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협동조합= 영리화된 보육시설의 단순, 반복, 획일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자연 친화적이며 공동체적인 어린이집 생활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육아 운동이다. 대구에는 '씩씩한 어린이집'을 포함해 '노마'(북구 국우동), '딱지와 구슬'(북구 구암동), '솔방울'(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등 4곳이 있다.
대구의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수성구에서 사설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자연과 어우러져 놀면서 체험학습에 매진하는 초등학생들이 있을까.
공동체 생활을 통해 삶 속에서 참교육을 실천하는 대안교육의 장을 추구하는 현대판 맹모(孟母)들이 뭉쳤다. 이들이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를 구성,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기 위해 만든 '공동육아 방과후 해바라기'를 찾았다.
"스트레스 없어 학습 도움"
성적 상위권 학생 수두룩
◆놀면서 자연과 함께…
11일 오후 2시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146-1번지 도로가 '방과후 해바라기'. 800여㎡의 부지에 단층 건물과 넓은 마당. 대문도 없이 막대기로 만든 울타리 넘어 초등학생 10여명이 칼싸움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칼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가늘고 기다란 나무와 대나무 토막이었다. 친구가 다칠 것을 염려해 칼마다 파이프 단열재인 스티로폼으로 감쌌다.
이곳 대표교사인 김병현씨(36)는 "아이들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칼싸움은 펜싱경기와 같았다. '챙', '챙', 칼끼리 마주치다 상대방의 몸을 먼저 찌르는 아이가 승자다. "내가 이겼다." "아니야 몸에 닿지 않았어." 지금 30~40대라면 누구나 어릴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흔히 놀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놀면서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작은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김 교사는 설명했다.
해바라기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 한 켠에서 초등 2학년 여학생 3~4명이 좌식 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색지(A4용지)에다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쓰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일이 친구 생일이어서 축하 카드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방에선 즐겁게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식탁과 이불이 가득한 가운데 여학생들이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식탁과 이불은 이들이 즐겨찾는 놀이기구다. 식탁으로 기지를 만들어 숨거나 이불을 덮어쓰고 자신을 감춘다.
옆방은 책방이었다. 하지만 학습지나 참고서는 없었다. 동화와 만화, 식물이나 동물을 소재로 한 각종 도감류가 주류를 이뤘다. 교과학습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오후 3시 정신없이 놀던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가위와 호미를 들고 도로변으로 모였다. 인근 천을산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체험학습 시간이다.
약 300여m를 걸어가니 산길이 나왔다. 산자락 작은 연못인 '서당지'에서 아이들의 발길이 멈췄다. 잡초가 무성한 둑 길에서 채현(여·9)이가 가위로 자른 쑥을 들어 보이며 "캤어요"라고 했다. 기자가 "(쑥인 줄) 어떻게 알아?"라고 물으니,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이 "흐흐흐"하고 웃기만 했다. 순간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
|
아이들이 해바라기 마당에서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 | |
쑥을 캐내 들고 비닐봉지에 담았다.
도심지 아이들이지만 이들에겐 쑥은 이미 친숙한 존재였다. 해바라기에서 식물도감을 통해 산에서 나는 각종 식물류에 대한 학습이 된 터였다.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천을산에서 찔레나무 새순을 까서 먹기도 하고,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반죽에 화전을 부쳐 먹어 왔다. 지난해 초여름 단옷날에는 창포물로 머리도 감았다. 가을에는 6종의 도토리나무를 구별하며, 묵을 쳐 먹기도 했다. 땅을 파 보고 싶으면 파고, 벌레가 나오면 벌레를 봐왔다. 아이들에게 천을산은 생태체험학습의 장이자 놀이터인 셈이었다.
방과후 놀기만 하면서 공부는 언제 할까? 이곳 아이들 중에는 반에서 반장, 부반장이 수두룩하다. 성적은 시험을 치면 전과목 100문제 중 90문제 이상을 맞히는 상위권이다. 반드시 숙제와 복습을 마무리한 후 해바라기 생활에 임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수업시간 집중력이 월등하다. 이런 집중력은 아이들이 정작 경쟁이 필요한 고교진학 이후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교사채용 운영
"생태·생활문화 등 중점"
◆부모가 운영한다
방과후 해바라기는 부모들이 운영한다. 부모들이 직접 교사를 채용하고,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운영 전반을 논의한다. 이를 위해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을 구성하고 이사회와 교사회를 뒀다. 현재 25가구 27명의 초등 1~5학년생과 4명의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삶과 자연이 함께 해야 한다는 교육가치를 갖고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마음껏 뒹굴고 놀면서 생명력을 몸으로 느끼고, 생활속에서 배움을 터득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류영준 조합장은 "사교육에 떠넘겨져 끝없는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 공교육의 폐해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으로 자발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들이 나선 것"이라며 "가족과 사회가 공동으로 육아를 책임져 아이가 보다 행복한 삶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해바라기의 모태는 1995년 개원한 '씩씩한 어린이집'이다. 해바라기와 200여m 떨어져 있는 이 곳 역시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자연과 더불어 키워야 한다는 것이 신조다. 씩씩한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들을 위해 1999년 개설됐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은 해바라기와 씩씩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비법인 단체로, 현재 41가구 부모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바라기의 교육과정은 생태·생활문화·관계·통합교육으로 전개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인성, 협동심, 사회성, 배려심 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이중 관계교육에서 '별명 부르기와 반말 문화'를 도입한 것이 흥미롭다. 김 교사의 별명은 '토토로'다. 아이들이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서 따왔다. 나머지 교사들도 '달콤', '맛사탕', '장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별명을 부르며 교사들과 반말 대화를 한다. 이사회와 교사회가 합의해 결정한 사항이다.
김 교사는 "반말 문화는 교사와 아이들 간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교사가 맞춤으로써 친밀감이 더해 진실된 소통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