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 시낭송 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보성(해윤)
◆창립12주년 참 아름다운 세상◆
- 가을이 전하는 겨울 이야기 -
사회 : 이명순
일시 :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 서구 문화원 아트홀
01. 인사말 : 김보성 회장
02. 가락으로 여는 마당
인연외2곡.....................................신민요/안성군(대금연주),송지연(소리)
03. 가을이 전하는 사랑
손이 천개라도/권영상시----------------김양미낭송
가을이 오면, 가을/김용택시-------------김정희,구광모낭송
가을의 기도/김남조시------------------김미애낭송
04. 역사속의 사랑 한 마당
웃는 기와/이봉직시--------------------조경순낭송
합송시 : *달이 뜨거든/신동엽시---------------이지현,남동원낭송
*아사달과 아사녀 (대금연주:안성군).........나레이션: 김옥희
*아사녀가 아사달에게/성갑숙시---------이지현,남동원낭송
05 이어가는 마당
노래 :가을이 오면,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윤혜경(뮤지컬 가수)
06. 겨울 사랑 이야기
늦게 온 소포/고두현시------------------설동우낭송(엄마멘트는 한수정)
연탄 한장,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시----------안정임낭송
여정/이해인시------------------------이정숙
07. 백석과의 만남
시극 : 천재시인 백석의 노래를 듣다--------나레이션: 정미경
김옥희, 김보성, 한수정,우기식
08. 합창으로 닫는 마당
그대 눈 속의 바다/철새/된장---------------대전남성합창단
손이 천개라도
권영상
손이 천 개라도 모자라겠다!
안마당 고추 멍석에서 고추를 말리는
가을 햇살이 종종댄다.
가을 햇살은 바쁘다.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참깨 멍석으로 겅중 뛴다.
뒤적뒤적 참깨를 뒤적이다간 딸깍,
콩깍지 속의 샛노란 콩을 깐다.
그것만이 아니다.
담장 위에 누운 호박 덩이 익히랴,
모과 둥지 모과 덩이 익히랴,
뜨락 밑의 채송화, 채송화 꽃씨 여물리랴
가을 햇살은 바쁘다.
수레를 끌고 들어오는
아버지 어깨 위의 콩 메뚜기,
거기에도 깡충 뛰어올라
가을 햇살은 콩 메뚜기를 살찌운다.
참말이지 손이 천 개라도 모자라겠다.
가을 햇살은,
가을이 오면 김용택나는 꽃 이예요잎은 나비에게 주고꿀은 솔 방벌에게 주고향기는 바람에 보냈어요.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김정희)
가을 _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 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들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구광모)
가을의기도 / 김남조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못내 당신 앞에 벌 받던 여름은 가고
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
지금은 가을
노을에 젖어 고개 수그리고
긴 생각에 잠기 옵느니
여기 이토록 아름차게 비워진 나날
가을엔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가을엔
기도드리게 하옵소서.
바람 속에서
바람에 불리 우다 불현듯 더워 오는 눈시울
주체할 길 바이없느니
이제금 홀로인 그분과 나와
가을엔 사랑해야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가을엔 사랑하게 하옵소서.
경건히 보다 경건히
요적의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는
계절은 가을
신이시여
당신과 나 사이에
그분과 나 사이에
한 아름의 들국화를 두게 하옵소서.
보랏빛과 흰빛의 소담스런 국화가
피어도 있고 피면서도 있게 하옵소서.
가을은 돌아가는 계절
푸른 하늘 아래
나도 몰래 내가 멈춰서는 계절
문득 멈춰 서서 다시 보면
나는 혼자인 나
가을은 제각기 혼자인 계절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웃는 기와 - 이봉직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아사달과 아사녀(합송시)
삼국시대 백제 사비성에는 이름 난 석공 아사달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사녀를 아내로 맞이한지 얼마 안되어 신라의 불국사의 석탑을 만들러 신라로 떠나게 된다. 석가탑을 창건할 때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라 알려진
백제의 후손 아사달을 불렀던 것이다.
아사달이 탑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두 해가 훌쩍 넘겨 고향을 떠난 3년 동안
석탑을 만드는 일에만 마음과 몸을 바쳤고, 석탑도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아사달이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리움을 달래던 아사녀는 기다리지 못해 불국사를 찾게된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나지 못했고,
천리 길을 오직 남편을 보기 위해 온 아사녀는 날마다 불국사 앞에서 서성거리며 먼발치로나마 남편을 보고 싶어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스님이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소.
지성으로 빈다면 탑 공사가 끝나는 대로 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그러면
남편도 볼 수 있을 것이오."
라고 귀뜸을 해줬다.
그 이튿날 부터 아사녀는 온종일 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수면에는 탑의 그림자가 떠오를 줄 몰랐다.
상심한 아사녀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력조차 잃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그만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아사녀와 부처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불상이 완성되는 날, 아사달도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했다.
(이 멘트를 할 때 해금 연주가가 실제 해금을 연주하면 어떨까요? 멘트는 무대 뒤에서 하고 연주가는 무대에서 연주하고)
달이 뜨거든> 신동엽
<아사달과 아사녀의 노래>
<아사녀>
달이 뜨거든 제 얼굴을 보셔요.
꽃이 피거든 제 입술을 느끼셔요.
바람 불거든 제 속삭임을 들으셔요.
냇물 맑거든 제 눈물 만지셔요.
높은 산 울창커든 제 앞가슴 생각하셔요.
<아사달>
당신은 귀여운 나의 꽃송이
당신은 드높은 내 영원의 꿈
울다가 돌아간 가여운 내마음
당신은 내 예술 만발케 사랑 준 영감의 근원
<이중창>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니여요. (아사녀)
우리들은 나뉘인 게 아니여요. (아사달)
우리들은 딴 세상 본게 아니여요. (아사녀)
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속에 (아사달)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을 살아요.
잠시 눈 깜박 사이 모습은 다르지만 (아사녀)
나중은 같은 공간속에 살아요.
꼭 같은 노래 부르며 (사달.사녀)
한가지 허무속에 영원을 살아요.
아사녀가 아사달에게/성갑숙 시
정녕 무탈하신지요
뼈를 깎는 정 소리 멈추었고
영지는 하 맑아 혼이라도 비출 모양이건만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는 그림자
지난밤도 보여주지 않으니
비워야 할 것이 아직 남았음이라
오늘 백제땅 너머 신라로 다시 들어와
토함산 천년 불심 의지하여 빌어 보오
삼년에 삼십년을 덧칠한 그림자일지라도
지우고 지우다 보면 하얗게 비워질까 하오만 (아사녀)
불가로다 불가로다
석굴암 오르는 숲길 따라
흐려가는 눈 맑게 씻어
꿈속에서라도 어렴풋 눈 길 줄테니
한번쯤 손이라도 내밀어 보오
역사는 우리를
남매라 했다가
지아비 지어미라고도 했다가
그 어느 것이면 또 어떠하오
불국사 구정광장 ‘영원’으로 속삭이며
천세만인 우리 인연 이어지길 소원하니
또 한세상 이어가며 고이 품어 보리다 (아사달)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 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
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 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 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댓다고 몃개 따서 너어보내니
춥을 때 다려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무대에서 한수정 )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들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조명 꺼지고:김보성 )
여 정
이해인
태어나면서
나는 순례자
강원도의 높은 산과
낮은 호숫가 사이에 태어났으니
나의 여정은 하루하루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고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았네
지금은
내 몸이 많이 아파
삶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내 마음은
산으로 가는 바람처럼
호수 위를 나르는 흰 새처럼
가볍기만 하네.
세상 여정 마치기 전
꼭 한 번 말하리라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이에게
가만히 손 흔들며 말하리라
많이 울어야 할 순간들도
사랑으로 받아 안아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천재시인 백석의 노래(시극)
해설:
이 시대 최고의 천재시인 백석!
가난한 이웃에는 따뜻한 정을 잃지 않았으며, 식민지 상황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그마한 벌레와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친구처럼
노래했고,
어느 항구의 주막집에서 병든 처녀의 모습을 보고 눈물 흘렸던 백석!!
백석의 시에는 바람이 불고 구름이 떠 있고 시냇물이 흐르고 달이 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작가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국경을 초월하여 그를 최고의
천재시인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이렇게 위대한 시인 백석에게도 분단이 만들어낸 서글픈 사랑이 있었으니,
김영한 바로 기생 자야와의 애틋한 사랑이다.
사랑!
여러분들은 사랑이 무슨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을 다 바치고도 모자라는 사랑!
평생을 죽도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으로
가슴에 피멍이 든 사랑!
그런 사랑에서 사랑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까요?
천억원 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백석 시!
오늘 이 자리에서 백석이 사랑한 그 시대와 그리고 그의 사랑을 만나봅니다.
(무대: 탁자위에 시집 한권이 놓여 있다)
자야 : 당신이군요! (백석의 시집 『사슴』을 들고 쳐다보다 가슴에 품으며)
당신이 여기 계셨군요.
오십년 만에 안아보는 당신이군요.
인생은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들 하더군요.
실제로 겪어보니 틀림없는 사실이네요.
유달리 평탄치 못했던 내 인생 아까운 내 청춘을 바쳐 한 마리 새를 잡았다가
놓쳐 버린 것 같아요. 이 허전한 마음을 어디에다 붙여야 하는 건가요.
백석 : (다른 한 쪽에서 걸어 나오면서)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 싶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 시 「바다」부분 -
자야 : 당신과 내가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오르는 군요.
영생고보 선생들의 회식 자리에서 당신과 나는 처음 만나게 되었지요.
아~ 그리고 당신과의 사랑!
그러나 당신은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편을 가지고 오리라” 는 다짐을 하고
결국 만주로 떠나셨다죠.
그 후로 당신을 기다리며 살아온 내 인생!
그래도 당신의 소식은 끊어졌지만 늘 내 곁에 있는 것 만 같아요.
백석 : 나타샤~오 나의 나타샤!(대사)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부분 -
노리다께 가스오
: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 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벌써 스므 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벗, 백석이여,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십시오
백(白)이라는 성과 석(石)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 노리다께 가스오 시 「파」전문 -
백석 :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 시 「나 취했노라」노리다께 가스오에게 전문 -
(취한 듯한 음성으로)
노리다께~ 자네가 그립네.
자야 : 비를 맞으며 돌아옵니다.
그대 생각에 걸어보던 거리
이젠 아무런 만남도 없어 쓸쓸히
비를 맞으며 돌아옵니다.
사랑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서로 그리워 하는 것.
비를 맞으며 돌아옵니다.
그대 생각에 쓸쓸한 거리
비를 맞으며 돌아옵니다.
- 김기만 시 「이별」전문 -
백석 :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 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 시 「늙은 갈대의 독백」 부분-
불을 끈 방안에 횃대의 하이얀 옷이 멀리 추울 것같이
개방위(方位)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연다 머룻빛 밤한울에
송이버섯의 내음새가 났다.
- 시 「머루밤」전문 -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 영상으로 띄울 것* (이때 가수 윤혜영님의 노래가 들어가면 어떨지...)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 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여기까지 영상으로 처리)
자야 : 환한 사랑만으로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세상엔 별이 켜진 어두운 밤에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는
그런 사랑도 있답니다.
당신도 나도
그저 환한 사랑을 믿으며
높게 높게 쌓아올린 만남.
언젠가는 그 만남을 이루지 못한 채
눈사람같은 자세로 뒤돌아 서야만 한답니다.
찬겨울이 내 집 뜨락을 서성거리듯이
어느날 생각지도 않은 이별이 오고
우리는 흰 눈발에 입술 부비며
돌아들, 돌아들 갈 것입니다.
화려한 사랑만으로는 보려하지 마세요.
세상엔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긴 메아리같은 사랑도 있답니다.
- 김기만 시 「환한 사랑만으로는 이야기하지 마세요」전문 -
백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중략)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중략)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시 남신의주(南新義州)유동(柳洞)박시봉방(朴時逢方) 부분 -
(다른 한쪽에 테이블과 의자, 기자와 자야가 앉아 있다.
자야는 담배를 물고 불을 당겨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 부분은 늙은 자야의 모습으로 한수정님이 하면 좋을 듯합니다.)
기자 : 백석 선생님은 언제 제일 생각나세요?
자야 : 사랑하는 사람 생각나는 데 어디 때가 있나!
기자 : 선생님, 시루로 천억을 내 놓았는데 후회되지 않으셔요?
자야 : 무슨 후회?
기자 : 선생님, 천금을 내놓으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자야 :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천억이 그 사람의 시 한줄만도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거야.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