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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숭규 신부(의정부교구 연천성당)
제가 시골 성당에 온 지도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한가로운 시골생활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루에 미사 한 대만 드리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대개 여유로웠습니다. 온종일 있으면 성당에 찾아오는 손님이란 새 몇 마리 정도였습니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시달리면서 피곤하게 살아온 이전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었습니다. 읽고 싶었던 책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강아지하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가 점점 숙제처럼 다가왔습니다.
가끔 도시에 일이 있어서 새벽에 전철을 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졸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피곤한 몸으로 새벽같이 출근하는데 하루에 미사 한 대만 드리고 나머지 시간을 허송세월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문득, ‘내가 요즘 사는 모습이 백수와 별 다를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고민 끝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국화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땀을 흘려 국화를 키우다보면 시간도 잘 지나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손수 키운 그 꽃을 가지고 지역 주민을 위한 축제를 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꽃을 통해 지역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화를 키우게 되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땀을 흘렸습니다.
이런 사연을 거쳐 저희 성당에서는 해마다 국화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축제가 올 가을이 되면 6회째가 됩니다. 지역 주민뿐만이 아니고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도 먼 길을 마다않고 저희 시골 성당을 찾아옵니다.
전에는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새 몇 마리가 다였는데 축제가 시작되면 성당 마당이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도 없습니다. 이제는 저희 지역의 가을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당을 찾아주신 많은 분들을 보면 땀 흘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더욱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서 좋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인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인생의 지혜를 알려줍니다. 한 번은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여우의 말처럼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시간을 보내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가생활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나 텔레비전 앞에서 그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냅니다. 여가생활이나 컴퓨터, 텔레비전은 우리 사제들에게 궁극적인 것도 아니고 더욱이 참으로 소중한 것일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오신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제공했습니다.>