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예이츠 시 모음
예이츠
1865~1939
아일랜드의 시인·극작가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런던에서 화가가 되려고 공부하였으나 시쓰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당시 유행하던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889년 첫 시집《마신의 방황》 이 와일드 등 많은 시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공을 세워 원로원 의원이 되었으며, 1923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초기작품은 여성적이고 낭만적이었으나, 후기에는 상징주의적이며 딱딱하고 건조한 남성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극 작품<캐서린 백작 부인>, 시집 《마이켈 로버츠와 무희》 《탑》 등이 있다.
하늘의 융단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의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오직 꿈만 지녔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
이니스프리 섬으로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내 고향 이니스프리로 돌아 가리라.
거기 외 얼고 진흙 바른 오막살이 집 지어
아홉 이랑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소리 잉잉대는 숲 속에 홀로 살리라.
그러면 거기 얼마쯤의 평화 있으리라,
평화는 천천히 안개 자욱한 아침부터
귀또리 노래하는 곳까지 내린다하니,
밤은 온통 훤한 빛,
낮은 보라빛 저녁이면
홍방울새 가득히 날고,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
밤낮을 두고 기슭에 나직이 찰싹이는
물소리 들으리라.
길가에서나 회색빛 포도 위에서나
마음 속 깊이 그 소리를 들으리라.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I
저것은 늙은이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젊은이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나뭇가지 속에서 새들은- 저 죽어 가는 세대들은- 노래를 부르며
연어가 튀는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짐승,새들이 온 여름을 찬미한다.
잉태되고 태어나고 죽는 모든 것들을.
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모두들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소홀히 하는구나.
II
늙은이는 한낱 하찮은 물건,
막대기에 꽂힌 누더기.
다만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부르지 않는다면,
썩어질 누더기 조각을 위해 더욱 소리 높이 노래부르지 않는다면.
또한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탐구하지 않고서는
노래하는 학교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노라
III
오 현인들이여, 벽의 금빛 모자이크 속에서처럼
신의 성스런 불꽃 속에 서있는 그대들
성화로부터 걸어나와 뱅뱅 맴돌며
내 영혼의 노래 선생이 되어 다오.
그리하여 내 심장을 태워 없애 다오.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 가는 동물에 매달려 그것은 자신을 모르나니
나를 모아 영원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다오.
IV
한 번 자연에서 벗어나면 나는 결코
자연계의 어떤 사물을 닮은 내 육체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리라.
오직 그리스의 금장이가
졸음 오는 황제를 깨워 두기 위해
망치로 두들기고 금박칠을 한,
혹은 비잔 티움의 귀족들과 귀부인들에게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는 또 장차 다가올 일들을 노래불러 주는
황금 나뭇가지 위에 앉은
그런 형상을 취하리라.
쿨 호수의 백조를 보며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훔쳐 온 아이
스루스 숲 바위산이
호수 속에 잠긴 곳에
나뭇잎 우거진 섬 하나 떠 있다.
푸드득 나래치는 왜가리들이
잠자는 물쥐들을 깨우는 그 곳
우리들 요정의 통 속엔
딸기를 가득
훔쳐 온 빨간 버찌를 가득 숨겨 두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어두운 잿빛 모래밭
달빛 물결이 빛나는
먼 로시즈 해변에서
우리는 밤새도록 춤을 춘다.
손에 손을 잡고서
서로 마주보며
저 달이 사라져 버릴 때까지
옛 춤을 엮어낸다.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끓어오르는 물거품을 쫓지만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고
잠 속에서도 근심에 싸여 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그렌 카 언덕 사이로 굽이치는 시냇물 쏟아지는 곳
별 하나 목욕할 수 없는 등심초 우거진 웅덩이 속에
우리는 잠자는 송어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불길한 꿈을 안겨 준다.
작은 시냇물 위에
눈물방울 떨어뜨리는 고사리들 사이
살짝 몸을 내밀고서,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이 아이는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진지한 눈을 하고서.
이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따뜻한 언덕 위 송아지 우는 소리를,
난롯가 주전자의 평화로운 노래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갈색 새앙쥐가 귀리통을 돌고 도는 것을.
"사람의 아이 그가 오는구나.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서
요정과 함께 오는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눈물로 가득 찬 곳이니."
부활절 1916
내가 그들을 만난 것은 해질 무렵
18세기풍의 회색 집들 사이
카운터나 책상으로부터 벗어나와
생기 도는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의미없는 말로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혹은 잠시 머뭇거리며
정중하게 의미없는 말을 건네다가
인사도 채 끝나기 전에
클럽의 난로가에 앉아 있는
한 친구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농담이나 조롱거리를 생각했다.
그들도 나도 어릿광대의 옷을 입고
살고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은 달라졌다. 완전히 달라졌다.
무서운 미(美)가 탄생한 것이다.
저 여자의 나날들은
무지한 자선으로 보내고
밤은 논쟁으로 지새워
마침내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그녀가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
사냥개와 더불어 말을 타고 달렸을 때의
그녀의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
이 남자는 학교를 경영했고
날개 달린 천마를 탄 시인이었다.
또 한 사람은 그를 도와 준 친구이며
이제 막 그의 시재가 피어난 사람.
끝내는 명성을 얻어
그토록 예민한 천성과
대담하고 감미로운 사상을 가질 듯 보였던 아까운 인물,
이 또 한 사람은 주정뱅이요
허풍선이라 생각했던 사람.
그는 내 마음의 친구에게,
아주 몹쓸 가혹한 짓을 저질렀지만
이 노래에 그를 담아 두자.
그도 또한 이 예사로운 희극에서
자신의 역을 벗어버렸다.
그도 차례가 오자 달라졌다.
완전히 변했다.
무서운 미가 탄생한 것이다.
일 년 내내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좇는 자들의 심장은
살아 있는 시냇물을 어지럽히는
한 개 돌이 된 것만 같다.
길에서 오는 말도 기수도
떠도는 구름 사이를 날으는 새들도
시시각각 변한다.
시냇물 위의 구름 그림자도
시시각각 변한다.
강 언저리에 미끄러지는 말발굽 소리
시냇물 속에 첨벙대는 말
다리 긴 붉은 뇌조의 암컷들이 잠수하며 수컷들을 부르는 소리
시시각각 그들은 살아 있다.
돌은 모든 것들의 한 가운데에 있다.
너무 긴 희생은
심장을 돌로 만들 수 있다.
아 언제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늘의 역할
우리들이 할 일은 한 사람씩
이름을 속삭이듯 불러 주는 일
마구 뛰어놀던 아이의 몸에
잠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부르듯이.
이제 밤이 되었는가?
아니 밤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것은 결국 쓸모 없는 죽음이었던가?
영국은 모든 언행을
약속대로 지킬지도 모르는 일.
우리는 그들의 꿈을 알고 있다.
그들이 꿈을 꾸고 죽은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지나친 사랑이
그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당황케 했다면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을 한 편의 시에 적노라.
맥도나와 맥브라이드,
코널리와 피어스는
오늘 그리고 돌아오는 훗날에도
푸르름이 우거진 어느 곳에서도
달라졌다. 완전히 달라졌다.
무서운 미가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