다.
혹시나, 제가 이해한 부분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문법, 시제, 단어 등 틀린 부분도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대학생 김준영입니다 :)
Part.1 만남
기대되는 시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대학생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났던 사이에서,
어느덧, 시간은 흘러흘러, 군대까지 전역한 내가 그 때 만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회복지정보원활동을 통해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군산나운복지관에서 근무하시는 원혜진선생님께서 광활3기 활동 하실 당시,
그리 많지는 않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선생님들 전화번호 하나하나 저장해가면서,
문자도 주고 받았던 기억도 있고, 집에 앨범에는 선생님들 이름 잊을까 싶어,
사진위에 작게 선생님 이름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을 정도로 좋은 추억이 있었다.
그런,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군산나운복지관에 들어서고, 강의를 하는 장소로 이동하며, 두근두근 내 마음은 더 뛰고 있었다.
선생님이 잠깐 뒤를 돌아보실 때.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순례 단원 중 누군가 인사를 건넨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인사를 받으시다가 내 얼굴을 보시더니 반가워 하셨다.
막상 인사를 나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art2 강의 중 울다.
힘들 땐 힘들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라 하셨다.
더운 날. 평가로 힘들어 복지사선생님께서 한 할머님한테 장난스런 투정을 부렸더니,
할머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 평가를 받으려면, 선생님들 고생시키지 말고, 우리를 만나야지!
식당으로 데려와 우리 만나게 해주면, 우리가 이야기 해줄게."
" 우리 만날 시간도 없는데, 그거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이 많어"
" 더운데 우리가 전기세라도 내줘야 할텐데.."
" 누가 복지관에 돈 많은데 우리한데 안주고 숨겨둔다 하냐!"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이 이후의 이야기를 잘 듣 지 못할 정도로 계속 눈물이 흘렀다.
이정도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복지관이 또 있을까 싶었다.
지역주민분들이 복지사 고생하는거 알아주시는게 너무 감사했다.
복지사를 단순히 뭔가를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시지 않구나 하는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혼자 생각해 본다.
실무자도 아닌 내가 이정도의 감격이라면,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얼마나 더 크게 감동을 받으셨을까.
얼마나 일할 맛나실까.
이렇게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지역주민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그동안 힘들었을까.
20년간의 고생이 그 한마디로 다 보상받은 것 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하는 일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을 만져주시고,
우리가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시는 말씀이라서, 더욱 감사했다.
훗날, 내가 실무자가 되어 당사자를 만남으로 인해 이러한 기쁨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다. 돈 없어도 소박해 질수 있겠다.
힘들어도 한 번 울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든다.
Part3 추억하다.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와 함께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께서 정말 멋지게 일하고 계신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사회사업가가 되어야겠다 싶었다. 선생님을 알게되어 정말 감사했다.
인사후에, 같이 받을 먹으며, 내가 보관하고 있는 사진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역시나. 옆에 이름쓰신 걸 보고선 웃으신다.
역시 기록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 때 그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싶어했던 그 때 그 중학생 꼬마가,
어느덧 이만큼 키가 자라고 그때보다 생각도 자라서
예비 사회사업가로 자라나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내가 더 기쁘고 힘이 되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선생님과 함께 사진하나 찍는다.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 저도 언젠가 열심히 사회사업 실천하는 현장가로 선생님 만나뵈러 올게요.'
시작부터 큰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